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나른함마저 사치였던 나에게 행복은 일상이 되고 있다
멍하니 창밖만 보다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 정지화면처럼 보이는 유리창 안에 갇힌 내 모습
뚜렷한 세상과 투명 인간처럼 흐릿한 두 피사체 사이의 간극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삶
그것이 나였다
다가오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동정과 연민으로, 자신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위해 오는 사람들을 쳐내기 위한 나의 작은 가시들이
단단해지고 굳건해질수록
방향을 잘못 잡은 바보 같은 가시들은 내 안으로 파고 들었다
썩어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참았다
남 몰래 잠든 내 얼굴을 보며 눈물 짓는 엄마를 위해
삶의 중심에, 꿈을 접고 동생을 위해 현실을 선택한 오빠를 위해
아직도 발랄하게 뛰어다니던 그때만을 기억하는 할머니를 위해
나의 두 다리 대신 자유로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날개를 펼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영화 감독의 꿈은 잊었지만 영상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에 내 목소리를 담아 전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 공간에서는 나의 장애를 건드리지 않으니까
상처를 드러내지도 감추지도 않아도 되니까
어쩌면 나 스스로 유리 감옥 안에서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강해지고 싶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잔인한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하는 삶
누구나 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도 살아가고 있는
아침 해가 뜨고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 초로(草露)의 삶....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낸다
내 무릎을 베고 곤히 잠든 선재의 모습, 숨소리가 들리는 비현실같은 현실이 매일 반복되고 있는 꿈같은 행복
세상 안을 꿈꾸던 내가 세상 뒷 편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림자 인생
내가 택한 이 길
운명 굴레에 치여서 들어섰던 그때의 어둠이 아니다
내 스스로 운명을 만들고 싶어서
스스로 들어선 그림자 그늘
신조차 떼어 놓을 수 없는 그림자가 되어 선재의 삶의 한 자락을 이어가고 싶다
생각 없이 돌리던 리모컨, 신기한 인연의 사연을 담은 프로그램에 멈췄다
넓고 넓은 세상, 많고 많은 사람들 사이 보이지 않는 연이 이어진 다양한 이야기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라 말하는 그 속에 나도 속해있다.
너는 모르는, 나만 아는 , 우리가 몰랐던 .....
"뭐 봐?"
잠에서 깬 선재의 나른한 목소리가 생각의 쳇바퀴를 끊고 행복 속으로 돌아오게 한다.
"신기한 인연 이야기. 어떤 아저씨가 사고로 다쳤는데 길에서 응급처치를 받아서 살았대 그 지역 의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서 살아났다고.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의사의 어린 시절 화재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그 아이를 구해 준 소방관을 수십 년이 지나서 자신의 손으로 살렸다는 거지 진짜 신기하지?"
"......그러네......"
아주 잠시 멈짓하던 선재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눈은 tv를 향하고 있었으나 온 신경은 서로를 향해 쏠려 있는 침묵의 시간
판도라의 상자의 틈으로 새어 나온 온갖 고통, 번뇌의 감정들을 놓치고 마지막 잡은 '희망'이라는 유일한 신의 선물이자 형벌
아예 희망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그것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흩어졌다면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내가 욕심 내지 않도록
이번에도 신은 나를 또 한번 시험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신을 시험 한다
"선재씨, 가끔은 궁금해. 날 살려준 사람이...."
".....왜?"
"사실 그때 기억은 잘 안나. 눈 떠보니 병원이였고, 누군가가 나를 구해줬다는 것만. 그땐 장애를 갖게 된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었어 지금도 믿기지 않으니까. "
담담하게 내뱉는 내 이야기를 듣는 선재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잖아"
"그럴지도....그래도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미안하다고. 철없던 내가 쏟아낸 화살을 온 몸으로 맞고 힘들어 하지 않았을까? 원망을 들을 사람이 아닌데 혹시 나 때문에 아파했을까봐 ."
너에게 하는 고해성사
내가 모르길 바랐던 네게, 나 역시 네가 모르길 바라며 ......
" 선재씨가 날 살고 싶게 해준 것이 고마웠어 그제서야 그 사람이 아니였으면 선재씨를 몰랐을테니까 미안했다고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나를 살려준 사람과 살고 싶게 한 사람
내가 사랑한 사람과 원망했던 사람
나를 사랑했고 사랑할 사람
그게 모두 너라서
미안해......고마워.......
"가끔 꿈을 꿔. 날 업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던 목소리. 딱 그거 하나만 기억나는데.... 요즘 좀 이상해. 그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져. 꼭 내가 아는 사람 목소리처럼."
"목소리로 어떻게 알아봐 착각이겠지"
아까보다 조금 더 긴장한듯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진실을 감추려는 선재의 손을 잡고 별일 아닌 것처럼 웃었다.
네가 원한다면 ....
"꼭 한마디 더 하고싶구"
"어떤 말?"
"나 책임지라구"
"책임? 어떤?"
"목소리가 무척 좋았어 따뜻했구 아마도 잘생겼을꺼야"
"지금 내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내가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럼 선재씨 눈 감아"
인어 공주 이야기를 싫어한다
다리를 위해 목소리도, 왕자를 위해 사랑도, 목숨도 다 잃은 바보같은 동화 속 여인
왜 표현하지 않았을까?
글자를 배워서, 손짓 발짓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널 구한 것이 나였다 제발 정신차려라 외칠 수 있었을텐데
왕자는 더 싫다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살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면서도 권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옆나라 공주와 혼인한 남자
진실을 외면하고 선택한 현실에서 행복했을까?
그러나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왕자는 인어공주를 잃지 않기 위해 거짓을 말한 것이다
정치적 싸움에서 지키기 위해
온세상이 물어뜯고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실을, 진심을 감추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었음을.
어리석었으나 지혜로웠던
왕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재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지금보다도 더더욱 아름답고 반짝이는 별로.
<< 선재의 시선>>
내 옆에, 손을 뻗으면 항상 솔이 있다
약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눕기만 하면 잠에 빠진다
물론 내 품에 솔을 안고 있을때만.
낮잠이란 걸 자 본 기억조차 없었던 내가 솔의 무릎을 베자마자 의지와 상관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편안함이라고 말하기에도 부족할만큼, 평온이 내 가슴을 토닥이며 흥얼거리는 콧노래 자장가를 부른다
"선재씨, 가끔은 궁금해. 날 살려준 사람이....
가끔 꿈을 꿔. 날 업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던 목소리. 딱 그거 하나만 기억나는데.... 요즘 좀 이상해. 그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져. 꼭 내가 아는 사람 목소리처럼."
쿵.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호흡을 잠시 가다듬고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착각일 거라고 오해일거라고 꿈일거라고 별일 아니라고 말하며 솔과 눈을 맞추었다
쿠쿵..
잘못됐다
솔의 눈이 말을 한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투명하리만큼 말간 눈빛으로 말도 안되는 어설픈 거짓을 말하고 있다
머릿속을 스치는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다
며칠 전 그날도
오랜시간 괴롭히던 악몽에 빠져들려는 순간마다 솔의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힘겹게 눈을 뜨면,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쌓여 온 몸으로 이야기한다
살아달라고 제발 . 미안하다고 ..
미안할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과 잠이 쏟아지는 그때
들려왔던 솔의 목소리
난 꿈인 줄 알았다
- 선재야 나 괜찮아 네 덕에 살아있잖아 네가 그날 살렸잖아
그날 살렸잖아?
알았구나......아닐거야 , 아니였으면 좋겠어
네가 말하기 전까지 난 모른 체하며 살거야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게 약간의 틈도 주지 않을거야
나만 보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사랑하게 할거야
내 옆에서 널 영원히 지켜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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