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부모 자식의 난문 퀴즈
그 날 나는, 그 앞에 오랫동안 계속해서 서 있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그 것을 계속해서 보기 위해서 계속해서 서 있어버렸다.
시선을 빼앗기고, 마음을 빼앗겨, 텅하니 비어버린 모든 곳에 흥분과 연심이 솟아 올라 흘러 넘쳤다.
나는 그 날, 또 다시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다.
나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만들어낸 그 한 장은, 지금도 나의 표현 방식의 정 가운데에 남아 있다.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회화 '코로의 아틀리에'의 앞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재 타이틀 '아틀리에 앞에서'는 경의를 담아 여기서 이름을 붙였다.
5월은 신연도에 처음으로 만난 사람, 도전한 것에 익숙해지는 달이다.
그리고, 공연히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친구들이나, 하게 될 취미가 정해지기 시작한다.
다소 잔혹하지만, 매년 찾아오는 소년에서 어른으로의 변모기다.
어른으로 향하는 계단, 그런 5월.
나는 응가. 절대로 자학적인 의미가 아니다.
일의 발단은 어린 시절의 나의 질문.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모두가 통과하는 부모 자식의 Q&A다.
지금에 와서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부모님의 앤서 타임.
짧은 시간의 쓴 웃음...
그거야 그렇지. 아이에게 진실 따위 말 할 만한게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할까. 어떻게 해서든 이 난문 퀴즈에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손을 든 것은 아버지, 앤서 타임.
"엄마가 응가하면서 말야, 힘 줬더니 나왔어".
이어서 어머니, 앤서 타임.
"그렇단다".
어린 나는
"그렇구나! 신기해! (엥, 그럼 나는 응가인걸까. 엄마 아빠도 놀랬겠지, 아, 그래도 형도 있으니까 이미 익숙하겠구나아)"
라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어른의 농담은 나의 진실이 되어버렸다.
그 날 부터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아이를 낳아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공포에 신중해졌다.
그러나 화장실이 싫어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고향이니까.
우리 집 이외의 화장실에 가면 위화감과 함께 향수와도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역시나, 내 고향은 그 곳이다.
변기에 풍덩 하고 들어간 기억은 없을까, 떠올려 봤지만 무리였다.
어느 날, 양친과 함께 쇼핑 하러 가는 차 안에서의 일이다.
백화점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널 필요가 있었다.
강을 경계로 시가지의 모습이 변하며, 시골파, 도시파로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다리가 거의 끝나가는 도시파 입구는, 한때 학교 등으로 바빴던 나에게는 오랜만인 장소였다.
어른스러워 지고 싶었던 나이대, 그럴싸하게도 "오랜만이네" 라는 말이 입에서 흘러 나왔다.
말 하고 나서 바로 우스꽝스러움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너 대체 몇살이야!" 라면서 웃음으로 넘겨주지는 않을까, 양친이여.
이 부끄러움을 걷어 치워줘.
아버지는 말했다.
"잘도 기억하고 있네. 너 주워왔을 때 기억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저 다리 밑 말이지."
땡.
어머니가 이어서.
"무슨 이상한 말 하고 있어. 그만 둬요."
도움을 주지만, 역시나 땡.
나는 생각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이 두사람은 진짜 부모님이 아니야? 그럼, 그 화장실 얘기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부끄러움은 걷어 치워졌다.
아니, 아니다. 그런 커밍아웃을 해서 어쩌자는거야.
나는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주워졌다. 의외로 순순하게 받아들여졌다.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 그런줄 알았다.
황새가 물어 와 준다. 그런 말을 애니메이션의 호랑이 캐릭터도 했었다.
버려진게 아니라 옮겨진거구나.
그 날 부터 화장실은 화장실이 되고, 다리가 고향이 되었다.
가족은 가족인 채였다.
이윽고 진실을 알고, 또 다시 조금 어른이 되었다.
어른은 가끔 거짓말을 한다.
몇일 전,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미안했네" 라며 웃어주었다.
나도 웃었다.
쏙 빼닮은 웃는 얼굴이 이 문제를 종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