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수화기 너머로 허탈한 목소리의 그가 되물었다. 4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4대 그룹의 부사장 출신인 김 아무개 대표는 "이 정도면, 대통령이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라고 잘라 말했다. 중소 무역업체를 운영 중인 김 대표는 "어젯밤 옛 회사 동료들과 조촐한 송년회 자리에서 '비상계엄' 속보를 접했다"면서 "처음에 '이거 스팸인가'라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저녁을 함께했던 다른 임원들도 속보를 보고 믿지 못했다"면서 "예정보다 좀 더 일찍 식사 자리를 마무리하고 '조심하자'면서 헤어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늘 아침에 중국 쪽 바이어(고객)로부터 한국 상황을 묻는 메일을 받았다"면서 "'별일 없을 것'이라고 답장했지만, 제품 소개하고 판매하는 데도 바쁜데…"라고 덧붙였다.윤 대통령의 전격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등을 두고, 시장도 크게 흔들렸다. 경제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주요 경제부처도 전혀 예상치 못하면서, 우왕좌왕했다. 지난 3일 밤늦게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 경제부처 수장들이 부랴부랴 모였지만, 별다른 대응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모든 수단 총동원', '무제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단어를 나열하는 정도였다.
일부 그룹사 직원들 재택근무 명령…"대통령이 경제의 최대 리스크"
경제부처 전직 고위 관료를 지낸 A씨는 "경제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비상계엄사태를 예상했던 경제부처가 있었겠는가"라며 "금융위기 등에 맞춘 컨틴전시 플랜(경제비상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있을지 모르지만, 계엄사태에 대비한 플랜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으로 계엄 발표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사전에 부총리와 논의를 했어야 하지 않은가"라며 "경제 부처들도 황당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단체와 주요 그룹들은 긴급회의를 했다. 한국무역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4일 오전 간부회의를 하고, 향후 시장 방향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삼성과 현대차, 엘지(LG), 에스케이(SK) 등 재벌 기업들도 국내외 시장 변동을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일부 기업들은 4일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권고하기도 했다. 또 계엄사태에 대한 별도의 입장은 내지 않고, 반응도 조심스러웠다.
삼성 계열사의 고위 임원 B씨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일이라 뭐라 말하기조차 어렵다"면서 "미국의 정권교체와 함께 글로벌 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 정치가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그룹의 또 다른 임원 C씨도 "국내 수요 감소와 함께 내년 글로벌 경기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전사 차원의 위기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에 대해 뭐라 코멘트(언급)하기 어렵지만, 다소 황당한 기분도 든다"고 전했다.
유럽 쪽 외국계 기업의 한국 대표인 D씨는 "사실 교과서나 영화에서나 봐왔던 비상계엄 선포를 처음으로 들었다"면서 "오전에 본사 쪽에서도 국내 상황에 관심을 보여,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향후 국내시장에 대한 본사 차원의 투자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로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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