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몰라 다시 올리는 18왕조 가계도)
- 투트모세 2세 - 이복남매이자 남편, 짧았던 정비(Great Royal Wife)로서의 삶
: 사실 투트모세 2세는 ‘하트셉수트가 남자이기만 해도’ 왕좌랑은 연이 없었을 사람이었음.
하트셉수트의 어머니가 정비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여기에 건강상태도 별로 안 좋았어.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위는 남자 왕족이 잇는 게 우선...
결국 투트 1세 생전에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세 2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됨.
이복 남동생의 정통성을 보강하기 위해서ㅠㅠ
물론 정비 자리인 ‘위대한 왕의 부인(Great Royal Wife)’는 물어볼 것도 없이 하트셉수트의 것이었지만,
덕분에 18왕조의 족보는 불과 4대 만에 왕창 꼬이고 맒 ㅋㅋㅋㅋ
투트모세 2세의 치세는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걸로 보여.
재위 기간이 많이 잡을 시 12-13년, 짧게 잡을 시 2-3년인데 일단 미라의 상태부터가 그렇게 좋지 않았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아래에 조금만 적을 테니 판단은 알아서..
미라 분석 결과:
- 30대 초반에 사망
- 살아생전에도 허우대 자체가 그렇게 좋지 못했을 가능성 높음 (마름, 덩치 작음)
- 미라 분석해 보니 근육량도 그리 많지 않음
- 미라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피부에는 여러 병변들과 흉터가 남아 있었음
아무튼 이제, 둘 사이에 아들만 태어나면 (이집트 왕가 기준) 완벽했겠지.
(옹호하는 거 아님 나도 쓰고 싶은 욕 한바가지야)
그러나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음. ‘네페루레’ 라는 딸.
그럼 후계자는? 네, 또 후궁 소생 아들입니다.
생모의 이름은 이세트. 기록으로 짐작컨데 그녀 역시 고귀한 신분은 아니었음.
왕의 후궁이 될 수는 있었으나 아이에게 정통성을 줄 수는 없는 여자.
어떤 책에는 대놓고 ‘공주도 귀족도 아님.’이라고 되어 있기도 해.
이 아들이 ‘투트모세 3세’, 18왕조 제 6대 파라오.
태어난 지 2-3년만에 아버지를 잃고 왕관을 써야 했던 어린 왕임.
여기서 순간 읭? 하는 덬들 있을 거임 ㅋㅋㅋㅋ
‘하트셉수트가 있는데 왜 저 꼬맹이가 왕관을 써? 하트셉수트가 5대, 꼬마가 6대라며?’
맞음. 하트셉수트가 5대 파라오였던 건 맞아 ㅎㅎㅎ
그런데! 하트셉수트는 남편의 죽음 이후 ‘후계자로서’ 왕위에 오른 게 아님.
어린 이복조카이자 의붓아들의 섭정으로 출발해, 그 자신이 파라오로 즉위했고,
죽을 때까지 파라오로 살다가 투트모세 3세에게 권력을 넘기고 간 왕.
장장 22년간 옥좌에 있다 간 사람.
그게 하트셉수트임 ㅋㅋㅋㅋㅋ
심지어 22년간의 치세 동안 정치를 못했느냐면 그것도 아님.
그 당시 남은 기록과 유물을 보면 아니었다고 말해 주고 있어.
이제 본격적인 하트셉수트의 치세인데 그건 다음 글부터...!
+) 치세는 짧지만 그래도 필요해서 쓰는 투트 2세 시기 TMI들
- 하트셉수트의 권위 + 종교에서의 지위
: 이 당시 하트셉수트의 신분만 볼게.
‘선왕의 적녀이며, 현왕의 누이이며, 현왕의 위대한 부인(정비)’.
문자 그대로 이집트의 최고 신분...
거기에 투트 3세의 병약함 때문이었는지 당시 기록을 보면 ‘하트셉수트가 걍 실세 아님?’ 싶기도 해.
이집트의 경우 신분과 지위에 따라 그 인물의 크기/몸동작 묘사가 달라졌어.
이건 아예 고대 이집트 미술의 특징 중 하나임.
그런데 투트모세 2세 시기의 거의 모든 문서(+종교행사를 기록한 문서에서도!)에서 하트셉수트는 남편과 거의 ‘동등하게’ 묘사되었음.
이건 같은 왕조의 후대 파라오인 아케나톤(제 18왕조 10대 파라오)이 묘사된 행사 부조 보면 이해가 빠를 듯.

이게 아케나톤이 태양신께 제물을 드리는 모습을 그린 부조야.
바로 뒤에 있는 여성이 그 유명한 네페르티티 왕비임. (’왕-왕비’ 차이가 저 정도)
그런데 하트셉수트는 자신과 남편을 ‘동등하게’ 묘사했고 또 그럴 수 있었던 거지.
종교 행사를 포함해 국가의 모든 공식석상에서!
이게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무엇을 의미했을까?
여담이지만 하트셉수트의 어머니인 아흐모세는 투트모세 2세 치세에도 살아 있었음...ㅎ
여기에 하트셉수트는 당시 이집트 종교계에서의 지위도 상당했어.
소위 말하는 ‘이집트 최고 여사제’ 직을 공주 때부터 맡아 아문 신을 모시고 있었거든.
한 마디로 정치(왕가의 직계)+종교적 지위를 한 몸에 가지고 있었던 거 ㄷㄷㄷ
- 누비아의 2차 반란
: 사실 누비아 입장에서는 당연한 게, 정복 사업을 벌이며 우리를 이집트 휘하로 편입시켰던 왕이 죽었어.
그 뒤에 새로 즉위한 왕이 병약하고 카리스마도 없는 거임.
거기에 선왕이 자기네 왕까지 죽여 놨는데 막말로 그 상태에서 ‘뭐... 이제부터라도 잘 지내봅시다’ 하겠어?

그럴 리가요...
결국 누비아는 이 때 또(!) 반란을 일으킴.
그런데... 투트모세 2세가 아무리 봐도 영 시원찮았다 싶은 게 ‘직접 친정을 가지 않았음’.
선왕 때 진압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소요가 터진 건데도.
그냥 군대 꾸려서 보내고 나중에 결과만 보고받았지.
*또다른 TMI: 이집트 최고신은 태양신 ‘라’ 아니야? 할 수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림.
이집트는 나일 강을 따라 도시들이 흩어져 있었어.
덕분에
- 어느 도시가 권력을 잡느냐(파라오를 배출하고 왕가를 내느냐),
- 파라오가 어느 신을 밀고 어느 신격을 키우느냐에 따라 조금씩 최고신이 달라졌음.
중세 종교에서 ‘하나님’이라는 신격이 절대적 유일신인건 같으나
-> 그 해석의 차이 + 정치적 이해관계가 갈리면서
-> 유럽의 각 국가/도시들이 구교, 신교, 성공회 등으로 나뉘었던 걸 떠올리면 아주 살짝 비슷함...!
멤피스가 수도였던 피라미드 시절(고왕국): ‘라’
하트셉수트의 시대인 18왕조: ‘아문’(이집트 최고 8주신 중 한 명이자 공기의 신)
이 최고신의 지위를 차지했어!
그냥 도시들이 권력다툼하면서 신화듀스 101 했던 거...
다만 훗날 ‘아문-라’라는 새로운 합체신이 태양신으로 숭배되긴 함...
+) 다음글 링크(4편): https://theqoo.net/theatermusical/3657679155
#본격_극_관련 #파라오의_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