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엄마랑 연을 끊었다는 후기글을 보고 나도 최근에 비슷한 다짐을 해본 김에 후기까지 써봐.
우리집은 아버지가 자수성가 하셔서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지금은 중상층 이상으로 끌어올려놓았어. 그래서 현재 집안사정은 좋은 편이야.
다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안사정이 그렇게 썩 좋지가 않았어. 나에게는 7살 위의 오빠가 있고 그 오빠는 엄청나게 어려운 환경을 견디면서 살았어.
내가 태어나고 나서 그래도 집안 경제사정이 많이 안정이 되어서 딸인 나는 예쁜 옷도 입고 예쁜 구두도 신을 수 있었지.
이런 나를 친오빠는 증오할 듯이 미워하고 싫어했고 지금도 날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아.
지금은 서로 왕래없이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사는데 친오빠가 결혼하고 나서 나에 대한 태도가 조금 달라졌어. 그것도 아주 조금일 뿐이야.
다행히도 새언니랑은 친한데 나 역시 친오빠랑 가까워지고 싶지않고 친오빠도 나한테 별다른 말도 안걸어.
가족 문제라는게 참 그런 것 같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기가 힘들어. 어릴 때 트라우마라는거 아주 어릴 때 부터 기억할 수도 있어.
내 최초의 기억은 내가 3살 때인데 친오빠가 장난감 총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가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흘러나오는데 그 때 역시 어렸던 오빠도 당황하면서
내 머리를 물에 담고 피를 씻겨주는데 그 대야가 피로 빨갛게 물들었던게 기억이 나. 그게 내가 처음으로 가지고 있는 기억이야. 피로 시뻘겋게 물든 빨간대야.
나는 자라면서 독립적인 성격인 탓도 있고 매번 내가 할 일은 스스로 잘 해냈기 때문에 부모님이 큰 신경쓰지않고 자랐어. 착한 딸 그런거 있잖아.
친오빠가 중고등학교 때 워낙에 속을 많이 썩여서 부모님이 자주 학교에 불려갔었거든. 엄마는 매번 울고 아빠랑 엄마는 서로를 죽일 것처럼 또는 내일이 안올 것처럼 싸우고
나는 그 광경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벌벌벌 떨면서 제발 제가 착한아이가 될 테니까 엄마랑 아빠랑 안싸우게 해주세요라고 빌고 또 빌었어. 그 때 내가 소원을 빌었던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두 손 모으고 정말 간절하게 빌었어.
엄마랑 아빠는 그 당시에 맞벌이를 했었어. 나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아이였고,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가야한다는 엄마를 붙잡고 제발 엄마 오늘만 안나가면 안되냐고 엄마 제발 내가 이렇게 빈다고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날 두고 나갔던 적이 많았지. 아, 할머니가 가끔 날 봐주러 왔었던 것 같아.
평일에도 난 엄마를 기다린다고 놀이터에서 저녁 12시까지 놀면서 기다렸고 방과후에는 이 집 저 집 친구네 집을 찾아서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다녔던 것 같아.
부모님은 평일에는 일을 해야하니까 오빠가 야자 끝나거나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우리 둘이 있을 때면 오빠는 날 종종 때렸어.
이유는 없어. 그냥 내가 무언가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컴퓨터 게임을 하고서 혼날까봐 안했다고 거짓말 했다고 주먹으로도 맞고 발로도 맞았어.
그 때 나는 고작 8살에서 많게는 12살이나 13살 정도였던 것 같아. 엄마한테 이야기 하면 엄마는 거짓말 하는 것들은 맞아야 한다고 잘 맞았다고 그랬고...
난 혼날까봐 두려웠어. 늘 무서웠지. 그래서 집에 있는 날이나 휴일이 싫었던 것 같아. 엄마도 아빠도 휴일에는 자기들 쉬기 바쁘니까.
나랑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은 했지만 나는 차츰 자라면서 기대를 하지 않게 되더라고.
맞아,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어. 누구는 엄마아빠랑 놀이동산을 간다. 누구는 엄마랑 쿠키를 만들어서 가족끼리 나눠먹는다. 이런건 나에겐 상상속의 이야기였으니까.
지금은 부모님의 사정을 이해해. 그리고 저런 사실 때문에 원망스럽지 않아. 그 분들도 나를 자신들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셨겠지. 꼭 저런걸 해준다고 사랑받는 아이인건 아니니까. 그 분들도 저 당시에는 아주 힘들었겠지.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 우리집은 해외를 나가.
우리 아버지는 주재원으로 해외에 나오셨기 때문에 회사에서 이러저러한 지원을 받았어. 나는 그 덕분에 국제학교도 다녔고 남들이 배우고싶어서 안달나는 외국어도 아주 어렸을 때 익숙해졌지. 이 때 쯤부터 우리 가정 경제사정은 점점 더 나아져갔어. 그리고 나의 교육사정은 더더욱 나아졌지. 꽤나 여기저기 옮겨다녔는데 나는 적응을 꽤나 잘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크게 엇나가지 않았었어. 우리집은 남존여비가 심한 집안이야. 제사 지내는데 여자는 전부 다 나와서 일하고 살림하고 그런데 남자는 손 하나 까딱하지도 않아. 밥도 여자들이 차려오면 먹고 숟가락 빼고나면 자연스럽게 방안에 들어가서 티비부터 켜는? 나는 여자로써 어렸을 때 부터 이런저런 살림도 돕고 설거지도 하고 밥도 하고 그랬었는데 친오빠는 그런걸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
여자로써 이거, 나한테 꽤나 엄격한 편이야. 어렸을 때 친구 집에서 절대 못자게하고 나에게만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라고. 여자니까 옷도 이렇게 입어. 여자니까 밤에 나가면 안돼. 저거 이외에도 밤 8시가 지나면 친구 전화도 못받아. 밤에 전화하는건 아주 예의없는 일이어서. 여자니까 엄마를 도와줘야지 여자니까 남자를 배려하고 살아야해. 이런 것들이야. 엄마도 아빠도 나에게는 이런걸 강요했어. 여자애니까 조신하게 여자애니까 이건 안돼. 여자애니까 행동 좀 똑바로 해. 행실 똑바로 해. 이런 식이었지. 그렇다고 내가 아팠을 때나 힘든일이 있었을 때 부모님이 나에게 힘이 되어준 적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의도적으로 전학 온 나를 별다를 이유없이 따돌리는 무리에게서 상처입고 슬퍼하는 내 앞에서 그렇게 나약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냐고 했던 우리 아빠. 학교에서 인종차별(선생님이 백인) 당해 온 나에게 네가 그럴만한데는 이유가 있어서 당했겠지 라고 말했던 우리 엄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는 부부모임에 나가버리고 우리 오빠는 집에 있지도 않았으니까...난 그 때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더라고. 이 넓은 세상에서 나 혼자 있다는 그런 느낌.
그리고 엄마는 자신의 모든 스트레스를 나에게 고민상담하는 식으로 매번 털어놓았었어. 할머니의 시집살이, 외할머니가 친정엄마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를 내팽개쳤던 것. 예전에 있었던 서러운 일 그건 나는 어렸을 때 부터 고스란히 듣고 살았어. 아빠에 대한 원망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왜 헤어지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너희들 때문에 산다고 너희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헤어졌을 거라고. 엄마는 삶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래. 나는 그래서 종종 인간쓰레기라는 말을 듣고 살았어. 머리가 썩어빠져서 그런 생각밖에 못한다고...제일 서러웠던건 그거야. 학교에서 얼마나 잘하던지 얼마나 좋은 점수를 받던지 나는 칭찬받아본 적이 손에 꼽아.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비교를 아주 많이 해. 내가 알 필요 없는 정보도 막 가져와서 이야기 하고. 대학 들어가기 전 부터 누구는 어디 대학 됬다더라부터 누구는 어느 기업에 들어갔다더라 그리고 누구는 어느 집안 누구랑 사귄다더라..결혼한다더라. 그 집은 사위가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줬다더라. 이건 어릴 때 부터 끊이지가 않아. 이번에도 난 알고싶지 않았던 사촌언니가 어느 기업을 들어갔는지 들었고 아는 사람 누가 누구랑 결혼했는데 예물을 얼마받았다더라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
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말이지. 저런 집안을 견디지 못한 채 나는 일본으로 도망치듯이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어.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워킹 홀리데이를 간다고 말하지 않았어. 말했다가는 말리거나 못가게 할게 뻔하고 도대체 그 분들 입장에서는 이해를 못할 거거든. 왜 다해줬는데 우리를 미워하냐 우리를 거부하냐. 그래서 난 1년동안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고 아, 중간에 뻉소니를 당했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차랑 박았는데 그 차가 도망갔거든. 몸은 전신타박상에 뺑소니 당해서 당장 큰 돈이 필요한 시점에서 집에 연락을 했더니 ㅋㅋㅋ [너, 돈이 필요하니까 그런 거짓말을 하는구나? 엄마한테 돈 타내려고] 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건 내 역량으로 매꿨거든. 그리고 난 당분간 일을 못하고 그 때의 여파가 계속 남아있다가 지금에서야 조금 여유를 찾은 편이야.
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 나는 사정상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어. 나는 국제학교를 다녔고 그 때부터 미국으로 대학을 갔다왔는데 물론 학비가 많이 들었지...매번 이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너에게 할거 다 해줬다고 너는 만족을 못하는 아이라고. 엄마랑 아빠가 어디까지 해줘야 만족을 하겠냐고. 일본 오기 전에 공시공부 2년 하면서 그 때도 지원받아서 돈을 썼었는데 엄마는 대학다닐 때 부터 공시공부 할 때 지금까지 네가 썼던 돈 영수증 다 보관하고 있다고 나중에 청구할 거라고. 이건 진짜 있어. 나도 봤거든. 이거 너 취직하면 나중에 다 받아낼거라고. 밑에 글 쓴 원덬 부모님처럼 우리 부모님은 이런거 기억 못해. 나는 그 때 무슨 말을 했고 무슨 느낌이었고 이런게 어제 일 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우리 부모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자기네들이 언제 그랬냐고 너는 항상 우리가 못해준 것만 기억한다고. 이기적이라고 이런 대답만 돌아와.
나는 지금 일본에 있는 외국계 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고있어. 이직을 할 생각이야. 내 일은 집에다가 다 말하지 않아. 아니면 다른 말로 둘러대거나 해. 나는 내 행적을 알리고 싶지가 않아. 그 사람들이 내가 뭘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굳이 내가 알려주고 싶지가 않아. 그리고 지금은 앞으로 결혼할 남자를 만나서 그 남자와 동거중이야. 너무 행복해. 부모님에게는 당연히 말하지 않았어. 부모님이 알고있는 주소는 내 옛날 주소. 지금 남친하고 동거하는 집 주소는 몰라. 조만간 일본에서 쓰던 핸드폰 번호도 바꿀 예정이야. 그러면 내가 연락하지 않는 이상 집에서 연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밑에 글을 쓴 원덬과 내가 느끼는 마음이 비슷한 것 같아. 나는 엄마와 이야기 하고 싶지않아. 엄마의 카톡을 받고싶지 않고 전화를 받고싶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기면 날 믿어주는게 아니라 날 힐난하고 비난하고 헐뜯고 내 이야기를 믿지않는 사람이랑 이야기 하고 싶지않아. 나는 되도록이면 지금 남친과 빨리 결혼하고 싶어. 엄마는 내가 해외에 있을 때면 나에게 가끔씩 애틋해지거나 해. 나는 그런 애틋한 감정도 싫어. 한순간 그래도 우리엄마지 싶다가도 다시 날 괴롭히는 그 상황이 반복되면 역시나라는 생각도 들어. 나도 정상적인 가정이었으면 좋겠다. 평범하게 엄마한테 고민상담하고 평범하게 아빠랑 진로고민하는 사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렇게 되지 않은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나는 우울증을 15년 동안 안고 살았어. 자살시도도 엄청 많이 했었어. 매일 죽고싶었고 사실 일본에서의 워킹홀리데이 1년이 지나면 서서히 정리하고서 어딘가에서 민폐되지 않게 조용히 죽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지금 남친이 내 모든걸 천천히 치료해주는 중이야. 받아들여주고 위로해주고. 정말 고마운 사람이지. 이 사람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마음이 평화롭다는건 이렇게나 좋은거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로웠으면 좋겠어. 매일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던 나로써는 지금 이 행복이 믿어지지 않았었어. 그래도 어디에서 어떻게 살건 부모와 나는 성장기가 아닌 이상 타인인거야.
며칠 전, 엄마는 나에게 또 전화로 폭언을 했고 협박을 했어. 그걸 지켜보던 남친이 그러더라고. 아주 극단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연을 끊을 생각도 하라고. 이 넓은 일본에서 날 어디서 찾겠냐고... 나도 맞는 것 같아. 나는 이 관계가 불편하면 내가 감수하고 내가 받아주는게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아니야 오지마, 보고싶지 않아. 이야기하고 싶지않아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어. 지금은 미래를 생각하고 있어. 그건 내가 나를 돌보는거야. 과거의 나는 이런 삶을 살아와서 매일이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죽고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다를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당장 오늘부터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으니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나는 지금 굉장히 행복하고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집이랑 인연을 끊을 준비가 되어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