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죽어. 안 죽어!”
퀭하게 들어간 볼 속에서도, 어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게 퍼져 나왔다. 그 소리, 그 기개만 들으면 저승사자는커녕 용왕님도 내 어미는 건드리지도 못할 거 같았다.
“그 미련이 한 되고, 그 억척에 귀신되는 거라!”
애순은 약을 사발에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약도 어미를 살리지 못할 거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마, 안 죽는다고 호언장담하는 어미까지도.
“귀신이 무섭나. 자식이 무섭지.”
약을 짜던 애순의 손이 멈췄다. 자식. 귀신보다 무서운 자식. 어미 사랑도 모자라서 목숨줄 빨아먹을...자식.
“나는 막판까지 저승 돈 벌어와, 이승 자식 쌀독 채워놓을랍니다.”
애순은 부엌에서 뛰쳐나와서, 빨래줄에 널린, 아직도 바닷내가 가득한 어미의 물옷을 잡아당겼다. 손으로 떨어진 물옷을 불 속으로 퍽퍽, 집어넣었다.
“그래, 잘한다! 물옷이 없어야 물질을 못 하지!”
애순은 그 길로 담을 나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엄마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웬수, 웬수. 저 웬수를 괜히 데려왔지.”
애순의 어미가, 그저 뒤돌아 앉은 채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어미는 절대 자식의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시간만 좀 더 있으면 좋으련만.
씩씩대는 애순이 가는 길에, 양관식이가 바닥을 긁으며 앉아 있었다. 한 쪽 손에는 노란 봉투를 들고. 저 놈의 새끼는 올 때마다 손이 빈 적이 없다. 애순의 속이 바싹 바싹 타올랐다.
“...걸뱅이냐.”
애순이 앞에서는 유독 억울해보이는 그 눈망울이 애순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걸뱅이야!”
말 끝에 애순의 참고 있던 울음이 찐득하게 뭍어나왔다. 아아. 이 마음을 어딘가에 토해내고 싶다. 그런 애순의 발길이 향한 곳은 바다였다. 제 어미를 잡아먹을, 그 바다.
애순은 바닷가에서 두 손으로 겨우 잡힐 법한 구멍이 숭숭 뚫린 새까만 돌을 집어들었다. 오늘따라 유독 파도도, 바람도 거셌다. 하지만, 제일 큰 파도가 치고 있는 것은 지금 애순의 마음이었다. 애순은 있는 힘을 다해서 바다로 돌을 던졌다. 하지만 첨벙 하는 소리 마저, 저 커다란 바다는 바로 잡아먹고는 파도로 제 소리만 치는 것이다. 그래도 애순은 바다를 향한 시위를, 외침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남의 엄마 냅둬요! 냅둬! 엄마라도 좀 냅둬어어!”
질끈 감은 두 눈과 있는 힘껏 벌린 입 사이로, 애순의 마음이 목소리와 함께 찢어져서 나왔다. 애순은 후회했다. 어미의 집으로 들어온 것을. 조구를 던지며 자신에게 집으로 가자고 하던 어미의 손을 잡았던 것을. 어미에게 서러움을 토로했던 제 입을. 그 모든 것을 후회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미는 저렇게 돈에 미쳐 일을 하다가 지금처럼 죽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어미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용왕이 왜 그래요! 왜 지멋대로 죄 없는 사람 다 잡아가!”
권선징악이니. 사필귀정이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늘 틀린 얘기였다. 바다는 애순의 얘기를 들어줄 생각도 없다는 듯, 그저 철썩일 뿐이었다. 소리를 지르다 힘이 다한 애순은 바닥에 주저 앉았다.
“봐줘야지! 봐줘야지! 엄마는 봐줘야지.”
하얀 파도 거품처럼, 애순의 절절한 고함도 그저 부서질 뿐.
“평생 죽어라 일만 시켜놓고. 비행기도 못 타 봤는데. 진주 목걸이랑 비행기랑 내가 막! 내가 다 해줄라 그랬는데, 왜.,,,왜애애애!!!”
아직 100환으로 어미의 하루도 사지 못했다. 두 모녀가 그저 부대껴 사는데만 바빠서. 좋은 거라고는 하나도 해주지 못했는데, 어미는 죽는다고 한다. 지금도 잠잘 때면, 애순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던 손이 따뜻한데. 애순에게 조구를 먹일 때 씨익 올라가는 그 입매가 얼마나 이쁜데. 그런 엄마가 죽는단다. 애순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불공평이 아니다. 이건 세상이 망해야 하는 것이다.
악을 쓰다 결국 울음을 펑펑 터뜨린 애순의 옆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안 봐도 안다. 제주도에 그럴 사람 하나 밖에 없으니까. 양관식이.
“벙어리냐? 소 죽은 귀신이 씌웠나. 뭔 놈의 게 지껄이지를 않아!”
안다. 이런 거 투정이다. 한풀이다. 애순은 제 억울한 마음을 풀고 싶었을 뿐이고, 그럴 때마다 관식이가 옆에 있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옆에 있어 주는게 관식이 뿐이었다. 애순의 어떤 패악질에도, 늘 입을 꾹 다물고, 억울하다는 눈망울로 절대 옆을 떠나지 않는. 양관식 뿐이었다.
“또 뭔데! 뭐!뭐! 봐바.”
“가?”
“와!”
애순의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관식이는 주춤 주춤 발걸음을 옮겨 애순의 옆으로 다가왔다.
“너 아니면 누가 조구, 삼치 못 먹고 살까봐?”
대답을 하기에 앞서 관식이는 봉투부터 애순에게 안겨주었다.
“물고기 아니라 육고기. 네 발 달린 고기는 장인 장모도 안 준다.”
평소에는 입이 붙어버린 양 말도 잘 안하는게, 말할 때면 꼭 희한한 말들만 뱉는다. 근데 또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도대체 양관식이는, 이렇게 모난 돌 같은 저에게 파도처럼 끊임없이 부딪혀오는지, 애순은 알 수가 없었다.
“너 모지랭이지? 어디 들 떨어졌지?”
“울면 배 꺼져.”
“...내가 불쌍하냐? 사람 불쌍해서 자꾸 먹여대?”
관식이에게 몇 번을 물어봤는지 모를 일이다. 질릴 법 한데도, 관식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불쌍해 멕일 거면 걸뱅이 줬지.”
그 말을 듣고 나면, 이상하게 애순은 조금 눈물이 들어가는 것이다. 슬픔도, 분노도 좀 덜해지는 것이다.
“개코딱지만한 게 진짜.”
“내가.”
양관식의 불퉁 튀어나온 입술이 다부지게 움직였다.
“오빠야.”
말 한 마디로 애순의 눈물이 뚝 그쳤다. 하여간, 양관식이가 난 놈이었다.
석양 위로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말라버린 눈물 자국을 얼굴에 붙인 채, 애순은 관식이 가져다 준 고기를 열심히 뜯었다. 젠장. 다리 없는 물고기 보다 백배는 맛있었다. 하지만, 이런 고기 따위가 애순의 야망을 꺾을 순 없었다. 시집은 꼭 서울 놈에게 갈 거다. 이 지긋지긋한 제주 바다놈이 아니라.
“닭 아니라 소를 백날 갖다줘봐라. 그런다고 시집 가나.”
“누가 오라대.”
애순의 눈초리가 새초롬해져서 관식을 향했다. 그리고 그 손이 조용히 옆에 있는 현무암 돌멩이, 딱 봐도 머리 하나 정도는 족히 깨겠다 싶은 돌로 향했다. 볼이 불퉁하게 닭고기를 씹고 있던 관식이 흠칫 하며 애순에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말없이 고기를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결국,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