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형식의 일본 사소설 장르의 대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 유고작인 이 단편집 속 작품들은 작가님이 병에 걸려서 돌아가시기 전에 완성한 것들. 그동안에 읽었던 작가님 작품들과 결이 조금 다른 듯하면서도 완전히 같은데 이런 소설을 더이상 새롭게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독자로서 안타까움.
2011년 대지진을 겪고 일본이 위험하다 판단하고 도망친 폴란드인이 나오는 ‘사랑의 바욜린’과 알고 지내던 비혼 친구가 남긴 유산 앞에서 망연해지는 비혼 여성이 나오는 ‘아이 아줌마’가 제일 좋았음. 이번 단편집에서는 SNS의 익명성을 빌려 속마음을 토로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혼잣말을 가까운 이들이 몰래 읽는다는 소재가 자주 쓰였는데 이게 소재로서 자연스럽고 잘 쓰여서 좋았음.
2. 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 (크리스틴 R. 고드시)
여성들이 남성들과의 전반적 관계에서 자율성을 획득하고 특히 섹스라는 요소가 거래 수단으로 작동하지 않고 사적 쾌락의 영역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바로 튼튼한 사회 안전망임. 여성이 안정적인 노동 환경에서 정규직 노동자로서 노동할 수 있고, 질병이나 이혼, 육아 등의 사유로 삶이 흔들려도 이를 보완하는 사회 보장 시스템이 제대로 존재한다면, 여성은 스스로 물화되지 않는 삶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책임.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은 어쨌든 물적 조건에 의한 위계 관계의 타파라는 사회주의의 이념에 근거하여 우선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를 청산하고자 하였음. 그들의 국가사회주의 노선이 그러했듯 단 한 국가도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초반부터 실패하였으나 저자는 그 시도가 어떠했는지를 소개함.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체코와 동독에서 남성의 가정 내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재교육 등을 실시하려고 했으나 남성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공동 육아소, 세탁소와 같은 공동 작업장 확대를 통해 가사 노동의 사회화를 꾀했다는 것. 개개별의 남성들, 심지어 많은 여성들조차 평등한 남녀 관계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음. 사적 영역의 선한 남성들에 의해 해결될 부분(예시: 내 남편, 내 친구들 남편들은 집안일 다 같이 하는데? 요즘 가사노동 다 평등한데?)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시스템이 강력하게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원했는데 다소 개괄적인 입문서 느낌이라 아쉬웠음. 하지만 작가가 계속 해서 20세기 국가사회주의의 실패가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가 아님을 강조하고 좀비 사회주의(과거의 사회주의 실패했기 때문에 어떤 사회주의도 더이상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할 때의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을 끊임 없이 하는 것을 미루어보았을 때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이 가질 반감을 예상한 읽기 쉬운 대중서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