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1편
고민하다가 드디어 푼다...
나덬의 유구한 로망 브랜드.
앞으로도 영원히 로망으로 품을 브랜드.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샤넬의 창업자인 가브리엘 샤넬의 일생과
샤넬의 패션뷰티 전반적인 철학을 알아야 하기에
'명품 브랜드'라고 칭하고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 샤넬 패션에 대해,
샤넬 뷰티에 대해, 샤넬 뷰티 중에서도 향수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나눠 쓸게.
(사실 아르마니, 입생로랑 같은 브랜드들 전반이 다 이렇긴 함.
패션 하우스에서 나온 뷰티 브랜드들은
오리지널 패션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
나중에 하나씩 다 써볼게!)

1. 샤넬은 창업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의 이름을 따서 샤넬이다.
1-1.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에 태어나 1971년까지 살았다.
20세기 여성 패션에 '샤넬 이노베이션'을 일으킨 가브리엘 샤넬. 애칭은 코코.

1-2. 샤넬의 일생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직접 이룩한 브랜드.
그녀가 일으킨 패션 혁명.
사랑으로 뒤얽힌 삶.
이번 1편에서는 샤넬의 사랑, 그녀의 연인들에 포커스를 두고 TMI를 풀어본다.
1-3. 샤넬의 삶은, 말 그대로 사랑으로 뒤얽혀 있다.
뒤덮였다, 가득하다, 이런 표현으로는 모자라다.
얽히고 섥히고 난리가 난다.
샤넬은 남성 편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연인의 친구도 사랑하고
후원하던 사람도 사랑하고
부인 있는 사람도 사랑하고 그런다.

2. 우선 샤넬의 어린 시절부터 잠깐 본다.
샤넬의 유아시절은 생각보다 불우했다.
어머니는 샤넬이 12살 때 일찍 눈을 감았고
아버지는 떠돌이 장사꾼이라 어린 샤넬에게 1도 관심이 없어서 샤넬을 고아원에 버렸다.
어린 샤넬은 여러 고아원과 수도원을 전전했다.
타고난 수저가 중요하던 그 시절에, 샤넬의 출신은 영 별로였다.
2-1. 샤넬이 바느질을 처음 배운 곳이 수녀원이었다.
샤넬은 수녀원에서 배운 바느질로 봉제 회사에 취직한다.

2-2. 성인이 된 샤넬은 낮에는 봉제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라 로통드'라는 뮤직홀(카바레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 샤넬은 "코코가 트로카데로에서 누구를 만났던가?"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게 샤넬의 애칭인 '코코'의 시작이다.
샤넬은 막상 이 애칭을 딱히 엄청 좋아하진 않았다고 한다.
2-3. 이 즈음 샤넬은 가수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수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곧 접은 것 같다.
이후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 이유가 남자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샤넬의 연인들이 등장한다.

3. 샤넬의 첫 연인은 20대 중반에 만난 젊은 장교, 에티엔느 발상이었다.
위 사진에서는 중간 사람임. 그 옆에는 아서 카펠이라는 사람인데... 밑에 또 나옴.
암튼 샤넬은 에티엔느 발상의 정부가 되고,
(진짜 연인이 되기에는 신분 차이가 너무 컸다.)
발상의 집에서 타고난 패션 감각과 실력을 선보였다.
남성용 승마복을 여성복으로 개량해서 직접 입고 말을 타기도 했다.
물론 승마는 발상이 직접 알려준 것이다.
3-1. 발상의 후원을 받은 샤넬은 여성 옷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취미 삼아 여성용 모자를 디자인했다.
이 모자의 반응이 사교계 사람들에게 꽤 반응이 좋았다.
3-2. 발상은 샤넬의 재능을 발견하고 프랑스 상류 사회로 가는 문을 터주었다.
샤넬은 이런 발상을 "나의 아버지, 나의 형제, 나의 가족"이라고 부른다.
발상 덕분에 가난했던 샤넬이 프랑스 사교계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 거다.
그 덕분에 샤넬은 여러 남성과 염문을 뿌리기 시작했다!
3-3. 발상은 샤넬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패션 부티크를 열고 싶다는 샤넬의 꿈은 무시했다.
"여자가 무슨 일을! 떼잉!"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4. 1910년, 샤넬은 27살에 피레네 산맥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 발상의 친구이자 영국인 폴로 선수인 아서 보이 카펠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샤넬의 두 번째 연인이 되었다.
????????????????
암튼... 카펠은 발상과 다르게 샤넬의 꿈을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파리에 가게를 열고 싶다는 샤넬의 말을 듣고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근데 이 사람 약혼녀가 있었다. 그래도 떠난다.

4-1. 샤넬은 발상에게 "카펠과 함께 떠나요."라는 편지를 남기고 파리로 떠난다.
버림 받은(?) 발상은 이 사건 후에도 샤넬과 친구로 인연을 계속 이어나간다.
4-2. 샤넬은 카펠의 도움을 받아 파리의 번화가 깡봉에 <샤넬 모드>라는 여성용 모자 가게를 연다.
이게 샤넬의 최초의 부티크가 된다.
샤넬이 카펠을 만나 <샤넬 모드>를 연 데까지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모두 1910년에 일어난 일이다.

4-3. 이 <샤넬 모드>에 카펠이 돈과 정성을 존나 많이 들였다.
카펠은 여러모로 부자였다.
돈도 많았고 인맥도 개쩔었다.
단순히 부티크 열어주고 끝이 아니라 자기의 인맥을 활용해 샤넬의 성공을 존나 도왔다.
이후로 카펠은 샤넬과 9년을 사귄다.
이후 샤넬은 카펠을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카펠은 나를 낳았어요."라는 말도 남겼다.
4-4. 카펠은 샤넬이랑 9년을 만났지만 1918년, 영국 귀족의 딸인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샤넬과 친구로 지낸다.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라, 둘은 아주 애틋한 친구였더란다.
그런데 결혼 후 1년만에 카펠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1919년이었다.
이 때 샤넬이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50년 후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
"카펠을 잃으면서 난 모든 걸 잃었다."

4-5. 샤넬의 보이백에서 보이가 보이 카펠의 보이다.

5. 샤넬과 카펠을 언급할 때, 여기서 놀랍게도 한국이 등장한다.
응, 우리나라 KOREA!
기쁘니까 따로 번호 뺀다.
카펠이 샤넬에게 고가의 가구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게 한국 가구였다고 한다.
단순 선물이 아니라 약간 혼수가구 삘이었다는 말도 있다.
샤넬은 죽을 때까지 이 가구를 간직했다고 한다.
아직 안 끝났다 ^^ 샤넬의 사랑과 불륜의 역사...
샤넬은 그렇게 꼭 약혼녀나 부인 있는 남자들을 만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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