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시끄럽다
아침부터 다들 요란스럽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이.....아빠 만나는 날이구나
그래서 다들 아빠 만날 준비하느라 정신 없네
아직 몸이 쑤시기는 하지만 나도 한 몫 해야지
끙끙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빼꼼히 여는 그 틈 사이로 익숙하지만 낯선 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저 잘하죠?"
"류서방 깔끔하게 잘하네 집에서 언제 해 본 적 있어?"
"제가 한 솜씨 해요 아버지께서 엄마 제사상은 꼭 제 손으로 해야 한다고 딱 그것 하나만 시키셨어요"
머리부터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앞치마를 한 190 장정이 거실을 꽉 채우고 있다.
"선재야 왜 네가 여기 있어?"
"왜긴~ 장인어른 제사에 사위가 오는 게 당연하지. 아뜨뜨뜨"
뻔뻔하리만큼 당당한 표정으로 전을 부치며 해맑게 웃고 있다
"기름 튀어. 여자는 험한 일 하는 거 아냐 저기 앉아서 우아하게 차 한잔 해. 어머니도 쉬세요 이런 일은 남자가 하는겁니다"
금 오빠를 '형님 형님' 부르며 넉살 좋게 일 시켜먹고 옆구리를 툭툭 쳐가면서 꾀부리지 못하게 단속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도 한번도 상상 못해봤던 그림이었다
나에게도 평범한 인생이, 남들처럼 연애와 결혼이 있을 수도 있을거란 가능성을 1%도 가져보지 못했기에
낯섦과 어리둥절함, 한편으로는 슬픔이 밀려왔다
"왜 울어? 뭐가 매운 게 있나? 기름 탄 내 때문에 매캐해서 그런거지? 공기 청정기를 사왔어야 하네 동석이에게 전화할게"
"오버하지마."
"아냐아냐 내가 신경 못써서 미안"
극구 말려도 이미 전화 너머 오지라퍼에 익숙한 동석의 달관적 목소리
그리고 어느새 우리집 거실에 앉아서 같이 음식을 하고 있는 동석의 허탈한 웃음
이 그림..... 꽤 괜찮네
"어머어머 류선재씨가 왜 이 집에 있는거죠?"
호들갑스럽게 감탐사를 내뿜으며 들어서는 현주의 목소리가 3단 고음 옥타브를 넘나든다
오빠는 툴툴 거리면서 왜 남의 집 제사까지 오냐고 궁시렁거리면서도 현주의 가방을 받아 든다
"내가 이 집 말고 어디 가겠어요? 어머니 저 가요? 갈까요?"
"우리 딸 잘 왔어 "
오빠의 등을 한대 때리시면서 현주를 반기는 엄마에게 선재가 던진 한마디에 온 식구들의 얼음처럼 굳었다
"이왕이면 며느리 하면 어떨까요? 오늘 사위 며느리 다 와서 인사드리는 걸로 하하하하하하하"
"무슨...말을 ...그렇게......"
당황하는 오빠와 현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혹시 나 몰래 둘이? 현주가 울 오빠는.......고맙다....
시끌벅쩍 분명 제삿날인데 잔칫날같은 이 분위기 정말 낯설다
사람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져있다
선재의 넉살 좋은 웃음과 애교가 약간은 차분하다 못해 우울했던 집안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있다
최근 본 선재의 얼굴 중 가장 맑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
내가 선재에게 주지 못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란 것이 분명 있었다
아무리 마음으로 진심 다해 품어주더라도 결핍의 존재를 채우지 못하는 허전함
그것이 한 순간에 채워지고 있다
우리 집 거실에 선재가 들어와있는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의 결핍도 줄어들고 행복이 차올라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딱 들어맞는 조각은 없다
자신에게 맞추라고 자신에게 맞취주길 바라는 강요 아닌 강요 속에서 상처받고 멀어진다
그러나 선재는 자신의 조각을 깎고 채우며 나에게 맞춘다
모양도 색도 온전히 나에게만 맞춘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은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며
오늘도 내 마음에 눈에 귀에 스며든다
우리 가족으로 물들어간다
병풍도 번쩍 들고 상도 쉽게 옮기는 장정의 듬직한 모습. 바람직하다
상대적으로 비실대는 오빠를 보니 쯧쯧쯧....그런데 현주 눈빛이 왜 측은한 눈빛이냐.
아빠 사진을 상에 올려 놓고 절을 올렸다
'오늘은 좀 요란해 아빠가 선물을 보내줘서 행복하네 고마워'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답은 없지만 항상 내게 다정히 말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다 지나갔다고. 아빠 대신 보낸 선재를 믿고 잘 살라고.
두개의 자전거 바퀴가 체인에 맞춰 돌아가듯 함께 발 맞춰 가라고
제사 마무리를 하려는 그때
선재가 나를 바짝 당겨서 아빠 앞으로 가더니 넙죽 절을 한다
"사위 왔습니다. 솔이랑 잘 살겠습니다. 솔이 눈에 눈물 안 나게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솔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바로 엄마와 할머니께도 큰 절을 올린다
당황해 하는 건 이 집안에서 나 하나뿐인 건 뭐지?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이 상황 .
" 어머님 할머님 따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솔이랑 함께 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넉살 좋게 웃으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모두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에헴 내가 이 집 가장으로서 유일한 남자로서 허락을 할 마음이... 악 아파"
현주가 오빠 팔을 꼬집으면서 눈치를 준다 그렇다고 오빤 또 금세 꼬리를 내리는 건 뭐람
"어쨌든 솔이를 구해준건 구해준거고 그 핑계로 사위 운운 하려면 한참 부족해"
그렇다 지금 우리집에선 물론 온 세상은 선재가 나를 구한 영웅이다
다들 그렇게만 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아주 오래전 나를 살려준 사람
머나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준 사람
먼 훗날까지 나를 살아가게 해줄 사람
엄마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
뭔가 오묘한 표정
그때 날 구해준 사람이 선재인 걸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그때의 선재가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선재란 것을 알까?
가만히 선재의 손을 잡아 끌어 다독인다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눈빛.
모두들 숨 죽인 채 엄마의 입만 쳐다 봤다
"류서방 뭘 허락을 받어? 이미 내 집에 들인이상 우리 식구지"
"감사합니다 장모님"
넉살 좋은 웃음이 집안을 가득 매운다
커다란 상에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선재의 눈이 계속 아빠의 사진으로 향한다
계속 보면서 갸우뚱 또 쳐다 보면서 기우뚱
"왜? 울 아빠 본 적 있어?"
"그런 것 같아서. 초등학교 1학년쯤 강릉 바닷가 놀러갔던 적 있었거든 그때....."
선재의 말이 채 밖으로 나오기 전 엄마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맞네 맞아 어디서 본 것 같더니 그때 그 애구나"
"제 기억이 맞죠? 그때 저 구해준 아저씨!! 우와 제 생명의 은인을 여기서 만나다니. 제가 수영 선수 된 이유예요"
사연은 그러하다
초등학교 1학년 강릉 바닷가 놀러갔을때 일이였다
오빠랑 싸우고 삐쳐서 혼자 공 가지고 놀다가 파도에 공을 놓쳤다
그 공을 주워 주겠다고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바다로 들어 갔다가 파도에 휩쓸리고 우리 아빠가 구해줬던 일
그때 우는 날 달래겠다며 무모하게 뛰어든 아이를 가끔 떠올릴때면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었는데 그게 선재라니...
"아저씨가 아니 아버님이 물에 뛰어드시는 폼이 딱 선수 입영 포즈 같았어요. 진짜 멋졌다니까요 딱 절 잡아올리시는데 우와~ 그래서 수영 선수 되기로 맘 먹었어요 운명인가봐요 아버님도 솔이도 절 구하고"
"솔이가 자넬 구해?"
"살면서 다 조금씩 어려운 일 겪잖아요 저도 알게 모르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솔이가 짠 하고 나타나서 저 살려준거예요 . 솔이 아니였으면 저 이 자리에 없어요. 머리에 링 달고 쪼오기 아버님 옆에 있을지도 몰라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마 "
장난이라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듯 하지만
살고 싶어진 마음이 커진 것 같지만
그래도 싫다
선재가 잡은 손을 확 빼려했으나 이미 예상했다는 듯 더욱 세게 쥐며 웃는다
"취소! 하지만 솔이가 절 구원한 건 사실이니까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할 수 있게 해주세요 평생 잘할게요"
엄마와 나 선재 셋이 마주 잡은 손이 더욱 꼭 쥐어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어느 순간 부터 나는 옆으로 밀려나있고 엄마와 선재가 나란히 앉아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오늘 고생 많았어 피곤해서 어쩌나?"
"허리 다리 팔 안아픈데가 없어요"
"다들 찜질방 갈까? 따끈한 곳에서 몸 푸는 것 만큼 좋은건 없어"
"네 좋습니다"
선재는 우리 가족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무척 설레나보다
그러나 유명인이 남들과 같은 일상을 공유하긴 어렵지만 문득 욕심이 나는 건 막을 수 없나보다
"그런데 선재씨는 사람 많은 곳 못 가지 않아요?"
현주의 질문에 다들 뒤늦게 선재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차하는 표정들을 보면서 선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네 좀 아쉽긴 하지만 다음에 같이 가요 오늘은 간단히 씻고 갈게요"
"간단히? 어디서? 뭘?
오빠의 눈에서 쏘아지는 레이저를 현주의 손이 가로 막고
입은 엄마가 막으며 할머니의 떼 씀이 온가족을 밖으로 몰고 나가버렸다
후우 폭풍이 휩쓸고 간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 나 씻는다"
아주 자연스럽게 욕실로 향하는 선재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오는 선재를 보며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으려는데 날 확 잡아 끌더니 방으로 데리고 간다
"왜그래? "
"다들 자리 비워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해야하지 않을까? "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옷 입고 가"
입 삐죽 나온 선재 입술을 톡 건드렸다
"나중에 ~ "
"나중에 언제? 언제? 응?"
내게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번쩍 안아들고 뱅뱅 돌면서 장난친다
앞으로 많고 많은 날
항상 행복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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