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감독 소토자키 하루오, 이하 ‘무한성편’)이 누적관객수 564만1537명(23일 영진위 합계)을 기록하며 2025년 국내 박스오피스 전체 1위에 올랐다. 두 가지 중요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지표다. 국내 극장가의 위기를 반영하는 수치며, 또 하나는 국내 제작사들을 향한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이다.
‘무한성편’의 흥행은 이미 개봉 전부터 점쳐져왔던 터라 크게 놀랍진 않지만, 올해 박스오피스서 모든 국내영화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애니메이션으로서 왕좌를 거머쥔 건 최초의 일이다.
지난 8월22일 개봉한 ‘무한성편’은 ‘귀멸의 칼날’ 3부작의 최종회로, 혈귀의 본거지 무한성에서 펼쳐지는 ‘귀살대’와 최정예 혈귀들의 최종 결전 제1장을 그린 영화다. OTT플랫폼을 통해 시리즈 팬덤이 단단하게 자리잡은 터라, 극장판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개봉 첫날 54만명을 넘으며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 타이틀을 가져가는가 하면, 이후로도 14주간 장기 상영하며 꾸준하게 관객을 모아 ‘올해 최고 흥행작’이라는 명예를 안게 됐다.
팬덤의 지지로만 이뤘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수치다. 이는 작품 자체로서 매력이 관객에게 어필한 것도 있겠지만, 반대로 한국영화가 그만큼 올해 굉장히 부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누적관객수 500만명을 넘은 건 ‘좀비딸’뿐이다. 국내영화 흥행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야당’ 337만명, ‘어쩔수가없다’ 294만명, ‘히트맨2’ 254만명 정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1000만명을 넘은 작품만 ‘파묘’, ‘범죄도시4’ 두 편이었고, ‘베테랑2’(752만명), ‘파일럿’(471만명) 등도 선전한 것을 비교해보면, 올해 영화 농사는 ‘흉작’ 그 자체다.
참으로 암담한 성적표다. 팬데믹 이후로 몸집이 불어난 OTT플랫폼을 탓한 지만 5년,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다. ‘영화관에서 볼 게 없다’는 말이 매년 경신될 정도로 작품의 퀄리티는 더욱 낮아졌고, 자연스럽게 투자 규모는 확 줄어들었다. ‘인큐베이팅’이 잘 되어야만 산업이 탄탄하게 돌아가건만, 신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질리 만무한 척박한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배급사들도 ‘배급할 영화가 없다’며 확 줄어든 편수에 울상만 짓고 있다. 결국엔 500만명을 겨우 넘긴 작품을 ‘올해 최고 흥행 영화’로 꼽아야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국내 극장가 위기까지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다보니 제작사들 자체적으로 체질 개선에 들어가야한다는 진단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충무로 대표스타, 티켓 파워를 보장하는 스타 감독들, 부풀려진 제작비 등에 의존해 이른바 ‘텐트폴’이라고 불렸던 블록버스터물만 제작하려는 태도 자체를 바꿔야한다는 지적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스포츠경향에 “이제라도 제작사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팬데믹 초기엔 OTT 때문에 시장이 잘 안 된다고 변명했지만, 결국에 중요한 건 콘텐츠의 수준이다. 한국영화계가 자꾸만 남탓하지 말고 반성해야한다”며 “너무 블록버스터물에 올인하고 스타배우, 감독들에 의존하지 않았나. 그렇게 만들었던 영화들 중 잘 된 게 뭐가 있나”고 밝혔다. 이어 “악순환이 지속되니 향방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기존 해오던 장르물보다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손익분기점 100만명 넘는 중간급 규모의 영화 제작을 시작해야 한다. 스타들이나 스타 감독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본 영화계는 코로나19 이후 현재 90% 이상 다시 복구됐다고 하는데, 그건 중·저예산 영화를 계속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이 가끔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기도 하지 않았나”라며 “그렇게 해야만 조금씩 손익분기점을 넘기면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한방에 크게 흥행하려고 하지 말고 그런 자세로 돌아가야지, 안 그러면 큰일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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