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미안합니다."
빈센조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는지, 공항 앞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군과 조사장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넨다. 그냥 시간이 밀려서 하다 보니 늦어진 게 된 건가 싶지만, 이 드라마 속 대사들은 앞뒤 관계를 따져보면 빈센조의 숨겨진 무언가가 나오곤 했다. 예상 시간보다 늦게 된 사유가 궁금해졌다. 겉으로 활짝 드러내지 못한 무언가 말이다.
빈센조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스스로 시간을 늘어뜨렸다는 거다. 시간을 그 누구보다 빼곡히 살아가는 빈센조에게 늦어버린 시간이라니. 조금은 의아하다. 그럼 빈센조는 어느 시점에서 시간을 더 소비했을까. 그 소비된 순간이 무얼까. 그 부분에서 빈센조의
먼저, 빈센조가 안군과 조사장 두 사람과 연락이 끊긴 시점을 살펴보자. 조사장과 연락이 끊긴 시점은 최명희를 납치한 이후다. 안군과 연락이 끊긴 시점은 장한석을 잡기 위해서 금조항에 금가사람들을 보냈다는 전화 통화다. 그렇다면 금조항에서부터 공항 공터에 도착하는 그 시간까지 이 시간에서 예정보다 시간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시간 동안, 빈센조가 망설였던 때가 있다면 그 때가 예상치 못한 소비 시간일 거다. 이 시간을 잘 살펴보면, 빈센조는 딱 두 번, 망설이며 시간을 소비한다.
1. 금가즈인 철욱사장님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2. 차영이와 마지막 통화를 가까스로 포기한 순간
1. 금조항에서 칼에 맞은 철욱 사장님을 두고 떠나기를 망설이는 빈센조.
빈센조에게 철욱사장님은 생각 이상으로 아픈 손가락이다. 4화에서 모두가 빈센조를 의심할 때, 그건 아닐 거라고 중재하던 사람도 철욱이다. 더불어 11화에서부터 Real 금가즈에서 빈센조를 응원했던, 스스로 나섰던 첫 번째 서포터다. 오직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싶은 선의로서, 대가 없이 빈센조와 지푸라기즈를 도왔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과 함께 싸우다가 칼을 맞게 된다. 철욱 사장님이 죽어가는 상황 앞에서 빈센조는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움을 보인다. 이미 빈센조는 20화에 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보았다. 자신이 지켜만 보다가, 자신과 함께하다가, 자신을 지키다가 죽은 사람들을 꼽다 보면 한 손을 훌쩍 넘어버린다. 아끼는 사람들의 죽어감을 바라보며, 빈센조는 함부로 약속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대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경찰의 사이렌이 울리는 늪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빈센조는 철욱을 계속 지켜본다.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석도가 어서 가라고 부추기기 전까지... 이때 빈센조는 자신의 발걸음을 머뭇거린다.
2. 차영이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까 고민하는 시간
빈센조가 가장 마지막으로 망설이던 순간은 장한석에게 예정된 길고 긴 죽음을 선사한 다음에 벌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죽음을 선보인 빈센조는 또 한 번 망설인다. 차영이에게 전화를 할것인가 말것인가. 범죄에 쓰였던 증거인 휴대폰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자 동시에 차영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 이 순간 빈센조는 예상치 못한 망설임을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이성에 따라 무언가를 쉽게 끊어낼 수 있는 냉정한 사람임에도 차영이와의 인연을 쉽게 끊을 수 없음을 감정이 이성을 침범하려하는 모습을 시간을 들이면서 보여준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감정적 이어 본 적 없을, 정확히는 그렇지 않으면 죽었기에 자신의 감정을 붙잡았을 사람. 이 사람이 가까스로 자신의 감정을 이성으로 묻어버린다.
빈센조가 공항으로 향하는 시간 속에서 이 두 순간으로 예정보다 늘어진게 된다. 언제나 명확하게 일하던 한 사람의 머뭇거리던 순간.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가야하는 그 마음을 이겨내느라 시간을 지체해버렸고. 그 늦어버린 시간을 다시 자신의 조력자에게 미안하다 말하는게 그런 사람이 빈센조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조사장과는 관계가 조금 더 수평적이어졌고, 안군과의 관계는 기요틴과 덕심으로 얽혀져 있다만, 서로 조금 더 진실에 다가갔던 관계. 이 극의 마지막앤 빈센조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수 있을 만큼 인간적인 면모가 더해져간다.
저 "늦어서 미안합니다."란 한 마디에 무엇 때문에 늦어졌고, 누군가에게 미안해 했는지. 한국에서 빈센조가 배우고 자라고 느낀 사람과의 관계와 따수운 인간성이 슬며시 보여졌다. 그만큼 금가 사람들과 차영이가 빈센조의 이성보다 감정을 끌어내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걸 뜻할거다. 잔혹한 살육자지만 이 살육을 깨운 고향에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버렸다. 살육자에게 마음이 생겨버렸다. 절대적 악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빈센조는 평범한 사람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지나가는 평범한 문장일지 모르지만 짧은 사과의 말에 한국이란 곳에서 반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빈센조가 무얼 느꼈고 얻어 갔는지, 그 숨겨진 것들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