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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만 진화한 ‘군체’... 연상호는 진화하지 못했다
'군체'는 한국 장르물 중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들이 서사의 전면에 많이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는 상상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폐쇄된 공간의 열쇠를 쥔 전지현과 외부에서 이를 조사하며 내부에 조력하는 신현빈, 빌런과 대적하는 핵심 인물이 모두 여성이지만 캐릭터의 입체성은 찾아볼 수 없고 존재감마저 미미하다. 결말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하나, 이마저도 전개상 설득력이 부족해 캐릭터의 기능성만 강화할 뿐이다. 이들은 그저 서사가 요구하는 정답에 맞춰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꼭두각시와 필요한 세계관 설명을 늘어놓는 AI 비서로만 기능한다.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극 안에서 날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가히 역대급으로 매력적이라 할 수 있는 광기의 빌런을 완성한 구교환, 극 중 가장 입체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지창욱, 장렬하게 퇴장하는 고수 등 이 밖의 남성 캐릭터도 각자의 욕망을 고스란히 분출하며 화면을 장악한다. 욕망과 본능이 거세된 여성 캐릭터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얼굴이다. 여기서 연상호 감독이 어느 성별에 이입해 상상력을 극대화하는지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약자와 민폐, 방관자 캐릭터의 위치에는 어김없이 여성들이 배치된다. 연상호 감독은 남성을 두 팔과 다리가 온전하고 건장한 주체적 인물로 구성하는 반면, 여성은 성격이나 신체 등에 결함이 있는 수동적 인물로 구성한다. 남성은 노인조차 전국체전 육상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막힌 설정을 부여받고, 관객이 손가락질하고 미워해도 좋을 인물이나 전형적인 스릴러의 희생양 자리에는 청소년 여성과 장애인 여성을 위치시키는 식이다. 이와 함께 정의로운 남성이 연약한 여성을 구하다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구시대적 전개를 반복한다.
문제적인 젊은 세대, 위기를 몰고 오는 민폐형 여성,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정의로운 남성 등은 '부산행'에서부터 이어져 온 일관된 인물 구성이다.
극 중 단 한 번도 대면해 촬영한 적이 없다는 전지현과 신현빈은 앞선 두 사람과 달리 감정적 유대를 쌓을 기회가 없었다. 이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책임지는 두 인물의 원거리 호흡은 배우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만큼이나 매끄럽지 못하고 작위적으로 묶인다. 유대감은 결여되고 결말이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기능만 장착된 관계다. 연상호 감독은 두 여성 배우의 호흡을 통해 '여성 연대'를 스크린에 구현하고 싶었다고 했으나, 진정한 연대란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하다. 여성 연대라는 가치를 오직 활자로만 습득해 벌어진 서글픈 불상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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