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영국이 수호통상조약을 맺은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1886년.
영국에서 온 신사,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고요한 나라, 조선의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조선이라! 홍콩을 거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동생 콜린으로부터 조선이라는 나라는 아시아 대륙 동쪽 끝, 청나라와 일본의 사이에 자리잡은 반도국이라는 설명을 들었으나, 베네딕트로서는 조선 행을 결심하기 전 까지는 이름 한 번 들어보디 못한 낯선 나라였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예술가를 만난다 하며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나돌아다니는 베네딕트를 보다 못한 바이올렛은, 형 안소니를 돕기 위하여 차남인 네가 무언가라도 해야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며 기어이 베네딕트를 배에 태웠다. 아, 아니지. 처음은 '요즘 대 인기의 우키요에 화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지 않냐'며 이번 홍콩 여행에 형도 동행하지 않겠냐는 콜린의 말이 시작이었다. 분명 홍콩에서 시모노세키행 배를 타기로 하였는데,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인지 그도 잘 모르겠다. 일단 도착해버렸으니 영사관을 찾아가 이런 저런 도움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한 베네딕트는 영국 영사관이 있는 한양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런. 런던에는 슬슬 자동차가 보급되고 있는 이 시기에, 마차도 없는 나라라니.
몰락한 양반 백건의 딸 백소희는 한양에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외동딸이라고는 하나 백건의 피가 섞였다는 뜻일 뿐, 그 어미 좌씨 수정은 농민의 딸이었기에 백건과는 정식 혼례를 치르지 아니하였다. 소희를 낳으면서 좌씨가 요절하고, 대를 잇기 위하여 백건이 민씨 가문의 아라를 정실부인으로 맞이 하였으나 백건은 그 사이에서도 후사를 보지 못한 채 소희가 열 넷이 되던 해에 마을에 돌던 역병으로 죽어버렸다. 백건은 양반 가문의 규수가 아니면 정실부인이 될 수 없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한편 뭇 사람이라면 남녀 구분 없이 배워야한다는 선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였기에, 소희는 아비를 통하여 매일같이 서당글을 읽었고 이미 사서삼경을 다 뗀 상태였다. 어찌되었건 이처럼 백건으로부터 예쁨을 받고 자란 모양새가 나는 소희를 못마땅해 한 민 부인은 소희를 내쫒아버렸다. 그렇게 소희는 좌씨와 막역지기인 언년이와 언년이의 아들 알동이와 함께 살며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양반 부인들의 비단 옷을 짓다보니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귓동냥으로 주워 듣던 소희는, 최근 돈의문 인근에 어느 한 미국인이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당을 열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라면서 이화학당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소희가 왕실의 영어교사인 베네딕트(사료에서도 조선 왕실 최초의 공식 외국인 영어교사가 영국인이래)를 만나 어쩌구 저쩌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