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의 시선 >
집안 일을 해 본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손에 설다
학교다닐땐 공부한다고 핑계대고 안했고 다친 후에는 재활에 신경쓰고 일상으로 적응하느라 내 앞가림에 급급했으니까
부엌일은 처음부터 손도 못대게 하고 근처만 가도 화를 내는 선재 때문에 시도조차 못했다
그래도 결혼 했는데 뭔가 내 집의 일을 내 손으로 하나쯤은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해보려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뭘까?
빨래? 세탁기가 알아서 해줄테니 도전!!!
이염 안되게 색 구분해서 빨긴 했는데 건조가 쉽지 않다
건조기가 세탁기 위에 있어서 넣기는 어찌저찌 넣었는데 저 안 쪽에 있는 빨래가 손에 닿지 않는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한 대형 집게 ㅋㅋ 식당 신발 정리하는 거 보고 구입해놨지
뽀송뽀송한 감촉이 무척 좋다
이정도면 성공한 듯한걸
뿌듯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했다싶었는데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선재 표정보니 뭔가 잘못됐나보다
크게 잔소리는 하지 않지만 혼자 궁시렁거리는건데 다 들린다
"이건 세게 돌리면 안되는데 망에 넣어야하는데 애벌빨레 먼저 해야하는데 속옷이랑 수건이랑 같이 돌리면 ....건조도 고온이면 더 안되구 ..."
"나 들으라고 할꺼면 크게 말하지그래"
"누가 뭐라했다고 그래 ~ 감히 임솔에게 입도 뻥긋하면 안되지"
비비꼬는 말투가 얄밉다
그런데 다 맞는 소리니 입 딱 다물어야지
"속상해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고 솔이 능력 안에서만 하면 돼"
"그래? 뭔데? 내가 잘하는 거?"
"가만~~~~~~히 있는 거. 넌 가만히만 있어주면 돼"
이~씨 얼굴 가득 장난끼가 흘러넘치는 선재를 보니 한 대 패주고 싶다
맞는 말 쳐맞는 말만 하는데 얄미워
"공주님이 일은 무슨 일을 해 넌 존재 자체로 귀한 사람이야 일은 내가 다 할테니 넌 귀하게 떠받듦만 받어 "
내 눈을 맞추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 윙크를 하고 웃는다
히잉~~다른 건 몰라도 선재의 고양이 윙크에는 약한단말야
그래도 다음을 노려보겠어
<선재의 시선 >
우당탕 삐익 끽끽 털그닥 꽈당
다용도실에서 들려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
공포영화에선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지금 저 소리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두려움을 준다
왜냐면 예상이 되는 소음의 주체 때문이다
며칠전부터 집안 일 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어떤 게 가장 어렵냐 쉽냐 물으며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투명하게 속이 훤히 보이는 순진무구한 솔의 표정을 보면서 일부러 눈치 없는 것처럼 빨래 힘들다 했더니 시도해본 모양이다
결과는.....참담했다
그냥 빨았다
다 때려넣고 빨았다
다행인건 색깔 옷 구분은 했다는 것
그거라도 다행인건가?
거기서 멈췄다면 그랬겠지
옷감이 바스러질 정도로 바짝 마르고 거칠게 표면이 다 일어났다
눈치보며 입만 삐쭉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살림과 담을 쌓은 정도가 아니라 아에 소질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 정말 있긴 한거구나 하는 사실에 놀라 솔을 뚫어지게 봤다
"공주님은 존재 자체가 내게 하늘이 준 선물이니까 가만히만 계셔요 내가 다 할게 잘하는 사람이 하는게 맞는거야 솔은 돈벌어 난 집안일도 바깥일도 다 할게"
솔이 한번만 더 집안 일에 손대면 ..... 속터져 장수 못할지도
난 솔과 천년 만년 살아야하니까
그러나 솔이 발동걸리면 ....
에휴 ... 촬영으로 며칠 비웠더니 집이 .... 너무 깨끗하다
우리 집 아닌 것 같다
좀 어질러져 있어야 하는데 솔의 꼬리가 사방팔방 구미호 아홉꼬리만큼 펼쳐져 있어야하는데
혼자 있기 무서워서 어머니께 가서 있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구
침실에서 고롱고롱 코 골며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솔을 보니 종일 뭔가를 하긴 했나보네
무슨 일을 했는지 찾아봐야겠지 ...뒷 수습은 빠를수록 좋을테니
옷방... 서랍들이 빼꼼히 조금씩 옷 한자락씩 빼물고, 블록빼기 게임 막판 불안한 불균형상태처럼 뭔가 위태위태하게 옷들이 쌓여있다
옷걸이에 목이 늘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삐뚤하게 걸려있다
에휴 모든 일은 내 손에서 마무리 해야하는구나
우리 공주님은 가만히 예쁘게만 있어주는 걸로 땅땅땅
서랍 속 어지러진 속옷을 줄맞추는데 자리가 비좁다
새 속옷을 꺼내 놓진 않았는데 이상하다 싶어 들쳐봤더니 바스락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보인다
노란 쪽지?
<자기야~고마워 선물줄게요 쪽 1회>
헝? 선물? 쪽이면 뽀뽀?
뭔지 모르겠지만 좋은거란 건 확실하다
속옷서랍에서 하나, 양말 서랍에서도 하나, 흰 T셔츠 사이에서 하나 ,색 T셔츠에서 하나...
요거 찾는 재미가 쏠쏠하네
<여보야 ~사랑해 쪽쪽 2회>
<선재야 너뿐이야 쪼오~~~~옥 1회>
쪽지 찾는 것도 메시지를 보는 것도 속에 담긴 상품이 어떤 것일지 기대하는 것도 설렌다
어디에 얼마나 숨겨놓은거지? 가늠도 안되니 다 찾아버려야하나 참아야하나 고민이다
청바지 사이에서 나온 쪽지는 파란색?
지금까진 모두 노랑이였는데
뭔가 다를 거란 기대감으로 열었다
<제비 박 씨 당첨>
제비 박 씨? 흥부전 박 탈 때 처음엔 뭐가 나오든 먹을 것이 나온다는 것만으로 설레하다가 돈 나오고 쌀나오니 그제서야 다음 박에서 뭐가 나올지 몰라서 기대하는데 난 뭘 기대해야 하나?
이미 다 가졌는데
선녀도 천사들도 모두 ..내가 천국에서 사는데 뭘 더 바라나
그래도 궁금하다
"솔아 솔아 일어나봐 빨리 일어나 큰일 났어"
"큰일? 왜?왜? 배고파?"
"배고픈게 큰일이야?"
"선재 넌 배고프면 큰일이잖어"
"피~그거 말고 이거 뭐야?"
쪽지를 흔들며 신나게 솔을 불렀다
벌써 다 찾아버렸냐며 툴툴거린다
"몇개나 찾았어? "
"노란거 4개 파란거 1개 그런데 파란쪽지 뭔데?"
"파란거 찾았어? 우와 "
웃기만 하지 말은 안한다
뭔가 대단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기대감
잔뜩 설레서 솔 표정을 이리저리 살폈다
"벌써 사용할꺼야? 후회하지 않겠어?"
저렇게 말하니 더 궁금해진다
"뭔데 기대감을 높이고 있어?"
"별건 아니고 ~"
"별건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게"
"그냥 백지수표"
"백지수표? 뭐든 다 들어주는거야?"
"응"
솔이 쟤가 쟤가 나를 뭘로 보고, 내가 어떤 소원을 들어달라고 할 줄 알고? 겁도 없이?
응큼한 눈빛으로 솔을 바라보는데 허걱 솔 눈빛이 더 노골적이다
"너 너 그 눈빛 뭐야? 이러면 안될텐데~"
"왜 안돼? 너만 늑대 아냐 "
반가운 소리!!!
맨날 나만 본능에 충실한 늑대인줄 알았는데 아닌가봐
그윽한 눈빛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살며시 눈을 감는 솔 입술의 촉촉함이 느껴진다
부드럽게 더하여 강렬하게...
숨이 막힐정도로
또다른 극락을 향해
"아야"
갑자기 작게 평소와 다른 신음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왜? 내가 너무 셌어?"
"아니 좀 이상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시선을 내린다
평소 볼 수 없었던 긴장된 표정
"배가....콕콕 쑤셔"
"혹시? 아직 빠른데?"
"뭔데?"
"태동. 내가 공부했는데 20주넘어야 태동느낀다고 했는데 아직 안됐는데?"
"에이 설마"
울 미르미르가 눈치가 하나도 없구나
엄마아빠가 천국을 즐기는 것을 방해하다니
낄낄빠빠부터 배워야겠다
피쉬쉬 김 빠진다
"뭐해?"
"알았어"
"뭘 알어? 하던건 마저 해야지"
"응? 응? 뭐라구?"
"미르미르도 기다릴 줄 알아야지 엄마아빠 놀 땐 코 자라고"
솔....진짜 오늘은 늑대구나
늑대 우두머리의 위엄을 보여주겠어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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