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영화제 시상식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날 입을 턱시도도 준비하고 혹시 받게 된다면 감사인사말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도 하면서 신경 쓸 일이 많다
결혼식 턱시도 입겠다고 했는데 혼나고,
수상 소감에 솔이 이름 한글자라도 나오면 가만 안두겠다고 째려보고,
솔이 시상식 참석 자체를 안한다고 해서 내가 짜증냈다고 꾸중듣고,
혹시 각본상 받으면 대리 수상하겠다고 했다가 등짝 스매싱까지 혈액순환 촉진과 배부르도록 얻어먹은 국산 욕까지 종합세트로 장수의 비결을 얻었다
솔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문 밖을 나가는 순간! 류선재는 이클립스 보컬이자 배우야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별이야 잊지마 절대!"
"그래두..."
"집 안에서만큼은 임솔의 남자인거야 기억해"
이마를 맞대고 계속 주문 외 듯 반복적으로 내게 주입하고 있다
"임솔의 남자 임솔의 남자 임솔의 남자. . ."
"누가 그거 외우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는 솔의 얼굴을 빤히 보다 뒤늦게 잘못 외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누구만을 떠올리며 사는지 오늘 또 한번 느낀다
솔이 없었으면 어쩔뻔 했냐.....어쩌긴 그동안 죽지 못해 살았지....
매일 흑백의 기억이 컬러가 되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색을 잃어도 찾아도 내겐 임솔 하나만 있다
"작년 수상했기에 올해는 시상자로만 참석할 줄 알았는데 예상에 없던 <기억을 걷는 시간 >덕에 후보로도 이름을 올리게 되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처럼 이 상의 수상자도 내년 내후년 계속 좋은 작품으로 후보되시고 수상, 시상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남우 주연상 ㅇㅇㅇ 배우 축하합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오키 좀 고리타분하지만 보편적인 것이 좋으니까 딱 좋아"
"그런데 내 이름 나오면 어쩌지?"
"어쩌긴 만세 부르면 되지 ~~"
농담던지던 솔이 정색을 하며 절대 헛튼 짓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맘같아선 솔이 이름을 외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머리에 링달 일밖에 안남을 것 같아 참아야지
솔과 손잡고 레드카펫 걷는 상상을 해본다
질색팔색하는 걸 보면 일어날 수 없는 일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는 이뤄지길 꿈꿔본다
"같이 시상하는 사람 누구야?"
"김혜윤"
".....아하 ~ 김혜윤~"
아뿔싸
작년 시상식 뒤풀이때 찍힌 사진때문에 스캔들 나서 한동안 시끌씨끌 했었는데 .... 잠시 잊었다 솔도 카펠라였다는 걸
신기하리만큼 결혼식을 기점으로 솔의 행동이 180도 달라졌다
항상 웃기만하고 모두 품어주던 솔이
질투쟁이 심술대마왕이 되버린것이다
그때 우리가 덮어주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사진은 왜이리 많이 찍혀서 쉴드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술 먹어도 적당히 스킨십 해야지 정도가 지나쳤다
앵긴다고 달랑 받아주면 어쩌냐
그렇게 관대한 마음으로 모든 여자 연예인에게 대했냐
우리 생각은 1도 안한거냐
우리가 여친이라고 말하지 말던가 그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기분상 좀 그렇지 않냐
여자에게 관심 없는 냉선재 어쩌고 하던 것은 다 컨셉이였냐 ....등등...
쇼미더머니 다음 시즌 나오면 내가 대신 신청해줘야겠다
"지금 이 질투는 단순히 카펠라로서만?"
"그당시는. "
"지금은?"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 반 궁금 반 솔의 입만 집중해서 보았다
"꼴뵈기시름. 웃겨. 오는 여자 안막고 가는 여자 안잡는 쿨하신 분이시라 마음의 방이 수백되는 줄. 스치기만해도 스캔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가을 서리 맞아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인줄 후 ...참자 참자 아니 넌 어떻게 행동하고 다녔길래 분기별로 스캔들이 나냐고!"
말벌통을 쑤신것처럼 전투적으로 달려들어 쏘아대는 통에 정신이 한 개도 남아있지 않지만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예전엔 신경도 쓰이지 않았던 일들이 '솔이 것'이 된 이후로 곱씹어가며 떠올리고 질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드니까
내가 이제야말로 솔의 삶에 중요한 존재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하늘의 별은 반짝이면 좋지만
구름에 가려지거나 해가 떠서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면 잊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해서 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곳에서 붙박이별로 머물러 있는 것뿐
떠난 이에 대해 잡지도 가지말라 만류도 못한다
그들이 별을 바라보기만 한다고 말하지만
별도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애절하게 그리워하고 애닳아하면서도 티내지 못하고 꾹 참아낸다
수억년 전 빛이 이제야 닿는 것처럼
내 마음이 솔에게 닿아
날 향한 새로운 감정이 이제야 솟아나는가보다
"질투도 하고... 이제야 네가 정말 날 사랑하는구나"
"말 돌리지말어 미워"
"이젠 유부남이라 스캔들이 날래야 날 수가 읍써요"
품에 안고 등을 도닥였다
단 한번도 너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본 적도 마음에 담아본 적도 없었다는 걸
네가 내 과거였고 아픔이였고 죽음보다 더한 슬픔이였지만
그래서 지금 살고싶고 살게하는 현재라는걸
내 마음 속 수백개의 방마다 네가 가득차있다는 걸
날 원망하는 날카로운 말로 할퀴던 순간마저 소중히 담아왔었다는걸
시상식장 안, 안내받은 자리로 갔다
내 옆자리를 각본가 임솔의 자리로 배치해뒀다
일부러 그런 것이겠지만 의도치않게 꺼려지는 자리배치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보다 더 기분 나쁜 이유
대리 수상자로 김태성이 와있다는 것
생각조차 하기 싫은 놈과 3시간 같이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 웃어야하는 것이 짜증이 난다
"각본상 <기억을 걷는 시간 > 임솔작가님 축하드립니다 대리 수상이지만 수상 소감 이야기 해주세요 "
"제 오래된 친구의 꿈이 더욱 빛나게 되는 계기가 되어 기쁩니다 우리 솔이 앞으로도 같이 행복하자 이번 새로 들어가는 작품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임솔 작가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솔이? 나랑 행복해야지 왜 너랑 행복하냐? 웃겨 생각할수록 열이 오른다
자리로 돌아온 김태성에게서 트로피를 빼앗았다
내 아내니 내가 직접 전해주겠다고 했으나 대리 수상자로서 자신이 전하겠다고 다시 빼앗아가길 수차례
카메라에 잡혔는지 그만 싸우라며 솔의 문자가 우리 둘에게 모두 와있었다
남우주연상 시상을 하러 갔다가 수상자가 되버렸다
예상은 했다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였으니
누구보다 더 아프고 애절했고
내가 사랑했으나 내가 미쳐 몰랐던
내가 살렸으나 나를 원망했던,
나를 살고 싶게 해준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그때의 나를 알지 못했으나 지금의 나를 사랑하게 된 솔을 알게 됐으니
다시 떠올리기 힘든 고통이였지만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던
연기자가 아닌 자연인 류선재를 보여준 것이였으니
"우석이로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제 짝꿍에게 한마디만 남기겠습니다
죄책감과 사랑을 동시에 담았던 힘든 삶을 살던 우석이를 살리러 온 혜윤이 그랬던 것처럼
류선재를 구원하러 온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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