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서울 한 의대 동아리 수련회 술자리에서 의대생 A씨가 B씨 등 동기 3명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B씨의 피해 신고에 학교 측은 A씨에게 휴학을 권고하는 선에서 수습하려 했다. B씨는 애써 사건을 잊으려 노력했지만 5년이 지난 2022년 대학 수련병원 임상실습 중 A씨와 마주치며 다시 악몽에 갇혔다. 참다 못한 B씨는 졸업을 앞둔 2023년 2월 교내 성평등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렸고 A씨는 그해 말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A씨 징계는 3개월 만인 지난해 3월 해제됐다. A씨는 유급당한 한 과목을 재수강한 뒤 대학을 졸업했다. 이어 같은 해 가을 의사 국가고시(국시)에도 합격해 곧 흰 가운을 입는다. 반면 A씨의 징계 해제를 까맣게 모르고 있던 B씨는 뒤늦게 큰 충격을 받았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끝내 의사의 꿈을 포기했다. 가해자가 버젓이 의사가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B씨는 "이민까지 고려 중"이라고 털어놨다. A씨에 대한 징계 해제 이유에 대해 학교 측은 "총장 승인까지 거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만 해명했다. A씨 측은 "무기정학 기간 중 집에서 자숙했으며 의정 갈등으로 의대생들이 대거 휴학하는 와중에 징계 해제 처분을 받았다"고 답했다. 그는 B씨에 대해선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불법 행위를 한 의대생도 의사면허를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는 의료인 양성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사 국시는 의대 학사 학위만 있으면 응시할 수 있다. 재학 중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러도 제적만 피하면 된다. 설령 제적을 당해도 다른 의대에 진학해 졸업하면 그만이다. 징계를 넘어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아도 일정 시간만 지나면 의사가 될 수 있다. 실형 집행 종료 후 5년, 집행유예 기간 종료 후 2년이 지나거나 선고유예 기간이 만료되면 국시 응시 자격이 생긴다.
2011년 5월 서울 한 의대에서 술에 취한 동기를 집단 추행하고 불법 촬영해 징역형을 받고 제적당한 의대생 3명 중 1명은 형기를 마친 뒤 다른 의대에 입학해 2020년 의사면허를 획득했다. 그는 이름을 바꾼 채 의술을 익히고 있다. 2022년 6월에도 동기들이 옷 갈아입는 모습을 불법 촬영한 다른 의대생 C씨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학교는 제적 대신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집행유예 기간 종료 후 2년이 지나고 징계가 해제되면 국시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C씨에 대한 징계 해제 계획을 묻자 대학 측은 "아직 변동(계획)은 없지만 학생이 반성하고 피해 학생들이 졸업하거나 해당 기간(집행유예)이 끝나면 학과장 요청에 따라 징계위에서 해제 여부를 심의할 수 있다"며 가능성을 닫아놓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예비의사를 걸러낼 수 있도록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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