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유리구두 (2001)
브리저튼 시즌4 (2026)


오늘 밤이 끝나면,
이 눈부시고 아름답고 마법 같은 밤이 끝나면
모든 것은 예전과 똑같아질 것이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말로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해져서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갔을 때 고통이 더 커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어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라민타의 구두를 닦을 수 있을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다잡으며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뿐.
“당신 부모님들을 만나 뵙고, 당신이 키우는 개가 있으면 그 녀석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싶어.”


그녀는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았다.
차라리 그녀가 거짓말로 아무 이름이나 가르쳐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그녀를 떠올릴 때 적어도 이름이라도 붙일 수 있을 텐데.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아마도 초라한 하녀에게서 사교계의 화려한 레이디를 보게 되리라 예상치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
남루한 하녀 차림을 한 여자에게서 2년 전의 레이디를 찾는다는 것이 가능할 법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지난 2년간, 베네딕트 브리저튼과의 추억은 단조롭고 따분하기만 한 일상에서 가장 눈부신 빛이었던 것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그를 꿈꿔 왔는데 그가 자신을 알아봐 주지 못해서 서러웠다. 차라리 그가 못 알아본 것이 다행일테지만 그래도 마음은 아팠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가 자신을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공상에 불과하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하녀일 뿐이었다.

베네딕트는 소피를 그냥 시시껄렁한 하녀 나부랭이가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 대우했다.
이 순간에 와서야 비로소 그녀는 인간 대접을 받는 걸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깨달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와 함께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자신이 정신없이 사랑에 빠질까 봐 겁이 났다.
그렇게 되어 봐야 내가 얻는 게 뭐람?
상처 입은 가슴뿐일테지.

하지만 그녀가 처해 있는 상황 중에서도 그것이 가장 잔인한 부분이었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그에 대한 사랑은 점점 깊어만 가고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와의 미래를 꿈꿔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것도 이젠 진력이 났다.
소피는 이곳에 있고 그의 여자가 될 것이다.

이건 그저 욕망에 불과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녀를 숨겨진 여자로 만드는 것 뿐이다.
하마터면 평생 해 온 맹세니 신념, 그 모든 것들을 단 한 번의 방탕한 키스에 날려 버릴 뻔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