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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무역흑자에도 원화가 약한 이유 (ING & JP모건)

무명의 더쿠 | 15:33 | 조회 수 698

 

*원본 리포트 발간일: 26년 6월 1일*

 

한국은 지금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5월 수출은 1년 전보다 53.2% 늘었고, 누적 무역흑자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코스피도 연초 대비 무려 110% 상승했습니다. 상식적으로라면 원화가 강해져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원화는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죠. ING는 이번 리포트에서 바로 이 '역설'을 설명합니다.

 

■ 5월 수출, 또 한 번 기록을 갈아치우다

ING에 따르면 5월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53.2% 증가했습니다. 4월(48.0%)보다 가팔라졌고, 시장 예상치(49.3%)와 ING 자체 전망(52%)도 모두 웃돈 수치입니다. 특히 조업일수(공장이 실제로 돌아간 날) 차이를 보정하면 무려 60.7% 급증했습니다. 같은 5월이라도 휴일이 며칠이냐에 따라 수출 실적이 달라지는데, 그 효과를 걷어내고 보면 증가세가 더 강했다는 뜻이죠. 연초부터 5월까지 누적 수출도 43.4% 늘어, 4월까지의 누적치(40.9%)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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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반도체 수출과 반도체 제외 수출의 3개월 평균 전년 대비 증가율 추이입니다. 2026년 들어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160%대까지 급등한 반면, 반도체 제외 수출은 완만한 회복에 그치며 수출 반등이 반도체에 크게 집중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출처: CEIC)

 

이 호황을 끌고 가는 것은 단연 반도체입니다. 반도체 수출은 169.4% 폭증했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2.3%에 달합니다. 반도체뿐 아니라 AI와 연관된 다른 품목들도 함께 좋았는데요. 컴퓨터(290.7%), 무선통신기기(12.6%), 디스플레이(9.4%)가 모두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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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한국의 ASEAN·중국·미국·EU 등 주요 지역별 수출 증가율 추이입니다. 2026년 들어 중국·ASEAN·미국향 수출이 크게 반등한 반면 EU향 수출은 상대적으로 부진해, 수출 회복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출처: CEIC)

 

ING는 이 흐름이 2026년 내내 더 가속될 것으로 봤습니다. 반도체의 구조적인 공급 부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더 흥미로운 건 수요의 엔진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AI 투자 확대뿐 아니라 중국의 AI 지출 급증까지 더해지면서, 두 거대 시장이 동시에 한국산 제품 수요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지역별로 보면 대미 수출이 59.1% 늘었는데, 이 중 반도체(651%)와 컴퓨터(675%) 수출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대중 수출은 이보다 더 가파른 80.9% 증가를 기록했고, 그 대부분을 반도체(243%)가 채웠습니다.

 

물론 모든 품목이 좋았던 건 아닙니다. 자동차 수출은 5.9% 줄었는데, 미국 관세와 중동 전쟁에 따른 물류 차질이 겹친 탓입니다. 선박은 16.7% 늘었습니다. 에너지 공급 충격은 엇갈린 결과를 냈는데요. 석유제품 수출은 금액으로는 46.6% 늘었지만 물량으로는 23.8% 줄었습니다. 정부가 석유·석유화학 제품에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인데, ING는 이 조치가 앞으로도 해당 품목 수출을 계속 짓누를 것으로 봤습니다.

 

수입은 20.8% 늘었습니다(시장 예상치 21.5%, ING 전망 25%). 주로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이지만, 눈여겨볼 대목은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이 71%나 급증했다는 점입니다. ING는 이를 두고, 강한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국내 설비 투자를 자극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에너지는 수입 물량 자체는 오히려 줄었는데, 가격이 뛰면서 금액 기준으로는 15.9% 늘었습니다. 여기에 제조업 PMI는 5월 54.8을 기록해 4월(53.6)보다 올랐는데, 이는 2021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자 여섯 달 연속 확장 국면(지수 50 초과)을 이어간 것입니다. 생산뿐 아니라 신규 주문까지 늘어, 제조업 호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는 분석입니다.

 

■ 기록적인 흑자에도 원화는 왜 약할까

문제는 환율입니다. 연초부터 5월까지 누적 무역흑자는 1,01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도, 원화 약세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ING는 그 이유로 두 갈래를 듭니다. 하나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중동 갈등 등)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고유의 요인입니다.

 

여기서 ING가 짚는 한국 고유의 요인이 흥미롭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코스피의 강한 상승(연초 대비 110%)이 오히려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코스피가 워낙 많이 오르다 보니, 외국인 투자자들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한국 관련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졌습니다. 그런데 기관 투자자들은 보통 자산별로 목표 비중을 정해두고, 한쪽이 너무 불어나면 다시 줄여 균형을 맞추는 '리밸런싱(rebalancing)'을 합니다. 즉, 한국 주식이 너무 많이 올라 비중이 과도해지자, 외국인들이 그 비중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한국 주식을 일부 내다 팔게 된 것이죠. 이 매도 과정에서 원화도 함께 팔리며 약세 압력이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ING는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가 원화 약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봤습니다. 한마디로, 주가가 너무 잘 올라서 환율이 눌리는 셈입니다.

 

■ 국민연금(NPS)의 자산배분 변화도 변수

또 하나의 변수는 국민연금입니다. ING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주,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현행 14.9%에서 20.8%로 끌어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ING가 추정했던 수치(19.9%)와 대체로 부합하는 수준이었죠. 동시에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자산배분(SAA) 완충 범위를 넓혔는데, 그 폭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쉽게 말해, 목표 비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벗어나도 괜찮은지 그 허용 범위를 넓혀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단기간에 국내 주식 비중을 공격적으로 줄일 가능성은 낮다는 게 ING의 판단입니다.

 

다만 국내 주식 비중을 크게 높였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다른 자산(해외 자산 등)에 대한 배분도 함께 늘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올해 계획에서 해외 주식 비중은 34.7%에서 35.6%로 올랐고, 국내 채권 비중은 23.1%에서 21.8%로 줄었습니다. ING는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해외 투자 시 환율 변동 위험을 상쇄하는 비중)을 높이긴 했지만, 해외 투자분을 전부 헤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따라서 해외 자산 투자가 늘어날수록 원화에는 계속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더해, 포트폴리오 투자뿐 아니라 해외 직접투자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한미 통상 협상의 일환으로 미국 내 직접투자 관련 조항이 2026년 하반기에 확정될 예정인데, ING는 이로 인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가 상당 기간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원화의 점진적 회복 시나리오

그렇다면 원화는 계속 약하기만 할까요. ING는 점진적인 회복 가능성은 열어뒀습니다. 만약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되면 달러/원 환율은 1,500원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봤습니다. 또한 한국은행이 연준보다 먼저 움직이면서 양국 간 정책금리 격차가 좁혀지면, 이 역시 원화를 지지하는 요인이 됩니다. 이런 흐름을 종합해 ING는 달러/원 환율이 1,450원 부근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다만 1,450원도 장기 평균에 비하면 여전히 상당히 약한 수준입니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좁혀지는 금리 격차를 감안하면 원화가 더 강해질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앞서 설명한 리밸런싱 매도나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같은 요인들이 추가 강세를 제한한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ING는, 강한 무역흑자와 코스피의 두드러진 성과에도 불구하고 2026년 말까지 달러/원 환율이 1,450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 한편, 월가는 한국 주식을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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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MSCI AC World 12개월 선행 EPS 증가율과 6개월 선행 조정한 대만 수출주문 증가율 추이입니다. 대만 수출주문이 2026년 들어 40%대 후반까지 급반등하며, 글로벌 기업이익 모멘텀이 추가로 개선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출처: JP모건)

 

환율과는 별개로, 한국 '주식'에 대한 월가의 시선은 어떨까요. 같은 날 나온 JPM의 마켓 인텔리전스 브리핑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JPM은 선진국(DM)보다 신흥국(EM)을 비중확대(OW)하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신흥국 중에서도 중국, 한국, 대만, 브라질, 남아공 등에 대해 강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 근거로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memory trade)이 더 이어질 여지, 대중 무역 마찰이 완화될 가능성, 하반기 더 완화적일 수 있는 연준, 그리고 중국 경기의 회복 가능성(green shoots) 등을 꼽았습니다. 무엇보다 신흥국 주식이 여전히 저평가돼 있고 투자자들의 보유 비중도 낮아(cheap and underowned), 앞으로 자금이 유입될 여지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한국과 관련해, JPM은 포지션이 이미 상당히 쌓여 있는(extended) 상태이긴 하지만 펀더멘털은 여전히 우호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조정의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들고 가는(stay long)' 종류의 자산이라고 표현했죠. 근거로, 한국 증시를 추종하는 ETF인 EWY가 최근 9주 중 8주를 상승했고 주간 평균 수익률이 6.3%에 달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결국 한국은 수출과 증시만 놓고 보면 강한 시장이지만, 그 강함이 곧바로 원화 강세로 이어지는 국면은 아닌 상황입니다. 반도체 사이클과 신흥국 랠리가 한국 주식을 계속 지지하더라도, 원화는 외국인 리밸런싱과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배분이라는 수급 장벽을 넘어야 더 뚜렷하게 회복될 수 있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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