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공기를 마음껏 쏘이는 기분이 이런건가?
며칠만에 밖을 돌아다니는지 살짝 붕뜬 느낌
베란다에 나와서 밤공기를 마셔도 산책하며 느끼는 기분은 비교할 수가 없는 상쾌함을 준다
집 앞 공원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을 일상이 아닌 특별이라는 것이 선재의 삶이라는 걸 이번 일을 통해 알게됐다
이시간쯤이면 산책나오던 사람들도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 뭔가 나를 노리는 듯한 서늘함이 등뒤에서 쫙 쏟아지는 그순간
"안돼!!"
콰쾅!!
얼굴을 마구 때리는 손길에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괜찮아요? 정신차려봐요 제 얼굴 보여요?"
낯선 얼굴. 걱정이 가득 서린 표정에 뭔가 일이 났음을 느꼈다
그리고 내 다리 옆에 뭔가 뜨듯한 축축함.
"악!!!!개개개개개개!!싫어!!!"
낯선 품에 와락 안겼다 지금은 개를 피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다 ㅠㅠㅠㅠ
적어도 5미터는 족히 떨어져보이는 나무에 묶고 돌아와 놀란 나를 달래는 남자의 옷을 붙잡고 한참을 떨었다
4살때 동네에서 대형견을 수마리 키우던 큰대문집
큰대문이 열리면 침을 흘리며 먹이를 노리는 사나운 눈빛을 한 사냥개들이 튀어나온다 끊어질 듯 팽팽한 줄을 당기는 아저씨의 두꺼운 팔만 기억난다
그날 줄이 끊어졌고 가장 큰 세퍼트가 내 위에 올라탔다
앞머리가 휘날릴 정도 거칠게 뿜어져나온 입김 뺨으로 흐르던 끈적한 침
그이후 콩알만한 개도 내 반경 최소 2미터 안에 들어오면 온몸이 굳어버린다
"많이 놀랐어요? 미안해요 우리 애기가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특히 좋은 향이 나는 사람을."
놀란 나를 다독이며 계속 말을 거는 남자의 말에 한마디도 대꾸 할 기운도 없었다
넋은 나갔고 옷은 커피에 흠뻑 젖었으며 휠체어는 넘어져 양손바닥은 까져서 엉망이 되어있었다
오랜만의 외출은 완전히 망쳤다
계속 날 살피는 남자에게 짜증이 솟기시작했다
"목줄을 꽉 잡으셨어야죠 그쪽에겐 애기일지 몰라도 저처럼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겐 맹수라구요 공포라구요 무책임하게 애기 탓하지마요 향기 운운하면서 어디 핑계를 애기에게 대! "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내 말을 다 듣고도 놀라는 기색 하나없이 한쪽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웃는다
미치겠다 아무래도 잘못 걸린것 같다
성질 같아서 확 돌아서야하는데 온몸이 안아픈 곳이 없어서 바퀴 돌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미안해요 잠깐만 기다려요 데려다줄게요"
외출도 귀가도 내맘대로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이 짜증으로 터져나왔고 고스란히 내 앞에 선 그 남자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나에게 왜 남들과 같은 일상은 허락되지 않는 걸까?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걸까?
왜 난 언제나 나는 언제까지나 나는....
그리고 이 남자는 왜 내 욕을 다 받아내고 있는 걸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날 보는 걸까?
정신없이 뿜어내고나니 기운이 쪽 빠졌다
"우와 성격 많이 변했네 예전엔 내 눈도 못맞추더니 화도 내고 욕도 하네. 임솔 나 기억 못해? 네 전남친"
김 태 성?
사라진지 15년만에 재회
악연인지 인연인지 또 엮인 태성
"울 애기가 나랑 취향이 같은가봐 딱 널 알아보잖아 전여친"
"전여친소리 빼라 가만 안둔다"
이를 악물고 씩씩 대며 째려보지만 넉살 좋은 눈웃음으로 사람을 살살 녹여? 아니 긁어댄다 불지피는 능력자네
"일주일 정도 안보여서 걱정했어 남자랑 매일 산책하더니 오늘은 왜 혼자야? 헤어졌냐?"
"15년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스토커야? 뭘 그리 자세히 알어? 궁금한건 왜 많은데?"
오랜만에 본 동창에게 친절히 대할 수도 있었겠지 평소였다면.
그러나 공포를 겪고 있는 지금의 나에겐 아주 딱 좋은 분풀이 대상일 뿐이다
태성이는 태성인가보다
타격 1도 받지 않고 능글맞게 웃기만 한다
그리고 또 다시 던지는 폭탄
"임솔 그 남자 별로면 나에게 올래? 난 아직 너 못잊었다"
"야!!!손 안 떼?!!!"
전광석화처럼 날아와 내 앞을 가로 막아 버티고 서있는 선재의 뒷모습은 분노의 화신이 현신(現身)한 모습이였다
"김태성 너 뭐야?"
"류선재? 인혁이 친구? 내 전여친의 현남친이 류선재야? 아님...엔조이...?"
비아냥대는 태성이 얼굴 앞으로 선재의 주먹이 날아갔다
바로 눈 앞에서 부르르 떨며 감정 조절하는 선재의 표정에 분노보단 복잡한 고민이 섞여있었다
"남들 이목이 신경쓰인다면 솔이 근처에도 나타나지마 넌 재미일지 몰라도 솔인 사람들 미움 받아야해 현실을 제대로 봐
그리고 임솔 너도 마찬가지야 사람 별거없다 사막 신기루 보지말고 진정한 샘물을 찾아 나같은 "
정의할 수 없는 우리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내버린 태성의 매서움이
정적을 깨뜨린다
우린 뿌리 박힌 나무가 되어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서로를 마음 깊이 품고 있으나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을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상황을
맞딱뜨렸다
오랜 침묵 후 입을 천천히 떼며 얕은 한숨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래도 물어야했다
"선재씨 아니 선재야 날 사랑해?"
"내 욕심인거 아는데 ...."
지난 잠깐의 이별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놓을 수 밖에 없던 네 손
놓쳐버린 내 손만 바라보던 네 눈
또다시 반복되는 상황
"다시 물을게 날 사랑해?"
"응 사랑해"
"그럼 됐어
"솔아...."
"철저히 숨겨.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란 존재는 없는거야. 딱 한 명 너에게 내 자리가 있으면 돼.
<선재의 시선>
일주일의 행복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 앞을 둘러쌌던 기자들도 사람들의 호기심도 모두 잦아지고 솔은 다시 현실을 살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집안 눈길 닿는 모든 곳에 솔이 있다
내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던 식탁에
과일을 입안 가득 넣고 오물거리며 웃던 tv 앞에
고롱고롱 코 골며 내 품으로 파고 들던 침대에도
모든 것이 엉망이다
뒤죽 박죽 머리 터질 것같아 부여잡고 쥐어뜯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답? 답을 왜 내야하지?
세상에 답이 있는 일이 어디있을까?
내 앞에 쌓인 수많은 문제를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인생은 주관식이다
당장 생각 날 수도 평생 답 없을 수도
다만 그 순간 최선 다해 노력한다면
답을 채우기 위해 함께 한 칸 한 줄을 채워갈 수 있다면
그것이 답인 것이다
나는 당장 답을 찾기로 했다
솔이 산책 나갔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산책로로 달려갔다
내 인생을 문제이자 답을 찾아서
막막한 백지가 빼곡히 채워질 거란 기대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낯선 남자에게 안겨있는 솔
다정한 눈빛으로 솔의 구석구석 살피는 모습에 단전 밑에서부터 분노가 불끈 솟아오른다
김태성
솔의 첫사랑
솔은 나에게 어린시절 풋사랑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커버린 마음에 담은 사랑이라
혹시 솔에게 김태성이 그런 의미일까봐 걱정이고 짜증 원인이였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둘이 함께 있다?
더군다나 안겨있다?
그리고 한 대 얻어맞았다
남들의 이목을 두려워한다면 솔을 포기하라는 말
알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세상의 시선을 다시금 인식시켜주었다
내게 너란 흐르는 시간
멈추지 못하고 이끌려가는 것
지나간 시간도 오늘을 밝혀주는 빛
감히 내가 뭐라고 그런 널 보내
내까짓게 무슨 자격 운운하며 널 보내주니마니 판단을 내려
모든 운명의 굴레를 이어가는 것도 자르는 것도
모두 솔의 손에 칼자루가 쥐어져있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난
단 하나
너만
너 하나만
내 맘에 네가 다라서
널 놓을 수가 없다
내 인생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유일한 난제
나만이 풀 수 있고 풀어야하는 문제
솔
너다
1 https://theqoo.net/dyb/3288541535
2 https://theqoo.net/dyb/3289541139
3 https://theqoo.net/dyb/3291080369
4 https://theqoo.net/dyb/3292562870
5 https://theqoo.net/dyb/3294133954
6 https://theqoo.net/dyb/3295604063
7 https://theqoo.net/dyb/3296972008
8 https://theqoo.net/dyb/3298436583
9.https://theqoo.net/dyb/3301042264
10. https://theqoo.net/dyb/3302624868
11.https://theqoo.net/dyb/3305183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