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런 사달이 벌어질 줄
입방정이 전세계급인 감독을 믿는 것이 아니였다
지난 촬영 에피소드를 사방팔방 기자들에게 퍼뜨릴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솔에 대한 궁금증이 넘칠 것은 알지만
영화 진행 상황 봐가며 홍보작업으로 기사 흘리기를 해야지 무턱대고 촬영 초반부터 하면 나중엔 피로도가 높아져 될 것도 안된다
"내가 이래서 이번 작품 반대한거야"
"형님이 반대한다고 형수님 뜻 꺾을 수 있어요? 형수님 앞에선 입도 뻥긋 못할거면서"
동석이 ...넌 날 너무 많이 알아 ...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굳이 말 덧붙이다 그나마 있던 체면이라도 지키려 입 다물고 있으려하지만 ..흠...
"형님 괜찮아요? 포커스가 형님이 아닌데?"
"그래서 불만이야 "
"슈퍼스타 류선재 이름이 앞에 안나오고 형수님 이름이 더 먼저라니..수정 요청할까요?"
"뭔소리야? 솔이름이 내 앞인게 젤 맘에 드는데? 사진이 맘에 안들어 솔이 미모가 안 담겨 현대 기술 발전 수준이 이정도밖에 안되다니 "
팔불출 소리를 들어도 좋은 걸 어쩌겠냐
세상사람들 뭐라해도 이세상 유일한 무조건적인 내편을 내가 챙겨야지
잠시 내 눈치를 보며 동석이 어렵게 입을 뗀다
"지난번 스토커 습격때 이야길 냄새 맡은 기자가 있나봐요 팩트체크란 핑계로 협박하려는지 계속 걸고 넘어지네요"
".....솔이는 모르게 해주라 부탁한다"
"최대한 노력할게요"
개자식
날 건드려서 반응없으니 솔이를 건드려보려고?
이미지 메이킹이란 미명 아래 솔의 희생을 감춰버린 비겁한 나
스스로도 비굴하고 옹졸함을 알면서도 외면해버린 나
침묵 속에 묻히길 바란 나를
비웃듯
진실이 파고든다
별일 없냐고 묻는 솔의 일상적 안부가 오늘따라 날카롭게 스며든다
말끝을 흘리며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가 누워버렸다
평소같으면 오늘도 잘했을거라 믿는다 칭찬하며 내 손을 꼭 잡고 웃어주던 솔이 별말없이 이불을 덮어주고 나간다
불안감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복도를 지나 작업실로 가는 솔의 뒷모습
역시 ... 넌 다 알고 있구나
어리석은 내 마음이 좁디 좁은 이 마음이 또 한번 네게 이해받고 용서받고 있었다
"솔아 할 얘기 있어"
"알아 나에게도 연락왔어 이번엔 내게 맡겨"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이야기한다
목소리에는 서늘함을 넘어선 살기까지 느껴진다
"어쩌려고?"
"1번 미친년 칼부림 2번 판도라 상자 열기 . 난 2번 선택했어"
알 수 없는 말만 던지고 작업실로 들어가버렸다
문 앞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발이 땅에 뿌리 내린 것처럼
붙잡힌 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별마저 지고 온 세상에 빛이 아주 잠시 잠깐
모두 사라지는 그 순간
희망도 절망도 자신이 누군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은 형체라도 알 수 있다
친근함의 대상일지 경계의 대상일지 구분할 순 없어도
적어도 그 방향을 향해 어떤 행동이라도 시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지금은 그마저도 알 수 없는
완전한 어둠의 시간
깊이도 높이도 넓이도 전혀 가늠되지 않는
공간에 머물어 버둥대지도 못하는 바보같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있을 수밖에
딸깍
방문이 열린다
드르륵 바퀴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크게 다가온다
동시에 내 폰이 지진난 듯 전화와 문자가 쏟아진다
내 손에 있던 핸드폰을 낚아채며 솔이 말했다
"그날....
지금이라도 .... 후회하지 않게 "
솔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15년 전 사건부터 모두 .
그러나 이번도 마찬가지
진실은 얇은 베일에 싸여 보일듯 말듯 감춰진채
다시 상자 제일 밑바닥에서 꽁꽁 묶여 나오지 못하고 발버둥 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정의롭고 희생 정신이 강한 청년>
<목숨 걸고 동창생 구하고도 티내지 않고 살아오다>
<수영선수 생활 포기 할 정도 어깨부상 각오하고 사람 구한 의인>
<15년 전 생명의 은인이 또 다시 구해. 운명적 사랑, 결혼으로 완성 >
<영화 속 히어로는 실재(實在)였다 류선재 영화같은 삶>
<기억을 걷는 시간 자전적 영화였나 재조명>
<첫사랑 아이콘 이클립스 소나기 주인공 실존>
<21c 순애보 류선재 애틋한 사랑이야기>
온갖 매체 sns 가릴 것 없이
우리의 이야기로 흘러 넘쳐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눌리고 있다
진실이 아닌 진실이 또다시 사실이 되어 세상에 고정되고 있었다
"내 생명의 은인을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 방법밖에 없었어?"
"최선이야 그리고 거짓은 아니잖아"
담담하게 꺼내놓은 말
세상 속 거친 혓바닥 혀놀림 위에서 굴려지고 긁히고 난도질 당할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내던져버린 솔
내가 당할 때와는 다른 고통이였다
오랜시간 단련되었다 자부하는 나조차
사람들의 입방아에 치이고 밟힐수록 스스로를 갉아먹고 먹히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데
솔은 ...
네 마음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처음부터 내 남은 인생은 내 것이 아니였을지도 몰라 . 아니 아니였어
부러진 날개로라도 버티게 해줬던 당신 덕에 살았어
정신도 몸도 모두.
내것도 아니였던 것인데 까발려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어 "
"이 상황에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앞 뒤 맞지 않는 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이유들
허무맹랑한 말로라도 날 설득하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마지막 말을 듣기 전까진
"류선재! 네 사랑만 중요해? 내 사랑도 소중하다고! 내 목숨보다"
"......"
"매일 밤 네가 내 이름을 울부짖을 때마다,
끝도 없이 수렁 속으로 밀려들어가 괴로워 몸부림칠 때마다
지난 15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면서 죽을 힘을 다해 겨우 버텨왔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
네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스스로 책망하며 무너지는 삶을 살아왔다는걸
그게 나때문이란걸 알면서 어떻게 가만히 있어?모든 시작이 다 나때문인데 "
"왜 너때문인데? 내가 잘못한거지"
"네가 잘못한 건...... 나를 사랑한 거야"
"솔아!"
내 하늘이 무너진다
내 하늘이 울분을 토하며 쏟아낸다
내 하늘이
하찮은 인간을 위해
땅으로 고꾸라지고 있다
맘에도 없는 말로
무너져내리는 나를 붙잡기위해
"류선재 잘 들어 난 너 포기 안 해
네가 날 사랑한 것이 잘못된 시작이라해도,
죄책감때문에 미안함때문에 동정심으로 날 선택했다해도......
이제는 내가 안되겠어 너 없이는 ...."
반짝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암흑인줄 알았던 어둠이
감당할 수 없을
짙은 어둠 끝에
너가 있었다
네 사랑이 너무 커서
몰랐다
난 별이다
네 사랑 속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별
나를 빛내기 위해
네 사랑은 점점 더 짙은 어둠이 되가고 있었다
"사랑해 솔아"
"사랑해 선재야"
감당할 수 없는 네 사랑에
점점 더 빠져든다
아픈 사랑도 사랑이라면
우린 운명이다
너도
나도
서로가 아프다
네 입맞춤에 숨을 쉴 수 있다
너만이 날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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