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 압박 주의
몽골야생말은 1969년 야생에서 멸종됐을 때
동물원에 포획한 개체들로 번식시켜서 종을 보존할 수 있었던 사례로 유명함
결과적으로 '포획했기 때문에 종을 보존할 수 있었다'라고 의미부여하지만
당시 상황은 잔인한 포획, 극한의 수송, 수집가 간의 경쟁, 산업스파이 활동, 뇌물 수수의 향연이었음
그 내용을 요약해서 적어볼게
때는 19세기 말
러시아 장교이자 탐험가인 니콜라이 프셰발스키는
중앙아시아로 두 번째 원정을 나왔다가
러시아-중국 국경수비대 대장인 티호노프한테서
키르기스족이 사냥한 말가죽과 머리뼈를 선물받았음
그런데 일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새로운 말의 형태였음
그래서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 연구원인 폴리아코프한테 물어봤더니
22종의 말과 비교했는데 그 어떤 말과도 유사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종이래
프셰발스키는 직접 실물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1879년
몽골야생말 실물을 보러 준가리아 고비로 떠난 프셰발스키는
한참 헤맨 끝에 드디어 몽골야생말을 발견했음
프셰발스키는 사냥을 시도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고 실패했음
1876~1880년 두 번의 여행 동안 알타이산맥 기슭 중국-몽골 서부 국경지대 호브드에서
황갈색 야생마 떼를 반복해서 관찰했지만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했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두 무리만 만났다.
나와 내 동료는 무리를 향해 총을 쐈지만 소용이 없었다.
종마는 꼬리를 높이 들고 머리를 숙인 채 앞으로 돌진했고
무리 전체는 그의 뒤를 따랐다.
또 한 번은 말 한 마리 옆에서 살금살금 다가갔더니
나를 발견하자마자 폭풍처럼 달려가 사라져버렸다.
- 니콜라이 프셰발스키
말은 못 잡았지만 몽골야생말은 학계에 공식적으로 보고됐고
프셰발스키의 이름을 따서 프셰발스키말(Przewalski's horse)이라고 명명됐음
마지막 탐험을 떠나기 전 프셰발스키와 동료들
하지만 프셰발스키는 몇 년 뒤 1888년에 5번째 원정을 떠났다가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Issyk Kul) 강 기슭에서 티푸스에 감염돼 갑자기 죽었음
프셰발스키가 죽은 후 그룸-그르쉬마일로 형제가 탐험을 이어받았음
"우리가 몽골야생말을 사냥해서 표본을 가져오겠다!"
형제는 1889~1891년 동안 준가리아 고비를 탐험했고
몽골야생말 2마리를 사냥해서 표본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음
이때 새 표본도 1048마리나 수집했다고 함
형제는 이때의 사냥 경험을 'Zalensky'라는 책에 제법 자세히 기록했음
어떻게 관찰하고 사냥했는지 그대로 옮겨 적어볼게
그때도 야생에는 몽골야생말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목동들이 무리를 발견하자마자 추격이 시작됐다.
매우 빠른 말을 타고 오랫동안 추격하자 지친 망아지들이 무리에서 뒤처졌고
사냥꾼들이 점차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때 하렘 종마는 방향을 돌려 망아지들을 더 멀리 몰았다.
하지만 그것도 성공하지 못하자 종마는 추격자들을 공격했다.
종마는 종종 목숨을 걸고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야생 종마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의 행동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그는 코를 킁킁거려서 무리에게 알렸고, 그들은 즉시 일렬로 출발했다.
젊은 수말이 선두에 있고, 망아지는 암말들 사이에 있었다.
무리가 움직이고 사냥꾼이 옆에 있는 한
종마는 그 옆에 머물면서 머리나 앞다리를 사용해 무리를 안내하며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계속 이동시켰다.
말들이 뒤에서 그들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의 사슬을 뚫고 나가면
종마는 위치를 바꿔 무리에서 경계하며 뒤쫓는 사람들의 길을 막았다.
그는 약해서 다른 말을 따라갈 수 없는 작은 망아지를 몰고 가려고 했다.
망아지가 어미 말 뒤에서 처지기 시작하면
어미 말은 부드럽게 울부짖으며 격려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자
어미 말은 분명 새끼를 뒤에 두고 싶지 않아서 무리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종마는 이런 종류의 무질서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발굽을 두 번 세게 때려 그녀를 무리로 다시 질주하게 했고
스스로 망아지를 돌보았다.
처음에는 망아지를 코로 밀어내더니
그 다음에는 망아지를 잡아당겨 끌고 갔고
공중으로 던지며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했다.
아르칸
기병들은 물웅덩이 근처에 파놓은 구덩이에서 야생마를 잡는데 성공했다.
야생마를 잡는 주요 방법은 아르칸(Arkan)을 사용하는 것이다.
* 아르칸: 올가미의 폴란드어. 밧줄을 당기면 조여지는 고리 모양의 긴 밧줄로 야생마 등을 잡는 데 사용
그룸-그르쉬마일로가 쓴 'Zalensky'는 앞으로 이어질 본격적인 몽골야생말 포획에 유력한 기초가 됐음
몇 년 동안 검증한 끝에 1890년대 초
몽골야생말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야생마로 인정받았음
오카피
당시 몽골야생말 발견은 20년 후 중앙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발견된
오카피와 맞먹는 동물학적 센세이션이었음
왜냐하면 그 동안에는 역사적 사료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동물이었고
동물원과 희귀 야생동물 수집가들은 모두 그런 야생마를 원했는데 딱 나타난 거야
아시아에서 발견된 신비한 야생말에 대한 소문은 서양사회에 빠르게 퍼져나갔음
아스카니아 노바
그 무렵에는 거대한 부지를 소유한 부자들이
희귀하고 특이한 동물을 수집해서 자기 땅에서 키우는 데 관심이 있었음
프리드리히 폰 팔츠 파인(Friedrich Jakob Eduardowitsch Falz)
팔츠 파인 남작도 그 중 하나였음
팔츠 파인은 당시 제정 러시아 치하였던 우크라이나 남부 '아스카니아 노바'에 광대한 부지를 소유한 귀족이었음
어릴 때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동물애호가'이기도 했음
팔츠 파인은 넓은 영지 아스카니아 노바를 개인 보호구역으로 조성해서
여러 희귀종 동물들을 수집해서 사육하고 있었음
팔츠 파인도 당연히 몽골야생말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고, 너무 갖고 싶어했음
표트르 코즐로프(Pyotr Kozlov)
특히 프셰발스키 원정대원으로 참여했었던 여행가 코즐로프가
완벽하게 길들인 몽골야생말 망아지를 자기가 봤다고 자랑하자
팔츠 파인: 몽골야생말 너무 갖고 싶다...
질투날 정도로 몽골야생말을 갖고 싶었던 팔츠 파인
팔츠 파인과 코즐로프
팔츠 파인은 코즐로프한테 동업을 제안했고 코즐로프도 ㅇㅋ 했음
성격 좋은 팔츠 파인한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나
동물학자 뷔히너(Büchner) / 고고학자 클레멘츠(Clemenz)
그리고 1896년 초에는 몽골에 능통한 동물학자 뷔히너와 고고학자 클레멘츠도 합류했음
팔츠 파인, 코즐로프, 뷔히너, 클레멘츠
몽골야생말을 갖기 위해 이렇게 4명이 뜻을 모았음
4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 회동도 했음
팔츠 파인: 이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사유지인 아스카니아 노바 영토를 제공할게
뷔히너 & 클레멘츠: 우리가 몽골야생말 포획 및 운송을 조직하지
코즐로프: 프셰발스키 원정대에 참여했던 경험과 자료를 제공할게
계약 체결 땅땅
하지만 몽골야생말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전혀 없었고
현지에서 실행할 전문가가 아직 부족했음
프리드리히 폰 팔츠 파인(Friedrich von Falz-Fein)
그래서 팔츠 파인은 몽골 왕자랑 관계자들한테 선물 공세도 하고 수소문해서 쓸만한 전문가를 찾아냈음
아사노프(Assanoff)
바로 러시아 상인 아사노프
아사노프는 러시아 톰스크 지방과 몽골 호브드에서 무역 사업을 하는 부르주아였음
특히 몽골에서 사업하면서 현지 사정에 아주 빠삭했음
아사노프는 길드장한테 몽골야생말 가죽을 구해다준 적 있었는데
마침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음
"가죽을 구할 수 있다면 살아있는 말도 구할 수 있겠는데?
이 희귀동물을 산 채로 잡아서 팔면 수익이 아주 짭짤하겠군"
아사노프는 몽골야생말 포획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음
그 당시 몽골은 다른 나라와 완전히 단절된 국가였음
철도나 비행기는 커녕 도로도 거의 없었고
가장 가까운 우체국에 가려면 말을 타고 1500마일을 이동한 후
증기선을 타고 또 이동해야 할 정도로 교통이 극악이었음
말을 수송하려면 당연히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들 게 뻔함
즉 돈이 겁나게 필요했는데, 차르 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었음
"엄청난 쩐이 필요한데 어쩌지...?"
아사노프가 방법을 찾고 있던 차에
마침 팔츠 파인이 오랫동안 몽골야생말을 갖고 싶어했고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거임
아사노프: 내가 몽골야생말 산 채로 잡아서 유럽까지 배달해줄게
마침 자금줄이 필요했던 아사노프도 이들과 손을 잡았음
아사노프는 직접 사냥단을 꾸려서 팔츠 파인한테 공급해주는 역할을 맡았음
하지만 몽골에서 잡은 몽골야생말을 유럽으로 수출하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했음
어떡하지?
응 뇌물 주면 돼 ㅋㅋ
팔츠 파인은 러시아-몽골 국경 통과를 담당하는 관리자들과 몽골 왕자 등한테
뇌물을 빠방하게 먹여서 통관 문제를 미리 해결해놨음
이제 말만 잡으면 됨
아사노프는 블라소프와 자하로프라는 사냥꾼 2명을 고용했음
이름은 팔츠 파인이랑 아사노프만 기억해두 됨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1897년
첫 번째 원정대가 고비사막으로 탐험을 떠났음
하지만
니콜라이 프셰발스키가 말했던 대로 사냥 난이도가 극상이었음
야생마들은 너무 빨랐고, 사람들을 보면 폭풍처럼 도망쳐서 사라졌음
사냥꾼들은 어렵게 어렵게 망아지 6마리를 잡았음
하지만 망아지들이 너무 어려서 젖을 먹여야 했음
그래서 양젖을 먹였는데
양젖에는 지방이 너무 많아 부적합해서 망아지가 모두 죽었음
다른 한 마리는 독초에 중독됐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죽었음
결국 6마리 다 죽어서 첫 번째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음
첫 번째 시도는 1898년에 이루어졌지만
곧 성체 말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너무 빨랐고
멀리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해 사라졌다.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태어난 지 몇 달 된 망아지를 잡는 것이었다.
- 에르나 모어 '아시아 야생마'
하지만 첫 번째 원정이 실패했다고 포기할 팔츠 파인이 아니지
팔츠 파인은 계속 몽골 원정을 준비했고
1898년에 두 번째 원정을 떠났음
하지만 두 번째 탐험에서 포획한 망아지들도
포획 과정에서 죽거나 지쳐서 죽거나 병에 걸려서 죽었음
두 번째도 원정도 실패
팔츠 파인: 이거 난감하네 어떡하지?
두 번 다 실패하자 포획 과정을 직접 감독하기로 결정한 팔츠 파인
팔츠 파인은 지난 20년 동안 아스카니아 노바에서 야생 발굽동물을 다뤄봤었음
그 경험을 토대로 실패 원인을 분석한 끝에 묘수를 생각해 냈음
"이 동물은 추적하는 방법으로 잡아서는 안되며
오직 암말을 쏴서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로 쫓아서 잡지 말고 어미를 쏴서 잡기
이렇게 팔츠 파인의 지침을 갖고 1899년에 떠난 세 번째 원정
결과적으로 세 번째 원정은 성공했음
어떻게 성공했을까?
직접 참여한 클레멘츠가 쓴 글을 그대로 옮겨볼게
마치 긴 원정을 준비하듯 사냥할 준비를 갖춘다.
보급품을 실을 낙타와 여러 번 갈아탈 수 있는 잘 훈련된 경주마 몇 마리를 데리고
몇 주 동안 계속되는 수색을 시작한다.
망아지가 있는 무리를 발견하자마자 사막을 가로지르는 맹렬한 추격전이 펼쳐진다.
이 추격전은 1~2시간만에 끝나지 않는다.
사냥꾼들은 야생마 무리를 따라 알려지지 않은 황무지와 계곡, 협곡을 지나간다.
추격하는 동안 지친 말을 대초원에 버리고
가지고 온 새로운 말에 올라타 다시 무리를 쫓는다.
하지만 말을 한 번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세 번째 말이 필요하다.
야생마가 아무리 강하고 단호하더라도
무리에는 달리기 어려운 임신한 암말이 있고, 오래 달릴 수 없는 망아지도 있다.
갓 태어난 망아지는 무리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무리가 흐트러지고 낙오자들이 나타나면 속도를 올리고 소리를 지르며 총을 쏘아
이미 두려움에 휩싸인 말들을 더욱 놀라게 한다.
선두에 선 암말과 어린 동물들은 방향을 잃고 도망간다.
하지만 종마는 무리의 뒤를 따라가며 적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추격자들을 지켜본다.
추격자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종마는 무리로 달려가서 으르렁거리며 뒤처진 말들을 격려하고
지친 망아지들을 코로 툭툭 건드리며 무리의 후방을 커버한다.
사냥꾼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종마는 더욱 초조해져서
무리에서 거리를 더 벌리고 적들과 더 가까이 머문다.
종마는 사냥꾼들에게서 돌아선 다음
몇몇이 뒤처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머리를 숙이고 돌진하며
지친 말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무리를 공격하면
종마는 뒤돌아 추격자들에게 달려들어 가장 먼저 총알에 맞아 죽는다.
이제 우두머리가 없는 말들은 길을 잃고 우왕좌왕 뛰어다닌다.
종마가 죽은 후 무리는 공황상태에 빠져 붕괴된다.
우두머리를 잃은 암말들은 제지할 수 없는 속도로 도망쳤고
저항하는 암말도 죽임을 당했다.
이때 사냥꾼들은 밧줄 올가미를 던져 새끼를 잡는다.
당시 몽골야생말 포획을 위해 꾸린 캐러밴
새끼들이 잡혀서 발이 묶이면
약 10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낙타에게로 다시 데려가야 하고
그런 다음 젖을 공급할 암말이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망아지들의 다리는 함께 묶여 낙타 옆의 자루에 넣어져서
준가리아 고비의 울타리가 쳐진 지역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망아지들이 잡혔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음
아직 어린 망아지들이라 젖을 먹여야 했는데
어미를 죽이고 데려와서 젖을 먹일 암말이 없어ㅠㅠ
그리고 양젖을 먹이면 죽는다는 걸 이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음
그래서 팔츠 파인이 고안해 낸 방법
"몽골인들이 기르는 가축 암말을 사서
그 암말의 새끼를 죽이고 포획한 몽골야생말 새끼를 입양시켜 젖을 먹이자"
하지만 그 지역에 사는 몽골인들이 이 목적으로 가축 암말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음
그래서 주최측은 러시아 비스크까지 가서 양어미가 될 가축 암말을 구입했음
하지만 가축 암말들이 몽골야생말 새끼를 받아들일 리 없지
그래서 비스크에서 가축 암말을 사서 미리 사육하다가
몽골야생말 암말이 새끼를 낳을 때 가축 암말도 새끼를 낳도록 시기를 조절했음
가축 암말이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를 죽이고
그 타이밍에 맞춰서 몽골야생말 새끼를 잡아서 데려왔음
그리고 죽은 새끼의 가죽을 벗겨서 몽골야생말 새끼한테 덮었음
가축 암말들이 몽골야생말 새끼를 받아들이도록...
망아지를 새 어미(가축말)에게 데려가려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어미는 반드시 야생마와 비슷한 색깔이어야 한다.
야생 망아지는 회색, 갈색 또는 검은색 암말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야생마를 데리고 개울과 강을 건너는 건 매우 어렵다.
그들은 물을 매우 무서워하고
어미를 따라가도 개울이나 웅덩이를 건너지 않으며
힘이 충분히 세면 물 위로 뛰어오른다.
몽골인들에게서 가축 암말을 손에 넣지 못하면
비스크에서 암말을 사서 야생마와 동시에 새끼를 낳도록 교배시킨다.
가축 암말의 우유를 포획한 야생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가축 새끼는 죽이고
가축 새끼의 가죽을 야생 새끼에게 덮어서 암말이 야생 새끼를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 지침을 정확히 따르지 않으면 또 실패할 것이고
포획한 모든 동물이 다시 사라질 것이다...
- 팔츠 파인
동물애호가래매...?
처음에는 이 지침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서 모든 망아지가 죽었는데
팔츠 파인이 규칙을 따르라고 강조했고, 그 후로는 더 이상 실패하지 않았다고 함
야생 새끼를 죽은 가축 새끼의 가죽으로 덮는 방법이 실제로 성공적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암말은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어서 피와 젖은 피부 냄새를 싫어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요인이 문제를 결정했는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 에르나 모어 '아시아 야생마'
이런 방식으로 세 번째 원정에서
수컷 한 마리와 암컷 6마리, 총 7마리를 생포했음
이제 얘네들을 아스카니아 노바로 잘 데려가야 됨
하지만 수컷 한 마리와 암컷 한 마리는 몸이 약해서
500km 떨어진 러시아 비스크까지 데려갈 수 없었음
그래서 2마리는 몽골 호브드에 남겨두고
나머지 5마리만 데리고 비스크로 향했음
비스크에 도착하면 거기서 기차를 타고 4000km를 여행했음
그리고 기차가 노보알렉세예프카 역이란 곳에 도착하면
거기서 70km를 더 걸어가야 아스카니아 노바에 도착할 수 있었음
1900년 몽골에서 포획해 최초로 아스카니아 노바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 망아지들
긴 수송 중에 한 마리가 죽었고
나머지 암말 4마리는 양어미들과 함께 아스카니아 노바에 무사히 도착했음
이로써 팔츠 파인의 지침에 따라 세 번째 원정은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음
이것은 몽골야생말을 아스카니아 노바로 도입한 소위 '제1운송'이었음
한편 몸이 약해서 몽골 호브드에 남겨졌던 수컷 한 마리와 암컷 한 마리 기억함?
우흐톰스키(Ukhtomsky) 왕자
얘네들도 나중에 아사노프에 의해 비스크로 이송됐고
거기서 우흐톰스키 왕자한테 보내졌음
니콜라이 2세(Nicholas II)
우흐톰스키 왕자는 이 2마리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데려가서
1901년에 러시아 군주 니콜라이 2세한테 선물로 줬음
2마리는 차르스코예셀로에 있는 마구간으로 보내졌는데
같은 해 암말이 죽고
남은 종마는 차르의 명령에 따라 팔츠 파인한테 기증됐음
결국 돌고 돌아 아스카니아 노바의 주인 팔츠 파인의 손에 들어온 거임
이 종마는 바스카(Vaska)라는 이름을 얻었음
바스카는 탈 수 있도록 길들여진 처음이자 마지막 몽골야생말임
당시 아스카니아 노바에는 일전에 데려온 암말 4마리만 있었는데
바스카가 오고 나서야 비로소 번식이 시작됐음
이때부터 포로로 잡힌 야생마의 첫 번째 '아스카니아 라인'이 탄생했음
그래서 바스카는 아스카니아 계통의 창시자이기도 함
바스카 스터드북 프로필
바스카는 훗날 에르나 모어가 창간한 국제 스터드북에
'호브드 1호'이자 '혈통번호 1번'으로 등록됐음
꽤 오래 장수하고 번식 프로그램의 창시자가 되어 전설적인 몽골야생말로 남았음
스터드북에 등록된 호브드 1호~7호
바스카와 더불어 세 번째 원정에서 생포한 첫 7마리는
국제 스터드북에 '호브드(Kobdo) 1호~7호'로 등록됐음
세 번째 원정이 성공하자 아사노프는 쉬지 않고 계속 망아지를 잡아들였고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포획 성공률이 높아졌음
그때까지 팔츠 파인은 10000루블이 넘는 돈을 썼는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음
팔츠 파인은 3년 연속으로(1897-1899) 10,000루블 이상의 비용이 드는 서부 몽골 탐험대를 준비했고
그때마다 그는 클레멘츠 씨와 아사노프 씨의 중재로... 어린 야생마를 받았다...
- 코즐로프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슬슬 부담을 느끼는 팔츠 파인
그래서 1901년에 아사노프가 망아지 28마리를 잡았을 때
팔츠 파인은 한꺼번에 사지 않고 흥정을 통해 가격을 낮추려고 했음
팔츠 파인: 가격 좀 깎아주면 안 됨?
아사노프: 놉
아사노프가 안 깎아줌 ㅋㅋ
그래서 흥정 교착상태가 지속되던 그 무렵...
아스카니아 노바에 살아있는 아시아 야생마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서유럽 전역에 파다하게 퍼졌음
"그 소문으로만 듣던 몽골야생말을 아스카니아 노바의 남작이 갖고 있다던데?"
11대 듀크 폰 베드포드(Duke von Bedford)
이 소문은 런던 동물학회 회장을 맡고 있던 영국 베드포드 공작의 귀에도 들어갔음
이 사람도 알아주는 '동물애호가'였음
베이징 황실 정원에서 몰래 훔쳐온 사불상을 비롯해
동물 상인 카를 하겐베크가 공급해주는 갖가지 희귀동물들을
런던 근처에 있는 자신의 영지 워번에 수집하고 있던 인물이었음
근데 듣자하니 팔츠 파인이 자기한테 없는 희귀동물을 가지고 있다네?
베드포드 공작은 카를 하겐베크한테 전화를 걸었음
"무제한 위임장 줄 테니까 돈 아끼지 말고 몽골야생말 구해다줘"
카를 하겐베크(Carl Hagenbeck)
하겐베크: ㅇㅋ
카를 하겐베크는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유명한 동물상인이었음
전 세계에서 희귀동물을 잡거나 사들여서 동물원에 파는 동물매매 전문가이자
유명한 모피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대표였음
중앙아시아에서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있고 이 분야에 정통했음
하지만 하겐베크는 몽골야생말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고
사냥할 수 있는 위치도 몰라서 막막했음
하겐베크: 이거 좋은 수 없나...?
어떻게 몽골야생말을 잘 잡아서 베드포드한테 공급할까 고민하다가
1901년 봄에 앤트워프에서 팔츠 파인을 만났음
사업 얘기하다가 가볍게 물어봤음
하겐베크: 몽골야생말 어디서 어떻게 잡았음?
팔츠 파인: 안 알려줌
하겐베크: 이 쉐리가...
하겐베크는 포기하지 않고 그리거와 바체라는 두 대리인을 불렀음
하겐베크: 팔츠 파인한테서 몽골야생말 정보 좀 빼내봐
그래서 1900년
하겐베크의 대리인인 그리거가 팔츠 파인을 찾아갔음
그리거: 말을 잡은 장소와 방법 좀 알려주실?
팔츠 파인: 거절한다
당연히 안 알려줌 ㅋㅋ
그리거는 말을 수송하는 데 관여했던 팔츠 파인의 하인 중 한 명을 매수했음
스윽
그리거: 몽골야생말 어디서 사냥했음?
팔츠 파인 하인: 알타이산맥 북쪽 경사면 아래 호브드 근처에 야생마 사냥터가 있습죠
역시 돈 먹이니까 정보 술술 나옴 ㅋㅋ
결국 하겐베크는 하인을 통해서 몽골야생말 포획과 운송에 대한 정보를 싹 빼내는 데 성공했음
이로써 팔츠 파인이 독점했던 몽골야생말에 대한 일급비밀들이 다 새어나갔음 ㅋㅋ
이제 지리적 단서도 얻었겠다
하겐베크의 대리인인 그리거와 바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몽골로 출발~
말과 낙타를 타고 깊은 눈을 뚫고
총 4000km를 여행해서 겨울에 호브드에 도착
하지만 망아지를 잡으려면 망아지가 태어나는 봄까지 기다려야 돼
호브드에 텐트 치고 현지인들과 친목을 다지면서 겨울을 보냈음
(사진과 관계 X)
슬슬 봄이 오고 망아지 출생 시기가 다가오자
알타이산맥 계곡 지역에 사는 몽골 주민들 중에 포수를 모집했음
야생마 무리가 자주 방문하는 물웅덩이도 찾아냈음
오랫동안 관찰해 보니 야생마들이 물웅덩이에서 몇 시간 동안 쉬는 습관이 있다는 걸 발견했음
무리가 얼마나 있고 망아지들이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나 확인하려고 매복공격도 해봤음
이렇게 말의 일일 패턴을 알아낸 후
사냥 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날짜를 선택했음
철저한 준비 끝에 드디어 사냥의 시간이 다가왔음
하겐베크 팀 사람들과 현지 몽골인들이 포획한 방법은
팔츠 파인 측 아사노프 팀이 썼던 방법과는 다소 달랐다고 함
하겐베크 팀이 잡은 방법을 그대로 옮겨볼게
몽골인의 야생마 사냥은 아사노프 측 사람들이 행한 사냥과 다소 달랐다.
몽골인들은 망아지가 있는 말 무리를 오랫동안 추적해서 물웅덩이 장소를 알아냈다.
말들이 계곡을 내려가 물웅덩이로 가면
고삐를 잡고 말을 몰고 온 사냥꾼들이 언덕 뒤에서 몰래 매복하고 있다가
갑자기 안장에 뛰어올라 사방에서 말에게 달려들어 소리를 지르고 총을 쏘았다.
공포에 휩싸인 동물들은 먼지구름 속에서 서로를 짓밟으며 날뛰었고
이때 몽골인들이 긴 장대에 달린 고리를 사용해 망아지를 잡았다.
마침내 '틈새'를 발견한 말들은 자유를 향해 돌진했는데
사냥꾼들은 여전히 끔찍한 소리를 내며 사막을 가로질러 그들을 뒤쫓았다.
몇 시간 동안 계속 경주한 후
무리 뒤에서 솟아오르는 먼지구름 사이로 몇 개의 어두운 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빨리 달릴 수 없고 공포와 탈진으로 쓰러진 불쌍한 망아지들이었다.
땀에 젖고 진흙으로 뒤덮인 채 힘이 빠져서 떨고 있다가 곧 올가미로 잡혔다.
분명 심한 스트레스가 이들의 저항 능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축말과 함께 있는 포획된 망아지들
잡힌 망아지들은 캠프로 끌려갔는데
거기에는 새끼를 데리고 있는 수많은 몽골 가축 암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포획한 망아지들
불행히도 가축 새끼들은 제거되었고
가축 암말들이 어린 야생 새끼들의 계모가 되었다.
야생 새끼들은 새 어미에게 익숙해졌다.
계모들은 3~5일이 지나면 입양한 야생 새끼에게 익숙해져서 정기적으로 젖을 먹인다.
이런 방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약 30마리나 잡혔음
그리거는 당황했음
하겐베크한테서 6마리만 주문받았는데 30마리나 잡혔다고?
하겐베크한테 전보를 보내야겠다
그리거는 말을 타고 육로로 달린 후
배를 타고 4일을 이동해서 비스크에 있는 우체국에 도착했음
거기서 48시간 동안 회신을 기다렸다가 20일 만에 다시 호브드로 돌아왔음
도중에 말을 수없이 바꿔타고 말이지
그런데 그리거가 다시 호브드 캠프로 돌아왔을 때
캠프에는 포획한 망아지가 그새 52마리로 불어나 있었음
그리거는 자기 사람들이 잡았다고 주장했지만...
훗날 밝혀진 거에 따르면 전말은 이러했다고 함
그리거를 통해 팔츠 파인의 하인을 매수해서 정보를 빼냈던 하겐베크
1901년 가을, 하겐베크는 비스크로 곧장 달려가서
팔츠 파인과 아사노프 간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바로 그 순간
팔츠 파인이 살 예정이었던 망아지 28마리를 모두 샀음
바로 팔츠 파인 코앞에서...
(그리거가 하겐베크한테 전보를 보냈을 때 하겐베크가
그리거한테 망아지들을 사라고 시켜서 샀다는 이야기도 있음)
협상 시간 끌면서 가격 좀 깎아보려다 하겐베크한테 새치기당한 팔츠 파인
말 뺏긴 것도 서러운데 사건을 왜곡하는 기사까지 실렸던 거 같음
1901년 봄, 나는 앤트워프에 있었고 거기서 하겐베크를 만났다.
그는 내가 어떻게 야생마를 손에 넣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말이 안 통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다.
나는 동물원 경매를 위해 동물 몇 마리를 잡았고 하겐베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남러시아에 갈 예정인 그의 직원 중 한 명이
동물들을 아스카니아 노바로 가져가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이 남자는 야생마가 어떻게 잡혔는지 내 부하에게 물었고
그는 1901년 가을에 직접 비스크에 가서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28마리의 말을 아사노프한테서 구입했다.
뷔히너 박사의 병환 때문에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말들이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1901년 11월, 'Illustrierte Zeitung'지는 이 사건을 왜곡하는 기사를 실었다.
- 팔츠 파인
아사노프만 노났음 ㅋㅋㅋ
사실 아사노프 입장에서는 팔츠 파인을 기다리기 보다 되도록 빨리 팔고 싶어했을 거임
아무튼 그리거를 비롯한 하겐베크 팀이 사냥한 망아지와
하겐베크가 아사노프한테서 얍삽하게 구입한 28마리까지
총 52마리를 함부르크까지 수송해야 했는데
당시 몽골야생말 포획을 위해 꾸린 캐러밴
유럽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을 위해 꾸려진 행상은
포획한 망아지들, 젖을 먹일 가축말들, 짐을 실을 낙타, 말, 고용한 기수 30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행상이었음
몇 달 동안 혹독한 사막, 산, 계곡을 지나 더위와 추위를 겪으며
첫 번째 기차역이 있는 모스크바까지 3,000km를 힘겹게 행진했고
거기서 또 2300km를 더 가서 1901년 함부르크에 겨우 도착했음
무려 아시아와 유럽 절반을 여행한 셈임
총 운송 기간은 11개월이 걸렸다고 함
당시 포획한 망아지들
처음에는 52마리였는데 살아서 도착한 망아지는 28마리였음
여러 망아지들이 혹독한 날씨와 스트레스, 사고로 죽었음
절반은 여정의 고난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서 영원히 고향 아시아에 남았음...
도착한 망아지들은 젖을 떼고 오트밀, 따뜻한 밀기울, 노란 당근을 먹었음
이게 바로 하겐베크가 최초로 몽골야생말을 서유럽에 도입한 방법임
이때 도착한 28마리의 망아지는 스터드북에 '비스크(Bijsk) 1호~28호'로 등록됐음
죽은 야생마 가죽과 뼈도 몇 개 가져와서 취리히대학교 동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함
이듬해 1902년에는 14마리의 망아지가 잡혔음
아사노프는 하겐베크한테 11마리를 팔았고, 이 망아지들도 독일로 수송됐음
이 11마리는 스터드북에 '비스크(Bijsk) A~K'로 등록됐음
팔츠 파인은 극대노했음
당연함
아사노프랑 흥정이 잘 안되고 있을 때 새치기한 하겐베크의 얍삽함
흥정 중에 하겐베크한테 팔아버린 아사노프의 대통수
이 콜라보로 결국 몽골야생말이 서유럽까지 흘러 들어갔으니 당연히 빡침
사불상
당시 수집가들은 희귀동물을 유일하게 소유하려는 욕망이 매우 강했음
베드포드 공작이 사불상을 독점했던 것처럼
팔츠 파인은 너무 빡쳤기 때문에
쉬익쉬익거리면서 주변에 엄청 얘기하고 다닌 거 같음
솔직히 빡칠 만도 해 ㅋㅋ
팔츠 파인 남작이 화를 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아사노프를 기다리게 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던 그의 의도는 하겐베크에 의해 좌절됐다.
게다가 어린 망아지들이 양모와 함께 고향에 머물며 조용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곧바로 옮겨지는 것보다 더 낫다는 그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것도 한몫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10년 동안의 위대한 개인 수집가들은
희귀한 동물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매우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베드포드 공작이 사불상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팔츠 파인은 야생마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당시 워번에 있던 사불상의 수만큼 야생마를 갖기를 원했다.
- 에르나 모어 '아시아 야생마'
팔츠 파인은 합의를 위반한 아사노프한테 최후통첩을 내렸음
"빨리 새로운 물량 나한테 공급 안해주면 계약 파기할 거임"
그래서 아사노프는 1902년에 망아지들을 새로 포획했는데
그 중 3마리를 모스크바 동물원에 처음 공급했음
3마리는 스터드북에 '모스크바(Moskva) 1호~3호'로 등록됐음
그리고 몇 마리는 아스카니아 노바로 보냈는데
암컷 2마리와 종마 한 마리, 총 3마리가 살아남아서 1903년 2월 아스카니아 노바에 도착했음
이건 아스카니아 노바로 배송된 '제2수송'이었음
1904년 1월에는 2마리가 '제3수송'으로 아스카니아 노바에 도착했음
이 시기에 수송된 총 5마리는 전부 스터드북에 '호브드(Kobdo) A~E'로 등록됐음
이게 마지막으로 공급된 몽골야생말이었음
전체적으로 1899~1904년 동안
팔츠 파인이 있는 아스카니아 노바로 옮겨진 망아지는 14마리
하겐베크가 있는 함부르크로 옮겨진 망아지는 39마리였음
1902년 런던 동물원에 처음 도착한 하겐베크의 망아지들
팔츠 파인 손에 들어간 망아지들은 대부분 아스카니아 노바에서 쭉 사육됐고
하겐베크 손에 들어간 망아지들은 유럽 각지의 동물원, 사설기관, 미국으로 족족 팔려나갔음
5마리는 아스카니아 노바에 도착했다.
나머지는 함부르크에 있는 하겐베크의 마구간으로 갔고
거기서 또 각자의 목적지로 갔다.
12마리는 영국의 베드포드 공작
2마리는 독일의 할레
1마리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3마리는 영국의 런던
1마리는 프랑스의 파리
2마리는 네덜란드의 영지인 구일루스트로 갔다.
일부는 미국으로 운송됐는데
그 중 2마리는 뉴욕, 2마리는 신시내티로 갔다.
도착한 해에 9마리가 함부르크에서 죽었다.
망아지 한 마리는 18살 종마가 될 때까지 하겐베크는 구매자를 찾을 수 없었다.
종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아르티스 동물원으로 갔다.
- 에르나 모어 '아시아 야생마'
1929년 오스테른도르프(0Osterndorff)라는 사람에 따르면
"하겐베크가 조직한 탐험대가 뉴욕 동물학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서 구한 2마리의 프셰발스키말은..."
이라는 대목이 있어서 뉴욕도 하겐베크 탐험대에 자금을 지원한 동물원 중 하나로 추측된다고 함
몽골야생말 수집 열풍은 1903년에 거의 끝났음
그 후 포획이 중단되자 동물원에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
몽골야생말이 일반적인 가축말과 너무 비슷했고
결정적으로 포획 비용이 실제로 너무 높았기 때문임
게다가 파놓은 함정 때문에 무리가 흩어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사막 지역으로 몰려가면서 사업은 점점 더 어려워졌음
1901년 독일 할레에 도착한 하겐베크의 망아지들
포획한 총 54마리는 도착한 후에도 다수가 죽었고
그 중 끝까지 살아남아 새끼를 낳은 건 12마리뿐이었음
54마리의 망아지 중 많은 수가 목적지에 도착한 후 매우 빨리 죽었다.
포획으로 인한 스트레스, 유럽으로의 긴 여정, 그리고 그 모든 달 동안의 박탈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말 중 몇 마리만이 번식했다.
새끼는 아스카니아 노바, 할레, 구일러스트, 워번, 뉴욕, 신시내티, 파리에서만 태어났다.
- 에르나 모어 '아시아 야생마'
번식의 어려움 때문에 근친교배가 마구 행해졌고
동물원들은 심각한 근친교배 부작용에 직면했음
게다가 몇 년 후에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스카니아 노바에 있던 무리들이 독일군의 총격을 받아 전멸했음
하겐베크한테서 공급받았던 미국에 있던 무리들도 싹 다 전멸했음
특히 아스카니아 노바 무리들은 번식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번식 계통이 될 수 있었는데 죽어서 사람들이 땅을 쳤음
(아스카니아 노바는 1949년에 다시 설립되어 새롭게 출발했음)
설상가상으로 몽골야생말이 야생에서 멸종됐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음
그래서 이제 꺼져가는 종을 보존하고자 체계적인 번식 프로그램이 시작됐고
몇몇 암말과 종마들이 번식 프로그램의 구세주로 떠오르는데...
번식 프로그램 얘기도 같이 하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에 해볼게 ㅠㅠ
- 끝 -
아래는 에필로그격으로 본문에 못 넣은 얘기 몇 개 더 추가해봤음
- 그룸-그르쉬마일로가 관찰해서 기록한 몽골야생말 특징 -
위험이 발생하면 종마는 새끼가 없을 때만 무리 앞에서 달리는데
그럴 때조차도 끊임없이 옆으로 달려가 움직임으로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몽골야생당나귀 쿨란은 더 이기적이고
하렘과 어린 새끼들에게 가해지는 위험에 대해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몽골야생당나귀는 잘 울지 않고 때때로 울부짖지만
야생마는 가축말과 비슷한 날카로운 소리로 울부짖는다.
심하게 겁먹은 야생마의 콧김과 울음소리는 가축말이 내는 소리와 동일하다.
야생마는 평평한 황무지에 서식하며, 밤에는 방목하고 물을 마신다.
그들은 새벽이 되면 사막으로 돌아가 일몰까지 쉬었다.
봄에 무리에서 새끼가 태어나면 항상 한곳에서 쉬었는데
이를 증명하듯 망아지의 똥으로 두껍게 덮인 약 18제곱미터의 지점을 발견했다.
더 큰 똥이 거의 없다는 건 새끼들이 자라자마자 쉬는 곳이 바뀌지만
새끼들이 어릴 때는 항상 같은 곳에서 쉰다는 것을 나타낸다...
야생마는 특히 위험을 피할 때 항상 일렬로 이동한다.
반면에 몽골야생당나귀 쿨란은 무리를 지어 매우 엄하게 지내다가 겁을 먹으면 흩어진다.
야생마가 일렬로 지내는 습관 때문에 가순(Gaskun) 지역 전체에 깊이 밟힌 발자국이 있다.
하지만 야생당나귀가 사는 지역에서는
톈산의 Galt itshshan 강 상류에 있는 계곡을 제외하고는 이와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야생마가 특정 지역에 가까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 중 하나는 선로를 따라 있는 수많은 똥 더미다.
우리는 가순에 도착하자마자 말들이 물웅덩이로 가기 위해 그 길을 이용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 극한의 수송 과정 -
몽골야생말 새끼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운송도 매우 어려웠으며
말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6~8개월이 걸렸다.
잡은 새끼들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구역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가축 암말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새끼가 계모에게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잡힌 망아지들은 호브드까지 걸어서 긴 여정을 시작했고
그 동안 망아지들은 계모에게 묶였다.
그들은 비스크까지 500km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호브드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대부분 도보로 이동했고, 낙타를 탄 기수와 함께 이동했다.
이 여정은 약 50일이 걸리기도 했다.
그 동안 그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가로질러 이동했고
때로는 맹렬하고 날카로운 눈보라를 맞기도 했다.
이 어린 동물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고
마지막 구간은 배를 타고 여행하게 되어 기뻤을 것이다.
배에서는 통이나 다른 물건 사이의 공간에서 머물렀다.
비스크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다니는 역이 있는데
자주 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울타리가 쳐진 구역에서 몇 주를 보내야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행의 피로를 회복할 수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자 그들은 계모와 함께 마차에 실렸고
시베리아와 러시아를 가로질러 아스카니아 노바와 함부르크로 향했다.
이 여행은 다시 몇 달 동안 지속됐다.
따라서 봄에 잡은 망아지는 그해 말까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고
여행 중에 여러 마리가 죽었다.
- 망아지를 입양시킬 때 가축 암말의 색깔과의 관계 -
클레멘츠는 올가미로 야생마를 잡는다고 했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에는 양어미가 야생마와 같은 색이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망아지들은 다양한 색의 양어미와 함께 하겐베크한테 도착했고
그들은 그것에 매우 만족했다.
할레 동물원으로 데려간 3마리의 몽골 가축말은 흰색, 갈색, 회갈색이었다.
- 에르나 모어 '아시아 야생마'
- 팔츠 파인과 하겐베크 경쟁에 대한 에르나 모어의 평 -
에르나 모어
의심할 여지 없이 팔츠 파인은 야생마를 잡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의 공로이다.
하지만 그는 하겐베크 사람들이 아스카니아 노바의 야생마 기원에 대한 지식을 뒤에서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불필요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무렵은 하겐베크가 매년 아시아사슴, 야생양, 아이벡스, 시베리아노루를
톈산 및 기타 외딴 지역에서 데려와 대규모로 수송하던 왕성한 시기였다.
동물들은 당시 대형 동물원뿐만 아니라 대규모 개인 수집가에게도 전달됐다.
따라서 하겐베크 사람들은 분명 야생마에 대해 듣고 있었을 것이다.
철도 노선은 한 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야생마 포획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아사노프는 팔츠 파인을 위해 많은 수의 망아지를 포획하는 멋진 사업을 이어가길 원했지만
팔츠 파인은 더 나은 가격을 기대하며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사노프는 헥 원장이 이끄는 베를린 동물원을 포함한
다른 유럽 동물원에 망아지를 제공하고 선불을 요구했다.
이걸 보면 하겐베크가 팔츠 파인이 말한 것과 같은 뒷공작을 할 필요가 없었음은 분명하다.
첫 번째 무리가 아스카니아 노바에 도착하자 그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됐다.
팔츠 파인 자신이 그렇게 믿었더라도 말이다.
카를 하겐베크가 보낸 사자들은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사냥과 그 위험성에 대해 풍부하게 묘사했고
야생 양 등의 포획 방법을 야생마 사냥으로 번역하도록 해서 독자들에게 알렸다.
(아사노프한테서 구입한 망아지를 직접 잡은 거라고 속인 듯)
하지만 상관없다.
하겐베크를 거쳐 유럽으로 반입된 야생마는 종을 존속시키는 데 매우 도움이 되고 있다.
그가 잡은 것이든, 사온 것이든 말이다.
아스카니아 노바에서 서쪽에 도착한 몇 마리의 동물로는 이 종을 존속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시아 야생마를 살리기 위해 귀중한 기여를 해준
팔츠 파인과 카를 하겐베크에게 감사해야 한다.
팔츠 파인과 하겐베크는 스스로 부심이 있었나봄
팔츠 파인
"나는 아시아 야생마를 산 채로 유럽으로 데려온 최초의 사람이고
하겐베크보다 2년 더 먼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동물을 잡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하겐베크
"유럽으로 야생마를 들여온 공은 나한테 있다"
하겐베크는 몽골야생말을 다른 가축말 품종과 교배시켜서
새로운 품종을 번식시킬 계획도 있었다고 함
나치도 몽골야생말에 관심 있어서
1930년대 후반에 하겐베크의 아이디어를 처음 받아들였다고
나치도 프셰발스키말에 관심이 있었고
1930년대 후반에 하겐베크의 새롭고 튼튼한 말 품종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받아들였다.
스벤 헤딘 내륙 아시아 탐험 연구소 책임자인 인류학자 에른스트 셰퍼(Ernst Schäfer)는
1945년 초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이 말들을 오스트리아의 미테르질 성으로 데려와서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가 '동부 정착지'를 위해 계획한 말 번식 프로그램에 사용했다.
(하인리히 힘러: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한 최고책임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2년 후, '나치 독일'은 잔해와 재 속으로 가라앉았다.
말들의 향후 운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괴링(Göring)의 명령에 따라 계획된 "원시 야생동물 공원"을 위해
프셰발스키말은 들소, 엘크와 함께 쇼르프하이데에 정착됐다.
- 하인츠 헥
- 두 사람의 말년 -
하겐베크는 1913년 4월 14일 함부르크에서 붐슬랭으로 추정되는 독사에 물려 사망했음
팔츠 파인은 1919년 아스카니아 노바가 정부에 강제로 몰수된 후
자신의 '잃어버린 천국'인 아스카니아 노바에 대한 슬픔으로 독일 파트키싱엔에서 스파를 즐기던 중 1920년 8월 2일에 사망했음
금방 죽을 인간들이 이 난리를 쳤다니
아스카니아 노바는 1919년 3월 국유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팔츠 파인 가문에서 몰수됐음
이 과정에서 팔츠 파인의 어머니가 반대하다가 총살당했음
1983년 생물권 보호구역으로 재편됐고
1991년 우크라이나의 국유 재산이 됐음
1993년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의 생물권 보호구역으로 확정됐고
2008년 우크라이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지정됐음
현재는 유네스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보호구역이자 연구기관으로 쓰임
몽골야생말, 영양, 들소, 얼룩말, 타조 같은 이국적인 동물이 여전히 많이 서식하고 있음
하지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시작한 초반부터
헤르손주에 있는 아스카니아 노바는 러시아에 점령당했음
아스카니아 노바 행정부는 러시아에 인수됐고
러시아군은 보호구역을 마구 파괴하고 동물들을 죽이거나 훔쳐갔음
동물을 사냥하고 사체와 같이 찍은 러시아군 사진이 퍼지기도 했음
https://www.ukrinform.ua/rubric-tymchasovo-okupovani/3856380-zagarbniki-vivozat-tvarin-iz-zapovidnika-askanianova.html
https://suspilne.media/kherson/566215-vijska-rf-rozmistili-svou-tehniku-na-teritorii-zapovidnika-askania-nova-na-hersonsini/
그리고 아스카니아 노바에서 보존되는 프셰발스키말 2마리, 채프먼얼룩말 2마리, 아메리카들소 2마리, 사불상 한 마리 등
동물 여러 마리를 불법으로 반출해 다른 동물원으로 넘겼다는 소식도 있음
이 과정에서 사슴 한 마리가 죽고 사불상 한 마리도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함
2차 세계대전 때 총격을 가한 것보단 낫다는 소리도 나옴 ㅋㅋ
현재까지 아스카니아 노바 행정부는 여전히 공석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 하겐베크의 헬라브룬 동물원 -
생선장수이자 아마추어 동물수집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하겐베크
아버지의 동물 컬렉션에 자기가 모은 동물들을 더하면서
1870년대부터 생선 가게보다 동물 장사가 수익성이 더 높아졌고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상인이 됐음
하겐베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수집했는데
하겐베크의 컬렉션에는 '인간 동물원'도 있었음
1875년 누비아인, 이누이트족, 마사이족, 싱할라족 등 다양한 원주민들을 데려와 전시했음
파리에서는 단 두 달 반 만에 방문객이 백만 명에 달했다고
로마 개선 전차를 끄는 사자
1892년에는 훈련된 사자를 데리고 서커스랑 마장마술도 했음
하겐베크 동물원은 격자무늬 울타리 대신
해자를 사용해 동물과 방문자를 격리한 최초의 동물원이라고 함
이 시설에 대해 특허도 등록했고, 많은 동물원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자로 분리한 동물원 예시
1907년에는 정식으로 하겐베크 동물원을 설립했음
하겐베크 동물원은 하겐베크 사후에도 인기를 끌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불황에 빠지면서 2년 동안 문을 닫았음
전쟁 중에 군이 민간인에게서 말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하겐베크의 동물 대다수가 석탄과 나무를 실어나르는 짐마차로 임대됐다고 함
코끼리와 곰이 무거운 마차에 매여있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고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하겐베크 동물원의 70%가 파괴됐음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재건돼서 현재까지 하겐베크 가족이 이어받아 성업 중이라고 함
어째 몽골야생말이 아니라 사람만 잔뜩 나온 ㅋㅋ
글이 너무너무 길었는데... 긴 글 읽어줘서 너무 ㄱㅅ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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