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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덴마크에 5개월 살면서 느꼈던 점 정리하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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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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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스압주의)
안녕~ 혐생에 너무너무 지친 덬이야
사람이 힘드니까 행복했던 순간을 돌아보고 싶더라고. 내게는 4년 전 덴마크에 살 때가 살면서 제일 행복하고 매일매일 새로웠던 때였어 (매 순간이 행복하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어)
한 번도 각 잡고 그 시절에 대해 기록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지금이나마 덬들과 공유하고자 (혹은 아무도 반응 안해줘도 그냥 내 일기다~ 생각하고 ㅋㅋ) 써봐.
아마 여기엔 덴마크에서 살 계획이 있는 덬들도 있겠지? 난 가기 전에 막연히 좋은 나라~ 음 행복한 나라래~ 싶었는데, 솔직히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몰랐어. 살다보니 어렴풋이 느끼게 되더라. 그런 것들을 적어보려 해.
내겐 태어날 때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덴마크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나라였어.
아마 여행으로도 느낄 수 있는 점보단, 살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고작 5개월이지만 말야.


덴마크의 가장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는 '휘게' 라는 단어로 정의돼. 나는 이걸 거창하지 않지만 평화롭고, 소소하지만 충만한 그런 상태로 이해했어. 물론 덴마크도 완벽한 사회가 아니고, 한국이 나은 점도 여러가지고 (맛있는 음식, 체계적인 시스템, 편리성 등은 절대절대 따라올 수 없을거야) 특수한 사회정서에서 오는 역효과도 있다고 들었어. 근데 정말 여러 방면에서 우리나라와 정반대인 건 사실이라 한 번도 외국에 살아본 적 없던 나에겐 뭐랄까.. 뒤집어진 지구 ㅋㅋㅋ 같은 느낌이 참 많이 들었던 나라야.


1. 극강의 워라밸
말이 필요없을 것 같아. 나는 교환학생으로 덴마크에 갔던 거였는데, 홈스테이 호스트셨던 할머니는 여전히 고용안정이 되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일주일 중 이틀 정도는 재택을 하셨어. 남은 일주일 중 하루는 집에서 점심을 드시고 가셨지. FM 근무는 4시 쯤에 끝나서, 우리는 대부분 저녁을 함께 먹었어. 해가 10시까지 떠있는 여름에는 일찍 퇴근을 하시고 2시부터 정원에서 일광욕을 하셨지. 우리 집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시공간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어. 아주 많은 휴가도 당연했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합리적인 보수와 노동 강도가 직종을 불문하고 보장되는 데다, 삶에선 공동체주의가 그렇게 심한데도 회사나 직장에선 개인주의적이라 나 (혹은 내 가족) 개인의 시간을 침해하지 않게 모두 주의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어. 사실 내가 앞으로 쭉 얘기할 것들은 결국 이 덴마크의 높은 워라밸을 대전제로 깔고 가는 건지도 몰라. 각자의 사생활에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다는 게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내가 체감하게 된 계기였거든.


2. 자연주의
나는 코펜하겐에 있었는데, 여기는 섬이야. 그래서 바다가 가깝고, 녹지도 많아. 낙농업이 발달한 나라이고 친환경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해.
우리 할머니는 집 안 정원에 그린하우스 (온실) 을 두고 각종 허브를 재배하셨어. 마멀레이드를 직접 만드는 것도 구경할 수 있었지. 할머니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요트를 가지고 있고, 은퇴할 즈음이 되면 세컨하우스 (별장) 을 근교에 사서 좋은 계절을 그 곳에서 보내고 와. 스키를 타고, 수영을 하고, 등산도 하셨어. 무분별한 개발을 반대하고 초록과 물이 있는 공간을 중요시해.
식생활도 자연주의적이야. 이건 사실 반강제긴 함 인건비가 너무 비싸서;;;;;; 대충 사먹기 참 힘들거든. 난 그지였으니 장봐서 뭔갈 만들어먹어야 하고, 덴마크 슈퍼에는 각종 수백가지의 우유와 요거트, 호밀빵들이 있으니 그런 것들로 끼니를 때우게 돼. 덴마크에서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이 뭔 시큼한 갈색 밀빵 위에 각종 콜드푸드 올려먹는 오픈 샌드위치인 것만 봐도.. 아무튼 자연의 가치를 가볍지 않게 생각하고, 웬만하면 개발을 할 때 환경적인 요소를 많이 고려하는 게 좋았어. 그린 프라이데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나와서 기후 변화에 대한 시위를 하고 (생각해보면 개인의 정치참여도 참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한 나라였어)
혹시 코펜하겐에 갈 사람들은 valby 공원이나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들러줬으면 좋겠어. 참 좋은 곳이야!


3. 여유로운 분위기
경쟁적이지 않아. 덴마크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너도 나도 모두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겸손이 가장 큰 미덕이고 본인의 유능함을 뽐내는 사람을 비웃기도 하고. 그러니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는 거지. 신분 상승에 대한 욕심도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덜하고, 내가 적어도 이만큼은 해야 한다! 하는 강박이 없는 사람들이었어. 늘 만족도가 높았지. 덴마크 교육도 마찬가지야. 여기선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 같은 건 딱히 필요없어. 상한선을 창조하는 것보다 하한선을 충족하는 게 궁극의 목표인 느낌. 특출나게 잘해서 인정받을 필요도 없어. 해야하는 만큼 하고, 적당히 놀다 가고. 자기한테 맞는 일 찾아서 직업학교 가. 아마 독일이랑 비슷할.. 걸..? 물론 이 점을 답답해해서 덴마크를 떠나는 개성적인 사람도 많지만, 무한경쟁에 지친 내게는 참 신선한 환경이었어. '우리 다 최악은 아닌 사람들이고 그럼 됐음' 이런 느낌? 같은 맥락으로 과시적이지도 않아서, 좋은 걸 먹어야 하고 좋은 곳에서 자야 하고 등등의 플렉스 개념이 훨씬 덜하다고 느꼈어. 1인 가구인 경우 많은 사람들이 투굿투고 (음식점에서 팔고 남아 세일하는 음식들) 로 한 끼를 때우는 걸 뿌듯해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사거나 혹은 리폼해 입는 걸 좋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할 줄 알고, 기다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배려는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고 하잖아. 그런 애티튜드가 당연한 사회여서 좋았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타인에 대해 소비하는 문화가 덜한 것도 맞고 말야. 내가 뭘 하고 살든 남들은 아무도 간섭 안함. 그래서 모두들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덧붙여 내가 덴마크 (혹은 유럽) 에서 지내면서 많이 했던 일은 햇볕이 좋은 날엔 어디든 돗자리나 겉옷을 깔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거였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도 보지 않고.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비춰지지 않는 사회가 좋았어.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들 공원에서 피크닉 하고, 여유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좋아! 예전보다 자신만의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참 좋아. 그 때 나는 목공이, 수제 옷 제작이, 소형 가드닝이 취미인 사람들을 동경했거든.


4. 갑질, 천민자본주의 풍조 없음
서비스직이든 뭐든 사람 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지 '내가 돈을 내서 이 사람을 부려먹는다' 의 마인드셋이 거의 전무해. 단점으로 나같이 관공서 갈 일 많은 이방인들은 레전드 속터짐 (나 귀국 직전에 신분증 잃어버렸는데, 관공서 업무 보는 것도 2주 전에 예약해야 하고 그 업무 처리는 한 달 걸려서 결국 재발급 신분증 못 받고 왔다는 슬픈 이야기..) 그래서 서비스의 질을 기대할만한 곳은 아니야. 근데 바꿔말하면 사람이 돈이나 일에 매몰되지 않아. 우리는 그게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유토피아적인지 알잖니..... 눈물.. 덴마크 사람들은 모이면 돈에 대한 얘기를 별로 안 한 것 같아. 대신 취미나 요즘 만들고 있는 것, 새로운 페스티벌, 재미있는 게임, 휴가 계획 이런 것들이 주로 화제에 올라와. 날서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갑질이나 진상도 없고, 있다해도 직원들이 그걸 컷할 수 있는 분위기인 것.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나는 참... 부러워.. 자기 직업에서 자아효능감을 가질 수 있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어서...


5. 누구에게나 살만한 곳 (+공동체주의)
어느 날 문득 느꼈던 게, 참 많은 유모차들과 참 많은 엄마들이 코펜하겐 곳곳에 보인다는 거야. 백화점, 도서관, 식당, 대중교통, 길거리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마트 캐셔하시는 분들에 대해 동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덴마크에선 그 분들 모두 프라이드? 를 가지고 계신단 느낌을 받았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과 시설들이 잘 되어있고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도 돋보였어 (젠더프리 화장실같은.. 물론 우리나라에선 나도 반대임 ㅠ) 그리고 덴마크는 이웃들 간의 네트워크를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꼈어. 분기별로 마을에서 플리마켓이 열리고, 여름엔 썸머축제를 하며 밤늦게까지 음식을 나눠먹어. 크리스마스에도 가족 파티와 별개로 마을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어.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있고, 가까운 곳에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데에서 오는 심적 안정감이 느껴지더라고. (마치 그 시절 우리나라처럼?)
단적인 예로 코펜하겐에도 우리나라의 신도시 같은 곳이 있는데 (필즈, 아마 구역) 그 곳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높지 않다고 했어. 아직 많은 것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데다 결정적으로 오래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대. 사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일단 나로선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패러다임이라 신선했던 기억이 나.


6. 가족주의
앞에서 말한 공동체주의랑은 좀 달라. 나 11월에 너무 외로웠음 ㅠ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밤이 무지막지하게 길어지고 해가 아주 빨리 지는데, 이 추운 계절엔 정말 거리에 사람들이 너무너무 없더라. 다 어디갔나 했더니, 이 사람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밖이 추운 날 안에서 예쁜 촛불 켜고 가족들과 조촐한 저녁 후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 즐기는 거야. 정말이야. 가끔 특별한 날엔 보드게임을 곁들이기도 하고.. 가족과의 행복이 삶의 무게중심인 것처럼 보였어.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식사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장나는 줄 아는 사람들.. 덴마크 사람들이 평생 알고 지내는 관계의 범위가 좁다고들 하거든? 이유를 알겠더라. 가족이랑 맨날 같이 있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난 여기서 평생은 못 살겠더라. 이방인은 서러웡..
그리고 생각해보면, 덴마크에서 내가 제일 행복을 느꼈던 순간은 어느 아빠가 아이들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소리가 내 방 창 밖에서 어렴풋이 들리고, 화장실에선 할머니의 빨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탈탈 나던 중에 잠을 깬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어. 그런 가족적인 평화가 참 좋더라.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 같아.


7. 북유럽 중에선 외향적인 편
한창 난리였던 스웨덴게이트 있잖아? 덴마크에선 잘 못느껴봤어. 물론 내가 형식적으로나마 덴마크 사회에 편입 (홈스테이 중인 교환학생) 된 사람이어서였는진 몰라도, 나는 길거리에서 덴마크 사람들과 스몰톡도 가끔 해봤고, 할머니가 나를 가족행사나 마을 행사에 많이 데려가주셨는데 모두들 내게 먼저 악수를 청하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늘 인사해주고 그런 곳이었어. 크리스마스 시즌엔 카페만 들어가도 성탄절 인사 해주고. 할머니도 돌이켜보면 아시안 여자아이와 식성을 맞춰 식사하는 게 매번 편하진 않았을텐데 항상 같이 밥먹자고 말씀해주셨어. 학교에서 만난 덴마크 학생들도, 적어도 자기 바운더리가 확실하다고는 느낄지언정 냉소적이거나 시니컬한 느낌은 없었어. (근데 또 웃긴 건 난 스웨덴에선 아주 쪼~~끔 배척받는 느낌 받음 우하하) 보통 덴마크가 북유럽 중에선 남쪽이고, 날씨도 따뜻한 편이라 사람들이 활동적이라는 게 정설이더라.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완벽한 사회는 없을 거야. 근데 감히 뭐랄까.. 내가 살아온 것과 거의 완벽히 반대되는 사회같았어. 그래서 나는 덴마크를 떠나오면서, 절대 이 곳에서 배운 휘게의 라이프스타일을 잊지 않고 평생 지키겠다고 결심했는데 솔직히 한 3년 지나니까 그 때의 행복감도 희미하더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힘들 때 이 글을 보며 그 때의 기억을 꺼내보려고 해. 나의 공개 일기를 여기까지 읽어줬다면,,,, 정말 고마워 덬드라. 좋은 저녁이 되길 바랄게. 그리고 덴마크에 간다면 꼭 팔루단이라는 카페에 가줘! 몇 장의 코펜하겐 사진을 남기고 사라질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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