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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내가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 다시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었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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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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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힘들어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 어떻게든 내가 나를 설득해서 겨우겨우 끌고 나갔던 때가 있었어

내가 나에게 설득하면서 했던 이야기들 중 몇 가지 가져와봄



1. 죽음은 너무 과장되어 있다, 오히려 엄청난 건 내가 나를 매 순간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키웠는데 7살 때 신장 문제로 크게 아프고 난 뒤, 이후로는 늘 조심하면서 키웠어

먹는 것, 특히 마시는 물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거든

그러다 14살때 다시 재발했고 이젠 손상 안된 장기가 없어서 마지막 1년은 하루하루가 추가로 주어진 날들이다~ 생각하면서 살았던 거 같아


얘 아파서 병원 데려가면 의사가 늘 물어보는 게 '뭐 이상한 거 마시지 않았나요?거든

고양이 때문에 설겆이 할 때도 세제 푼 물에 그릇 담궈 놓는다거나 빨래를 물에 좀 담궈놓는 것도 못하고 살았어

혹시 그거 마실까봐

고양이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목록도 다 꿰고 있어서 함께 살면서 계속 신경썼고,, 암튼 조심해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어



그런데 우리집 밖 100미터만 걸으면 길고양이들이 늘 나타나는 작은 산책로가 있거든

거기서 길고양이를 3마리 이상 늘 보는 거 같아

꼬리들은 어디서 잘린 건지 다들 짧고 몸이 늘 부어있고 사람을 겁내지 않는 고양이들이야


걔네들을 보면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싶어지는 거야


우리 집 고양이는 변기 물 마시는 것만으로도 문제 생기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한데

저 고양이들은 대체 어디서 물을 구해서 마시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고 떠올려봐도 길 고양이가 매일 물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거야

빗물 고인 웅덩이를 보면 저거 마시면 바로 급성신장염 걸릴텐데 싶고


단 몇 일만 물 못마시면 죽을텐데??? 

고양이가 몇 일만 굶어도 큰일 나던데 쟤네들은 어떻게 사는 건지?????? 


우리집 고양이는 내가 조금만 방심해도 몇 일만에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 내가 매일 이 아이를 살리고 있는 셈이었거든


그래서 이것도 위험하고, 저것도 위험하고 이거 피해야 하고 뭐 이런 목록을 엄청 잘 알고 있었는데

그 기준으로 바라보니까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이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신기할 정도더라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살아있는 것도 대단한 거였어

죽고 싶다 어쩌고 수면제 사모으러 다니던 때도 있었고,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죽음이 뭐 엄청난 행위를 해야 가능한 대단한 일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있는 게 너무 엄청난 거더라고


죽는 건 뭘 해야 가능한 일이 아니라, 매 순간 하는 호흡을 몇 분만 하지 않아도 바로 가능하거든

죽고 싶다면서 호흡은 왜 하지?? 밥은 왜 먹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웃기더라고


내가 나에게 아침밥도 먹이고, 물도 마시게 하고 숨도 한 번 거르지 않고 쉬면서 산소 공급 계속 해주고 옷도 입히고 씻기고

이걸 내가 나에게 매일 쉬지 않고 해주고 있잖아??


어떻게 나는 나를 이렇게 성실하게 케어해줄 수 있는 거지???


진짜 죽고 싶다면 국그릇에 얼굴 박고도 죽는 게 가능할 정도로 죽는건 너무 쉽고 간단한 일이고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매일 매 순간 잠시도 쉬지 않고 내가 나를 살려놓고 있어서 가능한, 참 대단한 일인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죽고 싶단 생각을 덜 하게 되었어



2. 무기력이나 우울함,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에도 공소시효가 필요하다


가정폭력이 심한 집에서 자랐어

부모님이 술집을 했는데 여자들 데려다 놓고 장사하는 그런 술집이었어 

나중엔 좀 건전한 맥주집을 했는데 어쨌든 일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가게 끝나고 집에 오면 화풀이를 우리에게 했고

정말 안 들어본 욕이 없을 정도로 몇 시간씩 욕설을 듣고 자랐어


우리가 맘에 안 들면 몇 일씩 굶기기도 하고, 나는 최대 2주 정도 굶어서 죽기 직전까지 간 일도 있었어


이런 성장 배경이라 조금만 균형이 깨져도 우울함이 순식간에 스며들어와서 거기 잠식될 때가 있어

몇 일로 끝나기도 하고 한 달 이상 가기도 하고


학생 땐 그래도 길어야 몇 달에서 끝이 났는데 

사회생활 하면서 회사 내 갈등과 겹쳐지니까 사람이 나락으로 가더라


결국 또 1~2년 히키처럼 지내게 되었던 때가 있었어


불우한 가정환경이 있으니까 주저앉을 핑계로 너무 좋고 부모님 원망하기도 딱 좋아서 

다시 일어날 의지가 정말 안 생겼어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엄마탓을 몇 년을 더 할까? 


80대가 되어서 잘 거동도 못하는 할머니가 된 내가 

'우리 엄마가 나한테 이랬고, 내가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어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 떠드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어

그 나이가 되어서도 실패한 인생의 책임을 부모에게 묻는 건 좀 한심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엄마가 아빠 욕, 외할머니 욕을 내가 애기때부터 했는데 우리 엄마가 이걸 지금도 하고 있는 거야

아빠와 외할머니가 잘못한 건 맞는데 아니 그걸 30년이 넘게 하고 있으면 뭐 어쩌라는 거지???? 싶더라고


거기에 발목이 잡혀서 사고가 매몰된 채로 30년이 지나 이제 40년을 향해 살가고 있는 거야

저러면 진짜 안 되겠다 싶더라


부모잘못 만나서 남들보다 한참 불리한 상황에서 인생 출발한 거 억울하긴 한데

그거 탓하면서 제대로 출발도 안하고, 달리다가도 수시로 주저앉아서 불공평한 인생 탓만 할거면 내 인생 내가 조지는 거밖에 더 되겠나

이게 무슨 득이 되나 싶어서 내 스스로 공소시효를 만들고

더는 과거 탓 안하기로 했어


뒤 안 돌아보고, 자기 연민 안하고 그냥 앞만 보기로



3. 10년, 20년은 엄청나게 대단한 시간이니 인생 길게 보고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자


내가 대학을 26살에 들어갔어

24살 여름에 자살기도 한 번 했다가 실패하고 방에 틀어박혀서 자학하면서 지내다가 그 해 겨울 12월부터 공부 시작해서

25살에 대학을 가기로 마음 먹고 26살에 입학했거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진짜 열심히 공부했고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성적이 너무 잘 나와서 명문대에 들어갔어


하지만 등록금 버느라 휴학을 계속 하다보니 졸업하는 데 6년 반 걸렸고

당연히 나이가 많으니까 정상적인 취업은 어려워서 벤처기업들 위주로 다녔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결국 다시 마음의 병을 얻고 또 좌절하고 몇 년 허비하게 되었어


그리고 다시, 내 아이템으로 성공시키겠다며 창업했다가 회사 다니면서 번 돈 다 날리게 되어서

40살이 되었을 때 거의 무일푼인 상태가 되었어


조각조각 모이다보니 다 합치면 15년 정도 뒤쳐진 삶을 살게 된 거야


그런데도 다시 뭔가를 시작할 용기를 낸 건 인생이 길다는 점 때문이었어


10년 동안 인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 생각해봐 

10년 이면 눈도 잘 못 뜨는 애기가 걷고 말 하는 걸 배우고, 자기 손으로 옷 입는 법도 배우고 학교도 다니고, 

거기서 영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이 정도로 변화하는 게 가능한 시간이야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또 얼마일까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 전문의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하다못해 보통 대학이 4년제인데 4년이면 '무슨무슨 전공' 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되어서 학교를 졸업하는 거잖아


한 달 만에, 1년 만에 인생을 바꾸겠다고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하니까 의욕이 안 생기는데

한 4~5년? 10년 정도로 인생 바꾸겠다고 생각하면 또 어느 정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15년이나 뒤쳐졌는데 여기서 남들 쫓아가겠다고 해 봐야 소용 없으니까 그냥 나만의 속도로 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나는 15년 뒤쳐졌으니까 25살 사회 초년생이다~~~ 생각하고 주어진 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우직하게 일에만 몰두했더니

생각보다  빨리 경제적으로 회복이 되었고 5년안에 빚도 모두 해결하고 집도 마련하게 되었어

일도 이 분야에서 자리 잡게 되어서 이젠 안정적인 상황이 되었어


26살에 대학 들어가고 이후 이런저런 실패가 반복되었던 이유 중에는 그 늦은 6년을 만회하겠다며 

천천히 익히고 성장해야 할 과정을 생략했던 탓이 컸거든

회사도 신입으로 일할 생각보단 어떻게든 경력 만들어서 경력직부터 시작해서 고생했던 거고

사업도 내 또래들 따라잡겠다고 무리했다가 실패한 거고


15년이나 늦어지고 나서야 내가 늦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냥 초보다 생각하고 늦더라고 차근차근 해나가니까 오히려 몇 년이라도 따라가는 게 가능해졌어



4. 출발할 때 필요한 에너지와, 달리고 있을 때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다르다


무기력증 심각할 때 집 청소도 안하고 쓰레기도 안 버리고 집 안이 정말 난장판일 때가 수시로 찾아왔어

어떤 물건은 버려야지... 생각하면서도 3~4년 간 방치되어 있었고, 냉동실에 음식물 쓰레기 넣어놓고 변기에 곰팡이 껴 있고

보면 한숨 나오고 그게 지금 내 모습 같아서 더 우울해지고 

'그래 결국 난 쓰레기야, 이것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는 거봐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집안 풍경 보면서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더 우울해지고 더 무기력해지고

악순환이지


그런데 어느 날 물티슈를 하나 뽑아썼는데 두 장이 달려나온거야

도로 넣기도 그렇고 남는 한 장으로 뭐라도 닦아야 겠다 싶어서 그걸로 리모콘을 닦았어

튀어나온 버튼 옆 사이드도 닦고 건전지 들어가는 입구 홈은 손톱으로 눌러가면서 닦고

편집증 환자처럼 정성스럽게 리모콘을 닦는데 재밌더라고


그래서 한 장 더 뽑아서 다른 리모콘을 닦고, 콘센트 스위치를 닦고 책장 한 칸을 닦고

그렇게 몇 일을 계속 이것저것 작은 공간을 닦아나가게 되었어


언뜻 보면 계속 지저분한 집인 건 맞는데 잘 안 보이지만 

이 집 어딘가에는 내가 미친듯이 청소병 걸린 사람마냥 닦은 작은 물건들이 있다는 사실이 꽤 위안이 되더라

뭐 그런거 있잖아 저 사막 어딘가에 내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며 바라보면 사막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



청소를 하다보니까 깨달은 건데

지저분한 집 전체를 다 치우는 건 엄청난 노동이 맞고 힘든 일이고 큰 각오도 필요한 일이지만

어느 정도 치워진 집을 대충 유지하는 건 꽤 쉬운 일이더라


늘 말끔하고 청결할 필요 없이 그냥 대충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 거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 적당히 쉬운 삶을 위해 한 번 크게 에너지를 써야겠다

마음 먹으면 엄두가 안 나는 큰 일을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


공부도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는 건 힘들지만

어느 정도 올라간 위치에서 그 위치를 적당히 유지하는 건 쉽거든


바닥에서 위로 올라갈 땐 '이렇게 힘든 걸 앞으로 계속 해야 하나?????' 싶을 수 있는데

출발할 때 필요한 에너지와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그걸 지속하는 에너지는 차이가 커서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쉽고 힘도 덜 들어


한 계단 올라가면 쉼터가 있어서 다시 한 칸 더 올라갈 에너지를 거기서 비축하면 되는 거더라고

그래서 힘들 때 '이 고비를 넘기면 거기 쉼터가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게 도움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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