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의 노출증을 걱정하는 남주 대목이 좋았어. 사실은 여주가 발가벗고 싶어서 벗는 게 아니라 검을 휘두르려면 어쩔 수 없이 드레스를 벗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 옛날 드레스의 무겁고 여러 겹인 모양을 고려해본다면 헐벗는 게 현실적이다 싶어. 좋은 디테일이었어.
여주 씨씨는 가족도 다 죽어서 죽든지 겁탈당하든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는데 그나마 운이 좋아서 적은 수나마 남편감 후보를 직접 고를 기회가 생겨. 그런데 루드빌이 지옥에서 온 짐승 같은 무서운 별명이 있음에도 엄밀하게 구분해 보면 죄다 전쟁통에서 얻은 별명이지 여자를 고문하는 류의 별명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어서 이 남자를 선택하기로 해.
근데 루드빌이란 사람은 혼인이라곤 생각도 안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씨씨는 과감히 종의 신분으로 잠 시중을 들겠노라 도박을 벌여. 루드빌은 씨씨가 첩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두어서 더 과격하게 대하고 말로도 우롱을 하는데 씨씨는 다 견뎌내고 첫날밤의 고통도 이겨내고 둘이 함께 암살자의 공격도 막아내면서 정을 쌓아.
죽여줘요 루드빌은 남주 여주의 첫 만남에서부터 수도에 들렀다가 남주 영지로 함께 떠나는 길까지를 얘기해 주는데 버릴 거 버리고 압축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해. 여주는 자기가 능력만 된다면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하던 인물인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가장 나은 선택지를 고르고 도박을 벌이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
소망이 있다면 남주의 영지가 늘어났으니 제2권 같은 게 나와서 씨씨가 영지 관리하는 살림 에피소드도 놔와줬으면 좋겠어. 씨씨가 행정 능력을 뽐내는 에피소드랑 루드빌도 믿을 사람 하나도 없던 과거와 다르게 신뢰하는 실무관 같은 마누라를 얻어서 정신적 안정을 얻고 만족해하는 에피소드가 나왔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