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의 시선 >
쨍그랑!!!
이게 무슨 소리지?
우리 집 보안 좋은데? 높은 층이라 도둑 들어오기도 어려운데?
깜짝 놀라서 방 밖으로 재빨리 달려나갔다
저 정도의 큰 소리가 들릴 만한 곳은 부엌뿐인데
인덕션 앞에서 놀란 토끼눈으로 바짝 얼어있는 솔
"솔아 괜찮어?"
"....어..."
"놀랐지?"
"조금...."
정수기 높이, 컵 위치도 솔이에게 맞춰 조절해서 낮춰놔서 다칠 일 없게 했는데 무슨 일일까?
잔뜩 긴장한 솔의 한손에 주걱이 들려있었다
"지금 뭐 하는거야?"
"....너 아프니까 죽 쒀줄려고 ...."
지난번 부상으로 촬영이 미뤄져 있던 것을 몰아서 찍다보니 조금 무리가 되었는지 몸이 많이 무거웠다
예전같으면 가뿐히 넘겼을 정도의 피로도였는데
워낙 환경과 심리의 변화가 많아진 시기여서 그런지 더 에너지 고갈이 심해진 것 같았다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해 본적도 없잖아 이러다 다치면 누굴 원망하려고? 누가 죽 끓여달래? 배고프면 이따 알아서 먹으면 되지 번거롭게 뭘 만들다가 이 난리야 위험하게 일을 만들어 왜? 나 죽 안먹어 죽 안 좋아해"
".....그러게....할 줄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하는데 괜히 나섰다 그치?"
아차차
미안함과 서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울멍울멍거리는 솔의 얼굴을 보니 한대 맞은 듯 했다
기껏 내 생각해서 무언가를 해보려 했는데
서툴어도 두려워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용기를 냈는데
눈치없고 멍청한 내가 솔의 마음도 모르고 화부터 냈다
"아니 난 네가 다칠까봐 .... 부엌 일은 안해봐서 서투니까...다친데 없어?"
" .......없어.."
풀이 죽다 못해 심하게 데쳐져 녹아버린 시금치처럼 흐물거리고 축 쳐져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솔을 보니 짠하다
냄비가 바닥에 떨어지고 죽이 쏟아져 인덕션부터 흘러 내려있었다
깨진 것은 없어서 피가 나진 않은 것 같다
잔뜩 걱정되는 표정으로 솔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오른 손 주걱에서 흘려나온 쌀죽 덩어리가 흘러내려 솔의 허벅지 위에 떨어져있었다
급하게 솔을 들어올려 식탁 위로 옮겨 앉혔다
바지를 걷어보니 벌겋게 달아올라 벌써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눈에서 무릎 위로 작은 멍울들이 맺혀 떨어졌다
어떤 것이 눈물이고 어떤 것이 물집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아파? 아파서 울어? "
"..... "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솔이와 눈을 맞추려고 아무리 고개를 숙이고 이리 저리 돌려보며 다가가도 전혀 솔이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에 가려지고 눈물이 막을 이루고 눈썹 끝까지 방울로 매달려 똑똑 떨어져
시선이 맞춰지지 않는다
우는 솔이를 보니 머리가 하얘진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말을 해야하는데 ....,.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쿡쿡 쑤셔온다
울리려고 한 건 아닌데
그렇게 말할 건 아니였는데
열기를 우선 빼야하니 얼음을 가져가 대며 혹시라도 차가울까봐 행주에 싸서 대주었다
약을 발라주며 호호 불어 주었다
그순간 혼잣말인지 마음 속 생각이 툭 튀어나온 건지
솔의 말에 또 한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리.....감각없어서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픈 것도 못느껴.....그런데도 넌 남들과 똑같이 대하네 나도 남들처럼 똑같이 네게 해주고 싶었는데....."
정말 단 한 가지
나를 위하는 마음 하나뿐인데
난생처음 다른 사람을 위해 어색하고 낯선 길을 걷기로 선택한 솔의 첫걸음에 재를 뿌려도 작작 뿌렸어야지
어리석음을 탓해도 바닥에 쏟아진 죽처럼 되돌리기에 늦은 것을....
미안하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을 할 자격조차 없는 나를 탓할뿐이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으니 솔이가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다
식탁에서 의자로 내려가기에는 높이가 애매하고 익숙하지 않은 높이니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였다
맘같아서는 획소리 나게 방으로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며 가라앉을 수도 있을텐데....
못된 마음이 솔의 곤란함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다
방에 들어가버리면
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행복함 속에서 문득 꿈인것 같아서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장자의 꿈
승려 성진이 옥황상제의 술권유 유혹과 팔선녀와의 희롱에 취해 수도승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를 원하다 꿈 속에서 양소유로 태어나 입신양명 이루었으나 허무함에 다시 불교로 귀의를 결심한 순간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하룻밤 꿈이 였다는 구운몽
지금 이 순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까봐
멍하니 서서 눈만 껌뻑였다
탁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내 앞에 있던 솔이 ...없다
굳게 닫힌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똑...
손에 힘이 쭉 빠졌다
난 솔을 기만했다
솔에게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내 이기심으로 솔을 곤란 속에 두고 바라만 보았다
솔을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만 본 것이다
내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솔에게 시간이 필요하겠지
작업실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차마 침실로도 작업실로도 갈 수가 없었다
"선재야 일어나 침대에 가서 누워 바닥에 있지 말고"
작업실 앞에 앉아있다가 잠이 들었는지 작업실 문을 막고 누워 있었다
잠은 깼는데 민망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걱정을 하려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면 열심으로,
끝까지 말짱한 정신으로 솔이 풀릴 때까지 버티고 있었어야 했는데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창피하게 ㅠㅠ
한참을 흔들어 깨우다 포기한 듯 돌아가버렸다
솔이 나를 옮길 방법도 없고 나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으니 .....
따뜻하다
아주 조그마한, 작다는 말로도 표현 안되는 콩알만한 크기의 따뜻함을 찾아 움직였다
스윽
천천히
온기를 따라
자석에 끌리듯
그곳에 익숙한 부드러움이 있었다
내게 이불을 덮어주려고 내민 손이 가슴에 닿았다
참았어야하는데 본능이 이성보다 먼저 발동해버렸다
확 솔이의 팔을 당겼다
이불을 당겨 끌어안고 자는 잠버릇인 척
이럴땐 잠버릇 험한 것이 좋네
솔이도 별 반항없이 안겨있다
놀라서인가? 아님 화가 난건가? 혹시 다쳤나?
눈을 떴다
솔을 찬찬히 눈으로 훑어보며 표정을 보았다
"선재야 깼어? 이제 안 아퍼?"
" .....아파...."
"병원 가자"
".....아니야....안 가도 돼..."
"아프다며?"
"이대로만 있으면 다 나을 것 같아"
네가 약인 것 같아
널 보니 아무 생각이 안나
네가 병인 것 같아
널 보니 숨이 멎을 것 같아
내가 문제인 것 같아
널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내가 미친 것 같아
이 상황에도 네 입술만 보여
"솔아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더 미안해 "
"다신 화 안낼게 내 말에 맘상했지? 날 위한 건데 다 내 생각 한건데. 안 하던 일하다가 다칠까봐 걱정되서 그랬어 "
"안 해봤으니까 해보려고...항상 받기만 해서 고맙고 미안해서 ..,"
널 어쩌면 좋으니
모두 다 주려고 무한한 사랑으로 감싸주기만 하니
날 어쩌면 좋으니
네 사랑도 까먹고 투정만 부리고 더 사랑해 달라고 떼만 쓰니
다행이다 너도 나도 바보여서
서로만 아는 바보여서
류선재 앞으로 한 번만 더 화내면 넌 사람 아니다
선녀 옷 숨겨서 하늘 집으로 가지 못하게 꼭 붙들어 놓은 욕심부린 못된 나무꾼이 뭘 잘했다고 큰소리치는거냐
정신차리자
겨우 행복해졌는데 천국에 왔는데 분에 넘치는 복을 받아놓고 놓치지말자
"솔아 ....우리 약속 3번 기억나?"
"....응...."
"약속 지킬까?"
".....응....."
집안 곳곳에 붙은 부부 약속
제1항 매일 사랑한다 말하며 안아준다
제2항 하루 중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는지 표현한다
제3항 싸울때 눈을 맞추고 손 맞잡고 싸우고 그날 풀어낸다
푸는 방법 뽀뽀 열번 안아주기 5분 (싫어도 꼭하기)
<솔의 시선 >
선재가 아프다
건강하고 튼튼한 선재가 정신없이 잠만 잔다
밥맛도 없다며 굶고 잠든 것에 신경이 쓰인다
생전처음 죽을 끓여보려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방법은 인터넷으로 엄마한테서도 다 알아놨지만
그 '푹 적당히'를 모르겠다
이정도인가? 이 묽기 이 점성이 알맞은 건가?
주걱으로 떠보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데
높아서 잘 안보인다
조금 몸을 세워 주걱으로 죽을 떠보는데 손에 냄비가 닿았다
놀라서 손을 빼다가 주걱에 걸려 냄비째 넘어져 쏟아졌다
방안에 있던 선재가 달려나왔다
그런데
화를 낸다
왜 화를 내는지 상황은 이해하지만
막상 들으니 속상하다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해 본적도 없잖아 이러다 다치면 누굴 원망하려고? 누가 죽 끓여달래? 배고프면 이따 알아서 먹으면 되지 번거롭게 뭘 만들다가 이 난리야 위험하게 일을 만들어 왜? 나 죽 안먹어 죽 안 좋아해"
".....그러게....할 줄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하는데 괜히 나섰다 그치?"
지금까지 그랬듯 가만히 있었어야했나?
죽은 듯 숨죽이고 사는 것이 내 운명이였던가?
언제나 도움 받기만 사랑 받기만 해서
나도 해줄 수 있는게 하나쯤 있길 바라서 해본건데 .....
쏟은 죽이 다리 위에 떨어져있다
아무렇지도 않다
감각을 상실한 다리는 오늘도 내가 남들과 다름을 깨닫게한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뭘 하겠어
선재 눈빛이 바뀐다
금방 미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할거면서
버럭 화가 나는 건 사람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화 내지 않는 선재가
스스로도 놀랐는지 ....
호호 불어주며 약 발라주는 선재의 행동은 일반적이였다
남들과 똑같고 싶었던 나와 달리
남들과 똑같이 대하고 있었다
"다리.....감각없어서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픈 것도 못느껴.....그런데도 넌 남들과 똑같이 대하네 나도 남들처럼 똑같이 네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에 선재가 움찔한다
멍하니 서있다
식탁위에서 의자로 다시 휠체어로 내려가는 길이 멀고도 멀다
익숙치 않은 높이에서 처음 시도해 보는 행동이지만
이러다 떨어져 다치면 더 안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잠시 떨어져 있어야 선재의 마음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하다
어렵게 작업실까지 무사히 들어왔다
노크소리가 한번 나다 말았고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시간 두시간 ...평소보다 길어진다
아직 화가 안 풀렸나 생각보다 많이 났나보다
문을 여는데
문 앞에 누워있다
깜짝놀라서 선재의 심장에 손을 대보았다
쿵쿵 손에 느껴지는 강한 박동 ...살아있네
따뜻 열은 없는지 항상 느꼈던 그 알맞은 온도
이불을 덮어주려 팔을 뻗자
선재의 긴 팔이 날 휘감았다
평소 잠버릇이 나와 숨이 막힐정도로 꼭 안고 계속 잠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침을 꼴깍 삼키는 것이 잠자는 척 하고 있었다
민망해서겠지?
화는 냈는데 사과는 못하고
잠결에 안기는 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깰 수도 없고 곤란했겠지?
나도 모른 척 해야겠는데
선재가 슬쩍 눈을 뜨고 날 살핀다
"선재야 깼어? 이제 안 아퍼?"
" .....아파...."
"병원 가자"
".....아니야....안 가도 돼..."
"아프다며?"
"이대로만 있으면 다 나을 것 같아"
이순간도 내가 좋단다
화내고 짜증내고 사고만 치고 울보인 내가 좋단다
나도 가끔 내가 싫은데 선재는 항상 내가 좋단다
"솔아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더 미안해 "
"다신 화 안낼게 내 말에 맘상했지? 날 위한 건데 다 내 생각 한건데. 안 하던 일하다가 다칠까봐 걱정되서 그랬어 "
"안 해봤으니까 해보려고...항상 받기만 해서 고맙고 미안해서 ..,"
사과도 항상 선재가 먼저 한다
사과도 용기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선재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오늘 반성한다
앞으로는 선재에게 화내지 않기로
약속 3번....제곱으로 할까?
오늘은 내가 선재에게 먼저 해야겠다 ㅋㅋ
입술 촉촉하게 관리한 보람이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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