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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미팅인줄 모르고 단체 미팅 다녀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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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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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하는 덬이야. 

이직하며 새로운 환경(다른 동네로 이사옴)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지금까지 쌓아 온 인간관계가 아주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을 한 번 겪고,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이대로 가다간 30년 내로 일본 신문에 이름 실리겠구나 (고독사 한 뒤 2주만에 발견된 독거노인 외노자라던가..) 싶어서 억지로라도 친구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이래저래 움직이고 있어.


그나마 한국 있을 때는 서로 취미 맞고 취향 맞는 사람들끼리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환경 (카페라던지 커뮤라던지)이 잘 갖추어져 있어 크게 불편한 걸 못 느꼈는데, 일본은 철저하게 오프 중심, 그것도 들어가려면 소개를 받아 들어가거나 (친목위주), 혹은 상당히 비싼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 (뭔가를 배운다던가) 터라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고 신중해지더라고. 집 근처 테니스클럽, 복싱도장, 크로스핏이 전부 1일 체험 (이지만 체험료 500~1000엔)이 가능해서 가 봤는데 레슨 시간이 회사 칼퇴하고 가도 안 맞거나 칼퇴하고 부리나케 뛰어가야 겨우겨우 맞는 터라 포기...


마침 회사에 외부활동 활발히 하는 친구(한국인)가 하나 있어서 그 친구에게 비결(?)을 묻는다 해야하나, 조언을 좀 구하려고 말을 걸었더니 이 친구 왈 '형 이번 주 주말에 동물원 소풍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나야 뭐 감사합니다 하고 가기로 했지. 참가비 (3천엔)를 내고 비가 안 오길 바라며 일요일을 기다렸음.


그리고 일요일 (어제) 약속시간에 맞추어 동물원 입구에서 회사 동료를 기다렸고, 회사 동료도 금세 합류했지. 그런데 이 친구가 나랑 합류한 뒤에는 그냥 계속 폰만 보고 있더라고. 난 당연히 이 친구 아는 사람들하고 함께 소풍을 가는 거라 생각을 했었기에 이 친구가 다른 사람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내심 좀 당황했음. 물론 아직 사람들이 안 왔을 수는 있지만 약속시간 5분 남기고 단 한 명도 안 왔다는 게 좀 이상하잖아.


그리고 약속시간이 되고...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쪽으로 와서 설문같은 걸 받으려 하시길래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했는데, 이 친구는 그거 받아서 설문을 쓰고 있더라고. 뭐하냐고 했더니 '형도 빨리 써요. 이거 참가신청이에요'라며... 그래서 아까 그 아주머니한테 설문지(?)를 받아 찬찬히 읽어보니 '街コン' 참가신청서... 


이야... 일본 지방도시들 청장년층 모자라고 혼인율, 출생률 낮아서 '만남의 기회'를 넓히기 위해 지자체, 관련 회사들이 활발하게 '마치콘'을 열고 있다는 건 뉴스에서 봐서 알고 있었는데 설마 내가 그 '마치콘'을 하게 될 줄이야...


아, '마치콘'이 뭐냐면... '마을'이라는 뜻인 '마치'와 '미팅'이라는 뜻을 가진 '고콘'의 합성어... 쉽게 말 해 마을/지자체가 주선해서 여는 대규모 미팅 (지방도시 청장년들을 결혼/연애 하게 만들기 위해)인데, 그게 한동안 사회현상 수준으로 유행하고 나서는 결혼정보회사, 미팅 전문회사(?)에서 또래 남녀들 모아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미팅을 뜻해. 다시 말 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물원 미팅'에 나가게 된 거란 얘기지. 나중에 (어제 집에 돌아와서) 이 사이트 찾아보니까 별별 '마치콘'이 다 있더라고. 동물원 함께 가기, 수족관 함께 가기, 스포츠 경기 함께 보러 가기, 점심먹기, 카페에서 수다떨기, 함께 클라이밍/워킹/러닝 하기 등등등... 물론 오소독스한 미팅 형식도 있고. 신세계를 본 느낌...


여하튼, 어제 동물원으로 화제를 되돌려 보자.

입구에서부터 살짝 패닉에 빠진 나는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동물원에 입장했어. 사실 한국 살 때도 '미팅'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소개는 몇 번 받아봤으나, 대부분 나는 여자친구를 나 스스로 사귀었기에 미팅을 해 본 적 없음.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들도 그닥 잘난 놈은 없어서 미팅 주선할 깜냥 있는 놈도 없었고.) 괜히 '미팅'이라고 하니까 앞에 있는 여자분들이 무서워 보이기도 했고. 뭐라 해야하지... 나는 친구/인맥 만들려 온 건데 오늘 이야기가 잘 통하거나 하면 사귀어야 하는건가? 하는 부담감이랑 나중에 커플맺는다면 아무도 나 선택 안 해 줄텐데 괜찮으려나? 하는 초조함 뭐 그런 복합적인 생각 때문에 무서워 보였던 것 같아.


그런 불안한 내 마음은 아는 지 모르는지 이벤트가 시작되었어. 남자 9명 여자 10명이 각기 세 팀 (핑크, 녹색, 파랑팀)씩 나뉘어서 각각 30분간 동물원을 산책하고 집합장소로 모여서 팀을 바꾸는 형식이었지. 예를 들어 처음엔 핑크 남자팀 + 핑크 여자팀으로 30분, 집합한 뒤 핑크 남자팀 + 녹색 여자팀으로 30분, 집합해서 핑크 남자팀 + 파랑 여자팀으로 30분 이런 식. 


아무래도 낯가림도 좀 있고, 이런 상황에 익숙치 않은 것도 있어서 처음에는 자기소개만 하고 천천히 동물들 보면서 걷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같은 팀 여자분 한 분이랑 의기투합해서 같이 산책을 하게 되었어. 뭐, 이런 데 (전제부터가 '결혼'이기에 아무래도 참가자 연령대가 좀 있는 것으로 앎) 오기에는 어린 친구 (25살)이고, 나랑 나이 차이도 9살이나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라고. 같은 팀 다른 남자분들 (회사 동료랑은 다른 팀 됨)은 다른 여자팀원들에게 이것저것 묻는 모양이던데 난 그냥 그 여자분이랑 둘이 (그 여자분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던 듯 ㅋㅋㅋ) 그냥 따로 나와서 나랑 동물보면서 동물 얘기함.


그리고 팀이 바뀌고, 나 말고 다른 두 남자들은 전체적으로 좀 어리고 귀엽게 생긴 여자들에게 붙어서 이것저것 캐묻고 있길래 그냥 나는 혼자, 혹은 좀 소외(?)된 여자분들이랑 같이 동물 보면서 유유자적하게 공원 산책 했지. 도중에 한 누님께서 '어린 애들이 이런 데 왜 오는 지 모르겠다'고 화 내시기도 하고, 한류 드라마 나 한류스타 얘기로 신나서 떠들기도 하고 ㅎㅎ 빅뱅 탑 좋아하시던 누님... 도 계셨는데.. 아...


그렇게 이벤트가 끝나고 전원이 다시 입구 부근에 모여서 '프리 타임'을 가졌어. 프리 타임은 남자들이 여자들 있는 데로 가서 팀별로 마지막 어필?을 하는 시간.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이벤트가 매칭 (내가 처음에 걱정했던 '커플 맺기')은 없는 이벤트라는 점이었지.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연락처 따 내려하는 것 같던데, 사실 딱 봐도 여자분들 역시 이 날 참가한 남자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 없어보이고 살짝 따분해 하는 것 같길래 난 그냥 아까 얘기 통하던 여자분들하고 못다한 얘기나 나눴지. 장근석 얘기도 하고, 한국 여자들은 왜 그렇게 예쁘냐(...)는 얘기도 하고, 한국 가 본 적 있다부터 신라면 맛있다는 얘기까지.


프리타임까지 전부 끝나고, 회사 동료랑 다시 합류해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데 입구 부근에서 아까 얘기가 잘 맞던 여자분 (처음에 같은 팀이었던)을 만났음. 때마침 가는 길이 같길래 가는 길에 셋이서 밥을 먹기로 했어. 지하철 역 부근까지 와서 함께 밥을 먹고 두 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가 해산하는 길에 연락처를 주길래 받아 왔다. 사는 곳이 우리 회사 근처라 가끔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


결론적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난생 처음 생각지도 못했던 미팅을 나가게 되었는데, 어찌저찌 하다보니 지인이 생겼다! 는 얘기. 예전에 다른 글에서 '새롭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만든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려다'고 쓴 적이 있는데,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한 걸음은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ㅎㅎ) 뗄 수 있었던 것 같아. 인간관계 형성의 재활훈련에 들어갔다고 해야 하려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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