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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경험담 (군대썰)방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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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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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한지 1년이 지났고 나는 두번째 해안생활을 하게 되었다. 선선하던 날씨도 어느새 제법 쌀쌀해졌고 밤새 두 뺨을 간지럽히던 가을바람도 어느샌가 살을 에는 칼바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나의 두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내무실 침상에 기대앉아 읽다만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내무실 안으로 들어온 후임이 말을 건넸다.

"강XX 상병님. 근무자 신고 한다고 준비하시랍니다."

나는 아무말도 없이 내무실 벽을 바라봤다. 벽에 걸린 시계는 이제 막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야 아직 근무나갈려면 두시간이나 남았구만. 무슨 근무자신고야?"
"소대장님이 지금 한답니다."
"... 빌어먹을 밥풀떼기."


새로 부임한 소대장이 문제였다. 갓 임관한 소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새로온 소대장 역시 모든일을 FM대로 처리하려 했고 그로인해 우리들과 사사건건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근무자 신고는 근무 투입하기 직전에 간단하게 약식으로 진행하던 차였다. 나는 투덜대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른 고참들도 투덜대며 몸을 일으켰다.
물론 나보다 더 피곤한 쪽은 후임들 쪽이었다. 나야 내 장비만 챙기면 그만이었지만 후임들은 탄이며 통신장비며 이것저것 챙길게 많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형식적인 근무자 신고를 마치고 다시 내무실로 들어왔을땐 이미 근무시간이 훌쩍 다가와있었다.
오랜만에 생긴 여유시간은 그렇게 날아갔고 짜증스러운 마음에 나는 방탄헬멧을 내무실 바닥에 내팽개쳤다.

소대장과의 갈등은 근무를 나가서도 계속 되었다. 근무지 투입을 위해 기동로를 걷고 있을 때였다. 절반 쯤 도착했을 때 앞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짤랑거리는 방울소리와 쇠 부딪히는 쇳소리까지.. 우리들에겐 익숙한 소리였다. 근무지 앞 바닷가에선 가끔 동네에서 무당이 내려와 굿을 하곤 했다. 원래 야간에는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있지만 가끔 이렇게 굿을 할때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고는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등병때부터 우리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정해진 일이었다.
전의 소대장도 그 전의 소대장도 일반적인 관광객이나 주민들은 통제해도 무당만큼은 그냥 내버려 두곤 했다. 미신은 잘 믿지 않는 나였지만 굿을 하는 모습이나 쩌렁쩌렁 울리는 방울소리를 들을때면 찝찝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냥 지나갔으면 싶었지만 역시나 앞서가던 소대장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게 무슨소리야?"
"원래 가끔 여기서 무당들이 굿하고 그럽니다. 좀만 있으면 알아서 가니까 그냥 가지말입니다."

뒤따라 가던 고참이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새끼가 빠져가지고... 지금 작전지역에 민간인이 들어왔는데 그게 말이 돼? 빨리 가서 내보내!"


아니나 다를까였다. 결국 고참은 투덜대며 무당에게 다가갔고 한참을 얘기하는 듯 싶더니 결국 무당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시간은 실랑이 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소대장은 나와 후임한명을 지목했다.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니 고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무당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그런데 아무리 힘을 줘도 쉽사리 움직이지가 않았다.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이었다.결국 세명이 달라붙어서야 무당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끌려나가던 무당은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무슨소린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심지어는 한국말 같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그 무당의 눈빛과 악에받친 목소리는 나를 소름돋게 만들었다. 그렇게 무당을 쫓아내고 남은자리엔 굿은 한 흔적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렇게 근무지에 도착했지만 찝찝한 기분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우릴 보던 눈빛과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왔을때였다. 소대장초소 쪽에서 무전이 들어왔다. 바닷가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얘기했지만 소대장은 분명 소리가 들린다며 잘 들어보라고 말했다. 이게 또 왜이러나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짤랑 .... 짤랑 .... 짤랑 '

조용하던 바닷가 쪽에서 정말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방울소리였다. 온몸에 털이 삐쭉 서는 느낌이었다.

소대장은 민간인이 다시 들어온거 같다며 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하필이면 내가 제일 가까운 쪽이었다. 정말 재수 옴붙은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온 후임들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아직 길도 잘 모르는 후임들이라 결국은 내가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혼자서 여러번 다녔던 길이라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바닷가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고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 역시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가는 내내 방울소리가 들렸고 마침내 바닷가에 다다랐을 때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아까 그 장소로 향했다.
도착했을땐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샌가 방울소리도 멈춰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고 절벽 밑에서 굿을 한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초에 붙은 촛불만 희미하게 그 장소를 밝히고 있었다. 허탈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누군가 있었다면?
그런 상황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초소로 올라가 소대장에게 무전을 날렸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알았어 수고했다."
"수고하십시오 충성."

무전이 끝나자 마자 짜증이 밀려왔다.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나는 옷에 묻은 빗방울을 대충 털어내고 초소 구석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나 잠깐 앉아있을테니까 누구 오면 말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주저앉은채로 잠이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내 몸을 흔드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날 깨운 후임은 소대장 초소에서 무전이 왔다며 나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목이 잠겨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충성 xxx번 근무자 상병 강.."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선 신경질적인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이 새끼야! 아무도 없다며! 너 갔다온거 맞아?"

다짜고짜 욕부터 날리는 소대장의 말에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새끼들이 진짜.. 너 분명 나한테 갔다왔다 그랬지?"
"맞습니다."
"근데 지금 이 소리는 뭔데? 왜 또 들리는건데!"

나는 수화기에서 귀를 떼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낯익은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뿐이었다.

"...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말입니다?"
"이새끼가 진짜... 너 잤냐? 우리애들은 다 들린다는데 왜 너만 안들려! 방울소리 안들리냐고!"

순간 뜨끔했지만 다시 귀를 기울여봐도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나만 안들리는건가 싶어 같이 있는 후임들에게 물어봤지만 후임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었다.

"저희쪽에선 아무 소리도 안들립니다."
"갔다와 다시. 제대로 확인하고 나한테 다시 보고해라."

내 안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폭발한 나는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니 아무소리도 안들리는데 저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당황한 소대장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뒷쪽에서 비치는 불빛에 고개가 먼저 돌아갔다. 트럭 불빛이었다. 어느새 근무교대 시간이 온것이었다.
수화기 너머론 소대장의 거친 말들이 들려왔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다음 근무자들 도착했습니다. 오면서 뭐 본거 있는지 물어보겠습니다."

"... 너 이새끼 이따 보자."

그렇게 다음 근무자들이 초소에 도착했고 오다가 뭐 본거 있는지 물어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는 대답 뿐이었다.
근무가 끝나고 우리는 집결지에서 다른 초소 근무자들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소대장이 우리쪽으로 내려오는게 보였다.
소대장은 씩씩거리며 나에게 다가왔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에 눈 앞이 번쩍했다.
그렇게 오자마자 내 따귀를 올려 붙였다. 다른 소대원들이 놀라서 쳐다봤지만 소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말했다.

"너 민간인이냐? 하극상 하는거냐 지금? 누가 있건 없건 소대장이 명령을 했으면 따라야 할거 아냐 새끼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속으로 삯혀내고 하염없이 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철수를 하면서 아까 굿을 하던 장소를 지나가게 되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가 먼저라 할것도 없이 그 장소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지나갔고 마침내 트럭에 도착했다.
부대로 돌아오는 길은 여느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그러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통신병 후임에게 너도 방울소리를 들었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날 황당하게 만들었다. 아무 소리도 못들었다는 것이었다. 소대장이 너무 신경질적으로 반응해서 괜히 못들었다고 했다가 불똥이라도 튈까봐 그냥 들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얻어맞은 뺨이 화끈거렸다.

"이 개새끼..."

그때였다. 가만히 앉아서 넋을 놓고 있던 고참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근데.. 이상하지 않냐?"
"뭐가 말입니까?"
"그 굿하던 자리에 있었던 초말야. 분명 철수할때까지 촛불이 켜져있었단 말이지.. 오늘 날씨봐라. 비도 오고 바람도 이렇게 부는데.."

그 후로 부대에 도착할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소대장의 히스테리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이제는 우리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였고 고참들은 전역할때까지 죽은듯 지내는게 맘편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나에겐 아직 멀기만 한 전역이었다. 그런데 부대 안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대장이 미쳤다는 소문이었다. 근무지만 나가면 소리가 들린다며 소대원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렸고 실제로도 같이 근무를 나가면 나갈때마다 해안가 쪽으로 순찰을 보내곤 했다. 처음 한두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대장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 소문은 중대장의 귀에까지 들어가 중대장이 부대에 찾아오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얼마 안가 일신상의 이유로 소대장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 그때까지도 우리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군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말로 미쳤다는 의견부터 무당이 저주를 내렸다는 소문까지.. 뭐가 진실인지는 우리들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이후로 내가 전역할 때까지 무당들을 통제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출처
http://todayhumor.com/?military_2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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