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하트셉수트 - 서사부터 증명해야 했던 왕
드디어 열린 하트셉수트의 시대!
쓰다 보니 인트로가 너무 길어졌는데 기다려 줘서 고마워 ㅠㅠㅠ
사견이지만 하트셉수트는 투트 2세가 승하하던 순간은 머리가 좀 아프지 않았을까 싶어.
자기 자신의 신분은 완벽한데 정작 후계자가 없고
(친가 정복왕 아버지 + 외가 왕조 개창자 + 본인은 그 직계에 심지어 적통 ㄷㄷㄷ)
투트모세 3세는 후계자가 될 수 있으나 정통성이 없고
(후궁의 아들의 후궁의 아들. 그나마 다행인 건 투트모세 2세가 생전에 유언해 둔 후계자였어)
그럼에도 투트 3세가 있어 이런저런 변수+왕조 교체라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으니까.
(왕조가 바뀔 시 이전 왕조에 대한 평가는 박해질 수밖에 없음.
새 왕 입장에서는 ‘전 왕이 이렇게 못해서 내가 나왔다’ 구도를 만들어야 하므로...
이 경우 하트셉수트의 아버지와 가문이 이룩한 업적은 전부 모래에 처박힐 수도 있는 거)
아무튼, 하트셉수트는 왕이 되기 위한 조건을 다 갖추었으나 ‘여자였기에’ 공주-왕비-섭정-파라오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침.
(남자였기만 해도 그냥 ‘왕자 - 파라오’로 심플했을 거를 돌아돌아서ㅠㅠㅠ)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건 윗대에서 정복 사업을 해 놔서 내치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거 정도...?
덕분에 하트셉수트의 치세는 크게 1개의 핵심 아젠다 + 그를 위한 3개의 메인 주제로 톺아볼 수 있어.
아젠다: “무엇으로”, 대체 무엇으로 나와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가?
→ 사실상 하트셉수트의 치세 전체를 지배했을 질문.
메인 주제들(저 아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1. 신과 신화를 활용한 즉위 정당화
(나는 신이 선택한 사람이며 파라오 즉위는 예정되어 있었다!라는 프로파간다를 함)
2. 1에서 보여준 신과의 연결성 강조 + 정치력/행정력 과시를 위한 건설사업
(하트셉수트 치세에 지어진 장제전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함!!)
3. 1과 2의 연장선상인 푼트(Punt) 원정
1, 2, 3과 그걸 가능케 한 스토리는 다음 글에 쓸게..!
*TMI: 무엇이 하트셉수트를 이렇게 달리게 하였는가
사실 ‘능력에 대한 증명’은 모든 파라오(왕)들의 숙명이긴 해.
하지만 하트셉수트에게는 그 잣대가 유독 가혹하게 다가왔을 거임.
최초의 여성 파라오까지 되었지만 끝끝내 떨치지 못한 약점이 하나 남아 있었거든.
‘옥좌에 올랐으나 이조차 완전한 나의 것이 아니구나.’
→ 투트모세 3세와의 ‘공동왕’ 형식으로 파라오가 되었다는 현실.
(진짜임. 투트모세 3세도 파라오였고 하트셉수트도 파라오라는 일종의 공동 통치 체제였어)
투트모세 3세가 문자 그대로 아기였기에 권력은 하트셉수트의 것이었지만,
서류상의 하트셉수트는 단 한 번도 ‘이집트 유일의 파라오’ 였던 적이 없었음.
단, 공동왕이라도 하트셉수트는 엄연히 18왕조 제 5대 파라오는 맞아.
서류상의 저 약점 하나 빼면 모든 게 완벽한 파라오였거든.
- 실질적인 통치도 하트셉수트가 했고
- 왕의 상징과 권한도 그녀의 것이었으며
- 하트셉수트 사후에야 투트 3세가 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돼.
- 여기에 결정적으로 왕들만이 쓸 수 있는, 즉위 후 붙는 ‘즉위명(Nesu Bity)’ 까지 사용했었음!
(하트셉수트의 즉위명: 마아트-카-레(Maatkare))
자, 그럼 이집트 국민들의 입장에서 한번 보자.
-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여왕 체제
- 유언에 따라 적법하게 왕위를 이어받은 왕자는 왕가의 피가 옅은 어린아이
- 섭정을 하다 즉위식을 한 여왕은 왕가의 적통, 그러나 후계자가 없고 어린 왕의 이복 고모이자 의붓어머니
국민들 사이에 과연, 과연 불안의 여론이 없었을까?
방법은 하나였음.
‘왕가의 위대함과 나라의 안정됨을 직접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저 때는 SNS도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시대. 가장 쉬운 게 뭐였을까?

(사진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덬들이 생각한 그거 맞아. 건설(=대규모 토목사업), 그리고 그 안에 여왕의 정당성을 새기는 것.
그리하여 나의 입지를 직접 ‘보여’ 주는 것.
더 나아가 이집트를 풍요롭게 하고 그 산물로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음을 보이는 것!
*TMI 하나 더: ‘파라오’, 큰 집의 주인
공동왕 체제가 되면서 이집트 공무원들에게 ‘사소해 보여도 꼭 필요한’ 작업이 추가됨.
공식석상에 두 왕이 참석할 때, 공문서를 쓸 때, 또는 이와 관련된 수많은 일처리를 할 때.
늘 아래의 두 줄을 써야만 했거든 ㅋㅋㅋㅋ
“상하(上下) 이집트의 임금 마아트카레
상하(上下) 이집트의 임금 멘케페르카레(투트모세 3세의 즉위명)”
근데 저걸 상형문자로, 오타 없게 한 땀 한 땀 쓰면서 수십 장을 처리하고
+) 필요시 돌에 새긴다고 생각해 봐 ㅋㅋㅋㅋ

결국.. 지친 서기가 꾀를 냄.
“님들아.. 우리 그냥 ‘궁전’으로 쓰죠?”
(지금 우리가 ‘청와대’ 하는 딱 그 느낌)
다른 서기들 + 공무원들:

그리하여 ‘궁전’, 이집트어 ‘드높은 거처’ 는 왕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됨 ㅋㅋㅋㅋ
드높은 거처 = 페르-아아(Pher-aa)
페르-아아(Pher-aa) > 파르아아(Pharaa) > 파라오(Pharaoh)
이후 이 ‘파라오’라는 호칭은 투트모세 3세 때부터 군주의 정식 호칭으로 자리잡게 됨!
즉 하트셉수트는 최초로 ‘파라오’라 불린 고대 이집트의 왕이었다!
푼트 원정 포함 3개 메인 주제랑
+ 또 그걸 실현시킨 유능한 최측근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또 너무 길어졌다ㅠㅠ
(참고로 이 신하의 서사도 영화 한 편 뚝딱임...)
+) 다음글 링크(5편): https://theqoo.net/theatermusical/3663900143
#하트셉수트_탄생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