아열대지방 대낮에 급작스럽게 쏟아붓고 사라져 버리는 스콜 현상이 보이기 시작하니말이다
우산도 챙겨 오지 않았는데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섭게 쏟아져 내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을 보이기도 한다
꼭 솔이처럼.......
처음엔 잔잔한 봄비인줄 알았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볍고 촉촉하게 내리는...
하루종일 젖어 있던 나에게 솔이 건넨 노란우산은
뽀송함을 주었다
눅눅하고 끕끕한 느낌마저 잊을만큼
잠시 빌렸던 우산을 돌려줄 때 까지만 해도
우산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항상 산뜻한 기분일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우산이 필요 없어졌다
우산으로도 막을 수 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을 들 힘조차 없는 폭풍우 속에
눈 내리는 날이면
우산 없이 한 없이 길을 걸었다
그날처럼 난 혼자 서 있었다
혹시나
노란 우산을 쓰고 달려와주지 않을까?
환한 햇살같은 미소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헛된 꿈을...
눈조차 오지 않는 겨울이면
솔을 떠올리고 싶은 내 마음마저 사치라는 듯
엄히 꾸짖는 하늘의 벌 같아
꽁꽁 언 마음을 더 깊이 감추며 굳어갔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죽어갔다
내가 솔을 기다렸던 지난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었던 것이 싫어서 솔은 나를 기다리지 않게 하려 항상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간다
오늘도 30분 이상 일찍 도착해 있었다
일부러 밖에서 솔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로비에 앉아 입구를 보고 시계를 보고 또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솔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기까지 하다
항상 내가 일찍 오는 것을 알기에 도착했으려니 했다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건지 계속 눈이 입구를 향한다
[솔아 어떡하지? 갑자기 일이 생겼어 데리러 못 갈 것 같아]
"괜찮아 비도 오는데 야외 촬영은 아니지? 바람 소리랑 빗소리가 들리네?"
[잠깐일거야]
"옷 잘 챙겨 입구 우산도 잘 쓰구 이따 봐"
[사랑해]
"나도"
내 거짓말에 솔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감정이 투명하게 보여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저렇게 순진해서 이 세상 어찌 살아갈까......
틈을 주면 안 돼 틈을..... 언제 왔는지 솔 옆에 김태성이 서 있다 차키를 손가락에 끼운 채 뱅뱅 돌리면서.
김태성이 일을 그르치기 전에 행동에 옮겨야겠다
대한민국 3대 우산씬이 있다
1. 늑대의 유혹 강동원
2. 도깨비 공유
3. 기억을 걷는 시간 류선재
딴 딴따 딴따라란 따라라라란
빠빰뺘 뺘빠빰 빠빰빠
성큼 성큼 너에게 다가간다
가려졌던 얼굴이 서서히 올라가는 우산 속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선재다!!!"
환하게 웃으며 솔이 손을 흔든다
네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된다
내 손에 노란 우산을 들고 햇살보다 반짝이는 네게 간다
"태성이가 데려다 준다고 했는데 왜 왔어?"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온 몸으로 기분 좋음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인다
"내 인생의 스케줄은 솔 너야"
"정말~~?"
"잘~~논다. 배경 음악 끄시지? 현실에서도 영화 찍냐? "
"흠흠.... 넌 안 바쁘냐?"
극적 등장을 위해 틀어 놓은 음악을 끄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는데 우산때문에 손이 자유롭지 못해 쉽게 버튼이 눌리지 않는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태성과 그러든 말든 태성은 안중에도 없이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라 하는 솔
솔이만 좋아하면 됐지 뭐가 문제겠는가
내 폰을 대신 잡아주려 내민 솔의 손에 우산을 쥐어줬다
그만큼 확 줄어든 우산 속 우리 둘의 거리
한쪽 무릎을 굽힌채 솔에게 속삭였다
"네가 씌워준 노란 우산 속에 영원히 갇혀버린 19살 선재가 이제야 행복해져. 숨을 쉴 수 있어"
"선재야...."
온 몸이 다 젖었지만 축축하지 않다
어린시절 수영장에서 행복하게 물장구쳤던 꼬마 아이가 좋아하던 그 느낌이 가득하다
집에 와서 젖은 머리를 툭툭 털어내다 멈췄다
"솔아 솔아 임솔!!"
"웅 가요 가 아주 잠깐만~"
왜냐고 물을 법도 한데 솔은 항상 '응'이라는 답을 먼저 외친다
언제나 옆에 있겠다던 약속을 지키려고
"팔이 아파"
"날이 궂어서 그런가보네 요기 앉아봐"
분명 핑계인걸 알면서도 꾀병을 모른척 받아준다
솔 앞에 마주 앉아 머리를 내밀고 눈을 감았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 내 머리를 만지며 따스한 바람과 함께 간지럽힌다
솔 무릎에 폭 얼굴을 파묻는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려고 .....
드라이기의 시끄러운 바람 소리에 감춰지길 바라며 소리 죽여 울었다
네 손길이 날 어루만지며 위로해주는 기적같은 순간이 꿈같아서
솔도 느꼈는지 재빠르게 움직이던 손이 천천히 멈춰간다
허공속에 뜨거운 공기를 내뿜는 드라이기 모터소리만 울려퍼진다
오늘도 바닷가씬
다행인건 수영씬은 없다
그러나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씬이 있어서 긴장된다
현장은 언제나 변수의 연속이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른다
그럼 그렇지
그냥 뛰어다닐리가 없지
왜 헛것을 보고 뛰어드는 장면이냐고
덜컥 겁부터 난다
내가 잘못되면 다치면 슬퍼할 사람이 있다 아무일 없이 돌아가야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 될 수록 지치고 한발짝 떼기가 버겁다
마지막이라면서 '다시 다시'를 반복하는 감독이 밉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음먹고 뛰는데
삐끗
갑자기 한 쪽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진다
발밑에서 누군가가 잡아 당기듯
뻘에 빠진 듯 쑥하고 빨려들어간다
"선재야!!! 류선재!!!"
솔.....
솔이 부른다
가야한다 솔에게
항상 '응'이라는 긍정의 대답만 해주는 솔에게 나도 대답해야한다
버둥거리며 간신히 물밖으로 나봤다
사람들말론 내가 무언가에 튕긴 듯 물 위로 솟구쳤다고 한다
아마도 솔의 목소리가 날 끌어 올린 것이겠지
"형님 괜찮아요? 정신차려봐요 "
"솔이.... 목소리가 들렸어....."
"귀신이네~~그게 들려요?"
동석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파제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솔이 있었다
촬영 스케줄부터 내 모든 것에 크게 간섭하고 관심두지 않는 솔이 촬영장에 와 있었다
날 걱정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솔의 모습이 보였다 가려졌다를 반복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솔 눈에도 내가 안보이겠지?
달려와보지도 못하고 마음만 졸이고 있겠지?
동석의 부축을 받으며 안간힘을 써서 일어났다
내 맘을 다 아는지 솔이에게 데려다 주었고 솔의 얼굴을 보자 그제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휴.....살았다...."
"웅 잘 왔어..."
울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환하게 웃으며 주저 앉아있는 나를 꼭 안아준다
"꼭 이 영화 촬영만 하면 병원 신세야 이거 때려칠까?"
큰소리로 투덜거리며 솔의 표정을 살폈다
솔은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백미터 멀리서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정도로 투명한 유리그릇같다
그러나 오늘처럼 큰일이 있을 땐 다르다
하얀 사기그릇처럼
약해보이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건 알겠는데 속이 전혀 보이지않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모르는 ...
감정의 변화도 없이
아주 옅은 미소만 스쳐지날뿐
무서우리만큼 평온함 그자체다
"때려칠까?"
"아니 계속 해"
"또 다치면?"
"그땐 그만둬도 돼 그렇지 한번 한 약속 끝까지 가야지 또 다치면 내가 위약금 물고 그만두게 할거야 이깟일에 그만두면 류선재가 아니지 류선재가 누군데~~"
별거 아닌 인생이 대단한 것처럼 느끼게 말하는 솔 덕에
어리석은 나는 또 오뚝이처럼 일어난다
다음 촬영부턴 솔이 함께 했다
내 연인이 된 후로 항상 숨기만 하던 솔이
사람들 앞에
나왔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래선지 바닷가 촬영씬에선 단 한번에 사고도 나지않고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위험한 촬영때마다 솔이 없으면 작고 크게 사고가 났다
모두들 습관처럼 솔을 찾기 시작했고
그날부터 솔은 우리 영화의 드림캐쳐, 행운 요정이 되었다
처음엔 아니꼽게 보던 사람들도 솔의 밝음에 녹아들어 모여들기 시작했고 노출이 되며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자마자 벌떼같이 달려들어 소문을 잠재워버렸다
솔이 바라던 그림자의 삶을 존중하듯
그들이 또다른 큰 나무가 되어 그들의 그늘 속에 솔을 숨겨주었다
무섭고 지겹고 힘들었던 촬영이 얼추 끝나간다
촬영 막바지에 무편집본 또는 제작진 사전 시사회로 그동안의 촬영본을보며 편집 방향을 잡는 상영회라고 거창하게 부르진 않지만 나름 형식 갖춘 평가회가 있다
주로 제작진 위주지 배우들에게 보여주진 않는데 이번엔 우리도 참석하라고 연락이 왔다 물론 솔도 함께
"제가 와도 되는 자린지 모르겠어요"
"회의실에 모여서 촬영분 좀 보는 건데 어때서요 우리 행운요정이 미리 봐주면 흥행 잘 될지도 모르잖아"
"감독님 농담도 잘하셔요 감독님 실력에 저희가 살짝 발 담고 가는거죠"
눈하나 깜짝 안하고 입술에 침도 안바르고 저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다니 ... 솔도 사회생활을 딱히 해보진 않았을텐데 했으면 한가닥 했을수도
아직 배경음악 음향효과가 입혀지지 않아서 심심하지만 나름 괜찮아보인다
짤막 짤막하게 끊어져 단막극 보는 느낌이랄까?
장편 영화란걸 알지만 색다른 경험같았다
그런데...
화면 한 켠에 솔이 그 반대편엔 내가 서 있다
휘청거리며 솔에게 걸어가 털썩 주저앉아 기대어 쉬던 그날의 모습
공포가 한 순간 사라지며 평온해진 화면 속 내 표정에
나도, 모두가 감탄하게 되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솔의 휠체어가 지워져있었다
방파제에 걸터 앉아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카메라가 돌고 있었는지 몰랐어 다들 껐다고 생각했는데 한대가 돌고 있었고 또 메이킹 카메라에도 찍혀있었더라고
선재씨 표정이 정말 평온해 보였어 안식처를 찾은 사람의 표정이 이런거구나 싶어서 ....물론 본편엔 안 넣을거야 일반인이고 선재씨도 솔씨 알리고 싶지 않아하니까, 그런데 둘이 정말 예쁘잖아 그래서 좀 건드려봤어 "
우리에게 선물이라며 파일이 담긴 usb를 주셨다
마지막 촬영날
비가 오는 장면
오늘도 살수차 한 두 대 양은 온전히 맞아야 끝날 촬영
위험한 촬영은 아니라 솔과 함께 오진 않았다
[촬영 잘하구 감독님 말 잘듣구]
"내가 애야? 말 듣구말구 하게?"
[조심하란 말이지~~내가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게 빨리 마치고 올라갈게 집에서 봐 사랑해 "
아직 내 말이 다 안끝났는데 전화를 끊었다 치....숨소리라도 더 듣고 싶었는데
비 맞고 또 맞고 또 맞고
추운 걸 넘어선 빗방울이 살을 에인다는 말이 뭔지 알겠다
감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거구나
난 움직이고 싶은데 생각과 달리 굳어버린 팔다리
머리론 신호를 보내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당혹스러움
다리끝부터 점점 둔해져오는 감각 속에 모순된 날카로운 통증이 뒷머리를 찌르며 비웃는다
솔이 밤마다 아파하는 이유
꼭 겪어봐야 아는 어리석은 존재라 미안할뿐
컷 소리와 함께 모두들 수고했다는 소리와 축하 박수 속에 내 귀에 꽂히는 목소리 하나
"류선재다!!"
오늘은 솔이 나를 마중나왔다
몰래 훔쳐보던 뒷모습에서
환한 미소 지어주는 앞모습으로
그날 노란 우산을 들고 나에게 달려왔던 그날처럼
네 목소리가 맴돈다
듣고 싶었던 내 이름을 부른다
소리를 향해
솔을 향해
뛰었다
조금전까지 손 까딱하기 힘들었던 건 다 까먹었는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어 내고 있다
솔을 꽉 안았다
'아차 나 젖었는데' 라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상황은 바뀐 것이 없었다
솔이 온 힘 다해 날 안아주고 있었다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며 가벼워진다
"나 왔어"
"웅웅 잘 왔어 무사히 와줘서 고마워"
"오늘도 머리 말려주라"
"웅웅 예쁘게 해줄게"
쪽 볼에 한 번
쪽 입술에 또 한 번
따뜻하다
꿈 아니네....
꿈이면 깨지말고
꿈 아니여도 영원히 그대로이길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편협했던 내 세상이 넓어지고
어두웠던 내 세상이 밝아진다
내 세상으로 네가 들어왔다
네 세상이 내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내가 조금씩 치유되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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