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음식 요알못이 얼떨결에 씨스튜(?)를 만들게 된 후기
4,080 21
2024.02.02 14:44
4,080 21
나는 음식에 관심도 없고 먹는 재미도 못 느껴서 요리를 별로 해본 적이 없음.

다행히 엄마가 집안일에 철저하신 편이시라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좀 있고,

보편적인 기준에 비해 일찍 자립한 덕분에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요리 상식은 갖추고 있음.


서른 넘기면서 입맛이 터져서 먹는 재미를 알게 된 즈음부터 문제가 발생함.

맛있는 걸 만들 의지와 기력, 지식은 없는데 먹고는 싶으니 외식과 배달에 의존하게 됨.

생활비도 입맛과 함께 터져버림.

하지만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고, 

애초에 타고나길 에너지가 부족한 인간이라 

일하고 퇴근하면 청소와 빨래만으로도 금세 지쳐버렸음.


지출을 줄일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배우자와 나의 수입이 점차 늘어나 괜찮았음.

솔직히 수입 상승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배우자인 반면에

먹고싶은 게 많은 건 내 쪽이었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항상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었음.


그러던 중 마흔을 목전에 둔 시점에 갑자기 내가 다니던 회사가 망해버렸음.

졸지에 실업급여를 받게 되면서 배우자와 상의해 나는 프리랜서로 전환하기로 결정함.

상대적으로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생겨 집안일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됨.

초반에는 청소와 빨래, 집안 정리 같은 걸 우선적으로 개선했음.

그렇게 두어달 보내고 났는데도 지출되는 생활비에 큰 차이가 없는 걸 확인하게 됨.

식비가 문제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그간 배우자에게 느끼고 있었던 죄책감이 자극됐음.


씨스튜 곧 나옴. 길어서 죄송.


그렇게 요리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점층적으로 시도해봤음.

그래봤자 밀키트, 반조리 식품이긴 하지만 나름 해볼만 하다 느껴졌음.

점점 요리에 대한 낯가림이 사라져가기 시작함.


그리고 대망의 오늘이 왔음.

토마토 스튜를 만들었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급하고 무지한데다 대충대충이기까지 한 나는

스튜에 사용하는 닭 육수와 시판되는 치킨 스톡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닭 육수 800ml 대신 치킨 스톡 400ml를 넣어버림.

심지어 그러고는 중간에 간도 안 봄...


얼추 다 끓이고 상에 올리려고 간을 본 순간 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함.

'살려야 한다.'

들어간 재료값만 얼추 5만 원 돈이었던 요리였으므로...(한우 썼음.)


스튜 냄비는 우선 내리고 다른 냄비를 하나 더 꺼내 스튜를 1/3 정도 옮겨담음.

옮겨담은 스튜 양과 1:1 비율로 물을 넣어 다시 끓임.

간을 봄.

아직 짠 맛이 강함.

물을 절반 정도 더 넣고 한소끔 끓임.

간을 봄.

아직.

냄비 한계선까지 물을 더 넣고 더 끓여 간을 봄.

이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은 된 것 같은데 미묘하게 짭짤하면서 밍밍함.

어차피 망한 거 우유를 조금 넣어봄.

한층 부드러워졌지만 살짝 시큼한 맛을 중화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음.

당뇨 전단계니까 알룰로오스 쪼금 넣음.


그렇게 간신히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음.


먹을 때 보니 국물은 괜찮은데 건더기에 이미 짠 맛이 다 배어 있어서 

마늘빵이랑 먹기에는 우리 가족 입맛에는 간이 좀 셌음. 

밥 말아서 김치랑 먹으니 그래도 맛은 있어서 다행이었지...


남아있는 씨스튜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일단 짠 맛이 더 배지 않도록 건더기만 따로 건져서 물 부어놓음.

국물도 버리진 않았고 이따 저녁에 물 좀 더해서 파스타 해먹을 예정.

한 끼 쉬었다가 또 남으면 리조또 해먹어야지.

설마 그러고도 남으면(남을 것 같긴 함) 어째야 하나 고민 중이긴 함.


이상, 치킨 스톡과 닭 육수의 차이점도 몰랐으면서 

기본 요리 상식은 있다고 자신했던 사람의 씨스튜 만들기 후기였음.


PS. 스톡 직역하면 육수자너...ㅠㅠ 농축액은 농축액이라고 써주라 진쨔ㅠㅠ

PPS. 쓰여있네... 눈이 아니라 장식인가벼ㅜㅜ

LomEjM

목록 스크랩 (0)
댓글 2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웨이브X더쿠] 드덕들을 위해 웨이브가 개발한 스마트폰 중독 테스트 이벤트🔥 feat. 뉴클래식 프로젝트 778 11.22 52,134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3,799,050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615,96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5,887,730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7,274,375
모든 공지 확인하기()
180695 그외 영유 선택 고민 1 13:14 83
180694 그외 소화가 너무 안되는 초기(좀 더러움) 3 12:49 94
180693 그외 감쓰역할(?) 하는걸 좋아하는 사람 있니? 9 11:43 424
180692 그외 벽에 인터넷?단자 구멍? 막고싶은 후기 4 11:38 288
180691 그외 정신질환 있는 할아버지 때문에 너무 무서운데 조언 부탁해도 될까? 12 11:08 638
180690 그외 네이버팜에서 꽃사는거 어떻게 생각해? 판매자추천도부탁해 6 10:45 327
180689 그외 8핀 이어폰 추천 바라는 초기 1 10:43 57
180688 그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3 10:26 260
180687 그외 오후에 타로 볼건데 질문 추천 받는 초기!! 3 10:25 103
180686 그외 영어공부 중인데 어떤 목표를 설정할 수 있을까 ??? 6 09:38 268
180685 그외 강아지 보내는게 두려운 중기 6 09:20 294
180684 그외 아기방에 놓을 가습기 추천받는 초기 31 08:28 685
180683 그외 군대 일병이면 뭐가 젤 군생활에 필요한지 궁금한 후기 5 02:17 337
180682 그외 당근 이거 괜찮은가? 2 00:27 680
180681 그외 부끄러워서 내용 펑 3 00:10 614
180680 그외 프렌즈 정주행중인데 나혼자 살짝 아쉬운 중기 ㅜㅜㅋㅋ 8 11.25 915
180679 그외 회사에서 자신감을 갖고싶은 중기 11.25 277
180678 그외 과일 좋아하는 덬들아 제철 과일 추천해주라! 19 11.25 708
180677 그외 4년차 지방직 공무원 교행으로 재시 고민중인 중기 12 11.25 1,058
180676 그외 미혼 자취하는데 회사근처 말고 거리있는 곳에 일부러 사는 경우 꽤 있는지 궁금한 중기 23 11.25 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