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에 올리는건 여기까지!
그 외에도 사야카가 기타리뷰 노래리뷰 이런거 한게 있는데 같이 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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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 올려놨거든! 관심있으면 이걸로 보는것도 괜찮을거야
목차
1. 야마모토 사야카 롱 인터뷰 솔로 데뷔부터의 10년을 말하다 (솔로데뷔 ~ NMB48 졸업 전)
2. 야마모토 사야카 롱 인터뷰 솔로 데뷔부터의 10년을 말하다 (NMB48 졸업 후 ~ 코로나 이전)
3. 야마모토 사야카 롱 인터뷰 솔로 데뷔부터의 10년을 말하다 (코로나 이후 ~ 휴양기간)
4. 야마모토 사야카 롱 인터뷰 솔로 데뷔부터의 10년을 말하다 (휴양 이후)
5. SUPER 10 대담 PART 1 WITH 카메다 세이지
6. SUPER 10 대담 PART 2 WITH 스가 시카오
7. SUPER 10 대담 PART 3 WITH 다카하시 미나미
8. SUPER 10 대담 PART 4 WITH 스즈키 아이리
9. SUPER 10 대담 PART 5 WITH 진나이 토모노리
10. SUPER 10 대담 PART 6 WITH 사이토 나기사
11. SUPER 10 대담 PART 7 WITH 붓코로 모모카(키노시타 모모카)
12. SUPER 10 대담 PART 8 WITH 시부야 나기사
13. SUPER 10 대담 PART 9 WITH 팀SY
14. SUPER 10 대담 PART 10 WITH 부모님
SUPER 10 대담 PART 10
WITH 부모님
― 기념할 만한 솔로 데뷔 10주년을 맞아 귀중한 부모님과의 대담이 성사됐습니다.
어머니「어제는 새벽 3시 반까지 계속 이야기했어요(인터뷰는 일본 무도관 라이브 다음 날). 감동했으니까 좋았던 부분도 이야기했고, 조금 실수한 부분은 제대로 지적도 하고(웃음)」
아버지「무도관은 역시 특별한 장소였어요. 제가 에이짱(야자와 에이키치)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에이짱이 무려 160번이나 라이브를 한 곳이기도 하고요. 어제는 처음부터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야카도 그렇지만 팬분들의 열기도 처음부터 굉장해서, 압도돼서 눈시울이……」
야마모토「해가 갈수록 눈물이 많아지고 있어(웃음)」
아버지「맞아 맞아, 해가 갈수록(웃음)」
야마모토「라이브에는 정말 자주 와주시지만, 부모님에게도 무도관은 역시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불안하기도 했지. 괜찮을까, 관객석이 꽉 찰까 싶어서」
어머니「무도관 공연이 처음 발표됐을 때는 불안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최근 사야카를 보면서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아무것도 저희가 먼저 묻지는 않아요. 관객 동원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고, 사야카 본인도 별로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아버지「저는 엄마랑은 또 다르게 계속 불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본인한테 말하지는 않지만 제가 직접 X 같은 데서 티켓 상황을 검색하면서, 팬클럽 회원인데도 아레나석을 못 구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보고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 두 분 모두 걱정을 많이 하셨군요.
어머니「저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노래할 때도 못 보거든요」
야마모토「제 일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도 엄청 중요한 장면인데 못 봐요(웃음)」
아버지「2아웃 만루에 한 방이면 역전인 상황에서도 ‘못 보겠어~’ 하면서 어디론가 가버려요(웃음). ‘여길 봐야지!’ 하는 장면을 안 봐(웃음)」
어머니「그 순간 결과를 놓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나중에 안심하고 보면 되니까요. 조마조마한 걸 좀 못 견뎌서」
아버지「옛날부터 그랬지」
어머니「특히 초창기 솔로 무대는 정말 두근거림밖에 없었어요. 실수할까 봐 걱정되고 또 걱정되고.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걱정이 거의 없어져서 안심하고 볼 수 있어요」
― 부모님이 그렇게 걱정하신다는 게 사야카 씨에게도 전해지나요?
야마모토「전해지죠, 전해져요! 특히 엄마한테는 걱정된다, 걱정된다는 말을 계속 듣거든요. 라이브 전에는 저보다 더 긴장하니까요(웃음)」
어머니「솔로가 되고 지금의 스태프분들에게 사야카를 맡기기 전까지, NMB 시절에는 제가 매니저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아침에 깨우고,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것부터 모든 일에 관여했어요. 그런데 솔로가 되면서 그런 관여가 한꺼번에 없어지니까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성장했다는 말을 부모가 하는 것도 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요」
― 솔로 데뷔 10주년을 맞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기분인가요?
어머니「그저 기뻐요. 처음에는 불안하기만 했으니까요」
아버지「그전까지는 그룹에 있었으니까 사야카 팬도 있고 다른 멤버 팬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솔로가 돼서 사야카 팬만 남았을 때 괜찮을까~ 싶었어요. 아이돌에서 뮤지션이 된다고 해도 이전 이미지가 금방 사라지는 건 아닐 테고. 편견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봤자 아이돌이잖아’ 하는 시선도 있지 않을까 싶었고」
어머니「아이돌로서의 사야카를 좋아했던 팬분들이 방향성이 달라지는 걸 받아들여주실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다고 생각해서 떠나실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그걸 잘 넘어온 것 같아요」
야마모토「뭐~ 저도 그건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이야기도 평소에 했으니까」
아버지「했었지」
어머니「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자매까지 다 같이 이야기했지」
야마모토「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혼자 고민했다는 느낌은 없어요. 그리고 그런 점까지 다 알고 싱어송라이터라는 길로 나아간 거라, 저로서는 걱정을 받고 있긴 하지만 예상했던 범위라고 해야 하나」
어머니「그런데 한 번 위태로운 시기가 있었어요」
아버지「활동 쉬었을 때지」
어머니「앞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요. 그 시기는 정말 걱정됐어요. (활동 중단 전) 몸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고베 라이브(2021년 10월 21일 고베 국제회관)는 어떻게든 해냈거든요. 그때는 아직 도쿄(같은 해 11월 18일 TOKYO DOME CITY HALL, 당시 명칭. 현 KANADEVIA HALL)도 남아 있었고 마지막은 오사카(12월 15·16일 그랑큐브 오사카에서 예정됐으나 활동 중단에 따라 취소)였으니까, 힘들어도 이 투어(『SAYAKA YAMAMOTO TOUR 2021 ~ re ~』)는 끝까지 해내려나 싶었어요. 그런데 도쿄 라이브에서 노래를 조금 못 하게 됐고. 아마 그때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도쿄 라이브가 시작되는 순간 ‘어? 평소 라이브랑 분위기가 다른데’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머니「시작하는 순간 얼굴이 달랐어요. 그래서 이상하다 싶었죠. 그 뒤로 한동안은 계속 걱정했어요. 그래도 그걸 극복한 게 무도관으로 이어진 거니까, 그 시기를 정말 잘 넘어왔다고 생각해요.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나네……」
― 그리고 일단 본가로 돌아가셨죠.
어머니「형제자매들도 다 모여서 힘이 되어줬지」
아버지「좀 천천히 쉬면 되잖아, 여행도 갈 수 있으면 기분 전환도 되고 좋잖아 하고. 그렇게 안에서부터 좋아지다 보면 몸도 좋아지겠지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그게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 정말 사이가 좋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예전부터 계속 그랬나요?
어머니「계속 사이가 좋았어요」
아버지「안 좋았던 적이 없지」
야마모토「가족 이야기를 하면 여러 사람한테 자주 들어요. 정말 사이좋다고」
아버지「LINE 같은 건 장난 아니야. 잠깐 안 보고 있으면 안 읽은 메시지가 200몇 개씩 쌓여 있어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싶다니까」
야마모토「야마모토 집안 전원이 들어가 있는 단체 LINE방이 있거든요」
아버지「중간까지 보다가 그만둬요. ‘이제 됐다’ 하고(웃음)」
야마모토「다 같이 이야기한다기보다 두 명끼리 대화하고 있을 때도 있고요. 제가 엄마한테 할 말이 있으면 ‘@엄마’라고 멘션하고」
어머니「그러면 거기에 다들 한마디씩 보태는 식으로. 그게 매일이에요」
아버지「주고받는 메시지가 많기만 한 게 아니라, (손가락을 10cm 정도 벌리며) 이렇게 긴 장문도 오고」
야마모토「게다가 새벽에도 꼭 누군가는 깨어 있으니까」
어머니「24시간 돌아가지」
아버지「자고 일어나서 LINE을 보면 새벽 3시 반이나 4시에 대화를 하고 있어서 ‘잠은 안 자냐!’ 싶어요(웃음)」
― 그 대화에 부모님도 참여하실 때가 있는 거죠?
야마모토「아빠는 별로 안 하지만요」
아버지「나는 별로. 가끔 참여하면 다들 완전히 무시해(웃음)」
어머니「얼마 전에는 드웨인 존슨 사진 보냈잖아. 다들 무시했지만」
야마모토「그런 일이 있었어?」
아버지「있었지! ‘나랑 닮지 않았어?’라고 써서 보냈다고!」
야마모토「안 닮았어(웃음)」
―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좋은 건가요?
어머니「그게 제 유일한 바람이니까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설날과 오봉에는 반드시 온 가족이 함께 가족여행을 갔어요」
아버지「그게 야마모토 집안의 규칙 같은 거였어요. 애들도 고등학생쯤 되면 친구들이랑 놀러 가고 싶잖아요. 그래도 먼저 가족 일정을 확인하고 가족 일정을 우선해요. 그런 건 있었죠」
― 반항기는 없었나요?
어머니「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어요」
아버지「귀여운 정도였지」
어머니「다만 남편도 성격이 급하고, 아이 넷이 점심에 각자 다른 걸 먹고 싶다고 한다든가 그런 사소한 트러블은 많았어요. 그래도 어쨌든 설날과 오봉에는 온 가족이 여행을 간다는 걸 당연하게 만들어놓은 덕분에, 아무리 싸워도 오봉과 설날은 가족을 위해 비워둬요. 그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지금의 가족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게 제 가장 큰 바람이니까요」
야마모토「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마음이 정말 컸구나, 이게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사이가 나쁘지 않아도 여행을 안 가는 가족도 있을 테고, 가족 단체 LINE방이 없는 집도 있을 테고. 지금처럼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건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앞으로도 소중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 사야카 씨를 보면서 자신과 닮았다고 느끼는 건 어떤 부분인가요?
어머니「많아요」
야마모토「일단 걱정이 많고 사소한 것도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 닮았죠」
어머니「예민한 편이지~」
야마모토「그래서 정말 사소한 게 신경 쓰여서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어머니「나도 사야카도 낯을 많이 가리잖아」
야마모토「저는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요. 그래도 인간관계를 신경 쓴다든가 그런 부분은 엄마한테 물려받았구나 싶어요. 아빠는 싫은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엄청 화를 낸 다음 날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있고, 아예 없었던 일이 돼버리거든요(웃음). 그런 게 부럽기도 하지만」
어머니「남자와 여자의 차이도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그것도 있겠지. 여행 전날 엄청 화내고 있어도 여행 가는 날에는 잊어버려」
야마모토「화를 낸 쪽이니까 그렇지. 화를 당한 쪽은 안 잊어(웃음)」
아버지「사야카랑 닮은 건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가」
야마모토「아빠가 지기 싫어해?」
아버지「친구들이 자주 그래」
야마모토「아빠가 승부욕이 강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아버지「아니, 꽤 승부욕이 강한 것 같아. 그런데 내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 친구들이 그래. ‘너는 여기서는 절대 안 꺾이네, 포기 안 하네’라고」
야마모토「확실히 양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고집은 있을지도 모르겠네. 좋든 나쁘든 저도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어요」
어머니「사야카는 승부욕이 강하다기보다 인내심이 강하다는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아이의 그런 부분을 살려주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계속 했었죠」
― 솔로 데뷔 10주년을 맞았는데,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모습을 상상하셨나요?
어머니「어린이집 학부모님들도 ‘이 아이 눈을 보니 뭔가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긴 했어요」
아버지「눈빛이 굉장히 강하다고」
어머니「그래서 다섯 살쯤 처음으로 무슨 오디션에 데려갔어요. 그런데 저랑 같이 앉아 있다가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어봐도 울면서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는 거예요. ‘낯을 많이 가리네, 이건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도 부모라면 아이한테 뭔가 하나쯤은 배우게 해주고 싶잖아요. 제가 음악이나 춤을 좋아하기도 했고 마침 댄스가 유행하던 때라 ‘언니랑 둘이서 춤 배워볼래?’라고 했어요」
야마모토「음악은 가족 모두 좋아하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라이브에도 데려가 줬고」
어머니「『a-nation』 같은 데도 갔었지」
아버지「큰오빠가 기타를 쳤으니까, 그걸 보고 사야카도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됐고」
― 노래는 어릴 때부터 잘했나요?
어머니「솔직히 노래에 소질은 없었어요. 목소리가 엄청 거칠었거든요」
아버지「노래하는 걸 듣고 ‘춤은 그럭저럭 하지만 노래는 100% 무리겠다. 불쌍하네~’ 싶었어요」
야마모토「멋대로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던 거야(웃음)」
어머니「그때 노래하는 영상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어디선가 공개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야카는 싫겠지」
야마모토「딱히 싫진 않아. 노력하면 노래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지금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잖아(웃음)」
어머니「그러고 보면 NMB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말 여러 오디션을 봤지. 배우 계열 소속사에도 지원했고,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에도 나갔고」
아버지「NMB에 들어가기 전 밴드에서 좌절했을 때 ‘역시 연예계는 힘든 곳이구나, 생각이 너무 안일했구나’ 싶었어요. 그러고 NMB에 지원했고. 고민했었지, 합격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야마모토「합격하고 고민한 게 아니라 최종 심사가 다른 오디션이랑 겹쳤던 거야. 그건 고민했지만」
― 고민 끝에 최종 심사를 받고 NMB48의 멤버가 되어 에이스로 활약했고, 캡틴으로서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아버지「NMB에 들어갈 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까 ‘오사카에서는 아이돌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쓰여 있어서 ‘이번에도 안 되겠지’라고 생각해버렸어요. 그런데 NMB가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면서 이번에는 위로 올라갈 수 있으려나 싶었죠」
어머니「그전까지 고생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NMB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건 기뻤어요. 어린 시절부터 해온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모든 게 다 활용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버지「홍백에서 1위 했을 때는(2016년 홍백가합전에서 진행된 『꿈의 홍백 선발』), (주먹을 치켜들며) 이런 식으로 집에서 완전히 난리를 치면서 봤어요」
어머니「다 같이 난리였지」
야마모토「뭐야, 난리라니(웃음)」
아버지「완전히 축제 분위기였지(웃음). ‘당연히 1위지~!’ 이러면서(웃음)」
― 솔로 데뷔 후 10년 동안 많은 곡이 탄생했는데, 두 분이 특히 좋아하는 곡을 알려주시겠어요?
어머니「다 좋아하지만 『레인보우 로즈』는 특히 애착이 커요. 팬분들을 향한 마음을 쓴 곡인데 처음 들었을 때 펑펑 울었어요. 그 곡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사야카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이치린소우』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한번 활짝 피어난다는 그 가사. 큰일이네, 큰일이네…… 눈물 날 것 같아(눈가를 훔친다). 그 가사가 마음에 와닿아서 ‘이 세계에서 계속 열심히 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했어요」
야마모토「‘계속 열심히 하면 되잖아!’라니(웃음)」
어머니「그거지. 모두에게서 떨어져 나와 혼자 열심히 해나가는 사야카의 심정을 노래한 거라는 거지(웃음)」
아버지「맞아 맞아. 진짜 좋은 곡이니까 웃을 이야기는 아닌데(웃음). 항상 『이치린소우』를 들으면 울컥해. 그래서 제일 좋아해」
야마모토「그렇구나. 처음 들었는데, 마음이 전해졌다는 거네」
어머니「『이치린소우』는 오키나와에서 라이브 투어 마지막 공연을 했을 때 가사를 잊어버려서 무대 뒤에서 사야카가 울었지」
야마모토「실수는 참 잘 기억하네(웃음)」
어머니「다시 불러서 완벽하게 불렀지만」
아버지「엄마가 그런 부분은 꽤 엄격하게 보거든요. 같이 라이브를 보러 가서 옆에 있으면 ‘아, 가사 틀렸다’ 같은 말을 하니까(웃음)」
어머니「그 순간 사야카와 같은 마음이 돼버리는 거예요. 지금 정말 힘들겠다, 속상하겠다 하고. 사야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런 마음이 들어요」
― 10주년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하길 바라시나요?
아버지「욕심을 부리자면 전국 어디에서든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알 정도로 활약해줬으면 좋겠어요. 음악이든 어떤 분야든」
어머니「사야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대로, 무리하지 않으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아직 걱정은 되지만요」
아버지「그렇지」
야마모토「두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 제대로 자립해서 살고 있다는 자신 있어」
어머니「지금은 본가에 와도 집안일을 다 해주잖아」
아버지「혼자서 척척 일어나기도 하고」
어머니「옛날에는 깨워주면 화냈잖아. 지금은 본가 일도 해주고 자기 일도 전부 알아서 하고.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아!」
아버지「안심이지!」
어머니「사야카 집에 가도 주먹밥도 만들어주고, 잘 곳이랑 목욕할 준비도 해주고」
야마모토「엄마가 해줬던 거니까 똑같이 돌려주는 것뿐이에요」
아버지「어른이 됐네~」
― 앞으로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야마모토「저한테 기쁜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이나 좋은 일이 생기면 바로 가족한테 이야기하는데, 그건 가족이 가장 기뻐해주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효도라는 의미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일로 무언가를 이루거나 계속 결과를 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헝그리 정신을 잃지 않고 해나가고 싶어요. 아직 한참 먼 이야기가 되겠지만 부모님 간병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어머니「사야카가 간병해줄 거야?」
야마모토「언니는 무리잖아(웃음)」
어머니「성격상 그렇지(웃음). 그래도 사야카가 간병해준다면 안심이야. 다만 아빠도 엄마도 네 명의 아이들에게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는 노후를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어」
아버지「노후에 폐를 끼치면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게 될 것 같으니까」
어머니「당신은 할 거잖아(웃음)」
―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어머니「먹는 것에 너무 스토익한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어요. 본가에 와도 별로 안 먹으니까. 사야카가 스스로 정해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걱정은 되죠」
야마모토「그 말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데. 가족끼리 밥 먹을 때도 엄마 안 먹고 있잖아」
어머니「그건 나중에 천천히 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다들 먹고 있을 때는 다 같이 왁자지껄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야마모토「우리는 엄마도 같이 왁자지껄하면서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버지「식사에 대해서는 진짜 먹고 싶은 걸 먹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해요. 너무 스토익해서 가족여행을 갔을 때도 단식 중이라고 사야카 혼자 가이세키 요리를 안 먹었다니까요!」
어머니「사야카 몫의 음식은 다른 가족들이 나눠 먹고 사야카는 채소 스무디만!」
아버지「온 가족이 ‘뭐 하는 거야!’ 했어요. 요시모토 신희극처럼 다 같이 뒤로 넘어질 뻔했다니까요. ‘하필 오늘?’ 이러면서(웃음)」
어머니「온천이랑 낚시는 즐겼지만」
아버지「낚아도 단식 중이니까 잡은 물고기도 못 먹어!」
야마모토「지금은 식사에 관해서 그렇게까지 스토익하진 않지만」
― 이 자리에서 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말은요?
야마모토「자기 몸을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하니까 제대로 자기 몸과 마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버지「회사 건강검진은 받고 있어」
야마모토「종합검진도 받으세요」
어머니「아빠는 열에 약하잖아. 37도만 돼도 끙끙대고. 옛날에 놀러 갔다가 독감 걸려서 드러누워서는 난리였잖아」
야마모토「드러누운 거야, 난리를 친 거야, 어느 쪽이야?(웃음)」
아버지「비 오는 날 친구들이랑 다 같이 카트 레이스를 하러 갔는데 비가 엄청 쏟아져서 다들 이제 그만하자고 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나는 ‘바보야! 저 녀석한테 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만둬!’라고 하면서 계~속 달렸더니 집에 돌아와서 고열이 났지」
야마모토「부끄러운 이야기네(웃음)」
어머니「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아버지「일도 진심, 노는 것도 진심! 그게 야마모토 집안의 모토니까!」
야마모토「그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