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이 없는, '다시 만날 세계'를 꿈꾸며
'제왕적 남성성'에 맞서는 시위 문화 주도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함성이 들려왔다. 국회 안 상황의 생중계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멀리서 들리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 사이, 사람들의 함성이 탄핵이 가결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집회 참여자들은 곧이어 각양각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했다.
12월3일 오후 10시29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서 4일 오전 1시2분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7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인한 탄핵소추안 불성립, 14일 오후 5시 2차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대한민국의 시계는 혼란과 함께 빠르게 돌아갔다.
여성혐오는 권위주의와 연결돼 있어
12월4일부터 14일까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매일 열린 탄핵 집회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반짝이는 아이돌 응원봉과 2030세대 여성들이다.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2030 여성들은 국회 앞에서 윤석열 탄핵을 소리 높여 외쳤다. BBC코리아에 따르면, 12월7일 오후 4시 기준 서울시 생활인구 현황으로 10대에서 70대까지 여성과 남성의 집회 참여율을 살펴본 결과 여의도 집회의 20대 여성 참가자 수는 3만5926명으로 전체의 약 17.7%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다음으로는 50대 남성이 전체의 약 15%로 그 뒤를 이었으나, 20대 남성 참가자 수는 전체의 3.3%에 불과했다.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과 남성의 집회 참여율은 20대에서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렇듯 2030 여성들의 이번 탄핵 집회 참여가 주목을 받으며, 이 현상이 새로운 현상이라는 평가가 떠올랐다. 그러나 사실 그동안 여성은 항상 광장에 있었다. 비록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일명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인한 광화문 대규모 시위 때도 젊은 여성들은 함께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를 가장 먼저 이끌었던 집단은 10대 여성으로 당시 '촛불소녀'란 이름으로 회자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집회에는 영유아 자녀와 함께 거리로 나선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유아차) 부대'란 이름으로 대거 등장해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의 시초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내 시위였다. 처음에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기 위한 시위였으나 이후 최서원(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건이 알려지며 시위는 더욱 확대되었고, 전국적인 촛불집회로 이어졌다.특히 이번 윤석열 탄핵 집회에 2030 여성이 대거 집결한 이면에는 그가 상징하는 안티페미니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구조적 차별은 없다던 대통령 아래서 여성혐오 세력은 적극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에 대한 일상적 성희롱·성추행은 말할 것도 없고 교제살인과 딥페이크 성범죄,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여성혐오 범죄가 만연했다.
여성혐오는 권위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성평등한 가치관은 결코 권위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단체 연대체인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활동가들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가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이자 그의 '제왕적 남성성' 정치의 폐단이라고 말한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해외 언론들은 반(反)페미니즘을 앞세우고 그에 동조하는 2030 남성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윤석열의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이번 사태와 연결되어 있다는 논평을 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 반페미니즘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집게손가락 논란에서 시작된 반페미니즘 광풍이 어떻게 오늘의 사태로까지 이어졌는지 많은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광장에 2030 여성이 가장 많이 참여한 것은 지금까지의 반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거센 저항이 터져나온 것으로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탄핵 집회에는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장애인 등 다양한 집단의 참여가 부각되었다. 집회 시작 때 제시되던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은 "우리는 성별·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장애·연령·국적 등에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한 참여자입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처음부터 언급함으로써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한 것이다. 또한 "모든 참여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청소년·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대상화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약속으로, 아무도 불편하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집회 문화 조성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탄핵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
기성세대는 집회에 참여한 2030 여성 혹은 청소년들에게 '기특하다'거나 '대견하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기특하거나 대견한 어린 존재가 아니라 당신과 동등한 한 명의 동료 시민이라는 뜻이다.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회의사당 내에서 1박2일 투쟁을 이어가고 있던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긴박했던 그 순간 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이후 탄핵 집회 중 국회의사당역에는 전장연의 '장애인 시민권열차 탑승지지 백만시민 서명운동'에 서명하려는 시민들의 줄이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탄핵 집회는 탄핵 이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2030 여성들이 즐겨 부르는 《다시 만난 세계》와 또 다른 K팝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젊은 세대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에 불렸던 민중가요를 공부했다. 2030 여성들의 아이돌 응원봉을 본 다른 참가자들은 비슷한 응원봉을 구입하거나 집에 있는 재료로 반짝이는 물체를 만들어 들고 나왔다. 동물에 빗댄 욕설을 하지 말자는 동물권자들의 말을 경청한 시민들은 그 대안으로 어떤 욕설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연대의 현장이었다.
탄핵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일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모두가 존중받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길에 오늘의 광장의 모습을 기억하자.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의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 과거의 아픔이 미래의 희망이 되기를,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온 역사가 반짝일 수 있기를, 한 해를 마감하는 소망으로 기원해 본다.
'제왕적 남성성'에 맞서는 시위 문화 주도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함성이 들려왔다. 국회 안 상황의 생중계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멀리서 들리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 사이, 사람들의 함성이 탄핵이 가결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집회 참여자들은 곧이어 각양각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했다.
12월3일 오후 10시29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서 4일 오전 1시2분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7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인한 탄핵소추안 불성립, 14일 오후 5시 2차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대한민국의 시계는 혼란과 함께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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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정훈여성혐오는 권위주의와 연결돼 있어
12월4일부터 14일까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매일 열린 탄핵 집회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반짝이는 아이돌 응원봉과 2030세대 여성들이다.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2030 여성들은 국회 앞에서 윤석열 탄핵을 소리 높여 외쳤다. BBC코리아에 따르면, 12월7일 오후 4시 기준 서울시 생활인구 현황으로 10대에서 70대까지 여성과 남성의 집회 참여율을 살펴본 결과 여의도 집회의 20대 여성 참가자 수는 3만5926명으로 전체의 약 17.7%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다음으로는 50대 남성이 전체의 약 15%로 그 뒤를 이었으나, 20대 남성 참가자 수는 전체의 3.3%에 불과했다.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과 남성의 집회 참여율은 20대에서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렇듯 2030 여성들의 이번 탄핵 집회 참여가 주목을 받으며, 이 현상이 새로운 현상이라는 평가가 떠올랐다. 그러나 사실 그동안 여성은 항상 광장에 있었다. 비록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일명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인한 광화문 대규모 시위 때도 젊은 여성들은 함께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를 가장 먼저 이끌었던 집단은 10대 여성으로 당시 '촛불소녀'란 이름으로 회자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집회에는 영유아 자녀와 함께 거리로 나선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유아차) 부대'란 이름으로 대거 등장해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의 시초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내 시위였다. 처음에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기 위한 시위였으나 이후 최서원(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건이 알려지며 시위는 더욱 확대되었고, 전국적인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여성혐오는 권위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성평등한 가치관은 결코 권위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단체 연대체인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활동가들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가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이자 그의 '제왕적 남성성' 정치의 폐단이라고 말한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해외 언론들은 반(反)페미니즘을 앞세우고 그에 동조하는 2030 남성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윤석열의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이번 사태와 연결되어 있다는 논평을 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 반페미니즘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집게손가락 논란에서 시작된 반페미니즘 광풍이 어떻게 오늘의 사태로까지 이어졌는지 많은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광장에 2030 여성이 가장 많이 참여한 것은 지금까지의 반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거센 저항이 터져나온 것으로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탄핵 집회에는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장애인 등 다양한 집단의 참여가 부각되었다. 집회 시작 때 제시되던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은 "우리는 성별·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장애·연령·국적 등에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한 참여자입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처음부터 언급함으로써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한 것이다. 또한 "모든 참여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청소년·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대상화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약속으로, 아무도 불편하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집회 문화 조성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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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
기성세대는 집회에 참여한 2030 여성 혹은 청소년들에게 '기특하다'거나 '대견하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기특하거나 대견한 어린 존재가 아니라 당신과 동등한 한 명의 동료 시민이라는 뜻이다.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회의사당 내에서 1박2일 투쟁을 이어가고 있던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긴박했던 그 순간 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이후 탄핵 집회 중 국회의사당역에는 전장연의 '장애인 시민권열차 탑승지지 백만시민 서명운동'에 서명하려는 시민들의 줄이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탄핵 집회는 탄핵 이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2030 여성들이 즐겨 부르는 《다시 만난 세계》와 또 다른 K팝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젊은 세대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에 불렸던 민중가요를 공부했다. 2030 여성들의 아이돌 응원봉을 본 다른 참가자들은 비슷한 응원봉을 구입하거나 집에 있는 재료로 반짝이는 물체를 만들어 들고 나왔다. 동물에 빗댄 욕설을 하지 말자는 동물권자들의 말을 경청한 시민들은 그 대안으로 어떤 욕설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연대의 현장이었다.
탄핵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일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모두가 존중받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길에 오늘의 광장의 모습을 기억하자.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의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 과거의 아픔이 미래의 희망이 되기를,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온 역사가 반짝일 수 있기를, 한 해를 마감하는 소망으로 기원해 본다.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sisa@sisajournal.com
https://n.news.naver.com/article/586/0000093903?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