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주의

2024년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재도입되는 암말 베스페
몽골야생말은
사냥, 포획, 전쟁, 혹독한 기후 등으로
1969년 야생에서 멸종됐음
하지만 서구의 동물원들이 힘을 합쳐
동물원에 남은 개체들을 모아 번식을 성공시켰음
덕분에 멸종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음
그래서 몽골야생말 번식 프로그램은 이렇게 평가받음
• 가장 길면서 가장 세계화된 야생동물 사육 프로그램
• 인간이 기울인 노력과 규모가 야생동물 중 타의 추종을 불허
• 동물원을 통해 멸종 위기 동물을 구한 교과서적인 사례

하지만 번식 프로그램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말들의 희생이 있었음
잡종으로 의심된다며
번식에서 배제되거나 살해당한 말들
감금 상태로 번식에 혹사당한 말들
반면에 끝내주는 번식력과 유전자로
종 번식에 공을 세워 이름을 남긴 말들도 있었음
그 번식 프로그램 중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봤음

팔츠 파인 남작 / 동물 상인 카를 하겐베크
1899~1904년
팔츠 파인과 카를 하겐베크는
몽골야생말을 경쟁적으로 포획했음
☞ 관련글: 상당히 잔인했던 몽골야생말 포획 과정

팔츠 파인의 영지 아스카니아 노바
팔츠 파인이 포획한 망아지 14마리는
그의 영지인 아스카니아 노바로 보내졌음
그곳에서 뿌리내리며
아스카니아 계통을 형성했음

1902년 카를 하겐베크에게 포획된 망아지들
카를 하겐베크가 포획한 망아지 39마리는
독일로 옮겨진 뒤
유럽, 미국 등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음
각지에서 뿌리내리며
프라하 계통 · 뮌헨 계통 · 북미 계통 등을 형성했음

간단히 도식화하면 이러함
당시 몽골야생말은 사냥꾼들의 트로피 동물이자
귀족들이 탐내는 컬렉션 품목 중 하나였음
그래서 이런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음
• 죽어가는 마지막 야생마
• 가장 고귀한 가축말의 조상
• 귀족 수집가와 말 사육자들이 탐내는 품목
• 고가에 거래되어 부유한 동물원에서만 보유할 수 있는 희귀종
어렵게 입수한 희귀종인 만큼
몽골야생말을 보유한 개인이나 기관들은
어떻게든 개체수를 늘리는 데 골몰했음
하지만 생각만큼 번식이 잘 안됐음

당연함
종마와 암말은 다 죽이고
망아지만 데려왔으니까
포획 스트레스로 많은 망아지가 죽었고
살아남은 개체들도 번식 능력이 떨어졌음
그래서 근친교배를 시켰더니
근친교배 우울증으로 번식률이 더 낮아졌음

설상가상으로 2차 세계대전까지 터졌음

1954년 몽골 야생에 남아있던 한 무리
동물원에 포획된 개체들은
난임과 전쟁 등으로 죽어갔고
야생에 사는 개체들은
포획, 국경 전쟁, 혹독한 겨울로 죽어가면서
멸종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았음
하지만 개체수를 늘리려고 해도 번식도 잘 안돼
몽골야생말을 보유한 사람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음
체코도 그 중 하나였음

체코 넷루키에서 사육됐던 3마리
당시 체코 생명과학대 농장 넷루키에는
몽골야생말 3마리가 있었음
종마 알리(Ali)
암말 민카(Minka)
암말 66번(이름 X)
셋 다 동물 상인 카를 하겐베크를 통해
독일 할레 동물원을 거쳐 체코로 온 말들이었음
얘네들은 여기서 새끼 3마리를 낳은 후
1931년에 프라하 동물원으로 옮겨졌음

프라하 동물원으로 이송 중에 죽은 66번 암말
그런데 프라하 동물원으로 수송하던 중
66번 암말이 수송 트라우마로 세상을 떠나버렸음

https://www.facebook.com/photo?fbid=5801193109901896&set=pcb.5801588303195710


종마 알리와 암말 민카
그래서 알리와 민카만 프라하 동물원에 남았음
알리와 민카는 이곳에서 교미를 했고
https://www.facebook.com/photo/?fbid=667100842117744&set=pcb.667139508780544


엄마 민카와 아기 헬루스
1933년 3월 21일
프라하 동물원의 첫 새끼가 태어났음
바로 암말 헬루스(Helus)

당시 프라하 동물원 계보도를 그리면 이러함
도형 위에는 부모조상들을 써봤음
* D = 가축말
알리와 민카는 부모와 조상이 모두 같은 남매임
그림에는 없지만 죽은 66번 암말은 이복남매임
하지만 헬루스가 태어나고 얼마 뒤
이번에는 종마 알리가 세상을 떠나버렸음

그래서 다음 해인 1934년
미국 워싱턴 동물원에서
종마 호리미르(Horymir)를 새로 데려왔음
그래서 이제 프라하 동물원에는

암말 민카(Minka)
종마 알리와 함께 프라하 동물원에서
최초로 사육된 몽골야생말

암말 헬루스(Helus)
알리와 민카의 딸

종마 호리미르(Horymir)
알리가 죽은 뒤
미국 워싱턴 동물원에서 새로 데려온 종마
털색이 어둡고 성격이 급한 말로
'아름다운 미국 종마'라고 불렸다고 함

계보도로 보면
알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민카 · 헬루스 · 호리미르만 남은 상태임

바로 이 무렵
얀 블라삭(Jan Vlasák)이라는 수의사가
프라하 동물원장으로 임명됐음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동부 전선에서 싸운 군인이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동물원에서
반독일 저항 운동을 조직한 '반 나치' 인물이었음

블라삭은 부임하자마자
민카와 호리미르를 교미시키려고 했음
근데 민카가 임신이 안 되는 거임

"민카가 왜 임신이 안되는 거지?"
블라삭은 조언을 구하기로 했음
근데 조언을 구한 상대가...

비엔나의 쇤브룬 동물원장
오토 안토니우스(Otto Antonius)
특징: 나치당 소속, 히틀러 스타일의 콧수염

동물 상인 카를 하겐베크의 사위이자
뮌헨 동물원장인 하인츠 헥(Heinz Heck)
특징: 나치 서클에서 활동적인 멤버
죄다 나치와 관련있는 인물들이었음 ㅋㅋ

번식 성공을 위해서라면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그... 민카가 심각한 불임인 거 같은데 조언 좀 ㅇㅇ

오토 안토니우스 & 하인츠 헥 왈
"발정이 약화됐구만 ㅉㅉ"
조사 결과 '발정 약화' 때문이라고 함

오토 안토니우스:
뇌하수체 전엽에서 추출한 호르몬인
프롤란(Prolan)으로 민카를 치료하면 될 듯 ㅇㅇ

얀 블라삭: ㅇㅋ
얀 블라삭은 안토니우스의 조언을 받아들였음

민카
그래서 민카한테 호르몬 주사를 투입했음
결과는?
효과가 있었음

주사를 맞은 지 7일 후
민카는 나이가 많았는데도
인위적으로 발정기에 들어갔음
종마 호리미르를 만나려고
울타리를 넘어가려고까지 했음

민카(왼쪽)와 호리미르
이 타이밍에 관리인들이 둘을 합사시키자
민카는 이틀 동안
호리미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든 짓을 했음
하지만 호리미르의 반응은

민카를 격하게 거부하며 목과 다리를 물었음
하기 싫었던 거임
결국 민카는 부상을 입었고
교미 시도는 실패로 끝났음

야생에서 암말은 종마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여기선 제한된 공간에서
강제로 시키려고 하니까 스트레스 받은 거임
실제로 동물원에 사는 개체의 임신율은
야생에 사는 개체보다 훨씬 낮다고 함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프라하 동물원이 아님

헬루스
이번에는 민카의 딸 헬루스를 호리미르한테 데려갔음
헬루스는 발정 징후가 없었는데도 강제로 데려간 거임
결과는?

헬루스(왼쪽)와 호리미르
이번에는 헬루스가 호리미를 공격했음
이제 호리미르가 다쳐버렸음;;

프라하 동물원: 아직 포기 못해!!

민카(왼쪽)와 헬루스
3주 뒤
이번에는 민카와 헬루스 모녀를
한꺼번에 호리미르한테 데려갔음

날 좀 가만 내버려도오오
호리미르는 역시 둘 다 거부했음

근데 흥미로운 일이 발생했음
민카와 헬루스가 함께 있었을 때는
공격적이었던 호리미르가
민카를 다른 데로 옮기니까
헬루스한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임
이 자쉭...

헬루스(왼쪽)와 호리미르
호리미르는 헬루스한테 교미를 시도했지만
헬루스는 계속 호리미르를 거부했음
동물원은 이 둘을
몇 번 합사시켰다가 중단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헬루스가 임신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음
그리고

엄마 헬루스와 망아지 루카
"응애"
1941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원한 여름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끼가 태어났음
동물원에서 4년 만에 태어난 최초의 새끼였음


망아지의 이름은 루카(Lucka)
암컷이었음
루카는 다리를 휘청거렸고
약간 허약했지만 상태가 나쁘진 않았음
그런데

"이거 몽골야생말 맞아?"
루카는 태어나자마자 논란의 대상이 됐음
왜냐하면 전형적인 몽골야생말 생김새랑 달랐던 거임

프라하 동물원의 종마 닉(Nick)
사람들이 생각하는 몽골야생말은
이 사진 속 말처럼 생겼음
무겁고 다부진 체형
갈색 or 베이지색 몸색깔
검은색 갈기
긴 검은 양말 신은 네 다리
이게 전형적인 몽골야생말 생김새임

그런데 루카를 보자
엄마 헬루스처럼 얇고 가느다란 체형
갈색도 베이지색도 아닌 붉은색의 몸색깔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갈기
검은 양말도 안 신은 밋밋한 다리

게다가 이마에 있는 하얀 쐐기무늬는 뭐임
이런 건 가축 말에서 흔하지만
몽골야생말에서는 없는 특징임
즉, 루카는 전형적인 몽골야생말이 아니었음
이마의 흰 무늬는 크면서 점점 사라졌지만
루카의 생애 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음

여우 유전자를 가진 영국 마웰 동물원의 종마 바타르(Baatar)
루카처럼
다리에 검은 양말이 없고
붉은 털, 붉은 갈기를 가진 몽골야생말은
"여우(Foxes)"라고 불렸음
여우와 비슷한 색을 가졌다고 붙여진 이름임
이런 '여우' 몽골야생말은
가축 말과 섞인 불순한 말로 여겨졌음
이제 결론이 나왔음
"루카는 잡종이다"

당시 몽골야생말은
생김새가 조금만 달라도 잡종 취급받았음
사실 루카의 엄마 헬루스랑
할머니인 민카도 잡종 논란이 있었음
다들 독일 할레에서 데려온 말들인데
할레에서는 가축 말과 교잡시키기도 했거든
그래도 할레에서 태어난 말들은
합법적인 몽골야생말로 인정받아서 여러 곳에 보내졌고
프라하 동물원도 알리랑 민카를 받았던 거임

생김새가 좀 다르다고 가축 말과 교잡된 거라고 볼 수 있음?

당시에는 그랬다고 함
단순히 표현형(=외형)만으로 순종과 잡종을 구분했음

뮌헨 동물원장 하인츠 헥은
몽골야생말을 이렇게 정의했음
"짙은 갈색털, 흰 코, 검은 다리, 곧고 검은 갈기
다리의 검은 줄무늬, 덥수룩한 검은 꼬리
둔탁한 체구를 가진 말만이 순종 몽골야생말임"

"체형이 가늘고, 털과 갈기가 붉은색이고
검은 양말이 없는 여우 몽골야생말은 잡종일 뿐임"

"다부진 남성적 특징을 가진 몽골야생말이 순종이고
(루카처럼) 여성적 특징을 가진 몽골야생말은 잡종임"
하인츠 헥은 순종 집착파 중에서도
핵 보수적인 강경파였음

프라하 동물원과 일부 사람들은 발끈했음
"어차피 야생에서도 교잡됐을 텐데 뭘 그렇게 따짐?!"

하인츠 헥은 생김새로 그렇게 판단할 뿐이었음
거의 병적으로 순종에 집착했던 인물임
1933년에는
자기가 운영하는 뮌헨 동물원에서
'여우색'을 가진 망아지가 태어나자 죽이기까지 했음
이뿐만이 아니었음
잠깐 뮌헨 동물원 상황을 보겠음

프라하 동물원에서 데려온 암말 베시

프라하 동물원에서 데려온 암말 셀마

1932년
뮌헨 동물원은 체코에서 암말 3마리를 데려왔었음
암말 69번
암말 베시(Bessie)
암말 셀마(Selma)
69번 암말은 넷루키에서 데려왔고
베시와 셀마는 프라하 동물원에서 데려왔음
모두 알리와 민카가 낳은 세 자매임
하지만 69번 암말이 3살에 마별로 떠났음
그래서 베시와 셀마만 남은 상태에서

아스카니아 노바에서 데려온 종마 파스차. 본명은 미노이(Minoi)
1934년
아스카니아 노바에서
파스차(Pascha)라는 종마를 새로 데려왔음
하인츠 헥은 파스차를 야생적이라며 마음에 들어했음
"파스차는 정상적인 야생마의 방식으로
무섭게 물고 싸우는 훌륭한 종마다"
파스차는 훗날 올리카 II(Orlica II)라는 암말과 함께
베를린 동물원으로 가서 베를린 계통의 창시자가 됨

계보도로 보면
여기서 69번 암말이 죽었고
베시 · 셀마 · 파스차를 번식시키면서
소위 뮌헨 계통을 구축하고 있던 상태임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라하 동물원에서 데려온 몽골야생말은
잡종 조상으로 오염돼 있어서 키울 가치가 없음"
"파스차도 순수성이 의심됨"
이러더니만
베시와 파스차의 후손 6마리를 죽여버렸음;;

에바의 스터드북 프로필
베시와 파스차의 딸 에바(Eva)도 죽였고

에바의 자식들
에바의 5살짜리 딸 에르나(Erna)
에바의 7개월 된 딸 한니(Hanni)
에바의 자식들까지 모두 죽여버렸음
스터드북을 보면
일찍 죽었던 자식들을 제외하고
엄마 에바, 딸 에르나와 한니 모두
1955년 12월 2일에 죽은 걸로 나와있음
뮌헨 동물원에 있던
'더러운' 프라하 계통을 싹 제거한 거임

프라하 동물원은 당연히 빡쳤음
감히 우리가 보내준 소중한 말들을 제거해??
우리 루카도 억까하지 마!!
프라하 동물원과 뮌헨 동물원 사이에
빠지직 균열이 일어났음
근데 상황이 꽤 난처해졌음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공격으로
아스카니아 계통과 북미 계통이 전멸했단 말임
그래서 살아남은 무리는
프라하 동물원과 뮌헨 동물원 밖에 없었음
근데 정작 이 둘이 사이가 나빠져서
개체교환도 못 함
이제 각자도생해야 됨

프라하 동물원 왈
"우리는 루카로 번식 작업 계속한다!"
프라하 동물원은
루카로 번식 작업 계속하기로 했음
만약 루카가 뮌헨 동물원에서 태어났다면
잡종이라며 도살되는 운명이었을 거임

하지만 근친교배가 불가피했음
왜냐하면
민카: 루카의 할머니
헬루스: 루카의 엄마
호리미르: 루카의 아빠
우란: 호리미르와 민카의 아들
얘네가 다야
뮌헨 동물원과 교환도 못 하니까
근친교배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음

루카는 결국 이복남매인 우란(Uran)과 교미했음
빠져나올 수 없는 근친교배 개미지옥 ㅠㅠ
하지만 이땐 아무도 몰랐음
루카가 '초월적인 번식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루카는 고작 2살에 첫 새끼를 낳았음
너무 어린 나이에 낳아서인지
이 새끼는 오래 못 살았다고 함
하지만 그 뒤로는 순풍순풍 낳아서
다산의 여왕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음

루카(왼쪽)와 아들 레오 / 아들 루시퍼(오른쪽)
노령인 22살에도 건강하게 새끼 낳았고
평생 총 11마리를 출산했음
(수컷 8마리와 암컷 3마리)
말은 1년에 한 마리씩 낳으니까
거의 전 생애 동안 열일한 셈임
루카는 압도적인 번식력으로 유명해졌고
프라하 동물원은 루카 부심이 뿜뿜했음

그런데 루카 덕분에
몽골야생말 번식 정책에 변화가 생겼음
원래 동물원에서 추구하던 번식은
'종마 중심' 시스템이었음
종마 한 마리로 여러 암말을 임신시킬 수 있으니까
종마를 더 가치 있게 쳐준 시절이었음

하지만 다산 능력 쩌는 루카 덕분에
개체수가 어느 정도 확보되면서
이제 말을 고를 여유가 생긴 거임
그래서 생김새가 전형적이지 않은 종마나
번식력이 없거나 낮은 종마는 쉽게 제거됐음
이로 인해 종마는 암말보다 덜 번식했음
1972년까지
번식에 쓰인 암말은 전체의 40%였는데
종마는 고작 25%에 불과했다고 함

당시 프라하 동물원의 무리들
루카의 뛰어난 번식력은 모두의 희망이었지만
그 혈통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여전했음
잡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루카의 후손들은 '합법적인 몽골야생말'로 인정받아
여러 동물원으로 보내졌지만
루카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번식 프로그램 동안 철저히 차별받았음

이렇게 논란이 있건 말건
루카가 다산의 여왕으로
프라하 동물원을 빛내고 있던 그 시절
한 마리의 새로운 암말이 혜성처럼 등장했음

사진은 아님. 얘네는 42년에 몽골에서 포획된 2마리
루카가 6살이 되던 1947년
몽골 야생에서 새끼 2마리가 포획됐음

마지막으로 포획된 암말 2마리
암말 230번
암말 알타이(Altai)
둘 다 암컷이었고
야생에서 잡힌 마지막 몽골야생말들이었음
두 암말은 포획된 후
몽골 훕스골 자르갈란트의 국영 농장으로 옮겨졌음
하지만 이듬해에
230번 암말이 세상을 떠나버렸고
알타이만 홀로 살아남았음

그리고 10년 뒤인 1957년
알타이는 소련 장교한테 선물로 주어져서
아스카니아 노바로 가게 됐음
알타이는 거기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음
바로 올리카 III(Orlicka III)
이 올리카 III의 등장은
몽골야생말 번식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됨

야생에서 새로 잡혀온 암말이니까
올리카 III로 번식시키면
새로운 야생 유전자를 개체군에 퍼뜨릴 수 있음
게다가 독일군의 공격으로 전멸했던
아스카니아 계통을 되살릴 절호의 기회였음


아스카니아 노바 연구진들은
올리카 III와 교미시킬 남편을 얼른 구해왔음
바로 종마 로버트(Robert)
로버트는 원래 뮌헨 동물원에서 살았는데
1948년 아스카니아 노바에 온 거임
로버트는 아스카니아에서 올릭(Orlik)이라고 개명됐음
아스카니아 사람들이 올릭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했다고 함
스터드북에는 올릭-로버트(Orlik-Rob)라고 등록된 듯함
여기서는 올릭이라고 부를게

올리카 III
올리카 III는 생김새가 투박하고
예민한 야생마 이미지 그 자체였지만
스터드북 창시자인 에르나 모어는
올리카 III를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함
에르나 모어 왈
"올리카 III는
머리가 뭉툭하고 뼈가 굵고
눈 위치가 너무 높고 다리가 너무 짧고
아랫입이 너무 튀어나와 있어서 비정상적임
전체적으로 고귀하고 우아한 배우자인
종마 올릭과 너무 다름"
한 마디로 몬생겼다는 거임 ㅋㅋ

올리카 III
사실 올리카 III는 처음부터 주목받지는 못했음
1960년대에
아스카니아의 몽골야생말 상황을 다룬 기사가 많았는데도
정작 올리카 III를 조명하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고 함
올리카 III의 존재가 언제 널리 알려졌냐면

1959년 9월
프라하 동물원에서 열린
제1회 국제 프셰발스키말 심포지엄
바로 여기서 올리카 III의 존재가 공식 발표됐음
왼쪽부터 지리 볼프, 에르나 모어 등...
하인츠 헥은 사망으로 부재
어, 음음...
야생에서 새로 잡힌 올리카 III라는 암말이
아스카니아 노바에 있다네요

뭐?! 야생의 새로운 피가 들어왔다고?!

근데 그게... 10살이라네요

뭣, 10살이라고?
올리카 III의 나이 때문에 사람들은 실망했음

올리카 III가 10살이라니...
나이가 많아서 번식이 썩 기대되진 않네

아스카니아 노바 책임자인
블라디미르 다닐로비치 트레우스(Vladimir Danilovich Treus)
"올리카 III는 기껏해야 새끼 5~6마리밖에 못 낳을 듯"
진짜 그랬을까?

올리카 III와 로버트는 성공적으로 교미했지만

올리카 III는 죽을 때까지
암컷 2마리와 수컷 3마리밖에 못 낳았음
즉 5마리만 낳은 거임

그런데 2마리는 일찍 죽어서
실제로 남긴 자식은 3마리뿐이었음
결국 예상치보다 적게 낳은 셈임
올리카 III가 고작 3마리만 남기고 생을 마치자
전문가들은 탄식했음
참고로 올리카 III는 27살까지 장수했음

프라하 동물원의 스터드북 관리자 지리 볼프(Jiri Volf)
"올리카 III가 몽골야생말의 세계적 번식에
지속 가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고작 3마리의 후손만 남긴 것이 유감스럽다"
또르르
하지만 이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음
올리카 III의 자식 3마리의 활약을

올리카 III와 아들 페가스, 딸 볼가(1967년)
올리카 III의 첫째인 딸 볼가(Vilga)

루카에 필적하는 11마리를 낳았음

올리카 III, 아들 페가스, 딸 볼가(1967년)
올리카 III의 둘째인 아들 페가스(Pegas)

조낸 61마리나 번식했음

올리카 III의 넷째인 아들 바스(Bars)

캬 56마리나 번식했음
올리카 III의 자식들이
올리카의 유전자를 널리널리 퍼뜨려줬음
자식들이 번식킹이었던 거임 ㅋㅋㅋ

특히 바스는 1964년에
아스카니아 노바 → 프라하 동물원으로 건너간 뒤
거기서도 폭풍번식하며 번식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음

바글바글한 프라하 동물원
프라하 동물원은
잡종 의심말 루카의 '다산 능력'에 이어
바스까지 '번식킹'으로 날라다니면서
세계 최고의 몽골야생말 번식장이 됐음
하지만
프라하 동물원과 달리 울상인 곳이 있었으니...

뮌헨 동물원
바로 뮌헨 동물원
프라하 동물원과 사이가 틀어진 후
여전히 번식이 지지부진한 상태였음

뮌헨 동물원은 프라하 동물원에서
암말 베시(Bessie)와 셀마(Selma)를 데려왔고
아스카니아에서 종마 파스차(Minoi)를 데려와서
뮌헨 계통을 시작했었단 말임
강경 순종파인 하인츠 헥은
잡종으로 의심되는 6마리를 죽인 후
자신의 넓은 인맥을 동원해서
우크라이나, 호주, 미국에서 새로 도입했음
하지만 불임과 근친교배 문제는 여전했음

종마 네빌 스터드북 프로필
하인츠 헥은 자기가 탐냈던 종마이자
영국 워번 베드포드 공작이 소유하고 있던
종마 네빌(Neville)도 데려왔음

네빌의 자식들
네빌은 뮌헨 동물원에서 열일하며
19마리의 새끼를 번식했지만
근친교배 우울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게 드러났음

당시 뮌헨 계통 가계도의 일부임
왼쪽 위 가로 점선 아래
Minoi(파스차)라고 써진 부분이 뮌헨 계통임
4세대째에는
워번에서 온 종마 네빌(Neville)과 합친 것이 보임
(빨간선은 1차 근친상간 관계)
이처럼 뮌헨 동물원은
루카+바스 슈퍼 번식킹들로 훨훨 나는
프라하 동물원과 상당히 대조적인 상황이었음
그런데 1984년
뮌헨 동물원에 한 줄기 빛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음

프라하 동물원의 종마 바스

뮌헨 동물원의 종마 시몬 스터드북 프로필
프라하 동물원의 종마 바스(Bars) ↔ 뮌헨 동물원의 종마 시몬(Simon)
두 종마의 맞교환이 성사된 거임...!
이는 오랫동안 교환이 막혔던 두 계통이
다시 교차하는 역사적인 교환이었음
실제로 교환이 재개된 건 1960년대였지만
역사적인 의미로 이렇게 봄
이로써 번식킹 바스가
뮌헨 동물원으로도 건너가게 됐고
올리카 III의 귀중한 피가
뮌헨 동물원에도 공급될 수 있었음

종마 바스
기존에 프라하 동물원에서
45마리의 새끼를 번식했던 바스는
뮌헨 동물원으로 건너간 뒤에도
11마리를 더 번식했음 ㄷㄷㄷ
바스는 그야말로 '일류 종마'였다고 함
에르나 모어의 말에 따르면
암말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공격하고 쫓아내고
심지어 새끼 몇 마리를 죽이기도 하고
강제적인 번식 작업에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매우 거친 종마였다고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 동안
무려 56마리의 새끼를 번식한 바스
본인은 극도로 거부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음
1960년대는 그야말로
대량 번식하는 두 종마
페가스와 바스의 신비가 한창이었다고...

올리카 III
비록 올리카 III는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남겼지만
자식들이 올리카 III의 야생 유전자를
개체군에 널리 퍼뜨리는 대효자로 이름을 날렸음

영국 마웰 동물원 창립자 존 놀스(John Knowles)
"1960년대 후반
프라하 동물원에서 올리카 III의 아들 바스의
탐나는 새끼 몇 마리를 살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페가스와 바스의 활약 덕분에
1950~60년대에는 번식 프로그램에 탄력이 붙었음
"근친교배를 피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늘리자"
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동물원들 사이에서 개체 교환이 훨씬 활발해졌음

(주운 짤)
1958년
에르나 모어가
최초의 몽골야생말 스터드북을 발간했음
당시 몽골야생말 283마리를 전부 수록했는데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서
번식 프로그램 관리가 훨씬 쉬워졌음
.
.
.
그런데 1970년대에 접어들자
기존 번식 방식에 의문을 던지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음

1977년
미네소타 동물원 박사 후보생 네이선 플레즈니스
"몽골야생말처럼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한 개체군은 결국 멸종될 거임"
당시 기준으로는 꽤 파격적인 발표였음

네덜란드 사육자이자 아마추어 과학자 얀 보우만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님"
"근친교배로 수명과 번식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실제 통계로 확인됐음"

잉게 보우만(왼쪽에서 3번째 빨간 외투)
참고로 얀 보우만은 훗날 부인 잉게 보우만과 함께
몽골 후스타이 국립공원으로의 첫 재도입을 성사시켜
네덜란드 왕실로부터 실버 카네이션 상을 받게 됨

모든 연구 결과들이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음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몽골야생말은 또다시 멸종한다는 것

그래서 1981년
북미 몽골야생말 학계는 10개 동물원이 참여하는
종 생존 계획(SSP, Species Survival Plan)을 시작했음

SSP 지휘자는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유전학자 올리버 라이더(Oliver Ryder)
훗날 잉여 종마였던 쿠포로비치의 유전자를 복제해
커트와 올리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함
관련글 ☞ 잉여 종마였지만 훗날 재평가된 쿠포로비치
라이더가 이끄는 SSP의 핵심 목표는 단 하나였음
'유전적 다양성 확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유전자!

거기에 가장 가까운 게 누구?
야생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올리카 III
하지만 미국에는 올리카 III는 커녕 그 후손조차 없었음

당시 미국은 1950년 뮌헨 동물원에서 데려온
몽골야생말들로 번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음
즉, 북미 계통의 뿌리는 뮌헨 계통에 있었음
그래서 올리카 III 혈통을 주입하려면
아스카니아 계통이나 프라하 계통을 도입해야 했음

그래서 1982년
아스카니아 노바 ↔ 샌디에이고 야생동물공원
역사적인 몽골야생말 3마리 맞교환이 성사됐음!
이때 미국이 데려온 3마리는 다음과 같음
종마 벌칸(Vulkan)
암말 바타(Vata)
암말 바르나(Varna)
모두 올리카 III의 아들 페가스의 자식들임
이로써 미국도 드디어 올리카 III 혈통을 손에 넣게 됐음
그리고 이 무렵부터
몽골야생말 번식을 대하는
북미와 유럽의 관점이 갈라지기 시작했음

북미의 입장을 대표하는
SSP 지휘자 올리버 라이더 왈
“생김새만 보고 잡종 여부 판단하는 건 비과학적임"
“외형으로 걸러내면 귀중한 유전자를 잃을 수도 있음"
"특정 종마를 집중적으로 쓰는 건 유전적 다양성에 악영향을 줌”
"생김새가 조금 달라도 교환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자"
즉 생김새보다 유전자를 더 중요시했음
북미는 유전학이 빠르게 발달한 1970년대 이후
'표현형' 중심의 판단에서 완전히 벗어났음
하지만 이 주장은 유럽에서는 별로 안 통했음

발트라우트 짐머만 박사(오른쪽 끝)
유럽의 입장
"동물원은 공간이 한정돼 있음"
"개체수는 900마리로 충분하니까 어차피 선택은 필요함"
"그 선택의 기준으로 일관된 외형을 중시하는 건 합리적임"
털 색이 조금 달라도 탈락
흰 무늬가 있어도 탈락
눈 색이 좀 더 밝아도 탈락
루카처럼 '여우'로 분류된 개체는 탈락 땅땅
유럽은 여전히 외형을 고집했거든
표현형에 집착하는 이 사고방식의 중심에는
쾰른 동물원의 큐레이터 발트라우트 짐머만(Waltraut Zimmermann)이 있었음
이분은 1985년에 출범한
유럽 멸종위기종 프로그램(EEP)의 책임자이기도 했음
미국은 유전적 다양성 중시
유럽은 전형적인 외형 중시
두 지역의 시각차는 점점 더 뚜렷해졌음

올리카 III
이처럼 미국의 번식 프로그램은 유럽과 달리
겉모습(표현형) 안 따지고
수학적으로 계산된 유전자 확률을 토대로 이루어졌음
미국이 집중한 목표는 단 하나였음
'올리카 III 유전자 최대한 퍼뜨리기'
모든 암말을 번식에 의무적으로 동원해서
암말 한 마리당 새끼 7마리 이상 낳게 했음
모두가 올리카 III의 유전자를 찾아댔음
올리카 III는 자기 이름보다
스터드북 번호 "231"로 더 자주 불렸다고 함

문제는 이 방식에도 어두운 면이 있었음
이 말이 얼마나 희귀한 유전자를 갖고 있고
개체군에 얼마나 큰 다양성을 줄 수 있는지
수학적으로 계산된 유전적 가치에 따라
쓸모있는 말 or 쓸모없는 말로 철저히 분류됐음
유전적으로 가치가 높고
개체군에 많이 퍼지지 않아 과소대표된 말은
무조건 번식해야 하는 번식 압박을 받았음
반면 유전적으로 가치가 낮고
유전자가 이미 많이 퍼져 과대대표된 말은
잉여로 분류되어 가차없이 버림받았음

특히 많은 수컷이 잉여 취급을 받았음
예전에는 우수한 종마 하나를 뽑아서
그놈이 수십~수백 마리 낳는 게 이상적이라고 보는
'다산성 종마 개념'이 중심이었음
하지만 이제 보니까 그 방식이 더 위험한 거임
특정 수컷 유전자만 몰빵되니까
유전적 병목현상과 근친교배 리스크만 더 커짐
그래서 이제 종마 중심 시스템이 폐기됐고
수컷도 교대로 번식 임무를 수행하는 처지가 됐음
물론 유전적 가치가 있는 수컷만...
책에서는 이걸 번식 대기하는 '총각 창고'라고 표현함
결국 유전학의 발달과 올리카 III 유전자가
북미의 번식 프로그램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거임

이처럼
번식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올리카 III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갔고
그 자식들과 후손들도
점점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올리카 III한테 실망했던 사람들도
그녀를 재평가하기 시작했음
죽어가는 종을 구한 유전적 구세주였다고

루카 1941.07.01~1964.11.06 (23살)
올리카 1947.01.01~1973.12.27 (27살)
종의 생존이 불확실했던 시기에 태어났던 두 암말
2차 세계대전 중
동물원에서 무리하게 조작된 교배로 태어난 루카는
불순한 혈통의 대표처럼 여겨졌지만
뛰어난 번식 능력으로 결국 찬양받게 됐음
그보다 6살 어린 올리카 III는
몽골 야생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됐는데
번식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을 안겨줬음
하지만 몇 안 되는 자손들이
야생의 신선한 유전자를 개체군에 전파했음
루카의 후손들은
이후에도 근친교배 문제에 직면했고
가축 말 유전자에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어
번식에서 제외되었음
반면 올리카 III의 후손들은
야생성과 유전적 다양성을 지닌 개체로 높이 평가받아
번식에 적극적으로 이용됐음
처음에는 평가가 갈렸지만
오늘날 둘에 대한 평가는 확고해졌음
'죽어가는 자신의 종을 구한 두 암말'이라고
올리카 III는 스터드북에서 1946년생이라고 하지만
많은 자료에서 1947년생이라고 함

프라하 동물원의 종마 이반과 암말 아르나

실버 아이를 가진 워싱턴 동물원의 종마(혈통번호 123)
물론 루카와 올리카 III 외에도
많은 말들이 번식 노동에 동원되어
종의 멸종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
인간의 성공만 조명하는 이면에는
수많은 말들의 공로와 희생이 있었음

포획한 망아지들
성공적인 번식 프로그램이었지만
분명한 한계도 존재했음
통계에 따르면
야생에 재도입된 몽골야생말 암말과
포획 환경에서 태어난 암말 사이에는
번식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함
야생에서 태어난 암말과 재도입된 암말은
약 70%가 번식에 성공했지만
포획 환경에서 태어난 암말은
40%도 못 미치는 번식률을 보였다고 함
즉, 인간의 행동이
포획 상태에서 태어난 말들의 번식력을
심각하게 저하시켰다는 게 증명됐음

그래도 한때 암울했던
몽골야생말 포획과 번식의 역사는
꽤 희망적으로 끝났음
루카와 올리카 III의 후손들 중 일부는
다시 자유로운 초원 위를 달리고 있으니까
- 끝 -

#출처
역사 속의 성별과 동물
- 멸종에 대항하는 번식: 두 프셰발스키말 암말의 가치와 노동
여기까지 이 책 특정 챕터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다른 자료들과 섞어서 정리해봤음!
+
프라하 동물원과 뮌헨 동물원의 아이러니한 운명

표현형을 기준으로 순종 잡종을 따지고
소위 '잡종' 프라하 계통을 맹비난했던
뮌헨 동물원장 하인츠 헥
그 고집으로 자기네 뮌헨 동물원에 있던
프라하 계통 말들을 죽이기까지 했고
프라하 동물원과 관계가 아작나기도 했음
근데 그 뒤 이야기가 좀 웃김

1989년 이후
하인츠 헥이 만든 뮌헨 계통 창시자 중 한 마리가
1세대 몽골야생말 X 가축 말의 잡종
...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음
그리고 2003년
뮌헨 동물원이 1960년대에
몽골야생말을 자주 거래했던 다른 동물원에서
잡종 말을 많이 보유했었다는 게 드러났음
그래서 2005년
뮌헨 계통을 다른 계통과 교배하기로 했는데...
그 교배 상대는 바로
하인츠 헥이 생전에 불순하다고 조롱하고
박멸하려고까지 했던 프라하 계통이었음

오늘날
프라하 계통은 단 하나의 잡종 DNA로 오염된 반면
뮌헨 계통은 3마리가 오염된 걸로 밝혀졌다고 함
결국 하인츠 헥이 구축한 뮌헨 계통이
정작 프라하 계통보다 더 많은 잡종 피를 갖고 있었다는 거 ㅋㅋ

그렇게나 순종에 집착하더니 지 발등 지가 찍었죠

독일 테넨로허 보호구역의 종마 볼프강(Wolfgang)
입 부위와 아랫배가 흰색이고
다리에도 검은 양말 신고 있어서
전형적인 몽골야생말 특징을 갖고 있음
하인츠 헥이 봤다면 기립박수 쳤을 거임
하지만 안타깝게도 볼프강은
통제하기 힘든 성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올해 도살되어 동물원 사자의 먹이가 됐음 ㅠㅠ

https://breedingback.blogspot.com/2022/08/the-original-coat-colour-variation-in.html
19세기 말 ~ 20세기 초반의 몽골야생말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표현형을 가졌었다고 함
털색이 매우 밝은 말
털색이 더 어두운 말
다리에 검은 양말 안 신은 말
아랫배가 하얗지 않은 말
등등
하인츠 헥의 믿음과 달리
오래 전 야생에서도
몽골야생말은 다양한 외형을 갖고 있었음
하지만 현대에는 오히려 이런 특징이 사라지고
전형적인 몽골야생말만 남았다고 함
그 이유는
1. 20세기에 개체수 폭락으로 대립유전자의 다양성이 감소
2. 번식 프로그램 중에 개체를 선택한 결과
때문이라고 함
번식 프로그램 중에는
하얀 배, 하얀 입, 선명한 다리 줄무늬가 있는 개체를
더 선호했을 가능성이 큼
이상적인 생김새만 골라 번식시키다 보니
오히려 전형적인 생김새만 나타나는 결과가 됐음
그래도 가끔 전형적이지 않은 말들이 보이긴 함

몽골 후스타이 국립공원에 사는 종마들
왼쪽 애는 오른쪽 애와 달리
주둥이 부위가 거무튀튀하고
전체적으로 털색이 많이 어두움

몽골 후스타이 국립공원의 종마 카랑가(Kharanga)
전체적으로 밝은 금색털이고
갈기도 밝은색임
얘네처럼 일부는 다양한 표현형을 갖고 있음
하지만 기존 야생의 표현형이 아니라
가축 말의 표현형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음

몽골 호민 탈에 사는 종마 볼레로(Bolero)
이마 가운데에 작은 흰 점이 있음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에 사는 한 녀석
이마에 뚜렷하게 큰 흰 점이 있음
이처럼 현대의 몽골야생말은
다양한 야생 표현형이 사라진 대신
가축 말의 변이가 드러나는 게 특징이라고 함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번식 프로그램에 가축 말도 동원됐었기 때문임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몽골야생말은
야생에서 포획한 12마리 + 가축 말 4마리의 후손임
이 중 11마리는
1899~1902년 동안 야생에서 포획한 망아지들임
마지막 개체는 1939년에 세상을 떠났음
12번째 창시자는
1947년에 마지막으로 포획된 암말 올리카 III
13번째 창시자는
1906년 독일 할레에서 키운 몽골야생말 종마와
몽골 가축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14번째 창시자는
우크라이나 아스카니아 노바에서
몽골야생말 종마와 타르판 계열 가축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즉 현존하는 모든 몽골야생말은 사실상 '잡종'임
하지만 가축 말 혈통이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 야생마와 매우 가까워서 큰 의미는 없다고 함
+
프라하 동물원 이야기

프라하 동물원의 몽골야생말
프라하 동물원의 번식 계통은
90년 동안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음
2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뮌헨 동물원과 함께 유이하게 살아남았고
번식 프로그램도 대성공해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음
전세계 어떤 동물원도 이처럼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함
오늘날 야생에 사는 몽골야생말 중
3분의 1 이상이 프라하 계통에 바탕을 두고 있음

바스

용보
우리나라에 살았던 녀석들도 마찬가지임
특히 바스랑 닮은 녀석이 있는 것 같은데...🧐
다음에 우리나라에 살았던 몽골야생말 계보도 한번 추적해볼게 ㅋㅋ

올해 6월 카자흐스탄으로 재도입된 프라하 동물원의 암말 제타 2
프라하 동물원은 '야생마의 귀환'이라는 이름 아래
원래 고향으로 재도입시키는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음
1992년
몽골 고비 B로 첫 재도입할 때 관여했고
이후에도 주로 고비 B 재도입을 주도하고 있음
2010년에는 몽골 호민 탈로 수송하기도 했음
2024년 6월
카자흐스탄의 알틴 달라로 재도입한 것도
프라하 동물원이 주도했음
2025년에도
헝가리 호르토바기 국립공원에 살던 30마리를
카자흐스탄 알틴 달라로 보낼 예정임
2026년에는
몽골 동부인 더르너드 지역으로도
재도입이 예정되어 있다고 함
https://www.instagram.com/p/DAYklbnNSiu/
며칠 전 9월 28일은
프라하 동물원이 1959년부터 관리를 맡고 있는
프셰발스키말 국제 스터드북 65주년이었다고 함

https://www.zoopraha.cz/aktualne/akce-v-zoo-praha/14996-zoo-praha-oslavila-65-let-plemenne-knihy-kone-prevalskeho-a-pokrtila-kapybary
2024년 9월 28일
프라하 동물원은 오늘 창립 93주년을 맞아
1959년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프셰발스키말 국제 스터드북 65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이번 기념 행사는
몽골과 카자흐스탄 대사가 주최한
고비 전시회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프라하 동물원에게 몽골야생말은
절대적으로 상징적인 동물이며
몽골야생말에게 프라하 동물원은
지구상 마지막 야생마를 구출하는 데
크게 기여한 핵심 기관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임자들의 노고를 되돌아보며
동시에 미래를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내년에는
카자흐스탄의 황금 초원 알틴 달라로
수송하는 일이 또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몽골 동부 지역으로 수송하는
새로운 재도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헬루스 사진이 많길래 좀 더 올려볼게
헬루스는 민카의 딸이자 루카의 엄마임

엄마 민카와 아기 헬루스

생후 4개월 헬루스

1937년
4살 헬루스

여름털을 가진 26살 헬루스

겨울털을 가진 26살 헬루스
헬루스는 1962년(28살)까지 장수했고
프라하 동물원에서 많은 새끼를 낳아서
프라하 계통을 뿌리내렸음
루카 이전에 민카와 헬루스가 있었으니...
알리, 민카, 헬루스, 호리미르 등
프라하 1세대가 기둥을 마련한 셈임

루카&올리카: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참고한 자료>
• 동물원에서의 근친상간 - 프셰발스키말의 구출과 번식
• 프셰발스키말의 유전적 변이, 특히 마지막으로 야생에서 잡은 231번 암말 올리카 III에 초점을 맞추다
• 2005년 브르노 동물원 보고서(PDF)
<관련글 모음 - 스압>
• 몽골야생말 이야기
― 01. 평화롭고 뚱쭝한 몽골야생말 움짤
― 02. 몽골야생말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 03. 동물원 덕분(?)에 멸종을 피한 몽골야생말
― 04. 19세기 말~20세기 초 꽤 잔인했던 몽골야생말 포획 과정
― 05. 몽골야생말을 멸종에서 구한 두 암말 '루카'와 '올리카'
― 06. 쓸모없는 잉여 종마였지만 훗날 재평가된 몽골야생말 '쿠포로비치'
― 07. 우리나라 서울대공원에 홀로 남은 몽골야생말 '용보'
― 08. 며칠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서울대공원의 몽골야생말 '용보'
― 09. 아쉽게 끝난 우리나라의 몽골야생말 번식
― 10. 야생으로 처음 방사된 몽골야생말의 수난
― 11. 야생에 처음 방사됐다가 혹한에 실종된 몽골야생말 찾기
― 12. 야생성 잃어버린 몽골야생말을 중국 야생에 처음 풀어준 이야기
― 13. 의외로 체르노빌에 살고 있는 몽골야생말
― 14. 몽골야생말을 이베리아 고원으로 보내는 사연
― 15. 전쟁 사랑 우정 배신 막장극 펼치는 몽골야생말 이야기 (1)
― 16. 전쟁 사랑 우정 배신 막장극 펼치는 몽골야생말 이야기 (2)
― 17. 전쟁 사랑 우정 배신 막장극 펼치는 몽골야생말 이야기 (외전)
― 18. 몽골야생말이 사는 곳 중 유럽의 사바나라고 불리는 곳
― 19. 하렘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몽골야생말
― 20. 야생에서 다리 부러졌는데 살아남은 몽골야생말
― 21. 야생에서 다리를 다치고 하렘을 뺏긴 몽골야생말 '번개'
― 22. 체르노빌에 살던 몽골야생말이 최근에 사망한 이유
― 23. 2024년 카자흐스탄에 재도입된 몽골야생말
― 24. 2024년 미국에서 도축 직전의 몽골야생말을 구조한 사건
― 25. 미국 경매장에서 구조됐던 몽골야생말의 안타까운 근황
― 26. 몽골야생말을 거의 초토화시켰던 몽골의 자연재해
― 27. 생후 3개월에 고아가 된 몽골야생말 '츠우트'의 치열한 삶
• 야생마 이야기
― 01. 야생에서 목격된 야생마들의 장례식
― 02. 트레일캠에 포착된 곰을 피해 도망치는 야생마들
― 03. 야생에서 보기 드문 11월에 태어난 야생 망아지
― 04. 야생에서 부상당한 야생마가 자연 치유되는 과정
― 05. 엄마를 잃고 두 종마한테 양육된 야생 망아지
― 06. 캐나다 아이벡스 밸리에서 일어난 야생마 실종 사건
― 07. 야생 망아지의 생존 확률이 낮은 이유
― 08. 말이 다리가 부러지면 안락사되는 이유
― 09. 다리가 부러진 야생마들의 이야기 (1)
― 10. 다리가 부러진 야생마들의 이야기 (2)
#몽고야생말 #타키 #프셰발스키말 #프르제발스키말 #야생말 #야생마 #Przewalski's ho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