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문 및 스포일러, 개인적 해석 등이 포함된 글입니다. 정리가 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필자는 금일 12시 40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관람한 뒤에 글을 서술하고 있다. 많은 기대와 걱정, 우려 속에서 개봉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 흔한 예고영상이나 포스터 조차 없는, 말 그대로 베일에 쌓여 있었던 작품이었다. 아마 많은 이들이 해당 작품을 향한 강한 의문을 품고 있을 터이다. 필자는 필자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능한 상세한 분석내용을 이 글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직접 본다면, 미야자가 하야오 감독의 과거 작품들의 각본과 설정을 기위 낸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만약 새로운 세계관과 창의적인 스토리, 훌륭한 연출 등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실망할 것이다. 재미가 없고 난해하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혹자는 그의 역량이 바닥을 보였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의도적인 연출이라 확신한다. 평이한 스토리와 진부한 설정들의 내면에는 그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장이다.
필자는 ‘줄거리-캐릭터-미야자키의 생애’의 단계로 한 분석을 그 근거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줄거리이다. 줄거리를 서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서술하더라도, “주인공 ‘마키 마히토’가 이사 후, ‘왜가리 외형의 괴물’과 조우한 뒤, 기이한 소문이 있는 첨탑에서 저승과 이승의 사이에 위치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 해당 장소를 탐사하며, 몇몇 인물과 협력하여 공간의 정체를 알게 된 뒤, 그 곳에서의 삶과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선택지 중에서 원래세계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밖에 없다.
해당 줄거리를 본다면, 곧바로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이사 후 괴물과 조우한다는 점은 ‘토토로’를, 기이한 소문이 있는 첨탑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저승과 이승 사이의 공간에서 결국 원래 세계로 돌아온다는 점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하게 한다. 영화를 직접 본다면, 그 외에도 다른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섬 라퓨타’,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벼랑 위의 포뇨’, ‘바람이 분다’ 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대부분을 연상할 수 있다.
이는 약간 기이한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별개의 작품에서 다른 작품을 직접적으로 연상할 수 있는 연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작품의 성격에 차이를 부여하여 작품들의 세계관이 결코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해 온 감독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성격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역량이 쇠퇴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만약 스토리만 그러했다면,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본다면, 그것이 의도적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마키 마히토’를 본다면 그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 해당 주인공의 외형은 ‘모노노케 히메’의 ‘아시타카’와 상당히 닮아 있으며, 주저 없는 행동력은 그 성격 역시 ‘아시타카’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아시타카’는 미야카지 하야오가 기획한 캐릭터 중에서도 완성형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이다. 그 외의 캐릭터의 대부분이 다른 지브리 작품의 캐릭터를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요소를 종합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감독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다. 그는 관객들이 이 작품을 관람하며 가능한 많은 지브리 작품들을 연상할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해당 작품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외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애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 역시 등장하다. 가령, 주인공 ‘마키 마히토’가 어린 시절 공습을 피해 이사를 갔으며, 부유한 집안의 자제라는 점, 아버지가 군수공장의 공장장이라는 점, 전쟁이 끝난 이후 동경으로 되돌아 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해당 내용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년시절의 내용과 일치한다.
한편, 작품의 후반부에 들어서게 되면, 한 노인이 등장한다. 해당 노인은 ‘마키 마히토’가 경험한 저승과 이승의 사이의 공간을 만들고 관리하는 인물이다. 해당 노인은 자신의 시간이 끝나가며, 자신의 세계를 ‘마키 마히토’가 이어받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를 불렀다 토로한다. 자신이 만든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은 반목과 의심, 전쟁이 발생하는 현실의 세계보다 지킬 가치가 있을 것이라 설득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 모습을 보며,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노년시절, 즉 현재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습을 연상하였다.
작품을 곱씹을수록, 그가 이 작품 하나에 자신의 생애 전체를 정리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소년시절의 내용을 주인공의 모습에 담았고, 자신의 생에서 이룩한 작품들을 캐릭터와 설정들에 담았고, 자신의 노년기의 모습을 노인의 모습에 담았다. 즉,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긴 인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정리한 작품인 셈이다. 때문에, 이 작품의 본질은 다큐멘터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어째서 이 작품을 은퇴작으로서 공개하였을까? 그 질문의 답이 바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의 제목이다. 그는 작품을 바탕으로 “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각각의 관객들의 몫일 것이다.
정리한다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단독적인 작품으로서 가치는 낮다. 재미있다고 할 수도 없으며, 대중적이지도 않다. 오락영화를 기대한다면 무조건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82년의 생애를 이해하고, 그의 작품들을 사랑해 왔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그의 은퇴를 기념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질 터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과 함께 자라나 그의 작품에 몇 번이나 감탄을 자아냈던 필자에게 있어서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로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