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이대로 그만 둬도 돼. 근데 이건 아니다"
임명옥(39·한국도로공사)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최리'다. '최고의 리베로'라는 뜻. 기록은 별명의 이유를 증명했다. 5시즌 연속 베스트 리베로로 꼽히는 등 현역 최고는 물론 역대 통산 리시브 정확 1위(6677개) 디그 성공 1위(1만1127개) 등을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에도 리시브 효율 56.54%를 기록하며 리그 1위로 건재함을 뽐냈다. 올 시즌도 "몸상태가 좋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출발이 영 좋지 않았다.
매년 50% 이상의 리시브 효율을 보여줬던 그였지만, 1라운드 리시브 효율은 48.31%에 머물렀다. 임명옥이라면 받아줄 거라고 생각된 공들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는 경우가 이어졌다.
임명옥답지 않은 출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자신이었다. 임명옥은 "컵대회 때도 그렇고 준비 잘했다. 그런데 첫 경기였던 페퍼저축은행과 경기를 하는데 나 때문에 졌다는 생각을 20년 동안 없었는데 그날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오래갔다. 팔 드는 것조차 떨렸고, 후배들이 리시브를 하면 '진짜 잘한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임명옥의 생각이 머문 곳은 '은퇴'였다. 지난해 10월 KOVO 창립 20주년 행사에서 공로패를 받은 뒤 "2027~2028시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은퇴 기념으로 LA 올림픽을 보러가고 싶다"고 밝게 웃던 그였다. 그러나 "올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선수 생활의 마침표까지 고민했던 시간.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과의 면담은 '최고의 리베로'를 다시 한 번 일으켰다. 평소 눈물이 없기로 유명한 임명옥이었지만, 김 감독과의 진심 가득했던 대화의 시간은 눈물로 가득 채웠다. 임명옥은 "나는 우는 걸 싫어해서 후배들에게도 우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 말라고 했다. 평소 감독님께도 많은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한다. 10이 있으면 10으로 가득 차야 말을 한다. 감독님은 모든 선수를 돌봐야하는데 나까지 보태지 말자는 생각이었다"라며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마음이 이렇다고 이야기를 하니 너무 편해졌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임명옥의 기량에 대해 의심이 없다. 김 감독은 "(임명옥이) 초반에 많이 흔들린 면도 있었다. 지금도 완벽한 거 같지는 않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기량에 70% 정도인 거 같다. 팀 성적도 그렇고 분위기도 처진 거 같다"라며 "(임)명옥이에게는 최고여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그 정도의 기량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본인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녹슬지 않았다. 나이 때문에 흔들린 건 아니다"라고 믿음을 보였다.
김 감독과의 면담 이후 임명옥은 다시 한 번 자신감을 찾아나갔다. 마음부터 다잡았다. 임명옥은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대로 그만둬도 괜찮지만, 그래도 명옥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자신감과 함께 기량은 조금씩 돌아왔다. 임명옥은 "올스타브레이크 때 감독님께서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공을 던져주셨다. 개인 수비 훈련을 하는데 '네가 제일 빠르다'고 하셨다. 최고의 칭찬이었다. 아직까지 후배들에게 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미소를 지었다.
지난 15일 GS칼텍스전에서 임명옥은 리시브 효율 56.52%를 기록하며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은퇴의 생각도 조금씩 접어두기 시작했다. 임명옥은 "다시 LA 올림픽을 보러 가야겠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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