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구석에 꿀단지 모셔놨냐? 어?”
선장이 관식의 팔에서 망태를 낚아챘다.
“내 오징어는 왜 가져가! 내가 안 주면 너는 가질 수가 없는 존재야, 어? 너 배 있어?
가지라면 갖고 있으라면 있는 거지 왜 너만 맨날 토껴?”
삿대질과 함께 거친 목소리로 누르려 하는 폭력의 내음 앞에서 관식은 입을 꼭 닫았다. 그런 관식이 맘에 안드는지, 선장의 말은 더 험해졌다.
“아니, 마누라가 그렇게 좋아? 뭐가 좋은데? 아 왜. 말씀 좀 해봐. 좋아 환장해? 맨날 뜨거워? 어?”
비릿한 말투. 관식의 소중한 일상마저 꼭 더럽히고 말아야 속이 풀리겠다는 음침하고 검은 속내.
“좋아 죽겠느냐고!”
급기야 커진 목소리와 함께 선장이 관식을 거칠게 밀었다. 평소같았으면, 아마 관식은 때리는 대로 맞고, 맞는 대로 침묵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관식의 그 조용한 눈동자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감히, 감히 애순을 그 입에 올렸으니까.
“네. 좋아 죽어요.”
예상치 못한 관식의 우렁찬 대답에 선장이 잠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뭐?”
좋아 죽지. 좋아 죽고말고.
“학 씨. 꼴깞들 하고 자빠졌네. 너 인마 뭘 씨. 알기나 하고. 학 씨! 에휴..이 놈을?”
“선장님은 왜 맨날 집에 가기 싫어해요?”
“뭐 이 새끼야?”
“왜? 집에서도 외로워서.”
뜨거운 선장의 폭력의 중심부를 쿡, 찔러들어간 관식의 한 마디에 비웃음을 띄고 있던 선장의 입이 처음으로 굳은 일자가 되었다. 하지만 관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거기서도 사람 취급 못 받아서?”
와. 누가 양관식을 소 죽은 귀신이 씌였다고 할까.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더니. 처음으로 제대로 불의에 항거하는 이 용기를 심어준 것은, 양관식이 안의 애순이였다.
“학 씨! 하!”
새들의 끼룩대는 소리 사이로 선장의 어이없다는 듯한 헛웃음이 길게 이어졌다.
“이런 씨...”
퍽! 돌아선 선장의 발이 관식의 정강이를 제대로 쳤다.
“이것들은 꼭 쳐맞아야 정신을 차리고. 씨.”
화가 난다. 그러면서도 관식은 그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리지 않고는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 통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 이 종자는 평생 모를 것이다. 그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관식이를 매일 매일 좋아 죽게 만드는, 그 유채꽃보다 알싸하게 달달하고, 바다보다도 넓고, 대왕진주보다도 귀한 그것이 무엇인지.
그 때, 관식이의 귀에 한 목소리가 꽂혔다.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사람들은 종종 관식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애순이가 좋냐고.
그 때마다, 관식이는 되려 애순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어째서, 만날, 그렇게 내가 쥐어터지고 있을 때마다 그렇게 나타나냐고. 고작 100미터 24초 밖에 안되는 기집애가, 그 쪼그만 속에서 미친 듯이 고성을 지르면서 용감무쌍하게 달려오는 거냐고. 어떻게 너는 매번 그렇게, 두려움도 없이 풍덩 뛰어들어서 폭력 속에서 나를 구해내냐고. 너는 왜 그렇게 맨날 날 지켜주냐고.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지금도 보라. 저 부른 배를 안고 이 동리 사람들 모두가 들으라고 찰지게 욕설을 외치며 종종종 뛰어오는 저 모습이, 양관식의 세상에서 제일 작은 영웅, 오애순이.
“야 이 개새끼야!!”
마치 육상대회에 출전이라도 한 듯, 화통같은 고함 소리를 길게 끌며 애순이가 달려왔다.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제주 바다를 다 뒤집어놓을 기세로, 니가 나한테 온다. 또. 언제나처럼.
나풀대는 코스모스처럼 생겨놓고는, 호루라기처럼 늘 나를 구해주는 너를.
좋아한다. 미치도록 좋아한다. 사랑한다. 죽을 만큼. 아니, 절대 죽고 싶지 않을 만큼.
그저, 애순아, 온 세상이 너다. 양관식이한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