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수건을 엄청 쓰시거든
약간 얇아졌다 싶은 건
우리집으로 깨끗이 세탁해서 보내주심
오늘도 한가득 받았다.
우리는 16년차 부부고
애기는 없고
애옹이 두마리랑 살았어
첫째는 결혼전부터 내가 모시던 분이고
지금은 무지개 다리 넘어 계시고
막둥이는 아직 쌩쌩해
결혼한다고 양가에 말할때
시어머니가 고양이는 절대 안된다고 하셨거든
근데 걱정할 거 하나 없이 남편이 다 커트시켰고
시어머니는 우리 신혼집부터 지금 사는 집까지 한번도 안 오셨음
그 뭔가 고부갈등 그런게 아니라
동물이 단순히 무서우셔서 그렇게 말 하신 것임
시어머니란 말도 어색할 정도임
내가 맨날 우리 옹마 울 옴마 이렇게 불러서.
첫째가 투병하다가 떠나고
내가 엄청 힘들어했거든
밥 못 먹어서 링겔로 연명하고
그때 옴마가 곰탕도 끓여보내주시고
장어즙도 보내고 소고기 먹자고 불러내시고
응 옴마도 그때 속을 태우셨나봐
그러시더니
" 집에 하나 더(막둥이 말씀하시는 거임) 있제?
금마한테 자리깔아줘주고 그 목욕할때 써라"
이러면서 남편 손에 수건을 한 무더기 들려보내셨더라
"괜히 내가 무서버가 갸를 싫어했다
며느리 아직 그거를 섭섭케 생각하능가..."
하셨다더라
그걸 시작으로 때마다 뽀송뽀송하게 세탁된 수건들을 보내주셔
애옹이 대소변도 가리고 몸수건도 따로 있고
맨날 침대에서 자서 사실 수건 필요없는데
꼬박꼬박 받아다가 수건으로도 걸레로도 쓰고 행주로도 쓰고
발 수건으로도 쓰고 한다
어젯밤에 남편이 또 한 무더기 받아왔길래
정리하다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드네
우리 첫째가 우리 식구들에게 남기고 간 게 많다는 생각.
동물이 처음인 남편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막둥이도 아빠가 산책로에서 죽은 쥐인 줄 알고 치우시려다
살아있다는 거 알고 아빠네 집 멍뭉이가 데리고 있었는데
아빠가 나한테 '도움!' 외치셔서
우리 첫째가 엄청 잘 키워가지고 식구로 맞아들였고
시옴마도 이제 꼬박꼬박 막둥이 안부를 물어보심
그 새까만 아 잘 있나, 하고
가고나서도 엄마 아빠한테 큰 사랑을 남겨주고 갔어
얼굴도 한번도 못 본 친할모니가 울 첫째 애기를 이뻐해주셔서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 덕을 보네
떠나서도 네 사랑에 기대서 살아가고 있네.
보송보송한 수건 냄새 너무 좋다
아직 한참 쓸 정도로 도톰하고 헤지지도 않은 걸 ㅎㅎ
그냥 울 첫째 애옹한테도 고맙고 너무 보고싶고
그때 그렇게 막 험하게 말씀하신것도 아니었는데,
말 한마디 하신게 오래도록 맘에 걸려서
뭐를 좀 해줘야 할까 고민하시다
동물농장 보시고 (남편 피셜) 이거다! 싶어서
수건을 보내셨을 울 시옴마도 귀여워서 글 써봄 ㅋㅋ

첫째

막둥이 까만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