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연을 빼놓고 내 인생을 논할 수 없다." 스물 하나 은중은 상연과의 재회 후 남자친구인 김상학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김상학이 답하듯 은중에게 상연은 유달리 친한 사람은 아니다. 은중에게는 나미가 있었고 이후 나이대가 변함에 따라서 은중의 주위에는 이름과 얼굴이 바뀐 친구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은중의 생에 있어서 상연은 특별하다. 은중의 서사 속에 상연은 상연인 채로 색을 바꿔가며 은중의 곁에 존재한다. 처음에는 눈이 가는 동경의 대상으로, 아빠의 부재를 위로해준 윤현숙 선생님의 딸로, 첫사랑이자 사진을 알려준 천상학의 동생으로. 그렇기에 은중에게 상연은 친한 친구기도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은중은 좋은 사람이다. 나의 생애 속에서 상연은 은중을 아낌없이 주는 또 받을 줄도 아는 사람으로 평한다. 그리고 4회에서 그런 은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상연의 재능에 부러움을 느끼고, 상연의 괴리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은중이 떨어트린 휴대폰을 줍고는 옷에 닦아서 돌려주는 상연의 다정함에 저금통을 깨고 자전거를 팔아서 동거할 집을 구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이해자가 되지 않는다. 이해는 타인의 사정을 헤아려서 받아들이는 공명의 행위지만, 사람은 타인의 울림에 마음을 맞추기 보다는 자신의 주파수로 세상을 듣는다. 은중은 상연의 진심이 궁금하다고 했다. 상연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이해하지 못했다.
상연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여겼으나 은중에겐 다정한 윤현숙 선생님이었음으로. 상연은 오빠가 자신때문에 죽었다 여겼으나 은중에겐 상학 오빠의 안타까운 죽음이었음으로. 넌 이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너희 엄마랑 너 같은 줄 아냐고 울먹이는 상연은 애처롭다. 은중의 행동은 상연과 선생님을 생각해서 한 말이나, 겪지 않지 않은 슬픔은 가볍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부딪힌다.
그들이 엮이는 일생 속에서 은중은 상연을 이해 하고 싶었고 상연은 은중에게 이해 받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푸는 은중과 필요할 때는 침묵을 택하는 상연은 공명되지 못한다. 상연의 이해받지 못한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이해에 실패한 은중은 기다림을 택하며 다시 어긋난다.
마흔 셋, 죽음을 앞둔 상연이 은중에게 찾아온다. 상연은 '나의 생애'라는 정답 해설지를 건넨다. 은중은 그제야 상연의 마음을 알게 된다. 은중이 상연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나는 모르겠다. 다만 은중은 상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누군가의 울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같은 파동으로 진동하게 될 것이다. 이해의 시작은 이해하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 우리 인사는 여기까지 하자. 고마웠어, 너무.
- 같이 가달라고 해. 반대로 말하지 말고. 내가 같이 갔으면 좋겠지?
- …응.
은중은 머뭇거리는 자리까지 끌어안는다. 상연이 드디어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로 들어가는 순간. 이해의 실패를 통과해 도달한 공명의 장면. 은중이 상연을 수용할 때 드디어 상연은 자기자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은중은 이해의 갈증에서 벗어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은중과 상연>을 본 세상의 모든 은중과 상연이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사기를.
덤1: 원래 상연이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엄청난 장문으로 리뷰를 쓰고있었음 그런데 그건 수용이랑 안맞는거 같아서 과감하게 패스
덤2: 같이 가달라 했으면 좋겠지?-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정작 저 장면은 많이 드러낸 장면이라 원본도 궁금해...ㅜ
덤3: 드라마보고나서 각자시점으로또보고 아무한테도이입안하고 한달간 회차당5번은 본듯...이제 그만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