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해 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89년생,당시 8살)는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아빠가 직접 지어준 이름
딸을 너무나도 갖고싶어했던 엄마와 그때 당시에는 늦은 나이였던 아빠가 갖게된 첫딸이었기 때문에 부모는 박나리양을 지극히 아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생일을 9일 앞두고 박나리양이 납치되었고


유괴 14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아이를 납치하고 살해한 범인은 임신 중이었던 27살 전현주

비록 자신의 딸이지만 어린이 유괴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기에 부모가 직접 신고해서 검거되었다.
(검거되기 전, 전현주의 부모는 속죄하는 길은 자살뿐이며 부모도 곧 따라갈테니 두려워하지말라며 자살을 권유하였다고 한다)
검거 당시 전현주는 그 해 2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내무부 산하 기관의 고위 공무원 출신 아버지를 둔 전현주는 유복하게 자랐으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총학생회 간부를 맡기도 하고 미국행 유학(당시에는 유학가는 사람 별로 없었음)을 갔다오기도 했지만 사치와 낭비벽이 심했던터라 결혼 후 3천만원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채무를 변제하려고 유괴를 계획하게 되었다.

1997년 8월 30일 오후 3시경 영어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인하여 납치한 그녀는 3차례에 걸쳐 박나리의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다.

명동 한 커피숍에서 박 양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던 중 발신지 추적으로 경찰 들이닥쳐 한차례 잡힐뻔했으나 검문에 걸린 상태에서 전현주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서울예술대학 후배들이 경찰에게 임산부를 거칠게 대하지말라며 항의하였고 경찰 또한 임산부가 그럴리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 전현주를 풀어주었다.

이 일로 위기 의식을 느낀 전현주는 박나리양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잡힌 이후 자신이 살해한 것이 아니라 공범이 살해한 것이고 자신을 성폭행한 20대 남자 2명과 여자 1명 총 3명의 공범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 결과 단독범행으로 드러났고 연극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리고 박나리양은 올 여름 피서를 떠났던 대천에 조용히 잠겼다....







범인이 임산부일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