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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박정민이 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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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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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에 쓴 글 (박정민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 포함된 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10년 전, 19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놈이 영화를 하겠다며 예술로 침 좀 뱉는다는 학교에 지원을 했습니다.

‘해변가를 걷는다. … 파도의 저 소중하고 고결한 몸부림에 경의를 표한다. … 태양과 걸었던 손가락을 풀고 시계를 본다. … 다시 뚜렷해져가는 발자국 속에 햇살 가득한 내 안도의 미소가 투명하게 비친다.…’ 식의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면접관으로는 김성수 감독님(이하 김), 이창동 감독님, 박종원 감독님이 계셨습니다.

김 : 너 자기소개서를 왜 이렇게 쓰냐?

나 : 저의 문학세계를 표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책이라곤 읽어보지 못했음).

김 : 자기소개서가 뭐냐?

나 : 자기를 소개하는 거요.

김 : 근데 왜 이렇게 쓰냐?

나 : 하나의 표현 방식이라고 보는데요(표현 방식 없음).

김 : (2차 시험 답안을 보며) 너 글은 또 왜 이렇게 쓰냐?

나 : 문제가 있나요?

김 : 이걸 영화로 만들 수 있겠냐?

나 : 모기의 시점으로 영화를 진행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습니다(작년에 벌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글을 쓴 사람이 합격했다는 말을 들은 열아홉의 패기).

김 : (절레절레) 너 좋아하는 소설가 있냐?

나 : (헉! 당황했지만 어제 친구가 보던 소설책을 떠올리며) 요시모토 바나나요.

김 : 근데 왜 글을 이렇게 쓰냐고!

나 : 좋아하는 작가와 추구하는 문체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박 : 풉!

김 : 너 여기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

나 :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서) 서울대 갈 건데요.

김 : 서울대 가라.

그렇게 열아홉의 헛똑똑이는 면접장을 나왔습니다. 이렇게 싸웠으니 분명히 붙었다고 생각했지만 떨어졌어요. 서울대도 떨어졌어요. 그 이후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김영하·박민규를 시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도스토옙스키, 카뮈까지 알지도 못하는 글들을 마구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정민입니다. 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저녁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식의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쉽게도 전년도 챔피언 김성수 감독님은 계시지 않았고, 이번엔 박종원 감독님(이하 박)이 신흥 강자로 나서셨습니다.

박 : (한눈에 알아보고) 서울대 갔냐?

나 : 못 갔는데요.

박 : 왜?

나 : 떨어졌는데요.

박 : 왜?

나 : (싸우고 싶다.) 성적이 모자라서.

박 : (나의 흰색 ‘가다마이’를 보고) 그 옷은 어디서 샀니?

나 : 인터넷에서요.

박 : (나의 블랙앤화이트 체크 중절모를 보고) 그 모자는 어디서 샀니?

나 : 같은 데서요.

박 : (나의 빨간 손목시계를 보고) 그것도?

나 : 이건 동대문이요.

박 : 니가 사니?

나 : 신발은 엄마가 사줬는데요.

박 : 집은 어디니?

나 : (뭔가 이상하다.) 분당인데요.

박 : 먼데. 여긴 어떻게 왔어?

나 : (쓸데없는 질문이다.) 전철 타고 왔는데요.

박 : 그래 수고했다. 갈 때도 전철 타고 가니?

나 :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가 약간 마지막에 반전을 주는 방식으로 글을 한번 써본 건데 어떠신가요?

박 : 책 좀 읽었나본데, 많이 좋아졌어. 학교 와서 물어봐.

나 : (애써 기쁨을 감추며) 네, 그럼 20000. 총총.

그렇게 1년 동안 책과 영화를 섭렵한 뒤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Ep1.
한 학기 다니고 군대에 다녀온 후 어느 날, 화장실에서 박종원 감독님을 뵈었습니다. “그때 제가 마지막에 반전을 주는 방식으로 글을…” “응, 누구니?” “병장 박정민 죄송합니다.” 역시 결말은 반전이 짱.

Ep2.
그로부터 약 7년 후, 김성수 감독님은 <감기>라는 영화에서 저를 캐스팅해주십니다. 그때 그 이야기를 하니 감독님은 기억이 안 난다며 먼 산을 바라보십니다. 역시 결말은 열린 결말이 짱.

요지는 책을 읽자는 겁니다. LCD에서 반짝거리는 글자와 책 속에 진득하니 박힌 활자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줄 수도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라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고, 좌절한 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프로이트가 될 수도 있고, 형사가 되어 범인을 쫓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책도 좋으니 서점에 가셔서 잘 읽힐 만한 책을 한 권 들고 집으로 오세요. 그리고 머리맡에 놓고 읽어보세요. 당신의 내일이 조금 더 영특한 하루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겁니다.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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