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⑴ 분필가루
영숙이와 숙희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숙이가 비명을 지르더니 차도로 뛰어들었다.
“끼이익…… 쿵!”
한적한 밤길을 빠르게 달리던 자동차에 치여 영숙이는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영숙이는 입시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로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국어 시간이었는데 숙희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심코 창밖을 쳐다보았다.
“으악!”
“왜 그러니?”
선생님이 새파랗게 질린 숙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영숙이가 창틀에 손을 얹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어요.”
“숙희야, 영숙이는 죽었어. 정신 차려.”
“아니예요. 바로 조금 전까지도 저기에 있었어요.”
“너는 좀 쉬어야겠다.”
이윽고 수업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 숙희는 얼른 창가로 갔다. 창틀에는 아이들이 지우개를 털어 분필가루가 뽀얗게 덮여 있었다.
“으악!”
숙희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뽀얀 분필가루 위에는 여덟 개의 피묻은 손가락 자국이 분명히 찍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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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⑵ 12시의 전화벨
미영이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흔히 있는 대학에의 꿈, 미래의 설계 같은 고민이 아닌, 그저 내일부터 4일간 계속되는 2학기 중간고사가 고민이었다. 수재라 불리는 언니, 오빠와 늘 비교당할수록 미영인 더욱 더 반항적으로 변해갔다.
내일이 시험이라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기는 하지만 온통 잡념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겨졌다.
“뎅, 뎅, 뎅…….”
괘종이 열두 번을 쳤다.
“삐리리리…….”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마지막 종소리가 끝나자마자였다.
“깜짝이야. 웬 전화벨 소리가 저렇게 크지? 간 떨어질 뻔했네.”
미영이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미영이니? 나야. 여태까지 공부했구나, 계집애. 평소에 안 하던 짓을 다 하구…….”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이 밤중에 전화한 이유가 뭐야? 그리고 넌 누구야?”
“우선 내가 부르는 대로 적기나 해. 내일 시험 잘 치르게 해줄 테니까.”
“뭐, 그게 정말이니?”
시험을 잘 치르게 해준다는 말 한마디에 귀가 솔깃해져 미영이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얼른 연필을 준비했다.
“그래, 불러봐.”
“잘 받아 적어. 3, 1, 1, 2, 4, 3, 4…….”
“다 적었니? 그럼 내일 시험 잘 봐. 또 걸게. 꼭 네가 받아야 돼. 그럼 안녕.
“아, 잠깐만…….”
“딸깍!”
전화는 끊겼다.
‘누구 목소리더라? 이건 분명히 시험문제 답안 같은데……. 어떻게 이것을 알아냈지?’
미영이는 도무지 영문을 몰랐다.
‘에이 설마…….’
그렇지만 달리 뽀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망친 시험인데 뭐 하는 생각으로 그 숫자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음날 미영이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앞의 네 문제는 다행히 자신이 아는 문제였는데 놀랍게도 어제 불러준 숫자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불러준 숫자는 정답임에 분명해.’
미영이는 어제 전화에서 불러준 대로 답안지를 써내려갔다. 아주 홀가분했다.
그날 저녁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괘종이 12시를 치자 이윽고 전화벨이 울렸다. 미영이는 들뜬 마음에 벨이 채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를 들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영이니? 우선 적어. 2, 2, 1, 4, 3, 1, 2…….”
다음날도 전화의 목소리가 불러준 대로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미영이는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이번 시험은 아마 내가 1등일 거야. 그런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오늘은 꼭 물어봐야지.’
이렇게 굳게 다짐하고 그날 밤을 기다렸다.
“뎅, 뎅, 뎅…….”
시계가 또 12시를 쳤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삐리리리…….”
역시 전화벨도 울렸다. 그러나 오늘은 급하게 받지 않았다.
“여…… 여보세요?”
“오늘은 왜 늦게 받니? 졸았나보지. 그럼 어서 받아 적어. 3, 1, 2…….”
“잠깐만, 궁금한 게 있어.”
“그래? 일단 적기나 해. 그 다음에…….”
“안 돼. 지금이어야 돼.”
“그럼, 좋아. 뭔데?”
“나는 네가 누구인지도 몰라. 네가 누구인지 말해줘.”
“얘, 아무리 내가 이름을 안 밝혔기로서니 가장 친했던 친구의 목소리도 못 알아보니? 나 선미야, 윤선미.”
“뭐 선미? 너는…….”
미영이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너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래, 나는 죽었어.”
“그럼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바로 네 등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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