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진짜 해고 이유는 따로 있었다"야심차게 준비하던 12부작 드라마 촬영 8회차 만에 해고된 A감독. 제작사는 "두 카메라로 찍은 영상의 색감 차이가 너무 심해 도저히 쓸 수 없다"며 책임을 돌렸지만, 법원은 제작사의 진짜 속내를 꿰뚫어봤다.
사건의 발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마 연출 전문가인 A감독은 방송프로그램 제작사인 B사와 총 12부작 드라마의 연출 계약을 맺었다. 회당 연출료는 2,000만 원, 총액 2억 4,000만 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B사는 계약금 9,600만 원을 지급했고, A감독은 2021년 8월부터 촬영에 돌입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와 수상한 '색감' 핑계
순조롭던 촬영은 8회차 만에 급제동이 걸렸다. 2021년 9월, B사 대표는 A감독에게 "주연 배우의 불만이 크고, 촬영분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돌연 촬영 중단을 통보했다. 나흘 뒤에는 전화 한 통으로 "연출을 그만두라"며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했다.
A감독이 계약에 따라 나머지 연출료 지급을 요구하자, B사는 그제야 '촬영물 하자'를 주장하고 나섰다. "두 대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의 색상 차이가 너무 심해 후반 작업으로도 보정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이는 전적으로 A감독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B사는 오히려 이미 지급한 계약금 9,600만 원을 돌려달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진짜 해고 이유
팽팽한 진실 공방의 향방을 가른 것은 해고 통보 당시의 통화 녹취록이었다. 법원은 제작사 대표가 A감독에게 해고를 통보하며 나눈 대화 내용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제작사) 대표는 해고를 통지하면서 카메라 색상 차이 문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신 대표가 문제 삼은 것은 주연 배우와의 갈등이었다. 작가가 교체되며 후반부 대본을 받지 못한 A감독이 배우의 질문에 "뒷부분은 잘 모른다"고 답한 것을 빌미로, "배우의 불만을 키웠다"며 A감독을 질책한 사실이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법원은 "오히려 피고가 특정 배우의 불만, 기존 대본이 가진 논란 등을 이유로 작가와 대본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A감독을 해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색감 차이 주장은 계약 해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후적인 핑계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영상 색감 차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전문가 감정을 통해 "후반 색 보정 작업으로 충분히 수정 가능한 수준"이라며, 이는 감독의 채무불이행으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통상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색 보정은 필수적인 절차이며, 촬영 원본의 색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법원, 제작사에 7200만원 배상 판결
결국 법원은 제작사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피고(제작사)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지된 만큼, 원고(A감독)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계약서에 명시된 '미지급 연출료 전액(1억 4,400만 원)'을 모두 지급하는 것은 과하다고 봤다. A감독이 전체 12부작 중 4회 분량 정도의 촬영만 마친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 예정액을 절반인 7,200만 원으로 감액했다.
[참고] 의정부지방법원 제1민사부 2024나208958(본소), 2024나208965(반소) 판결문 (2025. 6. 19.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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