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무 생각 없이 일 하고 있다가 카톡이 엄청 울려대서 뭔 일 있나 들어 가 보니 포항에 지진이 크게 났다고 하더군. 삼촌이 그 동네 사시고, 남동생이 출장차 포항 가 있었을 때라 가족톡에서 안부 확인하느라 그랬던 거더라.
그리고 작년 경주, 어제 포항 지진 보면서 한국도 더 이상 자연재해 안전지역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 들기도 하고, 한국에 남아계신 부모님 걱정도 되고 하더군. 그리고 자연재해 많은 나라의 대명사인 일본에 10년째 살면서 겪었던 자연재해들을 되돌아 봤는데 의외로(내 생각보다) 많이 겪은 것 같아 정리를 해 보려 해.
우선 지진.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가 그래도 '지진'은 잘 없는 편이라 (다른 재해는 물론 있...) 사실 다른 지역, 예컨테 도쿄나 오사카 같은 데에서 지진이 크게 났다고 할 때,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2011년 311대지진 때도 실감을 그렇게 많이 하진 못 했어.
2011년 3월 11일 때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 하고 있는데 과장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켜길래 '저 양반이 점심시간에 뭐 잘못 먹었나' 싶었는데, 도호쿠에서 큰 지진이 났다고 하더라. 그리고 TV에서 실시간 중계로 쓰나미가 밀려 오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거대한 파도가 마을로 들이닥치는 장면이었음. 그리고 잠시 뒤에 비춰 진 건, 빠른 속도로 마을을 휩쓰는 검은 파도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하얀 경차. 그 경차를 쫓던 카메라 (아마도 헬기에서 중계)는 파도가 차를 덮치려 하는 그 순간 다른 곳을 비추더라. 그리고 이 장면은 한동안 내 트라우마가 되었음.
그 날은 금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진이 전혀 없었던 나 있던 지역에서조차 퇴근을 해도 되는가(안전한가)를 두고 비상 회의가 열렸고, 비상연락망 확인을 철저히 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보고/출근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퇴근하게 되었지.
그리고 집에 가서 진짜 하루 종일 뉴스만 틀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 화면을 보건 안 보건 그냥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지. 잠을 자려 하면 낮에 뉴스에서 본 그 흰차가 생각나서 바로 잠이 깨고 그랬거든. 또 그 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도쿄에 살았는데, 연락이 안 되어서 걱정이 되었던 것도 있고.
어찌저찌 그 다음 날, 당시 여친하고 연락이 되었는데 하네다였나 나리타였나 여하튼 공항이었고, 한국 돌아갈거라 하더라. 근데 아시아나는 남는 비행기 자체가 없고 대한항공은 한국 가는 편도 표를 13만엔까지 부르는 상황 ㅋ 하지만 (유학생이었던 당시 여친은) 돈이 없어 돌아 갈 수 없는 상황이었음.
송금이 가능한 지도 확실치 않았고, 된다 해도 그 날이 토요일이었기에 언제 받을지 확실치 않았기에 일단 신용카드로 사라 하고 나중에 내가 7만엔 부쳐 줌. (그리고 그 보답은 6년 뒤에 통수로 돌아오지만 뭐 이건 관계 없는 이야기고)
나중에 듣기로는, 대한항공 양아치질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항의를 했지만 '현장발매는 원래 비싸고, 어차피 니들 아니라도 원하는 사람은 많다. 수요와 공급 구조 모르냐'는 식으로 오히려 배를 쨌다고 하더군. 일부 사람은 그 점에 항의하려 외교부, 대사관 등에 전화를 했지만 대사관 외교부 모두 휴일이라고 전화를 안 받음ㅋ 나중에 평일에 전화해서 항의하니 '기업의 정당한 이윤추구 행위에 정부가 개입 할 수 없다'는 개소리 (말은 맞는 말이지만 재해 입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냐...)만 되돌아왔음.
그나마 피해 없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도 워낙에 큰 사건이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영사관, 대사관에 전화 해서 물은 사람들이 많은데, 돌아오는 대답은 '근무시간 끝났으니 나중에 전화하세요'라던가 '저희도 모르는데 어쩌라고요' 라던가 같은 것들 뿐이었지. 난 정말로 이 일을 계기로 한국 정부에 대한 믿음도, 기대도 접었음.
여하튼 2011년 311대지진은 이렇게 지나갔음. 하지만 그 트라우마라는 게 은근 오래 남는 법이라, 뭐라할까, 환진? 실제로는 지진이 아닌데도 괜히 건물이 흔들리는 것 처럼 느껴지는 그런 감각이 한동안 들어서 고생을 했음. 직접적으로 지진을 겪지 않은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이 그랬는데 실제로 지진 겪은 사람들은 어땠겠나... 싶더라.
그리고 작년 봄, 퇴근을 하고 밥 먹고 씻고 나와서 TV를 보고 있는데, 뭔가 흔들흔들거리는 느낌이 들더라고. 또 환진인가 싶어 천정을 보니 천정 등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흔들리더라. '아 시발 지진인가' 라고 생각 한 그 순간, 갑자기 핸드폰 재난 알림이 시끄럽게 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집이 격렬하게 흔들렸음. 진도 5나 되는 지진을 직접 겪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기에 진짜 패닉이었지. 머릿 속으로는 몇 번이나 '화장실/욕실로 가서 숨어야 하는 건 아닌가'라고 생각을 했고, 1차적으로 지진이 멎은 뒤에도 '대피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고민을 했는데, 집을 나선 순간 여진 오면 진짜 끝장이다 싶어서 일단은 집에서 대기하기로 마음 먹었음. 대신 곧바로 욕조에 물 가득 받고, 가방에 생필품/여권/지갑/손전등/비상식량(건빵) 챙기고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게 준비는 해 두었지.
그리고 잠시 좀 잠잠했는데, 그 주 토요일... 피곤해서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눈을 딱 붙이려 할 때 쯤 재난 알림이 시끄럽게 울리더라. 그리고 곧이어 다시 한 번 격렬한 진동... 이전에는 그래도 10시 전후였어서 괜찮았는데 이건 2시 다 된 때 지진이 왔던 거라, 자칫 큰 거 왔었으면 생명 담보 못 하겠다 싶었지. 그리고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음. 잠이 깊이 들지 않더라고. 뭔 소리만 나도 화들짝 깨고...
내가 직접적으로 겪은 지진은 이것 말고도 오사카에 덬질하러 갔다가 캡슐 호텔에서 겪은 거 (새벽 5시경) 정도였던 것 같다...
지진은 저 정도였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겪은 다른 자연재해들은 화산 분화, 그리고 태풍 정도가 있음.
살던 동네가 활화산이 있는 동네였고, 항상 분화야 하는 거라 별다르게 그걸 재해 수준으로 생각 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귀찮기는 했지만) 딱 한 번, 항상 터지는 곳이 아니라 그 부근 다른 화산이 터져서 피해를 본 적이 있긴 하네. 휴화산(요즘은 휴화산이라는 분류 안 한다곤 하더라만) 이었던 화산이 다시 분화를 시작해서 그거 공문 낸다고 공항에서 (덬질하러 휴가내고 다른 동네 가는 날 분화 시작ㅋㅋㅋㅋㅋ) 그거 번역하게 되질 않나, 돌아오는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서 피같은 월차를 하루 더 쓰게 되질 않나...
마지막으로 태풍... 나 살던 현 남부에 위치한 섬이 태풍 직격을 맞아서 산사태가 크게 나서 주민들 고립되고, 그거 복구작업 한다고 우리 과 사람이 몇 명 차출되어 가서 일이 늘어났던 적도 있고, 나 살던 동네에 태풍 직격해서 나뭇가지 날아 와 우리 집 베란다 유리창에 금 간 적도 있네... 신문지 붙여놔서 큰 일은 없었다만... 아, 이것 때문에 피같은 돈 3만엔 가량이 날아갔음.
그 외에 자잘자잘한 자연재해가 많긴 했는데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만 끊어야 할 것 같다.
포항에 더 이상 여진 없길. 피해 확산 없기를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