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 학생들은 재학 중에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예비 간호사로서, 간호사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고자 이같은 선서를 하는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간의 크림 전쟁이 발발했던 때 터키 이스탄불의 야전병원에서 성공회 수녀 38명과 함께 간호봉사를 실천했다. 전쟁 와중에도 이어진 초인적인 간호에 그는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을 얻었고, 전 세계적인 위인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초인적인 간호'의 실천으로 '백의의 천사'라고 불리기만 할 인물이 아니었다. 트위터에서는 간호학과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나이팅게일의 일대기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실제 나이팅게일의 업적은 크림 전쟁에 참전해 환자들을 치료한 것보다는, 현대 간호학을 만들고 보건위생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다는 점이 더 크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 당시 환자에 대한 헌신적인 간호보다는 통계학의 활용을 통해 질병 감염률을 낮췄다. 전쟁 내내 전사한 군인 숫자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동안 나이팅게일은 부상, 질병, 사망 통계를 스스로 정리했다. 이후 그는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야전병원의 위생 개선을 요구했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병질환 이환률과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연구하고 발표했던 것이다. 이것이 야전병원에서 받아들여져 환자 사망률은 42%에서 2%로 감소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 이후 유럽에 있는 거의 모든 병원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와 병원의 체계에 대해 분석해 '병원에 관한 노트'를 작성했다. 매체는 이 기록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의 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앵글로토피아에 따르면 나이팅게일은 당시 정해져 있던 '여성의로서의 삶'을 탈피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 여성이기도 했다. 그는 '아내가, 엄마가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을 물리치고 남성들과 함께 일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장에 나갈 만큼의 헌신만큼 나이팅게일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연구 업적을 통해 공공보건, 공공위생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여성 최초로 영국 왕실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나이팅게일은 단순한 '헌신적인 백의의 천사'였을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통계학자이자 뛰어난 행정가였던 것이다. 문화사가 자크 바전은 나이팅게일에 대해 "나이팅게일은 간호 분야에서만 천재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감각도 남달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