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크남주주의 흐린눈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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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경을 기다리고 있는듯한 학희씨

를 지켜보고 있는 지라시 삼인방

왕골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샌 듯한 저 까칠한 최마자씨의 얼굴.
조마자씨는 어젯밤 외박을 한 게 분명해."
세기 "선우완 이 짐승 같은 새끼.."

탁구 "이제 홀로 남게 된 마자씨는
완이가 없는 빈 공간에서 눈을 뜨겠지.
자신이 완이한테 버림받은 지도 모르고 말이야."
왕골 "불쌍한 조마자씨.. 더불어 최마자씨도.."


그리고 완이 없는 빈 공간에서 눈을 뜬 여경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덮고있던 완의 옷을 보며 밖에 있나 싶은데


문을 열자 팔굽혀펴기 하고 있는 완이 보이고

여경 "큼큼"
어색하게 헛기침하는 여경을 모른척하고 팔굽혀펴기에만 집중하는 완

여경 "잘 주무셨는지요?"
완 "니 눈엔 내가 잘 주무신 거 같아 보이냐?"

여경 "글쎄 아침부터 말투가 까칠하신게
잘 주무신 거 같아 보이진 않네요.
근데 보기보다 부지런하시네요? 벌써 아침 운동중이세요?
완 "니 눈엔 이게 아침 운동으로 보이냐?"

여경 "사람이 왜 그래요 진짜!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와야지,
그쪽이 잠 못 잔 게 내 탓이에요?"

완 "당연하지!"
여경 "내가 뭘 어쨌는데요?"

완 "정말 모르겠냐?"
여경 "정말 모르겠는데요?"

완 "너는 어떻게 된 여자가 술을 먹고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완 "아 그러니까 그게..!"


완 "아 관두자, 관둬!
너같은 애가 어떻게 피 끓는 열혈남아의 고통을 알겠냐."

여경 "아 그러니까 왜 아침부터 피가 끓느냐구요."

괜히 심술부리는 완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여경

여경 "어? 자전거다!"

완 "그건 갖다 뭐에 쓰게."
여경 "이거라도 타고 경성으로 돌아가야죠."

완 "그 고물을 타고 경성까지 가겠다고?"
여경 "걸어가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경성에 돌아가야 합니다.
어머니가 걱정하고 계실거예요."

여경 "안가요?"

완 "안 가냐? 못 가지.
하루종일 운전했지, 빗 속에서 차 밀었지,
밤엔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지, 아침엔 원초적 본능과 싸우느라.."

완 "어쨌든!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으니까
가고 싶은 너나 많이 가세요."

여경 "나 혼자 가라구요?"

완 "지금 나더러 자전거까지 운전하란 소리냐?
똘똘한 신여성이 가치관이 뭐 그르냐 너는!
힘든 일은 무조건 남자가 해야 되냐?"

여경 "아니 그게 아니라 교대로 번갈아가며..!"

여경 "아닙니다. 혼자 가겠습니다. 그럼 몸 조심 하십시오."


쿨하게 혼자 가보려했지만 페달에 발이 잘 닿지 않아
한창을 낑낑거리는 여경






간신히 닿은 페달을 굴려보려는데 꿈쩍도 않는 무거움에 뒤돌아보면

여경 "뭐하는 거예요 지금?"

완 "아침에 민가에 내려가 집에 연락하고 왔거든요?
사람 시켜서 기름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짧은 다리로 용쓰지 말고 조신하게 앉아서 기다리세요, 마자씨."

완 "내려봐."

완 "타. 넋 놓고 앉아서 기다리면 뭐하냐? 바람이나 쐬고 오자."
여경 "됐다고 봅니다."

완 "동네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여기 승질 드러운 멧돼지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던데, 혼자 계시던가요 그럼."

페달에 발을 올리는 완이 혼자 갈새라 얼른 뒤에 앉는 여경

완 "꽉 잡아 꽉. 넘어져도 책임 안 진다."

완의 말에 어깨쪽 옷자락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는데


완 "얘가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자, 이렇게! 이렇게! 간다."

왠지 부끄러워지는 여경


여름의 신록 사이를 달리며 환하게 웃는 두 사람 사이의 기분 좋은 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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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로 해장 중인 지라시 삼인방

세기 "근데 설마 두 사람.. 진짜로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겠지?"
탁구,왕골 "에이이이 설마!"

왕골 "가만.. 근데 완이 이 자식은 어디 가서 아직 안오는거야?
명빈관에도 없었잖아."

탁구 "그러게? 지금쯤이면 ‘해방된 조선에서 다시 만나자, 마자!’
이별 멘트 딱 날리고서 늘어지게 낮잠 자고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

세기 "그럼 설마 아직까지 함께 있다는 얘기야?"
왕골 "에? 그럼 이거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
내기가 성공인거야, 실패인거야?"

세기 "잠깐! 이 내기의 완벽한 성공은 사랑이 아니야! 다들 잊었어?"

'진정한 선수라면 상대의 가치관, 인생관까지
변화시킬 수 있어야지. 그래야 진정한 고수지.
경성에서 가장 촌스런 여자를 데려다 놔봐.
당장에 차송주 같은 모던걸로 바꿔놓을 테니까.'

세기 "그러니까 완벽한 내기의 성공은 바로 요런 시츄에이션!"




"좋은 말로 할 때 꺼지십시오."

세기 "그리고 내기의 실패는 바로 요런 시츄에이션!"




"십 분! 십 분이면 충분해.
십 분이면 총독부 건물을 폭파시킬 수 있다니까."

세기 "따라서! 'N양 모던걸 만들기!'
이 과제를 수행해야만이 진정한 내기의 성공으로 인정된다는 얘기지!"

세기 "하하하. 그렇다면 난 아직 옷 안 벗어도 되는 거지?"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옆 좌석을 돌아보면 지친 듯 잠들어 있는 여경이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번지는 흐뭇한 미소

영랑 "미용실 다녀오세요?
언니! 완이 오라버니 어제 외박했어요."
송주 "그래?"

영랑 "어머. 언니는 여경언니랑 완이 오라버니가
어떻게 됐을지 안 궁금해요?"
송주 "여경씨랑 완이가 왜?"

영랑 "세상에, 언니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송주 "내가 뭘 알아야 되는데?"

영랑 "어제 완이 오라버니랑 총독부 이수현 나으리랑
조마자 언니를 사이에 두고 기싸움을 펼쳤다는 소문,
미용실에서 못 들었어요?"

송주 "누가.. 누구랑 뭘 해?"

영랑 "기싸움이요, 기싸움! 연적끼리 벌이는 신경전이요."

송주 "연적.. 이라니?"

수현과 관련된 이야기에 신경쓰이는 송주
어젯밤 수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는데
수현 "십년 전 한 남자가 살해됐습니다.
피해자는 머리에 둔기를 맞아 살해된 채
다음날 아침 강가에서 발견됐죠."

송주 "추리 소설 이야긴가요? 범인은 누구인가 하는?"

수현 "읽는 재미를 위해서 힌트를 하나 드릴까요?"

수현 " 피해자는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던 친일파 지주로,
살해되던 날 밤 명빈관에서 묵었습니다."




처절했던 그 때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머리 속에 울려퍼지는 어린 송주의 비명소리





악몽같은 참담함을 안겨주었던 지주의 공포 서린 얼굴을 향해
경멸과 분노를 양껏 담아 도자기를 내리치곤
시체까지 수습하던 어린 송주의 모습

수현 "그리고 같은 날 밤, 명빈관의 동기었던 소녀 한 명이 실종됐습니다.
실종된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수현 "차송주씨. 십년 전, 러시아에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왔습니까?"

송주 "무슨 일이야."
근덕 "어제 그 자가 뭐래?"

송주 "십년 전 러시아에서 뭘 배우고 왔냐고 묻더군."
근덕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송주 "러시아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고 잡아뗐지."
근덕 "그랬더니?"

송주 "아..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근덕 "아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그게 전부야?"

송주 "그리곤 피식 웃더니 가더군."
근덕 "어쨌든 다행이군. 일이 커지지 않아서."

송주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 사람?"
근덕 "뭐가?"

송주 "거의 협박 수준으로 압박해오다가
모른다는 말 한 마디에 그렇게 싱겁게 물러나다니."
근덕 "조심해라, 알지만 덮어주겠다, 뭐 그거 아니겠어?"

송주 "그렇다면 꽤나 쎈 폭발력을 지닌 생색이군.
뭐 때문에 덮어주는 거지?"

근덕 "협박과 생색을 미끼로 차송주의 마음을 뺏으려는 게 아닐까?"
결국 총독부의 냉혈한도 차송주의 미모에 넘어간 건가?"

송주 "그런게 아니야.
뭔가 머릿속으로 다 계산하고 온 듯한 느낌이었어.
게다가 어젠 여경씨까지 만나러 왔었단 소문이야.
여경씨를 취조한 사람도 이강구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던 모양이고."


송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였을까. 어떤 대답을 원했을까.
아니, 원하는 대답이 있기나 했을까?
냄새가 나. 뭔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구. 뭘까 그게.."

근덕 "어쨌든 앞으로 경계하고 조심하는게 좋겠어.
저번 종로서 일도 그렇고 이강구 일도 그렇고.
그동안 너무 경거망동했어."


수현이 뭔가 미심쩍은 송주와
그런 송주의 의심을 살피는 듯한 근덕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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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잠들어있는 여경을 빤히 보는데

이상한 느낌에 퍼뜩 잠에서 깨는 여경

여경 "도.. 도착했으면 깨우시지.."

완 "너는 무슨 애가 남자 앞에서 그렇게 잠을 잘 자냐? 코까지 골면서."


여경 "코.. 골았어요?"

완 "코뿐이겠냐? 어젯밤에 너 땜에 내가 잠 못 잔 걸 생각하면 진짜..!"

여경 "도대체 어젯밤에 내가 뭘 어쨌는데요?"

완 "안 가르쳐주겠습니다."

여경 "설마.. 수.. 술주정 했어요?"

완 "안 가르쳐줍니다!"

여경 "...어쨌든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 "나여경."

처음으로 자신을 여경이라 부르는 완의 목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는 여경

완 "다른 남자들 앞에서는 마시지 마."

여경 "네?"

완 "다른 남자들 앞에서는 술 마시지 말라구."


완 "간다."




웃으며 떠나는 완의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발걸음을 떼는 여경
그리고 그런 완과 여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현이 보이고

여경 "어머니!"
학희 "여경아! 괜찮아? 괜찮은거야 너? 고문 받거나 그런 건 아니구?"
여경 "그런거 아니에요, 어머니..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학희 "그러면 됐다. 아무 일 없었으면 됐어."

여경 "저 때문에 한숨도 못 주무셨죠.."

학희 "잠 좀 못 자면 어떠니. 니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는데.
종로서로 어디로 미친 듯이 뛰어다녔는데 아무데도 니가 없잖아.
어디 이상한 데로 끌려가서 잘못된 줄 알고
심장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어.."

여경 "죄송해요 어머니.. 다시는 안 그럴께요.."
밤새 걱정했을 어머니를 향한 죄송함에 눈물이 차오르는 여경




함께 자전거를 탔던 순간을 떠올리며 입이 귀에 걸리는데


문득 돌아보니 어느새 마주앉은 송주가 빤히 쳐다보고 있고
뭘 들키기라도 한듯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며 표정관리하는 완

송주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하는 청소년스러운 미소네?"
완 "청소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뭐야? 할 말 있어?"

송주 "오오, 애인 생겼다 이거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완 "간다"

송주 "왜? 애인 생각하는데 방해 돼?"

완 "애인 생각은 무슨!
달을 보며 시상을 좀 떠올려 보고 있었다! 됐냐? 됐어?"

송주 "나도 방금 그대 얼굴 보면서 시 하나 지었는데. 들어볼래?"

완 "됐다고 본다!"

송주 "그대의 연인은 독립투사."

완 "누가 내 연인이 독립투사래!"

송주 "왜 이래? 어제 여경씨랑 외박했다면서."

완 "영랑이 이 자식을 진짜!"

송주 "그대의 연인은 독립투사, 나의 그대는 변절자.
청춘은 언제나 봄, 조국은 아직도 겨울.
아! 해방된 조국에서 신나게 연애나 해봤으면!"

완 "너 설마 그 시를 어디에 발표할 생각은 아니겠지?"
송주 "지라시는 안 될까?"

완 "지라시를 너무 무시한다."
송주 "배구씨한테 부탁하면 해줄 거 같은데."
완 "탁구 형도 보는 눈은 있거든?"
송주 "내기 할래?"

완 "아, 그 놈의 내기 진짜! 내기로 재산 다 들어 먹을래?"
송주 "여경씨 좋아졌지."

훅 들어오는 공격에 말문이 막히는 완

송주 "대답 참 재밌게 하네."


완 "재밌으면 됐다. 사실이 아니라 유감이지만."

송주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

완 "뭘."

송주 "힘들고 위험해질 수도 있어.
자신 없으면 감정이 시작되기 전에 멈추는 게 좋아."

완 "아, 글쎄 아니라잖아!"

송주 "세상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랑도 있는 법이야.
각오할 자신 없으면, 내기에만 열중하고 딴 건 하지 마. 그게 좋아."

무슨 말인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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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두 번째 암살지령이 내려올 거예요.
여경씨한테도 뭔가 지령이 전달될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앞으로 마주하게될 임무가 걱정되기도,
여러 복잡한 마음이 어우러져 잠못드는 여경


한편 수현의 집을 찾아온 선우관

수현 "죄송합니다. 한 번쯤 찾아뵙고 인사 드리려고 했습니다."

관 "니 아버지 품삯이다.
그 해 수확한 걸 그대로 남겨둔 채
소리 소문 없이 북간도로 떠나버렸으니
진작 돌려줘야 했을 것을 주질 못했어."

자신으로 인해 품삯조차 챙길 정신없이 떠나버린 아버지 생각과
자신의 아들을 밀고한 이에게 정당한 값을 치뤄주려는 관을 보며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고이는 수현

관 "그간의 이자까지 챙겨 넣었으니까 니 아버지를 대신해서 받아두어라."

수현 "저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르신.."

관 "이거는 니 아버지의 정당한 노동의 댓가야.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야."

관 "이걸로 우리 사이에 얽혀있던 질긴 인연, 그만 끊어내자."

관 "완이한테 들었다.
모진 고문 앞에서 버텨낼 장사가 몇이나 있겠냐만은
이해는 되도 아직 용서는 되지 않는구나."

완이 거짓말을 했다는걸 짐작하는 수현

관 "다 시대를 잘못 만나 생긴 비극이라 생각하겠다.
어찌 보면은 너도 희생자 일테지.."


관 "이제 서로 얼굴 볼 일 없을테니, 자책감 때문에 위악 떨 필요 없다.
니 가슴에 상처내가면서 그렇게 살 필요 없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고


관 "못난 놈.."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그저 죄스런 마음에
관이 떠난 문만 바라보는 수현의 모습


집으로 가던 코우지가 수현의 집에서 나오는 관을 알아보는데

코우지 "새파랗게 젊은 놈이 뒷돈거래까지.
깔끔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할 건 다 하는군."


초점없이 멍하니 서있던 수현의 시선이 곧 관이 놓고간 봉투로 향하고

'자, 양행비다. 이번에 민이랑 같이 동경으로 가거라.
가서 배우고 싶은 만큼 욕심껏 배우고 오너라.'



불현듯 돈 봉투를 움켜쥐고 뛰어나가보는데




그러나 이미 떠나고 없는 관,
관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오는듯한 복잡한 표정의 수현

코우지 "무슨 일이야. 이 밤중에."
강구 "늦게 죄송합니다만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중
코우지와 이강구의 말소리에 몸을 숨기는 수현

강구 "나으리, 저랑 같이 사냥 한 번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코우지 "사냥이라니."

강구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하룻강아지를 함께 잡아보자는 말씀입니다."

비열하게 웃는 강구를 노려보는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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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서에 또다시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역시 돌에 묶여 날아 들어온 칠필살이라는 글씨가 적힌 예고장

수현 "이번 살인예고장은 지난 번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수현 "첨부된 편지를 통해 그들의 정체가
신생 비밀 결사 조직인 ‘애물단’이라는 사실과,
첫번 째 피해자 민환식의 암살 이유를 명시했으며,
또한 다음 대상자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마모루 "애물단이라.. 말 그대로 대일본제국의 애물단지로구만.
민환식의 암살 동기는 뭔가?"

수현 "그들의 말을 빌자면 일제의 밀정이었답니다."

마모루 "두 번째 암살 대상자는?"
수현 "일본제국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친일 조선인 고관대작들입니다."

마모루 "향후 수사 방향은?"
수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피살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게
사전에 위험을 통지하고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코우지 "제 생각은 다릅니다.
편지 자체가 수사 교란을 위한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정보를 흘려 괜한 불안감을 조성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본 경찰에 대한 불신만 늘어날 것입니다."

마모루 "흠. 어떤가."

수현 "일리 있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혼란과 동요를 막기 위해서라도
비공개 수사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모루 "간만에 의견일치로구만.
좋아!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범인을 색출해 낼 수 있도록
수사에 총력을 기울여 주길 바래.
절대 두번 째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되네! 알겠나?"

코우지 "웬일인가? 잘난 후배님께서 내 의견에 동의를 다 해주고."

수현 "처음부터 선배님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먼저 치고 올라오는 것보다 의견에 동의해 드리는 편이
선배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 기다렸을 뿐입니다. 그럼."


가볍게 무시당하는 하찮은 SBN의 아련한 눈빛


마모루 "여보..! 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

사치코 "내가 승진시켜 달라던 그 청년은 어떻게 됐죠?"

마모루 "말했잖아. 승진은 승진 사유가 있어야.."

사치코 "오동나무 책상은 왜 안 들여놓고 있어요?"
마모루 "그것도 얘기했잖아요. 총독부관리임용은 시험을 거쳐야.."

사치코 "내 환영파티는요?"
마모루 "그것도 내가 이미 몇 번을!
아니 살인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되야.."

사치코 "한심한 남자! 도대체가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요!
우에다 가문의 데릴사위로서 부끄럽지도 않아요?!"

마모루 "여보 제발 부탁인데 그 데릴사위 얘기만큼은.."
사치코 "내 자서전을 발행할 출판사는.."

마모루 "오오, 그건 내가 해결했어! 아주 적당한 출판사를.."

사치코 "지라시로 해줘요."

기껏 지라시를 준비했는데 지라시를 해달라니 뭔가 맥이 탁 빠지는 데릴사위

사치코 "치사한 남자. 그거 하나 해결 못하고
결국은 내가 하게 만드는군요.
총독각하 이하, 모든 분들께 한 장씩 나눠드리세요."

마모루 "이게.. 뭔데..?"
사치코 "개필 파티 초대장이에요."

마모루 "개필 파티..?"

사치코 "무식한 남자. 자서전 집필의 시작을 알리는 개.필!
개필 파티도 몰라요?"


또 무슨 뻘짓인가 싶어 불길한 마음에 서둘러 초대장을 열어보는데

사치코 "내 싸인이 있는 초대장만이 유효하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도록 하세요."

사치코가 나가자마자 초대장 뭉치를 휴지통에 던져버리고는
연신 한숨만 내쉬는 힘 없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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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시 사무실에 앉아있는 미지의 여인

탁구 "누구니?"


명빈관에서 나온 기생이라도 되는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치코의 등장에 깜짝 놀라 벽에 달라붙는 삼인방

사치코 "저질이야. 너무 후졌어!"

사치코 "이것도!"

사치코 "저것도!"


사치코 "저것들도!"

탁구 "저기.. 자서전은 아직 작가가 준비 안 된 관계로..
그럼으로써 다음 주에나.."

사치코 "다 갈아치워요! 이런 데서
내 자서전이 나온다는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탁구 "저기 사모님..? 우리는 그딴 곳에다가 투자할 만한 돈이.."

사치코 "당신 얼굴도 갈아치워요!"

상처받은 배구찡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리고

왕골 "저.. 사모님, 출판사 사무실이라는데가 원래 다 거기서 거기.."

사치코 "가만, 내가 아까 당신 얼굴도 갈아치우란 말 안했던가?"


탁구 따라 나가는 상처받은 왕골,
더 말할 것도 없이 알아서 나가려는 세기

사치코 "잠깐. 핑크."

사치코 "상태가 가장 양호하군요."

사치코 "자서전 개필 파티를 열겠어요.
고관대작들한테는 내가 초대장을 보낼 테니,
출판계와 언론 쪽은 당신들이 알아서 책임지고 연락하도록 해요."

세기 "아니 뭐야, 저 여자! 왜 사람 말을 끝까지 안 들어?"
왕골 "넌 그래도 얼굴 갈아치우란 소린 안 들었잖아!"

세기 "나는 저 여자 감당 못해.
형이 저지른 일이니까 형이 알아서 수습해!"

탁구 "아까 얼굴 갈아치우라는 소리 못 들었어?"

세기 "어쨌든 저 여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경성에 단 한 사람 밖에 없어.
개필 파티 전까진 어떻게든 완이를 섭외해야 돼!"

탁구 "개필 파티라니?"

세기 "아 몰라! 지 자서전 집필을 알리는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달라잖아! 으휴!"

뭐래 이런 개필...

완 "으하하하하하하!"

완 "그러니까 뭐야? 폐간을 막아주는 대신
우에다 사치코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기로 했다?"
탁구 "발간은 안 해도 돼. 그냥 일종의 쇼타임이라고나 할까?"

완 "그래서 대필 작가로 나를 강력 추천했고?"
왕골 "당연하지! 너는 우리 월간 지라시의 보석이잖아."

완 "아이고 맙소사! 아니 이런 영광이 있나.
그런데 이걸 어쩌나? 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 만큼도 생기지가 않는데."

탁구 "와.. 완아, 수렁에 빠진 인간 하나 구제해주는 셈치고.."

완 "나를 말도 안 되는 내기의 수렁에 빠뜨린 자들이 누구였지?"

왕골 "얌마! 그건 엄밀히 말해서 니 잘못도 커.
니가 술 먹고 큰소리만 안 쳤어도.."

완 "오케이! 그래서 내가 내 잘못 인정하고,
열심히 내기에 임하고 있잖아.
그런데 이젠 날더러 두 여자를 한꺼번에 상대하라고?
그것도 폭탄들만? 이봐, 나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세기 "그 내기 말인데.. 슬슬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거 같지 않아?"

완 "종지부를 찍다니?"

세기 "니가 내기에 성공할 때까지 천년만년 기다려줄 순 없단 얘기야.
기한을 정하는 것이 공정한 거래상 합리적인 거 아니겠어?"

완 "그런 얘긴 애초에 내기 조건에 없었잖아!"

세기 "어? 아니 왜 발끈하실까? 왜? 자신 없어? 아니면 설마?
조마자씨랑 알콩달콩 만리장성을 쌓다보니 진정 사랑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내기를 무한 반복하고 싶다거나 뭐.."

완 "만리장성 같은 소리하고 있네!
좋아, 정해! 언제까진지 기한을 정하자고!"

"개.필.파.티!"

완 "개필? 그게 뭔데?"

세기 "얼마 후에 싸이코 여사의 자서전 집필을 알리는 개필 파티가 있어.
그 파티에 조마자씨를 모던걸로 변신시켜서 데려와."
탁구 "실패 시에는 싸이코 여사의 자서전을 써야함과 동시에,"
왕골 "니 차는 바로 회사차로 탈바꿈하게 되는 거지."
세기 "자신 없으면 이쯤에서 털고 그냥 자서전 쓰시던가."

완 "선우완 연애사전에 중도포기란 말은 없어."

탁구 "완아, 그 사전 갖다버려라!
어떻게 제대로 있는 단어가 없냐 그래ㅋㅋ"
계획대로 진행되자 킬킬거리며 재밌다는듯 웃는 세 사람
.
.
.

책을 정리하던 여경은 어지러운듯 휘청거리고
여경 "감기가 오려나.."


에취하는 재채기 소리와 동시에 순간 떠오르는 지난 밤의 기억들





여경 "서.. 설마..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리가.."


여경 "아...안되겠다. 열이 너무 많네?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믿을 수 없는 기억을 떨치려 서둘러 집에 가려는 여경
영화 "나여경씨?"

영화 "나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여경 "누구.."

영화 "나, 완이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

저 모잔 뭐지

영화 "왜 안 마셔요?"
여경 "양음료는 잘 안 마십니다. 속에서 잘 받지도 않고."

영화 "뼛속까지 조선인이군요."
여경 "근데 하실 말씀이라는게.."

영화 "우리 완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요?"

여경 "잘 모릅니다."

영화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알려줘야 될 것 같아서 온 거야.
아, 나보다 한참 어리니까 말 놔도 되지?"

영화 "우리 완이, 지금은 저렇게 막 살아도
이제 곧 총독부에 들어가 야망을 펼칠 인재고
이제 곧 총독부에 들어가 야망을 펼칠 인재고
장차 아버지 회사 물려받아야할 장남이야."

여경 "말씀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 "아가씨가 우리 완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영화 "듣자하니 아가씨, 야학이니 뭐니
꽤 위험한 활동들을 하면서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한다던데..
우리 완이랑 얽혀서 혹시라도 우리 완이 이력에 빨간줄이라도 생기면.."

여경 "야학은 위험한 활동이 아닙니다.
배움이 자체가 위험이 되는 조국의 현실이 위험할 뿐이죠."

영화 "쬐끄만 아가씨가 겁대가리가 없군.
조국의 현실이 위험하다니?
내가 보기엔 대일본제국의 은덕을 무시하고,
황실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아가씨가 더 위험해 보이는데?"

여경 "말씀이 끝나셨으면!"

영화 "아직 안 끝났어. 앉아.
쬐끄만 게 성깔 있네? 완이가 데리고 놀기 재밌긴 하겠어."

여경 "외람된 말씀이지만, 부인께서는 예의 법도가.."

영화 "우리 완이, 일본에 정혼자가 있어요."

정혼자라는 말에 멈칫하는 여경

영화 "그러니까 아가씨 데리고 노는 거 맞아요."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드는데
'우리 완이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고는 다녀도
절대 여자한테 정 주는 법이 없어.
아가씨가 상처받을까봐 하는 얘기니까 새겨들어요.'





모욕적인 영화의 언사에 불쾌한 여경,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와중에
지나가는 자전거를 보며 무심코 떠오르는 완이와의 추억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되고


굳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여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수현
강구 "흥미와 관심이 지나치시군요."

강구 "이 정도면 나으리도 집착 아닙니까?"

맞지도 않는 선글라스를 겨우 얹어놓은 니 집착만 할까.
애써 웃음을 참아보는 수현

학희 "여경아! 아니 왜 그러니? 어디 아파?"

여경 "괜찮아요.. 그 때 비를 좀 맞았더니 감기가 올려나봐요.."

학희 "아휴.. 열이 펄펄 끓네. 안되겠다. 얼른 일어나. 병원 가게. 응?"

강구 "정말 개인적인 관심입니까?"
수현 "하고 싶은 말 바로 하지. 돌리지 말고."

강구 "하고 싶은 말이라기보다는, 좀 궁금한게 있거든요."

수현 "궁금하다니. 뭐가."

강구 "참 희한하게도 말입니다.
제가 가는 곳 마다 꼭 나으리가 나타나거든요.
나여경이를 연행할 때도 그렇고,
명빈관으로 차송주를 찾아갔을 때도 그렇고..
한 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이지 꼭 나타나시드라구요?"

수현 "의문을 품었다면, 예상답안을 가지고 있을텐데 이미?"

강구 "글쎄요. 그게 참 아리송하단 말씀입니다.
왠지 제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도 같고,
용의자들을 비호해주는 것도 같고."

수현 "그렇게 보였다니 유감이군."

강구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수현 "불행히도 자네와 나의 수사방향이 같을 뿐이야.
강인호는 죽은 민환식에게 원한이 있었다,
강인호는 나여경의 야학제자다,
사건 당일 용의자가 명빈관으로 도주했다,
그 시각 명빈관의 기생 차송주는 자리를 비웠다..
뭔가 나도 좀 궁금해져서 말이야.
그때마다 한발 앞서거나 뒤서거나 자네가 있더군."

강구 "그럼.. 나으리의 생각도.."

수현 "살인 용의자 가능성만 놓고 봤을 때
나여경 쪽보다는 차송주 쪽일 가능성이 더 커.
나여경 감시는 오늘로 끝이네."

강구 "저와 수사방향이 같다면, 왜 저를 도와주지 않는 겁니까!"
수현 "이미 협력자를 구했잖아.
범 무서운줄 모르고 날뛰는 하룻강아지가
어떻게 감히 자네를 도울 수 있겠나. 안 그런가?"

돌아서는 수현의 앞으로 여경을 부축하고 나오는 학희가 보이고

수현 "무슨 일입니까?"
학희 "저.. 우리 애가 열이 높아서 병원에 가려는데요.
죄송하지만 택시 좀 불러주시면..!"

여경 "됐어요, 어머니. 그냥 제가 가겠어요."


혼자 걸어보려하지만 곧 어지러움에 휘청거리고
수현은 그런 여경을 반사적으로 붙잡고 곧바로 뿌리치는 여경

수현 "이 상태로는 못 걸어갑니다.
제가 택시를 잡아올테니까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수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영 탐탁치 않은 여경

그리고 여경을 지켜보는 강구


"준비됐어요. 이번에 어렵게 구해 온 하꾸라이에요.
누가 미리 찜해놓은 건데 내가 완이씨니까 특별히 보여주는 거야."

"근데 참, 아가씨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멈칫하더니 팔로 품에 안는 시늉을 해보는 완,
폐가에서 감싸안았던 감을 살려 사이즈를 어림잡아보는데

완 "제일 작은 걸로."

해화당 앞에 도착해 차 안에서 멘트를 연습해보는 완

완 "동물들도 때가 되면 털갈이라는 걸 하는데 말이야.
웬만하면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좀 그만 입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향수까지 야무지게 뿌리고

준비해온 꽃다발과 옷봉투를 들고 서점을 향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닫혀있는 서점에 당황하는 완


잠든 여경을 바라보고 있는 수현
여경의 집 앞을 기웃거리고 있는 완

학희 "어머. 여긴 어쩐 일로."

완 "아.. 안녕하세요?"

학희 "잘 있었어요? 나한테 뭐 볼일 있어 왔어요?"

완 "아 저기.. 그게요.. 근데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학희 "아, 딸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좀.."

완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요?"

학희 "아 뭐 큰 병은 아니구.
피로에 감기가 겹쳤다는데, 하루 쉬다 나가라네요.
옷 좀 챙겨가려고 잠깐 들른거에요."

완 "병원이 어딥니까?"

한참을 여경의 옆을 지키다 일어서는 수현의 뒤로 들리는 목소리
여경 "왜 총독부 직원이 되셨어요?"


여경 "저희 서점 손님 중에
아주 인상 깊었던 손님이 한 분 계셨어요.
가난한 아이에게 책을 사주고
책값 대신 흙 묻은 고구마를 받고,
그나마 거스름돈이라며 아이에게 반을 나눠주던
그 손님 모습에 감동했었어요."

여경 "저런 사람이 조국을 위해 일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이 공평해질 텐데..
바위처럼 꿈쩍도 안 할 것만 같던 세상이 조금씩 변할 텐데.."

여경 "제가 뭐하시는 분이냐 물었을 때,
알게 되면 실망하실 거라고 말씀하셨죠?"


여경 "네. 실망했어요. 감동했던 만큼 실망했어요.
실망시키는 일인지 알면서도 왜 그 일을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여경 "대일본제국의 경찰을 모욕한 죄로 잡아갈 건가요?"

수현 "진실이 담긴 비난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여경 "다행이네요."

황급히 병원으로 들어오던 완은 병실을 나서던 수현과 마주치고
잠깐 움찔하지만 말없이 그냥 지나치려는데
수현 "진심이냐?"


수현 "니 여자라는 말은 믿어주지.
뭐, 니 여자야 경성에만도 수십이 넘을테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건, 저 아가씨에 대한 니 마음이 진심이냐는 거다."

완 "주제 넘는다고 했지."

수현 "내기라며?
술자리에서 심심풀이 안주 삼아 내 건 내기였다며."

수현 "잡지에 실린 기사 잘 읽었다.
뭐, 알고 싶지 않아도 워낙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일이기도 하고.
순진한 저 아가씨만 모르고 있는 일이지."


수현 "천성이 맑고 순수한 아가씨 같은데, 죄책감 같은 거 안드냐?"


수현 "니 맘이 진심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일 내기로 인한 거짓 감정이라면 나한테 들키지 마라.
위증죄로 바로 구속시킬 테니까."




어쩐지 무거운 마음으로 잠든 여경을 바라보다
열을 재보듯 이마 위에 손을 올리자
기척에 천천히 눈을 뜨는 여경

'천성이 맑고 순수한 아가씨 같은데, 죄책감 같은 거 안드냐?'


여경과 눈이 마주치자 밀려오는 죄책감에
손을 천천히 내려 여경의 눈을 덮어 시선을 가려버리는 완



'세상엔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사랑도 있는 법이야.
각오할 자신 없으면, 내기에만 열중하고 딴 건 하지 마. 그게 좋아.'

영랑 "오라버니, 어디 다녀와요?"


완 "너 입어라."
영랑 "어머, 이뻐라아!"

가라앉은 완과 주인을 잘못찾아간 원피스를 번갈아보며 의아한 송주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솟구치는 완

완 "왜 내 감정 가지고 지들이 해라 마라야!"





완이 그러했듯 한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만히 가렸다 내려보는 여경
무슨 의미였을까 헤아리며 완을 떠올리는 밤
.
.
.


완 "안 보이다 보이니까 디게 반갑지?"

긍정의 보조개

근덕 "왜 그러십니까?"

정신차리고 다시 보면 근덕이고

여경 "아.. 어서 오세요."
근덕 "저를 이렇게 반겨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여경 " 예.. 그런데 어쩐 일로?"
근덕 "우리 영랑이 글 가르쳐주시느라 수고가 많으시죠?
그래서 제가 감사의 의미로 맛있는 과자가 있어서
한번 드셔보시라고 가지고 왔습니다."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근덕이 나가자 주변을 살펴보고는 급히 과자상자를 열어보는데


'오늘 사냥이 시작됩니다. 12시. 까르페디엠.'
.
.
.

"뭐?! 내기를 포기해!?"

완 "몇 번을 말해 도대체."
왕골 "선우완 연애사전에 포기란 없다며!"

완 "있더라고 찾아보니까.
포.기! 조마자를 모던 걸로 만드는 일의 불가능성을 말함.
함부로 도전 시 사회적, 정치적으로 매장될 수 있음."
탁구 "아니 사회적 정치적으로 매장을 당하다니?"


완 "다른 여자들이 안 붙잖아. 지겨워, 관두겠어.
다시 경성 황태자의 자리로 돌아오겠어. 이 자유! 좋잖아?"

뭔가 이상한듯 믿지 못하겟단 눈빛으로 바라보는

완 "아참, 차는 회사 앞에 세워놨고 싸이코 여사 자서전은.."

완 "아? 사마담!"

완 "사마담, 굿 초이스! 역시 오늘의 주인공답게 의상이 고저스하군요."

사치코 "선우상의 의상도 만만치 않게 아방가르드하군요."

완 "하하하. 제게 에스코트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사치코 "기꺼이."


탁구 "가만히 보면 완이 저 자식, 은근히 비위가 좋아."
왕골 "내 말이."
세기 "근데 둘이 은근히 잘 어울리지 않냐?"
왕골 "내 말이."
탁구 "근데 오늘따라 완이 저 자식 얼굴이 왜 저렇게 쓸쓸해 보이냐?"
왕골 "내 말이!"


까르페디엠 앞을 두리번거리던 여경은
하필 그 앞에 앉아있는 수현을 발견하고 움찔하더니
얼른 피하듯 적당한 자리에 등을 보이며 앉는데

수현 "퇴원하셨습니까?"
여경 "했으니까 여기 있겠죠?"
수현 "몸은 좀 괜찮습니까?"
여경 "괜찮으니까 여기 있겠죠?"

여경 "우연인가요?"
수현 "필연이었으면 좋겠습니까?"
여경 "감시 중인가요?"
수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독서를 좀 하고 있던 중입니다. 안됩니까?
그러는 나여경씨야말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송주 "저랑 약속이 있거든요.
두 분이 아는 사인줄은 미처 몰랐네요?"

수현 "두 분이야말로 어떻게 아는 사인지 궁금하네요.
전혀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송주 "제 친구의 연인이자, 우리 명빈관 막내 한글 선생님이세요.
의외로 통하는 면이 많아서 서로 친구가 됐어요. 대답이 됐나요?"

수현 "취조 받듯이 그렇게 대답하실 필요 없습니다."

송주 "취조하듯이 물으시니까요. 그럼 이제 그만 가 봐도 될까요?"

수현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여경 "감시 나온 거 맞잖아요!"

수현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두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직업병이 도져서요.
두 분 다 강인호 사건과 연관이 되어있기도 하고."


송주 "오늘 밤 여기서 사치코 여사님의 개필파티가 있는데
입고 갈 옷이 마땅치가 않아서요.
쇼핑이나 좀 하자고 제가 여경씨를 불렀어요."

수현 "개필파티라.. 재밌군요. 어떤 성격의 파티입니까?"


송주 "자서전 집필의 시작을 알리는 파티라나 뭐라나.
제가 뭘 알겠어요. 지라시 편집장님이 초대하면서 그렇다고 했으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죠. 이제 가도 되나요?"


이쯤되면 강구가 말한 집착이 맞는것같...

여경 "저.."

송주 "어머, 미안해요. 사람을 불러놓고 내 생각만 했네요. 사진."

근덕 "어렵게 구한 거야."

송주 "오늘 사냥감이에요. 얼굴을 기억해두세요."

여경 "제가 할 일은 뭐죠?"

송주 "간단하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예요.
시계가 정각 10시를 가리킬 때 그 사람한테 다가가
몇 시냐고 묻기만 하면 돼요."

비장한 표정으로 끄덕이는 여경

송주 "시간을 물은 다음엔 재빨리 옆으로 빠지세요.
무슨 소린지 알겠죠? 반드시 옆으로 피하셔야 돼요."

여경 "알겠습니다. 근데 지금 바로 가는 건가요?"
송주 "으음~ 사냥터에 가려면 사냥복이 필요하겠죠?"

여경 "사냥복.. 이라뇨?"

송주 "흠. 여경씨한테는 심플하고 귀여운 스타일이 낫겠네요."

여경 "저.. 이런거 꼭 입어야 되나요?"

송주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파티장이예요.
파티장에 그 옷이 적합하다고 볼 순 없잖아요?"


송주 "썩 마음에 드는 옷이 없네.. 뭐 새로 들어온 거 없어요?"

"손님한테 어울릴만한 게 딱 하나 있긴 있었는데,
완이씨가 벌써 채갔잖아."

송주 "저기, 명빈관에 잠깐 들러서
영랑이 어제 그 옷 좀 도로 가져와야겠는데?"

근덕 "이왕이면 일석이조를 만드시겠다?"

송주 "자 이제 옷은 해결 됐고, 이제 머리를 좀 해결해 볼까요?"
.
.
.


강구 "1차 살인은 예고장이 도착한 뒤 6일 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용의선상에 있는 차송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암살대상 후보자들의 동태를 일분일초 단위로 파악해야 한다. 알겠나?"


수현 "복귀한 건가?"
강구 "덕분입니다."

수현 "내 덕분이 아니지."

코우지 "애초에 조직의 개입 가능성을 주장했던 건
이강구 순사부장이었네.
이제 수사의 방향을 틀었으니, 이 친구의 활약을 기대할 만하잖아.
진행 상황은?"

강구 "일단 유력한 용의자인 차송주의 행동선을 파악하라고 지시해뒀고,
강인호와 차송주와의 연결고리를 계속 조사중에 있으며.."

김순사 "저 부장님..
암살대상 후보자들 중 두 사람이 오늘
보안과장 사모님의 개필 파티에 초대되어 갔다고 합니다."
강구 "개필 파티? 그게 뭐야."


김순사 "보안과장님 사모님의 파티인 모양인데,
두 분 다 사모님의 초대장을 받고.."
강구 "차송주는."
김순사 "역시 초대받아 갔답니다."

코우지 "파티 장소는?"

수현 "까르페디엠 지하 VIP룸입니다."



둘이 편먹고도 정보력이 겨우 내 집착만도 못하다니 So 뿌듯
한편 조악한 시설과 기대이하 수준의 손님들에 기분이 상한 사치코
사치코 "이게 뭐야? 초대손님 수준이 왜 이렇게 저질이야?
내가 초대한 손님들은 왜 한 명도 안 오는 거냐구!"

"말씀 하신 손님들께 전화를 걸어봤는데,
모두들 다른 일정으로 나가셨답니다.
파티 초대장은 단 한 분도 받으신 적이 없다는데요?"
사치코 "뭐야? 그럴 리가 있나. 나를 무시하는 거야 뭐야 지금?"


"우에다 사모님의 자서전 개필을 축하드립니다."
"이런 귀한 자리에 불러주시니 영광입니다."

사치코 "이제야 내 자서전 개필 파티의 수준에 합당한 손님이 왔군요."


사치코 "가만, 이건 내가 보낸 초대장이 아닌데?"




송주 "자, 긴장을 풀어요 모던걸양.
틀림없이 오늘 파티에서 가장 이쁠테니까."

사치코 "내 사인은 이렇게 천박하지 않아요.
종이도 우리 가문에서만 쓰는 특별 고급지를 썼구요!
이런 조악한 저질 종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구!"

사치코 "누구야 도대체?!
누가 내 이름을 팔아서 이딴 저질 초대장을 배포 한 거야! 누구야!?"

왕골 "아 저 아줌마 엔간히 좀 하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귀 따거 죽겠네!"

탁구 "완아. 니가 어떻게 진압 좀 한 번 해봐.
저 여자 때문에 여기 모인 손님들 전부 머리에 꽃 달게 생겼다야."

세기 "그래 완아. 니 주 종목이 뭐냐.
파티 분위기 좀 다시 화끈하게 띄워봐 임마."

완 "아 진짜! 나는 오늘 할 만큼 했어.
분위기를 띄우던, 날려버리던,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해!"



나가려던 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누군가








180도 변한 차림으로 들어오는 여경의 모습에 놀라는 완과 지라시 식구들














낯선 하이힐에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여경을 바로잡는 완,
그리고 여경의 등장에 환호하던 함성과 휘파람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선우완.. 이 무서운 새끼.."

송주 "미스 다이아나? 커피 한 잔 부탁해도 될까?"
다이아나 "설탕 넣어 드려요?"
송주 "조금만. 오늘 머리 스타일 좋은데?"


의식적으로 종업원에게 인상에 남을만한 말을 하곤
시간을 확인해보는 송주

왕골 "어쩜 패션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 보이세요?"
세기 "헤어스타일도 바뀌었잖아. 진짜 못 알아볼 뻔했어요."

탁구 "아니, 꾸미니까 이렇게 예쁜데
왜 그동안 흰 저고리 검정 치마를 고집하셨어요 그래?"

여기저기서 힐끔거리는 남자들의 시선과 관심에 슬슬 열이 받는 완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여경의 손을 잡고 나가려는데

여경 "왜 그래요?"
완 "나가자."

여경 "왜 이래요 진짜. 이거 놔요!
나가려면 혼자 나가세요. 저는 여기 있어야 돼요."


당황하는 완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듯한 여경

완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왜? 남자들이 휘파람 불어주니까 좋아?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알고 봤더니 파티체질이야?"

여경 "뭐라고 해도 좋은데! 오늘은 절대 내 옆에 오지 말아요.
알았어요? 절대 내 옆에 오지 말라구요!"







여경의 말에 기분이 상한듯 혼자 바에 앉는 완과
시선을 돌리다 사진 속 고관대작을 발견하는 여경


수현 "차송주씨."
송주 "어머. 바쁘신 분들이 여긴 어쩐 일들이세요?"

송주 "아, 사치코 여사님 파티에 초대받으신 건가요?"

수현 "파티 장소는 여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송주 "아, 보시다시피 여기 이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어요.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송주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일본놈들과

알 수 없는 표정의 수현

열받은 완은 여경을 등진 채 화를 삭이는 중이고


그런 완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여경은




어느 순간 자신을 끈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고관대작의 시선을 느끼고






시간을 확인하고 결심한듯 천천히 다가가는 여경


그런 여경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완

여경 "실례합니다.."

"얼마든지."

여경 "지금 몇 시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몇 신지 알려주면 나하고 나가줄텐가?"

여경 "시간을.. 알려주시면요."







고관대작이 여경을 향해 회중시계를 보이는 순간




곧 10시 정각이 됨과 동시에 실내의 모든 불이 꺼지고
반짝이는 시계의 야광불빛과 정적을 깨는 총성


실내에서 울리는 총소리에 한 발 늦었다 싶은 종로서 출동반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듯 옅게 미소짓는 송주


수현 "모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이내 실내에 다시 불이 들어오고
사치코의 찢어질듯한 비명소리,





그 너머로 피투성이가된 채 죽어있는 고관대작과
그의 가슴에 남겨진 칠필살 표식





완 "나여경! 괜찮아? 정신차려! 눈떠봐! 여경아! 나여경!"



넋이 나간 여경을 흔들어대던 완이
이상한 느낌에 붙잡고 있던 손을 떼 바라보면
여경의 팔에서부터 흘러와 흥건하게 묻어나오는 피




수현 "범인 검거를 위해 수사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완 "비켜."

수현 "범인은 이 안에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현장을 이탈하면 의심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완 "비켜! 비키란 말 안 들려!?"

수현 "나여경씨는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증언을.."


완 "비켜! 이 여자가 죽으면, 너도 죽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네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