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극과 S극의 서로 간섭 받지 않는 적절한 거리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거리
그러나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거리
단극 자석은 없다
같은 극이라 배척하는 사람들끼리도 항상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아주 약간의 각도의 틀어짐이 모든 것을 바꾼다
어둠을 선택했다
우물 속 어둠에서 하늘의 어둠으로
별의 그림자를 담던 어둠이
별의 빛을 돋보이게 하는 어둠으로
눈물이 끝없이 흐르는 선재를 안고
그동안 쌓였던 설움과 슬픔,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면서 나 역시 한밤 내내 울었다
온 세상에 우리 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나의 밑바닥을 본 적이 없다
나 스스로도 나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누가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참아내려 버티던 모습
너는 몰라도 된다
아니 끝까지 몰라야 한다
네가 나에게 그랬듯이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 속의 목소리가 얼굴이 더욱 또렷해진다
이젠 웃을 수 있다
너의 진심을 알았기에
너의 짙은 어둠을 알았기에
"호...호...호...."
어디선가 살랑거리는 바람이 얼굴을 간지른다
실눈을 뜨고 바람의 꼬리를 잡아 따라갔다
퉁퉁 부어 보이기는 할까 싶은 마카롱 두 개 포개 놓은 듯한 눈이 내 뺨에 시선을 머물고 있었다
"뭐해요?"
"얼굴에 상처가 .....예쁜 얼굴에 이게 뭐에요..... 속상하게"
어젯밤 깨진 유리 조각이 튀어 난 상처들이 곳곳에 붉은 점과 선으로 남아있었다
날 보는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눈물 한 방울에 나를 향한 마음이 샘 솟아 오르는 순간을 마주하는..
아무 말 없이 선재의 목을 꼭 끌어 안았다
놀란 듯 움찔거렸던 선재의 두 팔이 내 몸을 으스러뜨릴 듯 부여잡았다
"왜 왔어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가더니. . . . "
퉁퉁거리면서 볼멘소리, 좀 전까지 따스하게 안아주던 손으로 내 등을 팡팡 때려대면서 투정을 부린다
"솔아 살려줘서 고마워........"
"고마우면 앞으로 잘해요"
네 곁에 있겠다는 내 말에 놀란 토끼 눈, 떡하고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받아 올리면서 웃었다.
나 역시 그리웠노라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노라
유행가 가사에서 나올 법한 흔하디 흔한 그렇지만 가장 솔직한 말로 내 감정을 모두 드러냈다
" 내 삶에서 선재씨만큼 날 사랑해줄 사람이 다시 없을 것 같아서. 기왕 죽도록 힘들꺼라면 선재씨 옆에서 힘들어 볼라구요. 선재씨 뒤에, 그늘 속에 숨어 있을려구요"
우리는 오직 마음 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고 다시 한 발 내딛는 순간이었다
"여기 전쟁 났어요?"
아수라장이 된 집을 보고, 들고 들어오던 물건마저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로 놀란 동석이 우리를 번갈아보며 묻는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새벽같이 달려왔더니
거실에 뒤엉켜있는 우리와 물건들이 보이니 놀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을테지만
동석씨는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어느정도 짐작한 듯 했다
"별 일 없으면 형 옆에 있어주실래요? 제가 바빠서 케어를 못할 것 같네요 부탁드릴게요"
"니 일이 날 관리하는 건데 뭐가 바.....윽"
선재 옆구리를 푹찌르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귀속말을 속닥이고는 자신이 다시 올 때까지 바깥에 나갈 생각하지도 말라며 나갔다.
운이 좋았던 건지 밖에 죽치고 있었던 기자들이 내가 들어 오는 것은 아무도 못 봤다고 한다
감금 아닌 감금 상태
선재는 하루종일 함께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집안을 방방 뛰어다니고 있다
구석구석 구경을 시켜주면서 앞으로 익숙해져야 하니까 잘 살펴보라며 앞 뒤로 뛰어다니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재, 음악 작업을 위한 키보드, 컴퓨터가 놓여있고 옆에는 가장 자신있는 본인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다
선재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있는 공간들을 보며 나 역시 일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살짝 고개들기 시작한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중 서랍 속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내 이름이 새겨진 노란 이름표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던 내 이름이 선재의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저기...그게....음...."
인기척이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선재의 모습이 보였다
선재는 산장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우리의 과거 인연에 대해 본인이 숨기고 있다는 것을 처음 들킨 것으로 생각하는지 굳어버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진실을 아는 자의 우월감이랄까 느긋하게 상황을 보는 나와 동공지진 온 선재 표정 보는 재미도 꽤 좋다
"우리 같은 고등학교 나왔다고 했는데, 혹시 그때부터 나 알고 있었어요?"
"....네....."
"내 이름표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네? 혹시 나 좋아했어요?"
"..............네............."
"그랬구나"
별일 아닌 듯 이름표 담은 상자를 서랍에 넣고 돌아서는 나를 멍하니 보던 선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 시작한다
"안 놀랐어요?"
"별로.. 그동안 선재씨가 한 행동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은 가요 첫날 나만 운 거 아니잖아요 "
"봤어요?"
"그럼 어떻게 몰라요 눈물 가득한 사슴 눈을"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던 선재가 내게 말했다
"내 첫사랑이 솔이예요"
끄덕끄덕
"내 첫사랑은 실패했는데 선재씨는 성공한건가?"
갑자기 양 볼에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가더니 콧바람이 씩씩 태풍처럼 불어온다
"김태성? 아직 못잊었어요?"
"걔는 풋사랑? 사랑도 아니였죠 호기심 정도?"
"그럼 첫사랑이 누군데요"
아까보다는 좀 한 단계 내려간 골질이 귀여워서 더 놀리고 싶어졌다
계속 얘기하라며 채근대는 선재를 향해 방긋 웃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얼굴을 보며 헤~하며 빙구 미소를 보이는 저런 멍뭉이를 우찌할꼬
<a버전 편집 요청 사항입니다 줌회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시간 알려주세요 10분뒤>
이렇게 급작스럽게 회의를 하면 어쩌나
자료야 항상 가지고 다니는 usb에 있다지만
당황해하는 날 보던 선재가 서재 주변 자신과 관련된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하며 급하게 회의 위한 뒷배경을 만들어주었다
회의가 길어진다
모니터 건너편 선재의 지루한 표정이 점점 뾰로퉁해지며 계속 째려만 본다
얼마되지 않는 떨어져있던 시간은 어찌 보냈는지 겨우 몇시간 회의시간도 참지 못하고 안달인 표정을 보니 나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온 동석씨의 톡
둘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임솔씨 뒤에 있는 장식장 유리에 형 비쳐요 다들 형 무서워서 회의 못하겠대요>
얼른 주저 앉아봤지만 우당탕 소리와 함께 선재의 비명이 마이크를 타고 들어가 버려 이미 다 알아버린 상황
뒷북 친 선재의 행동에 회의실에 웃음이 터졌다
<두분 데이트 잘 하시구요 모레까지 가능하겠죠? 임솔씨 일은 하게 하고 쉬세요>
들킨김에 놀까 싶었지만 모든 이목이 쏠리는 이 상황에 더 잘해야한다
소속사도 기사 막느라 고생도 했을테고 카펠라 맘도 달래줘야하니 더 좋은 영상을 만들어야한다는 책임감이 양어깨에 가득안고 ......잠들었네......
눈을 떠보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익숙한 향이 배인 선재의 침대
손님방도 아니고 떡하니 안방차지하고 있으려니 민망하기도 하고
선재가 보이지도 않아서 약간 무서워지려는 그때
방문이 딸깍 열렸다
다시 자는 척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침대 안으로 쑥 들어와서 이불을 쑥 당겨 돌돌 말고 자는 선재 얼굴을 보니 잠결에 침실을 찾아 들어온 것 같았다
휴 안심이다
선재의 자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쉴 곳은 여기인가보다
선재의 미간이 찌푸러들며 또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이야기 해야할까?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15년동안 아파해왔는데
단 하루라도 줄여야하는데
"선재야 나 괜찮아 네 덕에 살아있잖아
힘들지 않게 무서운 생각 안나게 해줄게 사랑해"
잠든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내 맘을 전했다
매번 잠든 네게만 남몰래 너마저 모르게 고백해서 미안해
언젠가는 네 눈을 마주 보면서 말할 날이 오겠지?
"나도 사랑해 약속했다 꼭 지켜"
잠든 줄 알았던 선재의 얼굴이 확 다가와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네 운명의 굴레에 갇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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