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주 "거기로 가. 오랜만에 기름 좀 쳐야겠어."

근덕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송주 "항아리 속에 들어가 숨어있어도
피할 수 없는 게 운명이고 팔자라더군.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위험이 무서워서야 혁명이고 나발이고 이룰 수 있겠어?"

근덕 "경성 곳곳에 붙어있더군."

시내 여기저기에 붙은 인호의 몽타주를 건네는 근덕

송주 "일본 경찰도 제법 쓸만하네. 많이 따라잡았는데?"

근덕 "종로서에선 위험했어. 그 미친놈이 뭔갈 목격한 모양이야."
송주 "위험하긴 뭘. 눈을 딱 보니깐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데."
근덕 "정신이 가락이었으니 망정이지, 오락이었으면 어쩔 뻔 했어?
어떻게 된거야, 차송주답지 않게. 목격자가 벌써 두 명째잖아."

송주 "스릴있고 좋은데 뭐.
어차피 이제 슬슬 우리 정체를 밝힐 때도 됐잖어.
무고한 사람들을 더이상 용의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근덕 "아직은 때가 아니니 좀 더 지켜보자는게 수장님의 의견이야."

송주 "의견말고 얼굴 좀 보이라고 하지 그래?
그렇게 이름도 얼굴도 존재도 숨기고
소심하게 굴어서야 어디 수장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근덕 "..에휴 그 미친놈은 어떻게 처리할거야?
강인호랑 같은 방법을 쓸건가?"

송주 "아깝네. 실물이 훨씬 나은데."


송주 "안녕. 럭키보이."

인호 "오셨어요?"






위험했던 순간 인호 대신 총을 쐈던 것도,
도망치는 인호 앞에 나타나 숨을 곳을 내어준 것도,
총독부에 협박장을 보내고 주요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예고한 것도
모두 비밀투쟁활동을 하는 송주가 한 일이었음




시간을 재며 총 조립 시범을 보이는 송주

인호 "우와 대단해요. 35초 밖에 안걸렸어요."

송주 "한동안 사냥을 금했더니 금새 실력이 녹슬었군."

근덕 "총이란건 원래 피맛을 그리워하는 법이지."

송주 "불쌍해라. 원래는 한 쌍이었는데 얼마나 외로울까."

인호 "죄송해요.. 함부로 도둑질 해서.."

송주 "으음~ 아니야. 너희 선생님이 어딘가에
잘 보관하고 계실테니까 염려하지마."

인호 "그럼 선생님도 저처럼 신참 조직원이 되는 건가요?"

송주 "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곤란에 처해 있거든."

인호 "곤란에 처해있다뇨? 혹시 저때문인가요?"

송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든든한 호위무사를 하나 보냈으니까.
호위무사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구."
.
.
.

강구 "계속 이렇게 수사를 방해하실 겁니까?
취조 중에 나가달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완 "몇 번을 말해 도대체!
내 여자를 이런 힘든 상황 속에 홀로 둘 수 없다잖아!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이 여자가 아니라 강인호라면서?
기꺼이 임의동행에 협조해준 참고인에게 이따위 압박수사를..!"

수현 "참고인이기도 하지만
살인 방조 및 공모의 혐의가 있는지도 함께 조사 중입니다."
완 "살인 방조 및 공모 혐의?"

여경 "몇 번을 말해요 도대체! 아니라고 했잖아요!"

수현 "사건이 있던 날 밤 어디에 계셨습니까"

여경 "그것도 이미 얘기했잖아요, 집에 있었다고."

수현 "증명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여경 "어머니가.."

강구 "친인척의 증언은 효력이 없다고 말했잖아!"

여경 "하나님의 증언은 유효한가요 그럼?"


완 "하나님 대신 내가 증명하지!"


완 "이 여자는 그 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쭉 나랑 같이 있었어."




완 "그날 밤 명빈관에 직접 수색을 나왔으니 잘 아시겠군요.
내 방에 잠들어있던 여자가 바로 이 여자였습니다."

수현 "그 때 함께 있던 여자 분이 나여경씨가 틀림없습니까."

완 "유치하군요.
내가 그따위 저질 유도 심문에 넘어갈 것 같습니까?"

수현 "유도 심문이라뇨?"


완 "분명히 말해두지만 내가 같이 있었던 사람은
나여경이란 여자가 아니라 여기 이 여자, 조마자입니다!"

아놔

한참동안 죽일듯이 여경을 째려보더니
산통 깨는 완의 발언을 듣곤 낄낄거리며 비웃는 이강구

완 "왜.. 왜 웃어! 기분 나쁘게."
강구 "밤을 함께 보낸 여자의 이름도 모르다니 이거 놀랍습니다."

강구 "혹시 그날 밤 처음 만난거 아닙니까?
예를 들어 도주자와 도주를 도운 공범자.."


여경 "조마자는 제 애칭입니다!
강인하고 굳건한 조선의 마지막 여자가 되라고 해서
여기 이 사람이 제게 지어준 애칭입니다."

눈치챙겨 꼬집


완 "마.. 마자! 그런 것까지 이런 사람들 앞에서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

여경 "어쩔 수 없잖아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니."

완 "끝까지 명예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마자."

여경 "괜찮아요, 불가항력이었으니까."

못마땅한 강구리와

두 사람의 폭풍열연에 피식하는 수현
강구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옛말 그른거 하나 없군."


강구 "고고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남자 후리는 법은 또 언제 배웠지?
한 놈은 감싸주고 한 놈은 덮어주고 가관도 아니더구만 아주.
그 얌전한 얼굴을 하고 밤이슬을 밟고 다녔나?
명빈관을 들락거리면서 두 놈을 상대했어!?"

여경 "내가 두 놈을 상대하건 네 놈을 상대하건 당신이 알 바 아니잖아요?"

강구 "사실이란 말이야? 대답해! 저 두 놈이랑 놀아난게 사실이야!?"

여경 "입조심해요. 당신이 말하는 그 두 놈 중에
한 놈이 총독부 관리고 나머지 하나가 재벌가의 아들이에요."


여경 "함부로 놈자 붙여 불렀다가 그 잘난 순사복 벗고 싶어요?"


강구 "한 번만 더 걸려 들어봐 어디.
그 땐 내 손으로 직접 죽여줄 테니까."

여경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어요 내가."

여경의 남자관계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강구.. 쏘크리피..

수현 "안가십니까? 취조는 이미 끝났다고 말씀드렸을텐데요."

완 "아주 좋은 만년필입니다?
예전에 동경 유학간 친구에게 만년필을
선물해준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거랑 똑같이 생겼군요."

수현 "똑같은 물건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완 "그런가요?"

수현 "정말 네 여자야?"

완 "명빈관에서 봤잖아 너도."

수현 "고귀한 가문의 영애라고 하지 않았던가?"

완 "누구나 자기 집에선 고귀한 아들이고 딸 아니겠어?
너도 네 아버지한텐 그런 존재였잖아. 안그래?"


완 "지금도 같은 생각인진 모르겠군.
아들이 자랑스러우셨다면 그렇게 도망치듯
북간도로 가진 않으셨을테니까 말이야.
아 참, 가족 모두가 북간도로 이주해갔단 소식은 들었지?"

수현 "위증죄로 처벌받기 전에 그만 돌아가지."

완 "무혐의로 방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 "그런데 말입니다, 나으리.
저한테 나으리는 죽는 그 날까지 유죄입니다."

강구 "저대로 보내는 겁니까 두 사람?"

수현 "무슨 증언이 얼마나 더 필요하지?"

강구 "선우완과 나여경이 가당키나 한 조합입니까?
길을 막고 물어보세요!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고하면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수현 "내가 직접 목격했네!
그 날 수색 중에 명빈관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걸
내가 직접 보고 확인했다고. 됐나?"

강구 "감정에 흔들리시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강구 "두 사람이 친구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위증은 엄연히 법으로 다스려야될.."

수현 "자네가 나를 가르치는건가 지금?!
하극상을 참아주는데도 한계가 있어."

수현 "보고도 없이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한 점,
상부의 지시에 불복하고 경찰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
같은 조선인이라고 무조건 막아주고 덮어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이번 일은 각오해두고 있어."

가만안도 이수현

'그 놈이 제 입으로 인정한 건 아니지 않니.'

'그저 소문이었잖아.'

'한 번 쯤은 자신한테 확인해 주길 바랬을 지도 모를 일 아니냐.'

복잡한 심정으로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결심한듯 수현에게로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그런 완의 손목을 잡아끄는 여경


완 "야! 너 지금 뭐하는거야? 이 손 안 놔?"



종이인형처럼 팔랑거리며 여경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가다가 해화당 안으로 내팽개쳐지는 완

완 "매번 느끼는 거지만
넌 생명의 은인을 다루는 솜씨가 참 남다르다?"

완 "이럴 땐 고맙다, 어떻게 알고 달려와 줬느냐,
왜 나를 도와주는거냐 그것부터 묻는게 순서아ㄴ.."

여경 "그 날 명빈관에서 나 만나기 전에 뭐했어요?"


완 "이건 관심인가? 아님 질투..?"

여경 "농담하지 말아요!
이강구 그 사람 그냥 물러날 사람이 아니에요.
대질심문 할 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여경 "우리 둘이 미리 입을 맞춰놔야.."

그 때 여경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완과
깜짝 놀라 숨을 크게 들이키는 여경


여경 "뭐하는 짓이에요?"
완 "입 맞추자며."

여경 "다.. 당장.. 그만 못둬요? 소.. 소리를 지르겠어요?"

완 "오바는 암튼."

완 "관두자. 나도 재미없어. 더는 못하겠다."

여경 "뭘 관둬요?"

완 "밥 줄 생각도 없는 주인한테
열심히 꼬리치는 멍멍이 노릇 관두겠다구."

?

완 "내가 너랑 무슨 얘길 하겠냐."

여경 "잠깐만요! 대질심문에 대비해서!"

완 "비밀댄스홀에서 춤추고 있었어."
여경 "네?!"

완 "그 날 너 만나기 전에 불법비밀댄스홀에서 춤추고 있었다구."

여경 "그럼.. 목격자가 있었단 말이잖아요."

완 "목격자는 수십이지만 죄다 불법댄스를 추고 있던 사람들이야.
증언 못해. 불면 지들도 경찰서에 딸려가니까."

여경 "아.. 개차반으로 살아가는 것도 이럴 땐 나쁘지가 않군요?"

완 "여기까지다. 이게 마지막이야."


완 "앞으로 네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일도,
대가없이 달려와 도와주는 일도 더이상 없을거야."




완 "그래 내가 졌다. 잘 살아라, 죽지말고.
배신당하지도 말고 변절하지도 말고 누구처럼 밀고도 하지말고.
너라도 조국을 위해 당당히 살아가."


여경 "밥 줄 생각도 없는 주인한테 꼬리치는 멍멍이 노릇..?"


완 "깜짝이야! 진짜 쫌!"

송주 "어떻게 됐어 여경씨는?"
완 "풀려났어."

완 "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왜저래 싶지만 이 상황이 재밌는 송주

송주 "내기는 반쯤 성공한거네 그럼?"
완 "성공은 무슨. 내기는 오늘로 끝이야. 끝! 쫑! 디엔드!"

송주 "미쳤어? 다잡은 내기를 왜 그만둬."
완 "걔랑 얽혀서 뭐 하나 유쾌한 일이 있어야
내기를 하든 오기를 부리든 할 거 아니야?"

송주 "유쾌하지 않을건 또 뭐가 있어?"

완 "경찰서만 벌써 두 번에
꼴도 보기 싫은 인간 두 번이나 만난 데다
총이 등장하질 않나 살인이란 말이 튀어나오질 않나.
이게 유쾌하냐? 이게 유쾌해?"


완 "나, 인생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야."

송주 "내 쌀 열 섬은 날아가는거야 그럼?"

완 "ㄴㅇㄹㄴㅇㄹㄷㅅㅎㄱㄷㅎ으아아아아아아아앍ㄲ악!"


완 "그 놈의 쌀타령! 내가 사줄게!
그걸로 밥도 해먹고 떡도 쪄먹어! 됐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폭주하는 완이 그저 웃긴 송주


완 "먹은 밥 다 뱃살로 가라!"


내기를 끝낸게 아쉬운건지 내기를 놀리는 송주에 골이 난건지
왠지 열이 받는 완

근덕 "기생한테 뱃살이나 찌우라니 저주치곤 너무 살벌하군."

송주 "방황하는 모습이 귀엽네.
꼭 질풍노도를 겪는 청소년을 보는거 같지 않아?"

근덕 "이 참에 그냥 나여경이랑 패키지로 묶어서 조직에 가입시켜 버리지?"

송주 "안그래도 그럴 참이야. 조금만 더 쳐주면 날이 시퍼렇게 서겠어."

근덕 "인생 편하게 못살게 하려면 내기는 앞으로 계속 되어야 된다. 쭈욱."

여경과 완의 내기와 관련해 독립투쟁활동과 연결지을
큰그림을 그리고 있는듯한 두사람


'여기까지다. 이게 마지막이야.
앞으로 네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일도,
대가없이 달려와 도와주는 일도 더이상 없을거야.'

여경 "대가없이 도와줘..?"



'옷 벗어.'

'워낙 고귀한 가문의 영애라서 말입니다.'




'하나님 대신 내가 증명하지.'

'이 여자는 그 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쭉 나랑 같이 있었어.'


여경 "그러네. 대가없이 많이 도와주긴 했네."

완이 생각에 잠못이루고 한참을 뒤척거리는 심난한 여경
.
.
.




혹시나 싶어 바라보지만 완이 앉아있던 자리가 텅 비어있자
괜시리 실망스러워지는 여경의 표정


꿀잠 자고 있는데 밖에서 들리는 요란한 웃음소리에 강제기상한 완


완 "뭐야 니들! 왜 웃다 말어?"

영랑 "계속 웃어요 그럼?"
완 "아니 웃지마. 오라버니 더 잔다."


완의 눈치를 보며 무언가를 보며 키득거리는 기생들

뭔가 수상한데






카페의 종업원도, 뒷테이블에 앉은 손님들도,
경성 시내의 모든 사람들이 완이만 보면 수군거리며 재밌다는듯 웃어대고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완은 결국 지라시를 발견하게 되는데


"어느 햇살 좋은 오후, 모 백화점 창립 기념 행사장에서
우리는 가히 경성 최고의 스캔들이라 할만한 밀회 현장을 목도하얏다."

"아시다시피 경성 최고의 인기남이라 불리우는 S군은
항시 모던걸들을 굴비처럼 줄줄이 달고 다니며
자기 몸 돌보기를 황금 보듯 하는 그런 인사였다."

"그런 S군이 경품이 걸린 복싱에 참가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미스테리다."

"S군의 승리를 기원하며 만세삼창을 외치는 이 여인은
바로 조선시대 마지막 여자라 불리우는 N양."

"경성 최고의 모던보이와 전통 신여성의 잘못된 만남."

<S군 다 벗었다?>는 타이틀을 필두로 한
굉장히 주작썰스러운 루머성 기사에
손발이 벌벌 부들부들 분노 적립 중인 완

탁구 "이 언발란스한 조합의 탄생은
과연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저 솥단지세트를 얻기 위함일까, 아니면 설마 내기라도 건 것일까.
우린 여기서 S군의 친구 S군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하자."

세기 "십 분이면 온 경성의 여자들이
자신의 품에 안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탁구 "또다른 친구 J군은 이렇게 증언을 했다."

왕골 "완이가 키스내기윷놀이는
하수들이나 하는 거라며 막 화를 내더라구요."

탁구 "과연 어떻게 된 사연인지
그 내막을 밝히지 못함은 정말 섭섭하나,
다음 호에는 반드시 기재를 하겠사오니
어떠한 기사가 나오는가 한 번 기대해 보시라."

왕골 "형은 천재야 천재!"
탁구 "이야 사진이 리얼하니까 뭐 합성이 필요 없네."
세기 "솥단지 이야기를 첨가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어."


완 "무엇보다도 모델이 죽이지 않냐?"





개박살난 삼인방

완 "분명히 경고했어! 경성 시내에 깔린 지라시들
오늘 안에 전부 다 거둬들여! 알았어?
단 한 권이라도 내 눈에 띄는 날엔 머리에 총구멍이!"


총구멍 얘기에 자연스레 여경이 뇌리에 스치고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 완

'여기까지다. 이게 마지막이야.'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완의 마지막 말을 곱씹는 여경


어디선가 완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아
고개를 돌리자 시를 외는 완의 모습이 보이고



한참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면 아무도 없는데

여경 "보이다 안보이니까 되게 신경쓰이네.."

그 때 서점 문을 두드리는 책장수
"지라시 잡지 좀 안들여놓으시렵니까? 장안의 화제인데 지금."
여경 "지라시요..?"

한달음에 해화당까지 달려와
지라시가 여경의 손에 들어가기 직전인
절체절명의 상황을 목도하고 기겁하는 완

완 "안돼!!"


책값은 다시 여경의 손에 쥐어주고
책더미는 다시 자전거에 묶어버리는 완의 재빠른 손놀림


완 "이 서점은 이런 저질스러운 잡지 안들여놓습니다.
물 흐리지 말고 얼른 가세요. 얼른 가세요! 훠이!"

완 "오.. 오랜만이다..? 어제 봤지 참.."

여경 "앞으로 불쑥 나타나는 일 없을거라면서요."
완 "아니.. 한복 찾을 일도 있고.."

여경 "한복은 완성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요?"

완 "아니 뭐 그렇게 급한 건 아닌데..
오늘 밖에 나갈 일 별로 없지..?"

여경 "그건 왜요?"

완 "아니.. 웬만하면 오늘 밖에 나가지 말고
조신하게 집에 있으라구.. 오늘 안에 다 싹 수거하기로..!"

완 "아니 햇볕도 뜨겁고! 아이! 집에 있어 그냥!"

여경 "그건 안되겠는데요? 약속이 있어서."

완 "약속? 무슨 약속?"

결국 여경과 함께 길을 나서는 완,
킬킬대는 사람들 속에서 절절대며 나름 철통보안 중인데
자꾸 돌아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의아한 여경

완 "걷는데 집중해 걷는데!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여경 "왜 이러세요?"

완 "저 골목 끝에 이강구가 있을 지도 모르잖아."
여경 "없잖아요!"

완 "안되겠어. 오늘 끝까지 함께하자.
이강구한테 들킬지도 모르니까."

여경 "뭘 그렇게까지!"
완 "기억해둬. 연애는 조국해방투쟁의
가장 강력한 위장전술이라는 사실을."



얼탱




완 "경찰서에 끌려갔다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문맹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이야? 오지랖이 아주 태평양이구만."

여경 "짠. 다 완성됐어요, 할아버지. 한 번 읽어볼까요?"


마음에서 우러난 얼굴로 기분 좋게 봉사하는 여경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띄는 완

"저기.. 총각.."

완 "저요?"

"탄원서가 뭐야..?"

완 "탄원서요? 그건 왜요?"

"우리 아들이 지금 서대문형무소에 있는데
암만 찾아가도 면회를 안시켜주네?
정 면회를 하고 싶으면 탄원서를 써오라는데 내가 까막눈이라서.."


"우리 아들놈 그렇게 나쁜놈 아니야.
일본 순사한테 대들다가 끌려갔는데
우리 아들놈이 어릴 적부터 여름철만 되면
부스럼이 심해져가지고 밤에 잠을 못자.
내가 삼베 옷을 하나 넣어주고 싶어도 그것도 안된다 그러네.."


완 "제가 탄원서 써드릴테니까 이 쪽으로 오세요."

"정말?"

완 "제가 이래봬도 특종 전문 기자입니다.
독자들을 감동시키던 글빨로 면회담당자를 설득해 볼게요 한 번."


완 "아드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나이는요?
탄원서가 이게 또 도입부분이 중요하거든요."



안그럴것처럼 굴면서 은근히 친절한 완의 모습에 미소짓는 여경과


해사하게 웃는 여경을 흘끗거리며 마음이 복잡해보이는 완


여경을 데려다주고 여경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생각이 깊어보이는듯한 완의 표정

송주 "유명 기생 탐방 취재?"
소홍 "네! 지라시 팀이 내일 명빈관으로 취재 나온대요."

송주 "오늘 아침에 지라시 특별호 나오지 않았어?
무슨 잡지를 또 내?"
영랑 "어머. 언니 몰랐어요? 그 특별호 오늘 싹 다 수거해 갔잖아요.
경성에서는 희귀본이 된 지 오래에요 이제."

송주 "누가 시킨 짓인지 알만 하군. 어쨋든 잘됐네.
땜빵 기사든 뭐든 홍보가 되는건 사실이니까.
내일 촬영들 잘하고 촬영 끝나면 우리 쪽에서 회식이나 한 상 내줘."
난향 "역시 우리 송주언니는 화끈하다니까?"

송주 "어. 마침 잘 왔네. 지라시.."

완 "그래! 나다, 나!"

완 "눈에 검정색 테이프 두르고 사진에 박힌 것도 나고!
조마자랑 파이팅 하는 것도 나고!
솥단지 3종 세트 들고 좋아라한 것도 나야 나! 됐냐? 됐어!?"

송주 "왜저래? 내일 회식 얘기해 줄랬더니."





짜증내듯 휙 누워버린 완은
저도 모르게 생각나는 여경에 대한 생각에
괜히 더워져 부채질만 하다가 잠이나 자자 싶은데
.
.
.

특별호 취재를 위해 명빈관을 찾은 지라시팀

왕골 "우리 이쁜 영랑이는 이미지에 맞게 책을 읽어보자.
어이구. 우리 이쁜 영랑이가 책을 거꾸로 들었네."

영랑 "알아요! 나도!"

왕골 "그래, 영랑이도 알지?
근데 이번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직접 한 번 읽어보자."

곤란해보이는 영랑


왕골 "아이 왜그래. 이 오라버니가 영랑이 예쁘게 찍어줄라고 그러는데.
자, 읽어보자! 입이 움직여야 되니까 아무데나 읽어."

영랑 "나는 이제 그만 찍을래요!"

어쩔줄 몰라하던 영랑은 홱 들어가버리고


촬영을 보고있던 완은 근덕의 전언에 짜증이 솟구치는데

완 "뭐하러 이런 곳까지. 바빠요. 용건만 간단히 해주세요."

영화 "빚 받으러 왔니 내가?"
완 "뭐에요 이게?"

영화 "내일이 네 형 기일이잖니.
아버지 공장 노동자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대.
그래서 그냥 집에서 하기로.."


완 "취재하러 가야 돼요. 먼저 일어날게요."
영화 "앉아! 어디서 건방이야?"


영화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하고. 어른 말 중간에 딱딱 잘라먹고.
미운 세 살이야 니가? 귀엽다고 해주는 것도 한두 번이야."

마지못해 다시 앉는 완



영화 "보안과장 사모 고명딸이야.
그 집안이 일본 유수의 귀족 가문이라는건 잘 알고 있지?
다리 놔줄 테니까 만나봐 한 번."


완 "결혼은 금과 권의 결합이다? 가만보면 야망이 참 대단하세요?"

영화 "평생동안 방향 잃고 사는 누구보다 낫지 않겠어?"

완 "죄송하지만 마음에 둔 여자가 있어서요.
전혀 협조해드릴 생각이 없네요. 그럼."


영화 "기사 재밌드라. 가만보면 인생 참 재밌게 살어?
여자 보는 눈도 참 후지고."

뭐래

한편 한껏 풀이 죽어있는 영랑

송주 "글을 못 읽는 건 부끄러운게 아니야.
배울 생각을 안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송주 "일어나. 갈 데가 있어."

영랑 "싫어요, 언니! 제 나이가 몇인데 이제 와서 글을 배워요."
송주 "배우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영랑 "독선생을 두면 모를까 꼬맹이들이랑 같이는 싫어요.
죽어도 싫어요. 언니 계속 이럼 정말 확 죽어버릴 거에요 나!"

송주 "죽긴 왜 죽어. 무식해서 죽어?
못 배우고 가난한 게 네 죄야?
남들 학교다닐 때 기생이 된 게 네 죄야?
어떻게든 살아야지 죽긴 왜 죽어!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될 거 아니야!"
영랑 "복수라뇨..? 누구한테요?"
송주 "그걸 배우란 말이야, 이제부터."

송주 "오랜만이에요 여경씨."
여경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로.."

송주 "축하해요. 예쁜 제자가 한 명 생기셨네요?"

못마땅해 보이는 영랑




못된 시어머니처럼 맘에 안든다는 눈빛을 한껏 흘기며
멀찍이서 여경을 지켜보다 가는 영화

사치코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기모노를 차려입고
일본어로 시를 지어 낭송하는 에이카상

사치코 "유유자적한 삶을 노래한 시군요."

영화 "비천한 축생마저도 대일본제국의 은혜를 입은
태평성대에 감사한다는 의미었습니다."

사치코 "브라보. 에이카 상의 센스가 돋보이는 아주 멋진 시낭송이었어요."

사치코 "에이카 상의 시낭송에 답례를 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그래요. 내가 직접 샤미센을 연주해 주겠어요."

샤미센을 연주한다는 말에 심히 불편해보이는 사람들

뚱땅거리는 사치코의 연주에 다들 먼산만 바라보는데


사치코 "음이 왜 이래 이거 진짜! 개가죽으로 만든거 아니야!?"

영혼없는 물개박수로 사치코의 비위를 맞추는 여인들

영화 "짧지만 너무 강렬한 연주였습니다, 사모님."
사치코 "웬걸. 우리 딸아이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요."

영화 "미유키 상의 실력 역시 국보급이라 알고 있습니다."

사치코 "애가 어찌나 영민한지,
다독, 꽃꽂이, 요리, 노래.. 못 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다
나를 꼭 닮아 미모마저 출중하니 딸이지만 샘이 나요."

영화 "혼기가 꽉 찼지요?"

사치코 "네. 적당한 청년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쩜 따님까지 그토록 훌륭하다니.
정말이지 사모님의 생은 어쩌면 그렇게 흠이 하나 없으세요?"
"그럼요. 자서전을 쓰셔도 될만큼 완벽한 생이지요."

사치코 "자서전..?"
.
.
.

강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모루 "말한 그대로 자넨 당분간 근신 처분이야."

강구 "부당합니다. 제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마모루 "그건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강구 "제가 조선인이기 때문입니까?
조선인도 폐하의 적자입니다. 내선의 차별은 부당합니다!"

마모루 "순사부장! 경찰이 상관에게 반기를 드는 것
이상의 처벌 사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마모루 "뿐이야?
번번히 총독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단독 수사를 진행하질 않나,
무고한 사람을 잡아들여 윗사람의 노여움을 사질 않나!
내가 자네 때문에 얼마나 큰 곤욕을 치른지 알기나 해?"

마모루 "긴 말 않겠어! 지금 당장 수사에서 손 떼!
그리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근신하고!"

가만안도 우에다마모루




방금 이수현이 비웃은것 같다면 그건 착각이 아닐거야 강구야


마모루 "아, 왔나? 상부에서 격려 차원에서 금일봉이 내려왔어.
사건 때문에 지친 종로서 식구들과 함께
회식을 갖기로 했는데 어때? 시간들 괜찮지?"

코우지 "수사가 시급한 상황입니다.회식은 다음으로 미루시는게.."
마모루 "이 친구 고지식하기는. 바쁠수록 돌아가란 말도 모르나.
김순사가 명빈관에다가 자리를 잡아놨다고 하니까
우리는 슬슬 움직여보자구. 하하하."

마모루 "오랜만에 송주 얼굴을 보겠구만. 하하하"


마모루 "사.. 사치코...?"


마모루 "일단 자리를 옮겨서... 사치코...!"


사치코 "결혼은 했나요?"
수현 "아직 안했습니다."

코우지 "저는 기혼입니다 사모님."



사치코 "아주 바람직한 기럭지를 가졌군요. 내 딸 한 번 만나보겠어요?"

마모루 "곧 따라갈테니까 먼저들 가있으라구."

마모루 "사치코, 총독부에 오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사치코 "아까 그 청년 승진시켜줘요."
마모루 "승진? 여보, 승진은 승진사유가 있어야..!"

마모루 "여보.. 장인어른한테만큼은 제발..!"

사치코 "미유키를 데려와야겠어요.
사윗감 후보가 두 명 있는데 직접 세워놓고 봐야
누구랑 더 잘 어울리는지 판단이 서겠어요."

마모루 "미유키? 나이가 몇인데 벌써?"

사치코 "자서전을 쓰겠어요."
마모루 "뭐? 뜬금없는 자서전은 왜!"

사치코 "내 생애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재능있는 문장가가 필요해요.
경성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출판사를 물색해줘요. 오늘. 당장."

마모루. 명빈관 낙오 확정.
.
.
.

촬영이 끝나고 거하게 회식 판을 벌이는 중인 지라시팀
탁구 "여기 지라시가 있다. 팔다리 '지', 불잡을 '라', 시선 '시'.
온 몸을 붙잡는 뜨거운 시선!"

정신 사나운 분위기에 질린듯 화장실을 핑계로 빠져나가는 완


총독부 순사들과 함께 회식을 위해 들어오던 수현과 마주치고


코우지 "뭐야? 무슨 일이지?"
수현 "먼저 들어가십시오. 곧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근덕 "어디 갔다 이제 와? 한창 바쁠 시간에."
송주 "해화당 서점."
근덕 "느닷없이 서점엔 왜?"

근덕의 물음에 창피한듯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영랑

근덕 "..벌써?"
송주 "이래저래 갈 일이 좀 있었어."
근덕 "어때?"
송주 "사람, 볼수록 마음에 들더군. 사상도 줏대도 확실하고.
더 지켜볼 것도 없겠어. 오늘 밤에 당장 행동 개시해."

근덕 "총독부 사람들이 와 있어. 긴장해."
송주 "새삼스럽게 긴장은 무슨. 하루 이틀인가."



완 "별로 보고싶지 않은 얼굴 자주도 보여주는군."

수현 "피차일반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거지 아마?"

완 "그럼 즐기다 가십시오. 나으리."
수현 "룸펜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나?"

완 "주제넘는단 말은 이럴 때 쓰는거지."

수현 "그 비상한 머리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완 "머리란 게 말이야, 잘못 굴리면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거든. 누구처럼."

수현 "그래서,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 행동 하지 않는다?"


수현 "신념없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변명이지.
나는 신중하게 고민 중이다, 난 아직 방황 중이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겠다,
이 쯤 되면 변명이 아니라 어리광 아닌가?"

완 "죽고 싶구나 네가?"

수현 "민이 형이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참 좋아하겠군."

완 "정말 죽고싶어!?"

송주 "그만해! 놔드려. 총독부 손님이셔.
손님들 드나드는 영업집에서 뭐하는 짓이야 이게?"




분노가 서린 눈으로 수현을 노려보다 돌아서는 완


송주 "기별이 없어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곧 모시겠으니 안으로 먼저 들어가시지요."


또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총독부 직원과 명빈관의 기생으로 마주보는 두사람






서로를 모르는척 하지만 누구보다 신경쓰고 있는 수현과 송주
탁구 "자신을 위장하며 살아가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니들은 모를거야!
내가 의열단에서 활동했을 때만 생각하면 정말..!"
월선 "세상에! 오라버니 의열단 단원이었어요?"
세기 "의열단은 무슨. 저거 주사야, 주사.
술만 마시면 맨날 나오는 스토리."

탁구 "종로경찰서 투척거사!
밀고자의 배신으로 거사가 실패로 끝났었지.
동지들과 감옥으로 끌려가서 얼마나 모진 고문을 당했는지.
하지만 나는 끝까지 버텼어. 나는 아니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만취해 황당한 무용담을 줄줄 내뱉는 탁구의 주사 개시에
질려버린 두 사람은 명빈관을 나서고

코우지 "살인사건 수사로 다들 수고가 많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하신 우에다 과장님을 대신해
내가 감빠이를 제안하지."

코우지 "대일본제국의 무한한 번영과 천황폐하의 영광을 위해.."

그 때 타이밍 좋게 옆방에서 엿이나 먹으란 큰소리가 들려오고

탁구 "엿이나 먹어! 엿이나 쳐잡수시라구요! 난 그렇게 외쳤어!
고문은 점점 더 심해졌어! 그러나 나는 굴복하지 않았어!
지라시 속의 누드사진이 핵심전력의 본거지를 암호화한 지도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실은 지라시가 암호 책자라는 사실을!
나는 끝까지 버텼어! 끝까지 불지 않았어! 나 장하지?"

고주망태가 된 탁구가 계속해서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의열단 스토리를 줄줄 읊어대고

코우지 "당장 연행해!"


쩌렁쩌렁하게 외치던 위험한 발언에 결국 일본 순사들 손에 끌려가는 탁구

송주 "완이랑 친구인 줄은 몰랐네요."
송주 "나를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예전에 우리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요?"

수현 "같은 사람으로 보입니까 제가?"

송주 "아니요. 전혀요.
실망스러울만큼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네요."

수현 "그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어차피 그 사람은 이미 죽은 셈이니까."

송주 "과거의 자신을 죽여야 될만큼 지금 모습에 만족하시나보죠?
예전 그 모습이 훨씬 더 멋있었는데 아깝게 왜 죽였을까?"

수현 "대답할 의무 있습니까?"

송주 "해주시면 고맙구요."

수현 "그럼에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니까."


.
.
.

왕골 "내 뭐래디? 여기 있을거랬잖아."
세기 "여우같은 놈. 탁구형 주사 부리기 전에 토낀거지 뭐."

왕골 "얜 또 분위기가 왜 이렇게 살벌하냐?"

완 "나, 독립투사 될 거다. 까짓것 한 번 해보지 뭐."

완 "독립투사가 별거야?
하다 힘들면 변절하고 마음에 안드는 놈 있으면 밀고하고!"

세기 "탁구 형 땜에 피신왔더니 얜 또 왜이래!"
의열단 스토리를 피해 왔더니 독립투사 스토리를 구상 중인
완의 주사에 주변 눈치를 살피며 식겁하는 친구들


완 "일본 놈들 먼저 죄다 쓸어버린 후에
내 뒷통수 후려갈긴 놈, 부모 가슴에 피멍 들게한 놈,
동지 팔아 개죽음 맞게 한 놈! 죄다 쓸어버릴거야! 죄다 쓸어버릴거라고!"

완 "내가 한다면 하는거 알지? 내가 내일 모레 당장!"

겨우 술집에서 완을 끌고 나왔는데


왕골 "한 사람은 왕년에 독립투사였다고 난리고
또 한 사람은 독립투사가 되겠다고 난리고.
심장 벌렁거려서 못 살겠다 진짜."

세기 "야. 저 자식 저거 혹시 쇼하는거 아니냐?"
왕골 "무슨 쇼를 저렇게 과격하게 하냐?"

세기 "괜히 내기에 질 것 같으니까 지가 먼저
독립투사를 결의한 척 폼 잡는 거 아니냐고."
왕골 "에이. 그건 아니다. 왜 그런 수고를 하냐?"

세기 "야 저거 자존심 빼면 시체 아니냐.
게다가 폼은 좀 잡냐?
내기에 지는걸 인정하고 쪽팔리게 벌칙을 받느니
차라리 스스로 결의한 척 멋져주시겠다 요거지!"
왕골 "뭐야 그럼. 내기를 포기하겠단 소리야 저 자식?"

세기 "저거 조마자 씨랑 뭔가 안 좋았던 게 분명해."
왕골 "그거다! S군 다 벗었다!"
세기 "쯧쯧. 엄청 맞았겠구만 또."


왕골 "어떡하냐. 탁구형 아직 정신 못차리고
2차 기획기사 준비 중이던데."
세기 "그렇다고 포기하게 할 순 없지.
저 자식 내기 덕분에 파생되는 부가가치가 얼만데."


왕골 "본인이 관두겠다는데 무슨 수로."
세기 "중이 지 머리 깎는거 봤냐? 지가 못하면 우리가 해주면 되지!"

좋은 수가 생각난 표정으로 완에게 다가가는 세기






서점을 정리 중이던 여경은 인기척에 문 밖을 살펴보고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주워 들어오는데

'흰 고래는 해당화가 피어있는 산 맞은편 두번째 언덕에 묻혔습니다.'


여경 "해당화..."

편지 속 암호 내용을 곰곰히 생각하던 여경은
뭔가 떠오른듯 책꽂이의 책을 살펴보는데

해당화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제목의 책을 꺼낸 여경은
곧 맞은편 책장을 돌아보고

두 번째 언덕에 묻힌 흰 고래,
책장 두 번째 칸의 백경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저희와 뜻을 함께할 결의가 되셨다면 저희가 제안한 방식으로 답해 주십시오.'


그 때 요란하게 서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여경 "이것 보세요! 일어나 봐요! 여기서 잠들면 어떡해요. 이봐요!"

학희 "여경아!"

학희 "어머 이 청년이 왜 여기에."
여경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학희 "세상에. 아니 무슨 괴로운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될 때까지 술을 마셨대니?"

여경 "어떡하죠? 완전히 인사불성인데."
학희 "일단 집에 연락부터 하자."

여경 "집을.. 몰라요.."

학희 "아휴 술이 취해서 여기까지 온 거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 모양이네. 안쓰러워서 어쩔까..
일으켜봐. 안으로 옮기게."

여경 "네?"

학희 "이렇게 길에 재울 순 없잖니.
속이 부대끼는 모양인데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지.
청년! 청년! 정신 차려봐요!"

끙끙거리며 꽐라완을 집으로 옮기는 여경과 어머니

세기 "오늘 밤 드디어 두 남녀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왕골 "성공하면 내기에서 저 자식이 이기는건데
너 누드화보집 괜찮겠어?"

세기 "오늘 밤 역사는 역사고
다음 판도 내 손 안에 있을테니까 너무 염려마."



여경 "저.. 저기요.. 저기요!"

완 "형..."

완 "형... 죽지마 형.."

형을 부르며 흐느끼는 완의 중얼거림에 멈칫하는 여경

같은 시각 수현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수현에게 총을 겨누며 밀고자라 소리치는 민






일본순사들의 총탄이 민의 등에 일제히 박히고




쓰러진 민을 바라보며 만세를 부르짖는 어린 수현의 모습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는 수현







괴로운듯 얼굴을 가리는 완을 가만히 지켜보는 여경


여경 "기침하셨으면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완은 이미 가버리고 아무도 없는 방

아침 일찍 나와 검정색 옷을 갖춰입고 어딘가로 향하는 완



관 "이렇게 일찍 웬 일이냐."
완 "저 지금 형 만나러 가요.
가서 할 얘기도 좀 있고 물어볼 말도 좀 있고.."

관 "수현이.. 만나봤니? 안만나봤어?"

완 "안 만난다고 했잖아요."

관 "궁금하지 않아? 친구였잖아 너희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완 "그만 가볼게요. 이따 저녁엔 안와요.
그 말씀 드리러 왔어요."

관 "너도 겁이 나는게지. 그 놈 입에서
사실이라는 말이 나올까봐 그게 겁이 나는 게야."

아버지의 말에 부정하지 못하는 완




선우민의 기일이기에 절을 찾은 수현과 완










완 "한 가지만 묻자."


완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야.
네가 뭐라고 대답하든 무조건 믿는다.
설령 그게 거짓말이라고 해도 무조건 믿을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완 "정말.. 너냐?"


완 "형을 밀고한 사람이 정말 너야?"


복잡한 표정으로 울분에 찬 완과 마주하는 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