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솔이 집을 소개합니다
아부진 자주 와 봐서 알지? 넘어가구~
어머니 여긴 솔이 침실이예요. 침대 솔이가 좋아하는 폭신한 매트리스예요 전 작은 사이즈 하고 싶은데 솔이가 큰거 하자고 해서 킹했어요 ㅠㅠ지금이라도 싱글로 바꿀까봐요 딱 붙어있게요
두번째 방은 솔이 옷방. 계절 옷 덜 챙겨온거 두려고 장 더 짜놨어요 곧 가지러 갈께요
세번째 방은 솔이 작업실. 옛날 방이랑 구조 똑같이 해서 여긴 익숙하시죠?
네번째는 솔이 운동공간. 발코니에 두긴 했는데 경치보며 하면 좀 덜 지루할 것 같아서요. 꾸준히 재활해야 되니까 간단한 기구 몇개 있어요 제가 쓰던거라 좀 미안하긴 하지만 저게 좀 좋은거라서요
요긴 욕실인데 솔 휠체어 들어가게 수리 해놨어요 미끄럼 방지 한다고 했는데 지난번에 솔이 다칠뻔해서 다시 손 봐야해요
여긴 솔이 거실인데요 빔으로 영화보기 딱 좋게 벽 비워놨어요 매일 솔이 영화보기 편하게요"
사극에서 세자 역을 맡았을 때 대본 3장 꽉꽉 채워진 대사를 외워 NG 없이 한큐에 해 냈을 때
액션 롱테이크 10분 격투 장면을 1차에 마무리하고 박수 받았던 때만큼
당당하게 신나게 외쳐가며 설명했다
다들 입을 딱 벌리고 내 설명 듣느라 눈동자만 이리 저리 굴리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요즘 내가 입에 모터가 달린건지
나이 먹어서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는건지
솔이 얘기라면 한달 아니 1년 내내 평생을 두고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재 아니 류서방 다 솔이 방이면 류서방 공간은 없어?"
"솔이 옆이 다 제 공간이죠 저 솔이 꼬랑지잖아요~ 아 한 군데 있어요 절대 솔이는 못 오는 공간이요 올 수도 없고 와서도 안되요 어디 여자가 손에 물을 묻혀요
여기 아일랜드 식탁으로 탁트이게 해놔서 요리할 때 솔이 계속 보면서 할 수 있어 좋아요"
"나사 빠진 놈 ...겨우 부엌하나 차지해놓고 좋~~단다"
"아부지 닮아서 음식 솜씨가 좋아서 내가 하는 게 맛있으니까 내 공간인거지 나도 똥손이였으면 우리 둘 아부지가 먹여 살려야 해"
아부지가 한 대 때릴 기세를 보이자 어머니께서 탁 막아주신다 사돈 자식이기도하지만 내 자식이라며 귀하게 대하라고 날 꼭 안아주신다
솔이 시원시원하고 강단있는 이유가 다 어머닐 닮아서란걸 오늘 또 알게됐다
오늘은 집들이로 양쪽 집안 식구 모두 모였다
언젠가부터 양쪽이란 말이 무색할정도가 되었다
혼자 있을 아버지가 마음 쓰인다며 어머니께서 챙겨주시고
시끄러운건 딱 질색이라면서도 어머님이 불러주길 바라시는 아버지가 친구처럼 어울리시면서 명절도 휴일도 모두 함께 하기 시작했다
식구들 식탁에 수저 두벌만 더 놓으면 된다며 우리 부자를 오래된 친구처럼 아들처럼 받아주신 어머니 덕에 북적거리는 소란스러움이 행복을 외치는 소리로 바뀌고 있다
"선재씨 아니 재아 고모부 거실 저쪽 벽에 붙은 액자는 뭐예요? 선재씨 사진은 아닌 것 같은데?"
현주 아니 솔 올케언니인 처남댁이 손으로 가리키는 공간
온 식구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리본 장식까지 해 놓은 작품을 알아보시다니 역시 솔이 친구 맞네
"혼인 관계 증명서? 이걸 액자로? 사이즈 확대까지 해서?"
"A3라 좀 작죠? 블라인드로도 하려다 솔이한테 혼나구 액자 하나만 했어요 옆에 새로 들어와야 할 액자가 더 있어서 하나만 했죠"
금형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난 좋기만 한걸
"선재 쟤가요 혼인신고 증인으로 저 세우고 구청까지 같이 가서 신고했잖아요 증인은 싸인만 받아서 가도 되는데 굳이 같이 가야한다고 기념이 될 역사적 사건이라나 뭐라나~ 동석이는 그 과정 다 영상으로 남기고 요란도 그런 요란이 없었어요 영상 봐봐요 팔불출 보세요"
백인혁 박동석 니들은 왜 여기 있냐?
은근슬쩍 언젠가부터 우리 집안 행사에 껴서 전부치고 김장하고 반찬 받아가며 꼭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 재아 돌잔치도 오겠다 아주 뻔뻔한 것들
안 불러도 귀신같이 알고 와 있는 폼이 내 형제들이나 다름 없으니 자연스럽다못해 가끔 내 사랑도 빼앗아가는 것 같다
자주 보는 얼굴들이지만 모일 때마다 할 얘기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서로 먼저 말하겠다고 다투며 투닥거리는 모습들이 정겹다
아부지 어디가셨지?
좀 전까지 계셨는데?
아부지는 베란다에 나와 혼자 생각에 잠겨 계신지 불러도 모른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중얼거리시며 .....
"선재 엄마, 선재 걱정 하나도 안해도 되겠어 장가를 정말 잘 갔어 엄마 사랑 많이 못받아 어쩌냐 눈 못 감는다고 하더니 넘치게 쏟아부어주는 통큰 장모 만나서 한꺼번에 다 받고 있네 이제 나도 걱정없이 선재엄마 곁으로 가도 되겠어"
"아부지!! 아부지는 말을 해도.... 가긴 어딜 가! 나랑 오래 살아"
빈 말인 줄 알지만
언젠가부터 툭툭 던지는 말이 맘에 걸린다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그것만 보면 죽어도 한도 없을 것 같다고.
그동안 썩어문들어지는 나를 보면서 같이 맘 아파하셨다
말하지 않아도 부모는 그런거라며 같이 울어주시며 힘든 시간을 견디도록 사랑으로 품어 주셨는데....
행복해졌는데 이제야 평온해졌는데 저런 소리는 왜 .....
등 뒤가 따갑다
온 식구들이 우리 부자의 모습을 보며 웃는다
헛소리 말라며, 고손주 볼 때까지 산다고나 하지 말라시며 호통치는 어머니 목소리에 우리 부자는 재빨리 꼬리 내리며 거실로 들어갔다
어떤 말이든 행동이든 듣고 봐주고 물어보며 내게 맞춰주려는 식구들 속에 내가 들어있어서 행복하다
아무래도 계획을 수정해야 할 듯하다
축구단? 야구단? 리그 결성?
" 사실 이 자리는 집들이보다 다른 일이 있어서 모셨어요"
와글와글 떠들던 목소리들이 한순간 잦아들며 수 십 개의 눈이 나를 향한다
수백만명 앞에 서 본 일이 한 두번도 아닌데 겨우 열 명도 안되는 사람들 앞에서 입 떼기가 힘들다
아부지 어머니 할머니를 모시고 마지막 방 앞에 섰다
심장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지만 숨을 크게 쉬고 방문을 열었다
" 아부지 어머니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 되셨어요 축하드려요"
우리 미르미르를 위한 예쁘게 꾸며진 방안에서 아부지와 어머니, 할머니가 부둥켜안고 좋아하셨다
혹시나해서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었다
걱정 하실 것도 그렇고 만약 미르들이 오지 않았을 때 느낄 서운함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다
"두 개? 쌍둥이?"
침대며 장난감 옷 신발 모두 두 개씩 놓인 것을 보시더니 더욱 놀라셨다
아부지가 솔이 손을 꼭 잡더니 고맙다며 눈물이 터져버렸다
뭐든 다 들어주겠다며 말만 하라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시는 아부지
일찍 엄마보러 간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구만
이제서야 지난 부부싸움...까진 아니고 일방적 꾸중들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신 어머니께서 이번에도 내 편 들어주셨다 역시 엄마 최고
"그래서 앞으로 저희 계획을 알려드릴게요
첫째, 우선 태교에 집중하고 출산 후 제가 육아 휴직해서 키울거예요
아빠와 교감이 아이 성장에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 봐봐요 울 아부지가 얼마나 사랑으로 우쭈쭈하며 키우셨어요^^ 아부지 반만 따라도 성공일거예요
둘째,솔인 재택이지만 절대 일과 육아를 철저히 분리 시켜서 신경 조금도 안쓰게 할거예요 9 to 6 지킵니다
육아는 온전히 제 담당이니 솔 커리어를 이어가기 어렵지 않을겁니다
셋째, 처남댁이랑 시기가 같아서 두 여왕님 조리원 한달 예약 해놨구요 도우미도 신청해놨어요 재아가 쓸 건 모두 미르미르랑 똑같은 걸 준비해 놨으니까 신경 안쓰셔도 되요"
아주 조금만 이야기 했는데도 다들 벙찐 표정
자연스럽게 솔을 향한 눈빛들
솔은 일상이란 듯 양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그제서야 조금씩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사이에 조카들 선물 할거라며 끼어드는 인혁 동석과 투닥거리는 정신없는 사이에 금형님이 살짝 눈빛을 보낸다
솔 작업실로 살짝 불러내더니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매부... 선재야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우리 애기도 챙겨줘서 고맙긴한데 ...."
무슨 말이 나올지 안다
이순간만은 남자의 자존심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긴 다 접어놓고 싶었다
"형님, 전 솔이만 보여요 솔이 오빠여서도 솔이 절친이여서만이 아니예요 제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함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과 현주 덕에 솔이 밝게 잘 살아왔고 솔이 덕에 제가 살았어요 두 분도 절 살려주셨는데 이정도는 별 거 아니예요 앞으로도 제가 두분 신세 많이 질텐데 눈 딱감고 봐주세요 저도 제 편 만들고 싶어서 그래요
형님이 제 편 되달라고 아부하는거예요"
"자식 남자네 남자야"
가볍게 웃어 넘기지만 진심이 통했다
한 사람을 각기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두 남자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는 동시에 주도권이 이동하는 역사적인 순간
맞잡은 두 손이 더욱 세게 쥐어졌다
귀한 여동생 뺏어가는 남자, 직업도 연예인이라서
더 경계하고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숨만 쉬어도 입방아에 올라 난도질당하는 걸 봤으니
믿을 수 없고 불안할지도 모르지만
"솔이 살려줘서 고마워 그때도, 그동안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모두 나를 위한 이기적 행동일 뿐이다
다들 내 웃음에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모른다
솔이 있어야 살 수 있기에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려보는 고집과 욕심을 내려놓을 수 없다
나처럼 자기만 아는 못된 놈을
가족으로 품어주는
저들 속으로
들어간다
저들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것 같다
으이그 하며 등짝 한 대 후려패며 무조건적인 내 편을 들어줄 사람들이
내 앞에 있다
"선재야 미르아빠 빨리와"
"미르 엄마가 부르네~~ 미르 아빠 찾는다"
까악!!! 미르 아빠래!!!!!
내 이름따위는 없어도 좋다
이제 류선재는 없다
나는 미르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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