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곳도 따로인 반지하 단칸방에 5식구가 살았고, 아빠는 그런집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월급도 잘 안갖다 주다가 집을 나갔음 엄마는 너무너무 희생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지만, 망한 부잣집 딸이 남자에 눈멀어서 사고쳐 결혼한 케이스라 생활력 제로였음
보통 이런 경우에 큰 딸들 한탄글 올라오면 빨리 너라도 탈출해라 이러는데 사실 나만 생각하면 그게 맞긴함 나도 그랬으면 지금보다 더 잘살았을 거라고 생각해 근데 나는 그러질 못했음 그래도 희망적이었던건, 엄마가 경제적으론 무능하지만 인격적으로는 훌륭한 분이셨던 거. 주위에서 다들 무슨 인문계냐 빨리 돈벌게해라고 하셨을때 어떻게든 대학 가면 또 다니는 방법이 있다고 인문계 보내주시고, 엄청 검소하셨고, 그리고 3남매인데 셋 다 성실하고 사고 안치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거임
대학교 다니는 내내 과외 동시에 3개씩 하고 장학금 유지할만큼 성적받느라고 잠 줄이면서 살았지만 덕분에 무사히 졸업해서 대기업 들어갔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동생들 학비랑 생활비를 댔음. 내 밑에 동생들도 다들 대학 그렇게 다녀서 셋 다 졸업했고..근데 내가 취업만 생각하고 공대를 들어간거라 몇년 다니다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미치겠더라고 대기업이긴한데, 공장이 시골에 있어서 기숙사에서 살았거든 직원이 수천명인데 대졸 여사원은 3명이었음..남초 공장 생활이 성격에 안맞는걸 그때 알았어
우울증까지 오니까 엄마가 이제 니가 안벌어도 동생들도 곧 취업하고 우리 굶지는 않으니까 하고 싶은거 하라고 등 떠밀어 주셨음 그래서 퇴직하고 다시 약대를 들어갔어. 그 동안 번 건 다 생활비로 썼으니까 돈이 없어서 그냥 인강들으면서 공짜인 동네 도서관에서 공부해서 다시 전액장학금으로 약대 들어가서 또 반복했지 뭐 과외하고 밤새 공부하고 .. 그 동안 동생들도 공기업 들어가고, 자격증 따고, 나는 약사되고 셋이 모아서 빚도 다 갚고 엄마 빌라지만 집 한채 사드리고 결혼도 했어 엄마도 여전히 가난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드리는 용돈이랑 노인연금 이런것들로 그럭저럭 살만하시다고 하고
어릴땐 아빠가 너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 셋 다 학원 한 번 못가도 다 좋은 대학나와서 공기업/전문직 하게 된 것도 어쨌든 좋은 머리랑 괜찮은 외모를 물려준거니까라고 생각하고 이젠 그냥 남처럼 생각함
무조건 버티란 얘기는 아님 솔직히 엄마가 자식들한테 힘들게 키웠으니까 이제 호강시켜달라고 하거나 삼남매 중에 하나라도 철없이 공부 안하고 돈을 허투루 쓰거나 한 명이라도 나라도 탈출해서 잘 먹고 잘살겠다고 나갔으면 남은 가족들은 계속 빈민이었을거야.. 근데 만약, 가족들이 모두 성실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 몇년간의 희생은 그만큼 돌아온다고 생각해.. 만약 내가 보통수준의 집안에서만 태어났어도 장학금 고민 안하고 그냥 붙었던 의대 포기 안했겠지.. 결혼하고 싶었지만 집안 문제로 포기했던 연애..이런 거 생각날 때도 없진 않음 그래도 우리 남은 가족, 엄마랑 동생들이랑 이렇게 그럭저럭 빈민에서 서민~중산층까지 올라와서 얼굴보고 웃으면서 사는것 자체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