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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김도헌의 음감] 광장을 빛낸 K팝, 다시 만날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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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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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을 빛낸 K팝, 다시 만난 세계를 넘어 다시 만날 세계로


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 나는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를 서둘렀다. 목적지는 국회의사당 앞. 그렇다. 나는 국회 앞에 사는 남자다.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 내린 나의 머리 위로 공수부대의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뿜으며 국회의사당으로 날아갔다. 곧장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어느새 나는 한달음에 모인 수많은 시민과 뒤엉켜 있었다. 겁이 났다. 10년 전 '안녕들하십니까', 8년 전 광화문의 촛불 행렬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그때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윽고 모두가 산자의 음성을 따라 소리를 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올해 차가운 저항의 광장에서 들었던 첫 번째 노래였다.


그로부터 10일이 지나서 12월 14일 토요일을 맞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집 앞 국회대로를 가득 메운 시위대와 함께했다. 지난 7일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던 순간에도, 그다음 날부터 시작된 국회 앞으로부터 국민의힘 당사까지의 행진도 거리에 나섰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기다리며 국회대로 앞으로 향했다. 한 시간이 하루 같던 조마조마한 기다림의 시간, 결정 직전에 나온 곡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였다.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 순간, 모두가 기다렸고 또 목 놓아 불렀던 노래의 도입부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12월의 투쟁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출발하여 '다시 만난 세계'에 도착했다.


광장의 풍경은 정말로 '다시 만난 세계'였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유령도시처럼 휑했던 여의도의 밤거리가 알록달록한 빛을 내뿜으며 고동쳤다. 그 중심에 이삼십 대 여성들이 있었다. 각자 응원하는 아이돌 그룹의 응원 봉을 들고 거리에 나선 여성들이 집회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실제로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의 서울시 생활 인구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여의도 탄핵 집회 참가자 추정 인원 중 20대 여성 비율이 18.9%를 차지하여 가장 많았다고 한다. 12월 7일 토요일의 대규모 집회 앞 2~30대 여성 비중은 29.7%에 달했다. 시위 문화는 달라졌다. 차분한 질서와 냉철한 분노, 그 와중에 흥을 잃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연대가 광장의 인원들을 연결했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음악이 케이팝이었다. 여성들은 각자 지지하는 아이돌 그룹의 응원 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사뭇 다른 거리 풍경에 집회 주최 트럭은 오래된 민중가요 대신 케이팝 메들리로 재생목록을 고쳤다. 에스파의 '위플래시(Whiplash)' 구호에 맞춰 '탄핵 탄핵'을 유도하고,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시작하는 '영원한 건 절대 없어'에 맞춰 다 같이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데이식스의 '웰컴 투 더 쇼(Welcome To The Show)'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도 단골 선곡이었다. 케이팝 팬들이 민중가요를 배우고, 기성세대가 집회 현장에서 즉석에서 열리는 케이팝 응원봉 강의를 듣고 케이팝 플레이리스트에 귀를 기울였다.


응원봉이 처음 등장한 시기가 케이팝이 한국 대중음악의 헤게모니를 거머쥔 2000년대 중후반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2007년을 보자. 소녀시대가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했다. 원더걸스가 'Tell Me'로 국민 아이돌이 되었다. '소녀시대', ''키싱 유(Kissing You)', '소 핫(So Hot)', '노바디(Nobody)'가 이어졌다. 빅뱅이 '거짓말'과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를 통해 국민 그룹에 등극했다. 당대 가요계의 지독한 불황을 몰아내고 헤게모니를 거머쥔 케이팝의 시대였다. 널리 불리고, 다수가 알고 있는 음악이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지난 10일간의 집회에서 등장한 케이팝 노래는 보편적 인지도를 갖춘 곡이었다. 가능한 많은 이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케이팝이 투쟁의 중심에 섰다. 오히려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이 음악에 익숙지 않아 리듬감 있는 구호를 만들지 못하거나, 대중을 포섭할 수 있는 선곡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빅뱅과 싸이 등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음악가의 노래에 시위대가 야유를 보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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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이 집회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작금의 상황은 분명 독특하다. 그러나 대단히 낯선 풍경은 아니다. 정확히는 어렴풋이 그려보았던 미래가 커다란 스케일로 확장된 모습에 가까웠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이화여대 점거 농성에서 불린 것이 어느덧 2016년이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며 코웃음 친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의 발언에 맞서 시민들이 LED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나온 것도 같은 해다. 그런데 '다시 만난 세계'가 처음 집회에서 불린 곳은 이화여대가 아니었다. 한 해 전 제16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다시 만난 세계'는 이미 집회의 주제가로 모두를 열광케 했다. 2021년에는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다시 만난 세계' 주제가 선정에 지지하는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성소수자 운동은 케이팝을 집회와 결합하며 거리 행진 및 인권 운동의 핵심 장르로 그들을 정의하는 공간이다. 이번의 탄핵 집회가 가장 많은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을 호명한 집회였음을 기억한다면 더더욱 케이팝은 거리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후략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433/000011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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